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13화 (113/616)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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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합.

사력을 다한 일합이 내질러졌다.

의천검과 청강검.

그리고 방천화극이 만들어낸 일합이 200합이 넘도록 이어진 싸움을 찰나에 끝내버렸다.

쩌어어엉!!

붉은 불똥을 튀기면서,

수천 명에 달하는 생명들을 도륙했던 흉기가 양단되었다.

무거운 금속으로 제련된 최강의 병장기였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방천화극’이 무너졌다.

“크흑!! 크으윽!!”

단말마의 비명이 울렸다.

뒤이어 시뻘건 핏물이 솟구치며,

붉은 갑옷을 걸친 여걸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왼쪽 어깻죽지부터 가슴에 이르는 검흔이 붉게 새겨졌다. 방천화극을 절단한 청강검에 베인 것이다.

수많은 전쟁터를 누비면서 단 한 번도 치명상을 입은 바 없었던 여포에게 있어 이 치명상은 패배를 알리는 치욕과도 같았다.

“하아… 하아…!”

방천화극을 베어내며 여포에게 일격을 가한 이성휘가 거친 숨결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낙양에서 화웅을 말과 함께 참했으며,

형양에서는 무려 100근에 달하는 방천화극을 양단하고 여포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믿을 수 없는 기예를 해낸 중원제일 검은 체력의 한계를 느꼈는지 청강검의 칼자루를 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죽여!”

여포가 소리쳤다.

어깨에 굴욕적인 치명상을 입은 채,

바닥에 주저앉은 여포는 피를 쏟아 내면서 이성휘를 향해 소리쳤다.

싸움에서 패배한 무인이 적장을 향해 목을 내밀듯이 여포는 순순히 죽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네가 이겼으니까….”

황실과 조정을 위협해온 수많은 악적들을 처단하면서 드높은 무명과 명예를 떨친 중원제일 검이 양아버지를 시해한 배반의 무장을 쓰러트렸다.

분명 백성들이 입을 모아 말하겠지.

정의롭고 명예로운 중원제일 검이 몹쓸 짓들만을 해온 천하의 패륜아를 참하였다고.

자기 죽음은 중원제일 검의 드높은 무명과 명성을 빛내기 위한 역할로 쓰이게 될 것이었다.

“…여포.”

비틀대는 걸음을 내디디면서 여포에게 도달한 이성휘가 청강검을 늘어뜨렸다.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의 울림.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 늘어뜨린 칼날이 바로 앞에 겨눠졌다.

서늘한 죽음의 냄새를 맡게 된 여포는 두 눈을 감으면서 죽음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의연한 모습과는 반대로,

그녀의 두 손만큼은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봉선 님───!!!”

날카로운 절박함에 찬 외침과 함께 흑발의 여성이 검을 휘두르며 난입해 왔다.

이성휘가 검을 들어 막아 냈다.

하지만 장료의 난입으로 인해 한 걸음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장료의 휘하 무관들이 가세하면서 검을 겨눈 채 여포를 호위했다. 그리고 장료는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은 금발의 여인을 부축했다.

“문원, 이거 놔! 너희들도 모두 비켜!! 난 결투에서 졌다고!!”

적어도 마지막만큼은 무인으로 죽겠다는 결의를 토해냈다.

내 마지막 자존심이다.

배신의 무장에게 허락된 유일한 명예.

정정당당한결투 끝에 목숨을 잃는 것은 무인으로서 겸허히 맞이해야 할 숙명이었다.

“제발… 죽게 놔둬…!!”

“안 됩니다, 비장을 보필하는 무장으로서… 비장을 죽게 둘 순 없습니다.”

여포가 크게 발버둥 쳤다.

상처 입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절규에 가까운 비참한 외침을 내질렀다.

하지만 팔을 붙잡은 장료의 손은 완강하기만 했다.

절대로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듯 결연함에 찬 표정을 지은 장료는 무관들에게 호위를 명령하는 한편, 전장에서의 퇴각을 신속하게 명령했다.

“전군, 형양에서 퇴각한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병주군 전령들이 전장을 누비면서 퇴각을 알렸다.

그에 병주군은 빠르게 반응했다.

잘 훈련된 정예군단답게 난전을 이어 나가던 병주군 병사들이 군집을 형성하였다.

뒤로 물러서는 병주군의 모습을 본 조조군이 승세에 도취되어 돌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도리어 병주군에게 반격을 당해 패주하고 말았다.

“어림총사!”

검을 늘어뜨린 조인이 다가와 이성휘를 호위했다.

치열한 격전을 거듭하였는지,

새하얀 백옥 같았던 얼굴이 핏물로 물들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다급함이 섞인 외침과 함께 조인이 다가왔다.

청강검을 바닥에 꽂은 채 힘겨운 호흡을 내뱉고 있던 이성휘가 조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 힘이 빠졌을 뿐입니다.”

그 대답에 조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이성휘를 부축했다.

“드디어 병주군이 패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림총사께서 여포를 꺾으신 덕분입니다!”

항상 얼음장 같은 무정함이 느껴졌던 조인의 목소리에서 감격에 찬 기쁨이 느껴졌다.

여포마저 꺾은 무위에 크게 감탄했는지,

싸늘하게 느껴질 정도로 딱딱했던 얼굴에 벅찬 희열이 감돌고 있었다.

천하에 명성을 떨친 중원제일 검의 무위를 바로 눈앞에서 보게 된 흑발의 여인은 새하얀 뺨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감돌 정도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여남군과 영천군을 급습하여 관동 제후들을 두려움에 빠트렸던 병주군이 마침내 패주했다.

많은 정예 병력을 잃었음은 물론,

비장이라 불리던 여포가 단기결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조조군을 주장으로 치러진 형양 전투.

정동장군 조조가 패악 무도한 병주군을 물리치고 승전을 거둬냈다는 소식이 중원 전역에 알려지게 된다면 조조 군의 명성은 원소군을 앞지르게 될 것이 분명했다.

“…….”

활약에 기뻐하는 조인과는 달리,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문 채 패주하는 병주군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여포가 단기결전에서 패배했다.

또한 중원제일 검의 일격에 전투 불능의 치명상을 입고 말았다.

전령에게 소식을 듣게 된 가후는 자칫 최악의 참패로 이어질 수 있었을 위기로부터 병주군을 구해 낸 장료의 신속한 판단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주군은 비장 여포를 중심으로 무예와 용맹을 떨쳐 온 전투집단…. 용맹한 장(將)이 쓰러졌으니 졸(卒) 또한 무너질 수밖예요.’

가후는 진류태수 장막과 광릉태수 장초의 지원부대를 상대로 승세를 거듭하던 고순을 불러들였다.

이제 물러날 때다.

대국에서 패배한 이상,

길을 잃고 헤매게 될 패들을 불러들일 수밖에.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꼴사납게 미련을 두는 것은 책략가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무능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장졸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순 없었기에 가후는 장료의 퇴각 명령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설마 비장이 중원제일 검에게 패할 줄이야…. 비장에게 모든 부담들을 짊어지게 만든 저의 책임이겠죠. 적의 매복을 모두 간파하지 못했으니까요.’

가후는 자기 패착을 인정했다.

형양 전투는 아군의 패배다.

적의 수를 모두 읽어내지 못한 시점에서 이미 패배는 정해진 결과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또한….

“사수관의 이 빌어먹을 개새끼들은 어째서 전령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을 터인데도 형양에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걸까요.”

희미한 미소를 짓던 가후가 돌연 얼굴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분명 사수관에 전령이 도착했을 터.

도독 서영이 지원군을 즉각 보냈다면 병주군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더욱 분통이 터지는 것은 형양과 사수관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만약 서영이 먼저 발 빠른 기병부대를 급파했다면 후방을 기습한 장막과 장초의 병력에게 애를 먹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군사!”

“네, 우리도 퇴각하죠.”

무관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인 가후는 말머리를 돌리면서 사수관을 향했다.

대체 왜 지원군을 보내지 않은 것인지,

그것을 직접 서영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수한 군재를 갖춘 명장이라 평가받는 서영이 눈뜬장님이나 저지를 법한 멍청한 패착을 범했을 리가 없다.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 분명했다.

‘졌네요. 패배를 인정하죠. 설마 이 가문화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날이 올 줄이야…. 겸허하게 패배를 인정하려 했지만 내심 열 받네요.’

음험한 책략과 지휘로 중원 지역을 공포에 빠트렸던 가후가 패배를 인정했다.

실로 뼈아픈 첫 패배였다.

가후는 참혹한 패전의 쓴맛을 곱씹으면서 여유로움이 넘치던 미소를 입가에서 지웠다.

나를, 병주군을 패배로 몰아넣은 원흉.

이중 매복을 계획한 원흉의 정체가 알고 싶다.

그래야 지금 겪은 패배의 굴욕을…,

패전의 고배를 언젠가 몇십 배로 갚아줄 수 있을 테니까.

* * *

형양 전투에서 승전을 거둔 조조 군은 중모현(中牟縣)까지 물러난 뒤에 재정비를 갖췄다.

여포와 병주군을 패주시켰으나,

형양 전투에 참전했던 관동 제후군의 손실 또한결코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병주군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뤘던 조조 군은 말할 것도 없었고, 병주군의 후미를 급습했던 장막과 장초의 군세 또한 뼈아픈 피해를 입어야 했다.

“우리가 놈들을 이겼다!”

“여남군과 영천군의 복수를 제대로 해줬지!”

전투에서 승리한 장졸들의 어깨가 거만함에 차올랐다.

지독한 역병 같았던 놈들을 몰아냈다.

우리들의 용맹함에 분명 오줌을 줄줄 지리면서 도망쳤겠지.

중용무쌍으로 무명을 떨친 병주군을 상대로 승전을 거둔 조조 군은 건곤일척의 대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장졸들이 모두 기뻐하는군. 그들의 함성과 목소리가 군막을 뚫고 들려올 정도로 말일세. 군기가 흐트러질까 우려스럽지만 그들 또한 크게 기쁠 터이니 특별히 용인해주도록 하지.”

조조가 어슴푸레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말했다.

“맹덕 님께서 치열한 혈전 속에서 몸소 선두를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어찌 나 하나의 활약이겠나. 귀관이 단기결전에서 여포를 쓰러트린 덕분일세.”

이성휘를 직접 군막으로 부른 조조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를 전했다.

오직 이성휘를 향한 특별 대우였다.

다른 이들에게는 결코 해주지 않는 특별 취급.

애정 어린 시선을 받는 것도, 애정이 물씬 담긴 걱정과 감사를 받는 것도 오직 이성휘에게만 허락된 대접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들은 자효에게 들었네. 이번에도 또 무리를 했다지…. 매번 무리를 저지르는 게 귀관답네만, 무모하기 그지없는 귀관을 걱정하는 내 마음도 생각해주게.”

조조가 짐짓 타이르듯 말했다.

감사와 고마움을 전할 뿐이라면,

이성휘는 다음에 또 무리를 할 게 분명했으니까.

주군을 위해 결사의 각오로 전투에 임하는 것은 장수의 당연한 본분이겠으나, 조조는 이 미련하면서 사랑스러운 남자가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죄송합니다.”

싸움에 사력을 다한 탓일까.

이성휘는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눈꺼풀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두 눈을 끔뻑거렸다.

단기결전에서 여포를 이기지 않았는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몸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귀관은 실로 불경하군.”

조조가 후후 웃으면서 말했다.

흑발의 여인이 손을 뻗었다.

불안 하고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는 이성휘를 천천히 눕혔다.

모든 힘을 소진한 덕분인지 반발과 저항은 크지 않았다. 덕분에 무뚝뚝 하고 성실한 남성을 자기 무릎에 눕힐 수 있었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의 앞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으로도 모자라… 무릎마저 범하고 있지 않은가.”

고개를 들려는 이성휘를 애써 힘으로 누른 조조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도 완강한 모습을 보이려는 그의 행동에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조금만 더….

이 불경을 만끽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귀관을 위한 특별포상이라고 생각하게.”

사랑하는 남성에게 특별히 무릎베개를 해준 흑발의 여인이 쿡쿡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그의 콧대를 툭 건드렸다.

움찔 떨리는 사내의 얼굴.

그 귀여운 모습에 진심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사내를 품에 두는 것이 이리도 행복할 줄이야….’

남성의 투박하고 메마른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당장 만질 수 있었고,

툭 하고 건들 때마다 남성은 귀여운 반응들을 연이어 보여 주었다.

실로 만족스러웠다.

지금까지 손에 넣어온 그 어떤 것들보다도 말이다.

이 사내를 계속 품에 안을 수 있다면 지금까지 거머쥐었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허저.”

이성휘를 무릎에 둔 흑발의 여인이 조심스럽게 호위장을 불렀다.

“예, 주군.”

군막 바깥에서 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출입을 명령하지 않은 이상,

부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군막을 출입할 수 없었기에 허저는 바깥에서 대답했다.

“지금부터 둔영의 모든 소란을 금지한다. 또한 본 군막의 500보 이내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하겠다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사력을 다한 부관에게 주는 포상.

그를 위한 배려였다.

곤히 잠에 빠져든 사내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흑발의 여인은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뻗었다.

좀 더 만지고 싶다.

거칠고 메마른 사내의 뺨을 쓰다듬은 뒤, 포도넝쿨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정말… 좋아한다….”

듣지 못할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그가 듣지 못 하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지금 앞에서 말할 수 있다.

“천지신명에 맹세코… 진심으로 귀관을 연모한다.”

뺨을 쓰다듬던 손은 어느샌가 대담하게 그의 건조한 입술을 쓸고 있었다.

도자기를 만지듯 섬세하게,

그 감촉을 기억하려는 듯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이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찌 마음을 전해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타인에게 마음을 연 적이 없기에.

한없이 서투르고 어설플 뿐이기에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타들어 가는 소리는 과연 등잔불이 기름에 타들어 가는 소리일까, 아니면 애달픈 마음이 타들어 가는 소리일까.

군막 안에서는 그저 안식을 취하는 사내의 숨소리와 사랑에 젖은 여인의 숨소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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