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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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주 방면에서 내려온 정북장군 원소의 군세가 합류하면서 제후군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부대들의 편성을 재정비한 뒤,
제후군은 본격적으로 사수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관동 각지에서 수송해온 공성 병기들을 총동원하여 도독 서영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는 사수관을 향해 맹렬한 공세를 가하였다.
“공격하라──!!”
“사수관을 넘어라! 역적들을 쳐라!!”
말을 탄 무관들이 고함을 쩌렁쩌렁 내지르면서 공격을 재촉했다.
머리 위로 바위들이 날아갔다.
벽력거에서 쏘아진 바위들이 거침없이 날아가면서 사수관의 성벽을 사정 없이 가격해 버렸다.
꽈아앙!!
꽈과과광!!!
움푹 파이기 시작한 사수관의 성벽.
육중한 바윗덩이가 떨어질 때마다 파편더미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흙먼지가 치솟았다.
“운제를 놓아라! 장졸들이여, 성벽을 올라라!!”
제후군의 선봉장을 맡은 인물은 놀랍게도 장사태수 손견이었다.
원술과 밀약하여 형주자사 왕예와 남양태수 장자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으나, 출중한 무략과 용맹을 가진 손견에게 기대를 건 지방관들은 강동의 호랑이를 공세에 출격시켰다.
물론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었다.
조조와 원소 휘하에서 차출된 무관들이 참군의 자격으로 손견을 감시하고 경계했다.
“주군! 너무 가깝습니다!”
장졸들을 재촉하던 붉은 두건을 머리에 두른 남성이 어느덧 사수관에 근접하자 휘하 장수였던 황개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빗발쳤다.
당장에라도 눈먼 화살들에 의해 온몸이 벌집처럼 뚫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손견은 오히려 더 해 보라는 것처럼 소나기처럼 화살들이 빗발치는 전장을 누비고 다녔다.
“흐하하하핫!! 이보게, 공복! 내 평생 수많은 전장들을 누볐으나 이토록 어마어마한 군세와 싸우는 것은 처음일세!!”
손견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두 눈을 빛내며 사수관을 방비하는 동탁 군의 군세를 바라보았다.
그야말로 장관이 아닌가!
예리한 병장기와 두터운 갑옷을 두른 수십만 명의 군세들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천하의 패권을 건 건곤일척의 전쟁.
그 전쟁의 선봉장이 된 손견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용맹에 찬 협기를 발산했다.
“허나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저 사수관은 낙양으로 통하는 난공불락의 관문이 아닙니까!”
손견의 옆을 지키던 조무가 침음을 토해내면서 사수관을 노려보았다.
적들의 병력은 아군보다 많았으며,
또한 사수관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까지 방패막으로 삼고 있었다.
정공법으로 사수관을 함락 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는 거대한 적들을 상대로 무모하게 달려드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큭!”
방패를 치켜든 정보가 날아든 화살들을 막아 냈다.
“크학!”
“피, 피해라!!”
성벽 위에서 화살들이 빗발칠 때마다 장졸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이 꿰뚫린 채,
장졸들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도독 서영이 지휘하는 정예부대가 사수관을 철통 같이 호위하고 있었다. 적들의 거센 저항에 손견의 장졸들은 성벽에 오르지도 못한 채 수세에 내몰리는 낭패를 보게 되었다.
“불이다!”
“운제에 불이 붙었다!”
우여곡절 끝에 사수관 성벽에 붙인 운제들이 화염에 잠겨 쓰러지기 시작했다.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다.
불화살을 쏘기 전에 기름을 흠뻑 뿌렸는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도 운제들이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 * *
선봉장 손견이 철퇴한 뒤,
여러 지방관들이 군세를 이끌고 사수관을 공격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사수관은 결코 함락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라는 것을 확인한 꼴이 되고 말았다.
절대 정공법으로는 이길 수 없다.
사수관을 도모하려 했던 운제들이 화염에 휩싸이는 광경을 목격한 지방관들은 사수관을 우회하여 낙양을 도모해야 한다는 우회책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사수관에서 전력을 계속 소비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일이오.”
“나도 연주자사의 말에 동의하오.”
착잡함에 찬 연주자사 유대의 말에 산양태수 원유가 동참하여 말했다.
연합군의 목표는 낙양.
계속 사수관에서 전력을 허비할 순 없었다.
사수관 공략에 수많은 장졸들을 잃게 된다면 필시 동탁은 전군을 이끌고 출격하여 전력을 크게 소모한 연합군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다.
“허나 대군을 운용하기 위해선 반드시 사수관을 점령해야 하오!”
“사수관 말고는 길이 없소!”
제북상 포신과 동군태수 교모는 관동의 십만 대군이 낙양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사수관을 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수관 공략에 큰 차질을 빚고 있으나,
연합에 참전한 모든 지방관들이 일치단결하여 사수관을 무너뜨린다면 난공불락의 요새만 믿고 있던 동탁 군의 사기는 바닥을 치게 될 것이었다.
“귀관은 어찌 생각하는가?”
대안을 꺼내지 못한 채,
혹독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영양가 없는 열변을 벌여대고 있는지방관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흑발의 여인이 옆을 지키고 있던 이성휘를 향해 물었다.
“큼, 큼큼….”
조조가 돌연 헛기침했다.
심적 동요를 겪을 때마다 보이는 그녀의 오랜 버릇 중 하나였다.
자신을 거칠게 끌어안았던 이성휘의 과격한 애정 표현을 떠올렸는지 등잔불에 비친 조조의 얼굴은 새빨간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아.”
부끄럽기는 이성휘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머쓱함에 찬 헛기침하는 조조의 행동에 잠시 머뭇대는 반응을 보였다.
“연주자사와 산동태수의 말대로 사수관을 정공법으로 뚫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목으로 우회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입니다.”
사수관을 크게 우회하여 낙양을 도모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했다.
적의 매복에 당할 위험이 높을 뿐 더러,
병참선이 과도할 정도로 늘어나기 때문에 한꺼번에 적진에서 전멸당할 위험이 있었다.
‘관동 연합군의 기세에 겁을 집어먹은 동탁은 낙양을 포기하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일종의 기만책을 택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전히 동탁의 휘하에는 수많은 정예부대들이 있다.’
동탁이 과연 정해진 역사대로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과격한 방안을 강행할지가 미지수였다.
지금은 그 무엇도 속단할 수 없다.
전쟁의 판도가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과연 동탁이 관동 제후들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지, 아니면 장안으로 달아나는 기만책을 택할지는 흐름에 달려 있었다.
“우선 적들의 급습에 대비하여 경계를 철저히 갖추도록 하겠습니다. 아군이 사수관 공략에 전력을 투입한 틈을 노려 적들이 허점을 노릴지도 모릅니다.”
“그리하도록 하게.”
“예.”
조조에게 명령을 하달 받은 이성휘는 고개를 숙이면서 예를 취한 뒤에 군사회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던 군막을 나섰다.
군막을 나섰을 때,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금발의 여인이 한 걸음 다가왔다.
“성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반겼다.
오랜 연인을 만난 것처럼.
의도치 않은 이별 때문에 헤어진 연인과 재회한 것처럼 매우 애틋한 미소였다.
“본초 님.”
“성휘는 참 표정이 여전히 무뚝뚝하네요. 계속 그렇게 무뚝뚝한 모습만 보일 거예요?”
누나가 남동생을 타이르듯 금발의 여인은 쿡쿡 웃으면서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이성휘의 콧등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원소의 짓궂은 장난에 이성휘는 난색을 표했다.
“공로에 대한 소식은 들었어요. 분명히 이 본영 어딘가에 구금되어 있겠죠. 혐오스러운 족속 같으니….”
오만함에 찬 원술의 얼굴을 떠올렸는지, 원술에 대해 말하던 원소가 대뜸 얼굴을 찌푸렸다.
사예주에 들어섰을 때 여남원씨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하기 직전에 낙양을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원소는 “무능한 굼벵이 주제에 구르는 재주 정도는 있네요.”라며 경멸에 젖은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설마 원공로, 그 머저리 같은 놈이 형주자사와 그 측근들을 살해할 줄이야.”
남양군으로 도망친 원술이 자신을 받아 준 형주자사 왕예를 살해하고 그의 군세와 물자를 빼앗은 뒤에 연합군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원소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욕망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뿐인 원술의 작태에 다시 한번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멍청하게 둔영에 발을 들인 원공로를 추포하고 군세와 물자를 거둬들인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놈에게는 모두 과분한 것들이니까요.”
두 눈을 부릅뜨면서 원술을 향한 적의를 드러낸 원소는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이성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지금 바쁜가요, 성휘? 잠시 용건이 있는데.”
“시간을 잠깐 할애하는 것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좋아요.”
양손을 뒤로 모으면서 뒷짐을 진 금발의 여인은 수려함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성휘에게 말했다.
“긴밀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조조가 군사회의를 참석하는 틈을 노린 원소는 발칙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자기 군막으로 안내했다.
* * *
낭중령 이유의 부름을 받고 낙양에 급히 달려온 가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수도를… 이전한다는 말씀인가요?”
“확정된 것은 아니네만 어르신께서 기만책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 같네.”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수도를 옮긴다.
적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게끔 모든 것들을 불태우는 견벽청야(堅壁淸野), 흔히 청야(淸野)로 불리는 전술의 일환이었다.
동탁은 청야 전술을 마음에 들어 했다.
관동 제후들과 은밀히 내통하는 첩자들이 낙양 도처에 깔려 있음을 간파한 동탁은 낙양에 지독한 염증을 느끼게 되었고, 그 염증은 곧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 한다는 극단적인 전술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낙양은 천하의 중심이예요! 절대로 적들에게 내줘선 안 될 중심입니다! 태위 어르신께서 낙양을 포기하신다는 것은 곧 천하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결코 천도는 안 된다.
장안.
서쪽에 위치한 전(前) 수도였다.
동탁의 영역인 서량 지역과 가까우며, 주변이 모두 산들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유리하다.
하지만 장안으로 천도하게 되면 중원 지역과 완전히 단절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될 터였다.
장안성을 두르고 있는 울퉁불퉁한 산들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모든 길목들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장안성은 한나라의 옛 수도였지 않은가. 또한 어르신의 영역인 서량과도 가깝네. 그리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만.”
“장안은 천하를 모두 통일한 나라만이 수도로 삼을 수 있는 거점이예요. 낙양을 내주고 서쪽으로 물러나게 된다면 두 번 다시 중원을 도모할 수 없을 거예요.”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려는 기만책에 대해 거론하는 이유의 설명에 가후는 결사반대를 외쳤다.
실로 머저리 같은 방안이 아닌가.
수도 함양을 버리고 고향인 팽성을 새 수도로 삼았던 항우의 결정적인 실책에 버금가는 최악의 선택이다.
관동의 적들은 결국 사수관을 넘지 못한 채 자멸하게 될 터. 놈들이 자멸하게 되면 그때 주력부대를 보내어 관동의 난을 진압하면 될 터였다.
“으음…! 자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네, 토로교위. 내가 한 번 어르신을 설득해 보도록 하겠네.”
“어르신, 낙양의 방비를 위해 낭중령의 허락을 구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말만 하게.”
낙양을 보다 견고하게 방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는 가후의 말에 이유는 흥미에 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병주군의 모든 지휘권을 비장에게 맡겨 주세요.”
“비장…? 중상을 크게 입고 요양 중이 아닌가? 전쟁에는 나갈 수 없을 터인데.”
이유의 물음에 가후가 답했다.
“사수관에 발목이 잡힌 반란군 수괴들은 필시 요새를 우회하여 낙양을 도모하려 할 거예요. 어쩌면 북쪽의 하내군을 통과하여 낙양을 노릴지도 모르죠.”
“하내군…! 하내군에는 원소와 내통하는 사대부들이 많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겠군!”
관동 반란군들이 사수관을 우회하여 하내군 방면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가후의 말에 이유는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비장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쌓아 올린 무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죠. 병주 비장이 병주군을 이끌고 하내군의 좁은 길목들을 지킨다면 감히 얼씬대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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