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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09화 (109/616)

1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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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협은 한시라도 빨리 이성휘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제북상 포신과 산양태수 원유가 장졸들을 동원하여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지만, 유협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작은 어깨를 오들오들 떨면서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아직 전투가 벌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마차 밖에서 차가운 금속음이 울릴 때마다 유협은 두려움에 떨었다.

매번 금속음이 들린 뒤에….

사람의 비명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빨리… 빨리…! 빨리, 돌아와다오…!!”

유협은 또래 아이들처럼 겁이 많은 소녀였다.

아니,

또래 아이들보다도 겁이 무척 많았다.

우렛소리가 들리면 몸을 떨고,

어두컴컴한 심야를 몹시 두려워했다.

그런데도 항상 의젓하고 조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어릴 적부터 겪어온 참혹한 궁중 생활을 통해 ‘아무리 울어도 가혹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을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전하, 괜찮으시옵니까?”

왜소한 어깨를 오들오들 떨면서 무서워하는 유협을 본 초선은 두 팔을 조심스럽게 뻗으면서 그녀를 안아 들었다.

부디 이 품으로,

가련한 황녀의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도록.

초선은 벌벌 떠는 유협을 살포시 안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명공께옵선 적들을 크게 무찌르고 당당히 돌아오실 것이옵니다.”

상냥한 속삭임과 함께 모성애가 흐르는 품으로 꼭 안아주는 초선의 위로에 유협은 축축하게 젖은 두 눈을 끔뻑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항상 돌아왔다.

또한 이번에도 돌아올 것이었다.

아니,

반드시 돌아와야 했다.

“야, 약조 했으니까….”

일찍 부모를 잃고 오라비와 생이별까지 하게 된 작은 황녀는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잃는 것을 광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수라를 올리겠습니다.”

“네.”

어림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궁인들이 움직였다.

전쟁에 참전하게 된 유협을 위해 따라나선 궁인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 본분을 거뜬히 해냈다.

언제까지 본분을 다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유협을 보필하는 궁인들은 결연한 마음을 품고 본분에 전념하고 있었다.

“힘을 내시옵소서, 전하.”

“…응.”

초선이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다독여주자 작은 황녀가 울음기 가득한목소리로 대답했다.

* * *

조조 군은 형양의 매복이 성공할 수 있도록 많은 준비들을 기울였다.

관도현에 주둔하는 병력들에게 배수진을 치도록 명령하여 적의 이목을 속인 뒤,

장막과 장초 형제가 기병대를 이끌고 관도현 주변을 누비게 하면서 형양으로 은밀하게 이동한 병력을 흔적을 의도적으로 지웠다.

그러나 철저한 속임수로도,

결국 당대 최고의 책략가인 가후를 속이지 못했다.

“크악!”

병주 출신의 무관을 벤 이성휘는 얼굴에 묻은 핏물을 닦으면서 전장을 바라보았다.

여포의 대장기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매복을 의심하여 소수 병력을 보낸 것이리라.

형양의 매복에 들어온 병력은 겨우 5천. 매복에 휘말리게 된 병력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를 통해 이성휘는 가후가 매복을 간파했음을 깨달았다.

‘대체 어떻게 간파했지? 분명 준비는 완벽했을 텐데…! 설마 직감으로 간파한 건가!’

가슴 깊이 분함이 밀려들었다.

심혈을 기울인 책략은 결국,

당대 최고의 책략가 앞에서는 한낱 어쭙잖은 속임수에 불과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적들이 매복에 들어왔다!”

“기병대! 진격하라!!”

하후돈과 조인이 이끄는 부대들이 형양현으로 들어온 병력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사방을 포위하여 병주군을 공격하였다.

여남군에 이어 영천군,

지금까지 번번이 당한 것들에 대한 복수하는 것처럼 조조 군은 매우 집요하게 병주군을 살육했다.

“적의 매복이오!”

“어떻게 놈들이 낙양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형양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방에서 빗발치는 화살 비.

사납게 몰아치며 병사들을 끊임없이 위협했다.

날카로운 화살 비에 기겁하며 몸을 급히 숙인 성렴과 위월은 자신들이 쇠그물에 걸린 짐승으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느꼈다.

“카학!”

성렴을 호위하던 무관이 눈먼 화살에 맞아 절명하고 말았다.

그 처절한 죽음을 본 성렴은 말머리를 돌리면서 포위를 빠져나가려 했다.

“지금 학맹 교위가 포위를 뚫고 있을 터이니 어서 가세합시다!”

“알겠소이다!”

성렴과 위월이 병마들을 이끌고 포위망을 빠져나가기 위한 공격에 돌입했다.

본대도 이제 상황을 감지했을 터.

용맹무쌍한 비장이 와서 자신들을 구해 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성렴과 위월은 형양으로 진군할 본대와 가세하여 조조군 군세를 격파하려 했다.

“교, 교위!!”

옆을 보필하던 무관이 소리쳤다.

그에 성렴이 뒤를 돌아보았다.

“저 도깨비 같은 놈은 뭐냐! 서, 설마… 중원제일 검이란 말이냐!!”

귀신처럼 매서운 검술을 자랑하는 괴물이 뒤를 따르던 병력들을 연파하는 것을 목격했다.

틀림없다.

중원제일 검 이성휘였다.

병주의 비장에 필적하는 용력을 가진 무인이 저승사자처럼 뒤를 추격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놈!”

“결코 지날 수 없을 것이다!”

병주의 용맹한 장사들이 달려들었으나 이성휘를 상대로 일합조차 막지 못했다.

중원제일 검의 검에 추풍낙엽처럼 쓸려 나가는 부하들의 모습을 본 성렴과 위월은 할 말을 잃었는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쩍 벌렸다.

괴물 같은 놈.

저게 어찌 사람이란 말인가.

피칠갑한 채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며 수십 명을 상대하는 모습은 실로 괴기스러웠다.

“내가 바로 패국의 하후원양이다!!”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이 길게 뻗은 월도를 휘두르면서 병주군을 사냥했다.

위풍당당한 여걸답게,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침투하여 창검을 늘어뜨리면서 저항하고 있던 병주 군세를 때려눕혔다.

일합으로 병주 무관의 머리를 벤 하후돈이 이를 드러내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호쾌한 여걸은 수백 명에 달하는 적들로부터 노려지고 있었음에도 전혀 굴하는 기색이 없었다.

“기병부대는 절대로 적을 놓치지 마라. 그리고 나와 보병부대는 적 본대의 접근을 막는다.”

냉정과 침착함을 겸비한 단발머리의 여성이 날카로운 검을 뽑아 든 채로 장졸들을 지휘했다.

선두를 지휘하는 장수는 조인이다.

전군을 총지휘하는 조조에게 지휘권을 위임받게 된 조인은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적들의 저항이 극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냉철함을 유지했다.

“물러서는 자는 내 손에 죽는다.”

흑발의 여인이 뽑아 든 검은 적들을 위협하기 위함이 아닌, 적들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아군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칼날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적들의 공세에 놀라 주춤하던 두세 명의 병사들을 직접 베어죽였기 때문이다.

조인의 날 선 경고 덕분이었는지 장졸들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병주군에 결코 밀리지 않는 용맹을 보였다.

“교위님!”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던 중,

난전을 뚫고 들어온 척후가 조인에게 달려왔다.

“적 본대가 오고 있습니다! 비장 여포가 직접 선두에서 병마들을 이끌고 있다고 합니다!!”

온다.

여포가 온다.

비장 이광에 필적하는 용력과 용맹을 가진 병주 제일의 장수가 오고 있다.

한나라의 수도를 뒤엎었던 최강의 맹장.

여포가 본대를 이끌고 형양현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매복에 압박을 가하던 조조 군의 군중이 삽시간에 혼란스러워졌다.

“겁먹지 마라. 모두 전열을 유지하라.”

오직 조인만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실로 담대한 모습이었다.

그에 휘하 무관들 또한 정신을 가다듬고서 병졸들의 수습에 나섰다.

날카로운 창검을 앞으로 늘어뜨린 채 전열을 촘촘하게 구성하는 대(對) 기병대형을 펼친 뒤, 방천화극을 휘두르면서 달려들 여포를 기다렸다.

“여, 여포…!”

“그년도 사람이다! 물러서지 않으면 이길 수 있다!”

형양에 발을 들인 수천 명의 군세를 박살 내기 전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여포를 막지 못한다면,

넓게 포위망을 형성한 조조군이 도리어 포위당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기에.

뚫리면 전투에서 진다. 강한 책임감을 느낀 조인은 설령 자신이 이 형양에서 죽는다고 할지라도 여포를 막아 내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온다!”

“여씨(呂氏)의 붉은 기…! 여봉선이다!”

거칠게 흩날리는 흙먼지.

흙먼지 사이로 붉은 대장기가 펄럭였다.

여포가 오고 있다.

그녀는 매우 대범하게도 조조군이 도처에서 매복하는 형양을 향해 망설임 없이 전진해 왔다.

“활을 쏴라!”

“선봉에 있는 여포를 노려!!”

보병들의 엄호를 받는 궁병대가 여포가 이끄는 선봉대를 향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화살들이 사정 없이 빗발쳤다.

날카로운 화살들은 전력 질주를 감행한 병주군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단말마의 비명이 울렸다.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화살들이 박힌 병마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 뒤를 따르던 후열의 기병들이 시체를 밟고 넘어진 것은 물론, 바닥에 쓰러진 병마들은 아군에게 짓밟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어육이 되고 말았다.

“비켜라! 이 버러지 새끼들아──!!”

방천화극이 날아들었다.

매서운 장대비를 뚫어낸 여걸이,

난폭한 용맹을 자랑하는 붉은 갑옷의 여인이 방천화극을 휘두르며 앞을 돌파했다.

괴력이 실린 방천화극이 강철을 찢어발기듯 정면을 가로막고 있던 철의 장벽을 뚫어냈다.

“으아악!”

“여 여포가 왔다!!”

날카로운 창검과 견고한 방패들을 순수한 무력으로 돌파해내는 여포의 위용은 일기당천에 필적했다.

일신으로 무력을 휘둘러,

천 명의 병졸에 필적하는 굴지의 무인.

붉은 갑옷을 걸친 금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조인의 병력은 패주를 반복하게 되었다.

“막아라! 어서 막아라!”

“절대로 이 앞에 뚫려선 안 된다!!”

방패를 치켜든 보병들이 급히 무너진 진형을 수습하면서 여포를 향해 병장기를 뻗었다.

그러나

병주의 비장에게는 닿지 않았다.

마치 엿가락을 부러뜨리듯 방천화극이 휘둘러질 때마다 창검들이 무력하게 박살 날 뿐이었다.

“저 여자가 바로… 병주의 비장…!!”

흑발의 여성이 난폭한 폭거를 일으키고 있는 맹수를 노려보았다.

무자비하며,

또한 거침이 없었다.

여포는 자기 용맹을 자랑하듯 수천 명이 결집되어 형성된 진형을 압도적인 무(武)로 무너뜨렸다.

책략과 전술을 박살 내는 압도.

붉은 갑옷의 여걸은 한 자루의 병장기와 한 마리의 명마로 수천 명의 결의와 충성을 짓이겨 냈다.

“봉선 님께서 공격로를 뚫으셨다!”

“진격하라, 함진영! 적의 본진을 친다!”

여포가 뚫은 공로(攻路)를 통해 장료와 고순이 이끄는 병력들이 쳐들어왔다.

숙련된 정예들로 구성된 병주군답게,

각 예하부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마치 빠르게 회전하면서 속도를 내는 수레바퀴처럼 병주군의 부대들은 한 몸이 되어 원활하게 공격을 수행했다.

“어서 놈들을 막아!!”

날카로운 월도를 치켜들면서 하후돈이 소리쳤다.

포위한 적들을 어느 정도 정리했는지,

조인의 부대로부터 다급한 지원요청을 받게 된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은 격앙된 표정을 지으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하라!”

뒤이어 하후연의 부대 또한 도착하면서 패주 직전이었던 조인의 부대를 지원했다.

“와라, 잡졸들아.”

연이어 가세한 조조 군의 장수들을 비웃듯,

선두에서 방어선을 뚫어낸 여포가 이를 드러내면서 난폭한 웃음을 지었다.

매서운 적의와 뜨거운 환열.

전투를 향한 열망과 살육을 품은 광기까지.

마치 전쟁을 위해 태어난 여인처럼 자기 목숨을 노리는 적장들을 향해 광기 어린 용맹을 발산했다.

“멀리 있는 자는 외침을 들어라! 가까이 있다면 나의 위용을 보거라!! 나는 여봉선, 내가 바로 북방을 휩쓴 병주의 비장이다!!”

거대한 호랑이가 울부짖듯,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걸은 격정에 섞인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위엄과 위압을 떨쳤다.

사자후를 듣게 된 조조군 병사들은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병사들 중 일부는 두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는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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