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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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령들이 쉴 새 없이 말을 재촉하면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내달렸다.
조조군. 병주군.
조조 군의 전령은 형양 인근에서 매복하는 장막과 장초의 부대들을 향해, 병주군의 전령은 사수관에 주둔하는 도독 서영에게 교전 소식을 알리려 했다.
“더 빨리! 더 빨리 달려라!!”
“한시라도 빨리 소식을 알려야 한다!!”
형양 전투의 우위를 점하는 세력은 병주군이었다.
비장 여포가 승세를 잡았으며,
장료와 고순이 군세를 이끌면서 형양에 입성한 5천의 병력을 포위한 채 격멸하고 있던 조조군을 측면과 후미에서 공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후돈과 하후연, 조인 등의 조조군 장수들이 분전을 거듭하면서 버텨 내고 있었기에 전투는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는 백중지세(伯仲之勢)였다.
‘지원군이 전장에 먼저 도착하는 쪽이 전투에서 이긴다!’
팽팽하게 접전을 이어 나가고 있는 형양 전투의 승패를 가르게 될 요인은 지원군의 가세였다.
그렇기에 양군 전령들은 말이 고통과 절박함에 찬 울음소리를 낼 정도로 계속해서 박차를 가하면서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 * *
양웅상쟁(兩雄相爭)의 치열한 싸움은 두 강자들이 부딪쳤을 때 일어나는 법이다.
한 치의 앞도 알 수 없는 칼부림.
당장에 목숨이 떨어질 것처럼,
실로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큭!”
여포가 처음으로 물러섰다.
벼락처럼 몰아치는 일격들,
두 자루의 검들이 세차게 휘둘러지면서 방천화극을 가격했다.
마치 제 수족을 사용하듯 명검들을 휘두르는 이성휘의 현란한 공세에 병주의 비장이 마침내 수세를 겪게 되었다.
‘뭐야, 저 검은…? 방천화극과 정면으로 부딪쳤는데도 부러지기는커녕… 날이 빠지지도 않는다고?’
시퍼런 인광을 빛내는 패국조씨 가문의 두 명검들은 마치 제 주인을 만난 것처럼 예리한 절삭력을 뽐내고 있었다.
새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칼날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생기는 섬뜩한 소리였다.
맹렬한 파공음을 내며 휘둘러진 칼날들은 방천화극을 때리면서 세여파죽처럼 조조군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던 여포를 궁지에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때 봤을 때보다… 훨씬 빨라졌어… 게다가 방천화극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는데도 부러지지 않는 명검이 있다니….”
여포에게 가세하기 위해 군세를 이끌고 온 장료는 병주의 비장을 밀어붙이고 있는 중원제일 검의 모습을 보고서 두 눈을 크게 떴다.
낙양에서 싸웠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더욱 빨라지고,
더욱 날렵해졌다.
중원제일 검의 기교와 패국조씨 가문의 명검.
전력을 모두 끄집어낸 중원제일 검은 병주의 비장을 압도하기까지 했다.
‘큭! 뭐가 이렇게 빨라…!!’
여포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그 순간,
‘휘이익──!!’하는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허공을 스쳤다.
“이번에야말로 목을 베어 주마.”
“그래! 이렇게 나와 주셔야지!!”
칼끝을 늘어뜨리며 매서운 경고를 하는 이성휘. 그에 여포는 이를 드러내면서 희열에 젖은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에야말로,
낙양에서 흐지부지하게 끝났던 싸움의 결착을 짓겠다.
천하제일의 맞수와 대적하게 된 여포는 궁지에 몰리는 상황에까지 직면했음에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기쁜 듯 환희하기까지 했다.
“흡!”
여포가 맹렬하게 달려들면서 방천화극을 휘두르자 이성휘는 두 자루의 명검들을 교차하면서 막아 냈다.
몸이 뒤로 밀려났다.
날렵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음에도.
날카로운 명검들로 무장하였음에도.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에 버금가는 여포의 괴력만큼은 버티기 어려웠는지 칼자루를 쥔 양손에 극심한 통증이 가해졌다.
‘역시 천하 무쌍은 다르군.’
방천화극의 일격을 어떻게든 막아 낸 이성휘는 아래로 늘어뜨린 검을 재차 휘두르며 공세를 펼쳤다.
그에 여포 또한,
괴력이 실린 일격을 내지르면서 압도적인 무를 뽐냈다.
“후읍!”
“크으으!!”
벼락처럼 빠르게 휘둘러진 병장기들이 부딪칠 때마다 우렛소리처럼 금속음이 울렸다.
무의 정점에 선 무인들의 영역.
병주의 비장과 중원제일 검의 싸움을 지켜보던 이들은 경탄을 넘어 아득한 경외마저 느끼게 되었다.
날카로운 폭풍과 매서운 금속음이 울릴 때마다 숨통을 틀어쥔 것처럼 호흡이 멎는 듯했다.
“저게 바로 중원제일 검….”
수백 명에 달하는 장졸들을 때려눕혔던 괴물을 상대로 백중지세를 이어 나가고 있는 이성휘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흑발의 여성이 중얼거렸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급한 전황 속에서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무의 정점에 선 무인.
범부들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아득한 경지에서 괴물과 싸우고 있는 중원제일 검의 고고한 위상은 무와 충성을 숭상하는 조인에게 있어 눈부신 완성형과 같았다.
‘중원제일 검의 명성과 활약들은 예주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왔었지만… 설마 저 정도일 줄은….’
지금까지 계속 중원제일 검의 활약상들을 들어왔다.
그러나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돌개바람처럼 몰아치는 검술을 휘두르며 사력을 다하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충성을 휘두르며 목숨을 불태운다.
그 모습은 수많은 사서들에 등장했던 그 어떤 영웅보다도 고결하고 용맹해 보였다.
“너는 분명 명성과 무명을 갈망해왔을 텐데…, 어째서 정원을 죽였지?”
가쁜 호흡을 토해내면서 칼자루를 고쳐잡은 이성휘가 방천화극을 늘어뜨리고 있던 여포를 향해 물었다.
여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을 힐난하는 듯한 물음에,
투명한 물 위에 짙은 염료를 떨어트린 것처럼 분노와 죄책감이 뒤섞인 격정이 새하얀 얼굴에 빠르게 번져나갔다.
“죽일 만 했으니까 죽였겠지!”
붉은 갑옷을 입은 여걸이 크게 일갈하면서 마음속을 헤집는 죄책감을 애써 부정했다.
마치 구역질이 나올 것처럼,
지금껏 억눌러 온 감정들이 역류하는 것 같았다.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던 상대에게… 유일하게 맞수로 인정한 상대로부터 업과와 업보를 꾸짖는 듯한 힐난을 듣게 되면서 양부를 살해했던 그때가 뇌리 속에 생생히 떠올랐다.
“목숨을 연명하겠다고 충성을 맹세했던 양부를 죽이다니…. 그런데도 무인을 자청하겠다는 건가.”
북방 오랑캐들을 병탄하며 백성들을 수호해온 병주의 비장은 그때 낙양에서 죽었다.
남은 것은 그저,
양부를 시해한 배반의 무장이 있을 뿐이다.
동탁 군에 의해 퇴로를 잃고 사방이 포위되었을 때, 방천화극이 베어낸 것은 정원의 수급이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병주 비장의 공훈과 무명이었다.
“너는 다를 거라고 여겼다.”
무와 명예를 중시하던 여포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그녀는 다를 것으로 생각했다.
배신들로 점철된 오욕의 군웅.
양부였던 정원을 벤 뒤, 새 양부가 된 동탁마저 살해하게 될 무장이라고 할지라도.
정정당당을 끝까지 주장하면서 싸움에 일임했던 여포의 모습을 보았던 이성휘는 ‘무와 명성을 중시하는 이 여걸이 그 끔찍한 오욕의 영웅이 될 리 없다.’라고 은연중에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무와 명성을 중시하는 성정이었어도… 결국 탐욕에 찬 본성을 숨길 순 없었던 모양이군.”
양부를 죽이고 살아남았다.
양부를 적대하던 역신에게 빌붙어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또한 벼슬과 봉토까지 하사받았다.
실로 토악질이 나오는 일이 아닌가.
인의와 충성 따위는 바닥에나 내던진 잡배나 할 법한 일을 무와 명성을 추구하던 그녀가 한 것이다.
“닥쳐…!”
이성휘의 싸늘한 힐난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풀어 헤치고 있던 여성이 중얼거렸다.
그의 힐난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방천화극을 쥔 양손을 애처롭게 벌벌 떨기 시작했다.
“닥치라고…!!”
천 번을 두드린 강철처럼 일말의 주저함도,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었던 병주의 비장이 촌철살인 같은 맞수의 힐난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온몸을 크게 떨면서 치욕감을 토해냈다.
초점 없이 흔들리는 두 눈.
전쟁을 향한 열망에 찬 붉은 눈동자가 혼란과 격정에 흔들렸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어어───!!!”
호랑이가 포효하듯 수치와 치욕감에 찬 외침을 토해냈다.
그 외침에는 비참함에 찬 울음기가 섞여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마음속에 지옥의 유황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는 분노와 증오가 솟구쳤다.
“이성휘!!”
여포가 적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스스로 적토마에서 내리면서,
이성휘를 향해 방천화극을 겨눴다.
병주의 비장이 말에서 내려서자 이성휘 또한 말에서 뛰어내리며 의천검과 청강검을 늘어뜨렸다.
이제 신경전은 끝났다.
남은 것은 서로의 목숨을 빼앗기 위한 처절한 혈투 뿐.
둘 중 하나는 분명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공격하라!!”
여포와 이성휘가 다시 부딪쳤을 때,
싸움을 주시하고 있던 장료가 검을 치켜들면서 장졸들에게 공격을 명령했다.
“전군, 응전하라!!”
장료의 명령에 병주군이 준동하자 조인 또한 검을 치켜들면서 장졸들을 움직였다.
여포와 이성휘의 접전으로 인해 잠시 멈춰 있던 싸움이 재개됨에 따라 단말마의 비명과 날카로운 금속이 살덩이를 찌르고 베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성휘!!”
여포가 방천화극을 내리찍으면서 이성휘를 위협했다.
그에 이성휘는 의천검과 청강검을 들어 올리면서 방천화극을 막아 냈다.
“죽여 버릴 거야…!! 널 죽여 버릴 거라고! 네 말대로 나는 양부를 죽인 더러운 년이니까!!”
카득!
카드드득─!!
금속들이 맞물리면서 소리가 울렸다.
괴력에 있는 힘껏 눌리게 된 이성휘는 침음을 삼키면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았다.
“…….”
격노에 휩싸인 두 눈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본 이성휘는 잠시 말을 잊은 듯 입을 다물었다.
증오와 슬픔에 찬 눈물이,
피범벅이 되어 있던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살의와 분노로 물든 얼굴에 흘러내리는 것은 심중의 슬픔으로 만들어진 응어리.
무와 명성을 만천하에 떨리는 영웅이 되고 싶었으나,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오욕의 영웅이 되는 것을 선택한 여인의 좌절감이 흘러내렸다.
“끝을 내자.”
살의를 발산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향해 이성휘는 검을 휘둘렀다.
방천화극을 뒤로 쳐 낸 뒤,
청강검을 빠르게 휘두르면서 여포를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잠시 거리를 벌리면서 대치하게 된 여포와 이성휘는 서로를 향해 병장기를 겨눴다.
수천 명에 달하는 장졸들이 뒤엉켜 살육을 벌어대고 있는 전장의 중심에 선 두 남녀는 오직 서로를 향해 시선을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주군을 구하라!”
조조군과 병주군의 싸움이 계속해서 공격과 응전을 반복하고 있을 때,
새로운 군세들이 도착했다.
허리까지 백발을 늘어뜨린 여인.
여인의 좌우를 호위하고 선 의자매들.
8백 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조조 군에 합류한 유비가 의자매와 함께 전장에 가세했다.
“어서 맹덕을 엄호해야 한다!”
“과연 예상대로 여포가 형양에 있군!”
진류태수 장막과 광릉태수 장초가 이끄는 기병부대가 형양에 도달하여 모습을 드러냈다.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는지,
유비와 장막은 사수관에 주둔하는 도독 서영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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