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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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연합군은 중모현(中牟縣)을 거쳐 형양현(滎陽縣) 너머에 위치한 사수관까지 진군한다는 계획을 철회하고 관도현(館陶縣)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관도현에 도착한 뒤,
사예주에 들어설 원소군을 기다렸다.
마치 배수진을 치듯 강을 등진 채로 관도현에 군영을 형성한 관동 제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영천군에서 도착한 전령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저 흉악무도한 놈들이…! 예주 영천군의 병참들을 모조리 불태운 것은 물론, 포로로 붙잡은 영천태수와 예주종사를 삶아 죽였다고 합니다…!!”
관동 제후들을 지원했던 이민과 원소의 부하인 이연이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에 지방관들이 격노를 토해냈다.
“이, 이런 금수만도 못한 놈들!”
“어찌 사람을 그리도 비참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끓는 기름을 부어 죽였다.
전쟁을 겪어본 적도, 전쟁을 수행해 본 적도 없었던 지방관들은 영천태수와 예주종사가 팽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금이 저렸는지 두 다리를 떨었다.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사람을 마치 짐승처럼 죽였는데.
특히 책상에 앉아 편안 하게 경전을 읊어댔던 샌님들에게는 너무도 무서운 이야기였다.
“다녀왔소이다.”
지방관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장막과 장초가 군막 안으로 들어섰다.
수천 기에 달하는 기병부대를 이끌고 관도현 주변을 누비고 온 장막과 장초는 지방관들로부터 영천군에서 도착한 비보를 듣게 되었다.
“영천태수와 예주종사가 그리되었다니 실로 통탄할 노릇이오. 허나 역신을 도모하여 난세를 끝장내겠다는 충신들의 대의가 한낱 두려움에 꺾일 순 없는 일이오.”
장막이 흙투성이가 된 투구를 옆구리에 낀 채로 말했다.
결연한 그의 태도에 지방관들은 입을 꾹 다문 상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진류왕 전하의 호위는 누가 담당하고 있소?”
“제북상과 산양태수가 맡고 있소이다.”
연주자사 유대의 대답에 장막이 재차 입을 열었다.
“정동장군과 어림총사가 자리를 비운 지금, 우리는 철옹성처럼 이곳 관도현을 웅거하면서 정북장군을 기다려야 할 것이오.”
투철한 의협심을 가진 청류파 명사였던 장막의 말에 지방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비와 경계를 철저히 세운 뒤,
휘하 장수들을 불러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했다.
지방관들 중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통솔하고 있던 정동장군 조조의 부재가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영천군의 비보로 마음이 약해진 지방관들은 사수관의 서영과 영천군의 여포를 크게 경계하고 있었다.
“헌데 어찌하여 형주자사에게선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이오? 미리 언질했던 시일에 군세를 일으켰다면 필시 양성(襄城)을 넘었을 터인데, 어찌하여 아직 소식이 없냔 말이오!”
연주자사 유대가 소리쳤다.
예주자사에 이어 영천태수까지….
연합에 가담하기로 했던 지방관들이 차례대로 비참하게 죽어 나가자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설마 여포에게 당한 것은….”
“양성은 영천군과 인접한 곳이외다! 예정대로 남양군에서 출진했다면 영천군을 급습한 여포와 조우하였을 가능성이 높소.”
형주 각지에서 모인 병력과 물자를 인솔하여 연합에 합류할 계획이었던 형주자사 왕예와 남양태수 장자가 여전히 소식이 없자 지방관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중간지점인 양성에 도달하였노라고,
늦지 않게 사수관 앞에 당도하겠노라며 알려왔어야 했다.
연쇄적으로 악재들을 만났기에 더욱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르신!”
동군태수 교모의 휘하 장수가 다급하게 군막을 걷으면서 들어섰다.
“남양군에서 전령이 도착했사옵니다!”
“그게 정녕 사실이냐! 어서 안으로 들여라!”
묵묵부답이던 남양군에서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교모와 지방관들이 화색을 띠었다.
물자들의 대부분이 소실된 상황이다.
그렇기에 형주자사 왕예의 물자들이 절실히 필요했다.
또한 형주의 지원군이 합세하게 되면 아군의 사기가 높아질 것이므로 왕예와 장자의 합류는 일 거양득이 될 것이었다.
“남양군에서 변란이 벌어졌습니다!”
형주에서 전령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환희했던 지방관들의 기대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형주에서 변란이 발생하였다.
후장군 원술의 기습을 받아 형주자사와 남양태수가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전했다.
“원술이 남양군에 온 장사태수 손견과 내통하여 형주자사와 남양태수를 시살하고 병력과 물자들을 모두 가로챘습니다!”
“그게 정녕 사실인가…!!”
위기를 직감한 원술이 구사일생으로 낙양을 탈출하였다는 소문을 접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따로 소식을 들은 바가 없던 지방관들은 원술의 존재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거병 준비 때문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낙양에서 도망쳤다는 원술이 남양군에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줄이야.
“잘못 들은 게 아니냐! 어찌 사세삼공으로 유명한 대명문가의 적자가 그런 대역무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이냐?!”
“여포에게 기습을 당한 것도 아니고 설마 원술에게 기습을 받아 죽다니…!!”
지방관들이 침음을 삼켰다.
형주자사 왕예가 그에게 살해되었다는 사실도 충격적이었지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던 형주의 지원군과 물자들이 전선에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절망적이었다.
“정동장군에게 어서 이 소식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형님?”
장초가 말했다.
그에 장막이 고개를 저었다.
“섣불리 움직여선 안 된다. 자칫 적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다.”
동생 장초에게 그리 대답한 장막은 옆구리 끼고 있던 투구를 다시 쓰면서 군막을 나섰다.
그에 장초가 서둘러 장막의 뒤를 따랐다.
* * *
영천군에서 대승을 거둔 여포는 병력을 이끌고 장사현(長社縣)에 진입했다.
척후에 나선 장료를 기다리는 한편,
전령을 낙양으로 보내어 영천군에서 거둔 승전보를 알리게 하였다.
“중랑장께서는 이번 전쟁의 단연 일등 공신이 되실 거예요. 예주자사 공주와 영천태수 이민, 예주종사 이연을 모두 도모하셨으니까요. 반기를 든 역적들이 중랑장의 무명을 듣고 벌벌 떨고 있을 게 눈에 훤하네요.”
접은 부채를 든 가후가 제 입술을 툭툭 두드리면서 음험한 미소를 흘렸다.
가느다란 눈웃음을 지으며,
연이어 승전보를 거뒀음에도 얼굴에 한 점의 환열도 찾아볼 수 없는 금발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중랑장께서는 기쁘지 않아 보이시네요.”
“딱히 기뻐할 건 없잖아.”
“흐음. 중랑장께서 소녀를 그리 무뚝뚝하게 대하시니 소녀의 마음이 속상하네요.”
여전히 완고한 모습을 보이는 여포의 반응에 가후는 눈물을 닦은 척 시늉했다.
그에 여포가 인상을 찡그렸다.
“문원이 돌아오면 관도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놈들의 낯짝을 본 다음에 낙양으로 돌아갈 거야.”
한 시진의 시간이 흐른 뒤,
척후부대를 이끌고 관도현 방면을 정찰했던 장료가 군중으로 돌아왔다.
세세하게 관도현 주변을 정찰하고서 귀환한 장료는 자신과 휘하 척후들이 보았던 것을 모두 전달했다.
“관도현에 주둔하고 있던 제후들은 사수를 등진 채로 배수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배수진…. 상당히 건방지네요.”
관동 제후들이 배수진을 쳤다는 소식을 들은 가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배수진은 곧 결사를 다짐했다는 뜻.
스스로 퇴로를 끊음으로서 마지막 일인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군진이다.
감히 자신들을 상대로 배수진을 쳤다는 말에 가후가 장미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처럼 드센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어쩌실 건가요, 중랑장?”
가후가 물었다.
그에 여포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제 발로 죽을 자리에 섰잖아. 죽기를 각오한 놈들과 싸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결사를 각오한 놈들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적들은 아군보다 병력이 많았고,
먼저 거점을 선점한 채 진영을 형성하고 있었다.
무리한 군사행동으로 병주 출신의 장졸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치 않았던 여포는 관도현에 웅거하는 적들을 무시하고 낙양으로 귀환할 것을 결정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기병들이 관도현 주변을 계속해서 누비고 있었습니다. 연이은 패전으로 바닥에 떨어진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려는 의도 같았습니다.”
“음… 일부러 눈에 띄는 짓했다는 거군요.”
장료의 뒤이은 보고에 가후가 부채로 입술을 툭툭 치면서 잠시 고심하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고심을 거뒀다.
관동 제후들이 무슨 수작질을 부린들,
책상머리에 앉아 경전이나 읊던 샌님들이 무슨 잔꾀를 부릴 수 있겠냐는 오만함 때문이었다.
“낙양으로 돌아간다!!”
여포가 적토마에 올라탄 채 방천화극을 위로 뻗었다.
뒤이어 병력들이 움직였다.
예주 여남군과 영천군을 차례대로 휩쓸면서 중원을 진동시켰던 수만 명의 중용무쌍한 병마들이 낙양으로 돌아가기 위한 행군을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땅을 요동치게 만드는 말발굽 소리.
군마들이 거칠게 호흡을 토해내면서 전진했다.
연이어 승전보를 거둔 장졸들답게 그들은 매우 위풍당당하게 중모현을 통과하여 형양현으로 길을 잡았다.
‘사수를 등진 채 배수진을 쳤다라…. 태평하게 붓이나 놀리던 샌님들치고는 제법 과감한 수네요. 흥, 어쭙잖게 국사무쌍(國士無雙) 한신을 흉내 내기는.’
가후는 탁상공론을 지껄일 뿐인 주제에 밥벌레처럼 녹봉을 꼬박꼬박 타먹는 고관대작들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녀는 고관대작 출신의 지방관들에게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배수진을 쳐서 아군을 유인하려는 관동 제후들의 모습을 떠올린 가후는 모멸감에 찬 눈웃음을 보냈다.
‘잠깐, 유인…?’
멍청한 샌님들의 면면을 떠올리던 가후는 문득 수상쩍은 무언가를 느꼈다.
실로 불쾌한 찝찝함.
꿀꺽 삼켰음에도 목구멍 아래로 넘어가지 않는 끈적끈적함이 느껴졌다.
사수관으로 향하리라 판단했던 적들이 관도현 방면으로 말머리를 틀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찝찝함이 다시금 가후의 심중을 어지럽혔다.
“중랑장!”
가후가 소리쳤다.
그에 여포가 고개를 돌렸다.
거칠게 요동치는 말발굽 소리들을 뚫고 다소 절박함이 느껴지는 가후의 목소리를 들은 듯했다.
“전군 정지!!”
여포가 크게 일갈했다.
그에 기수들이 깃발을 크게 흔들었고,
진군 정지를 알리는 고각소리가 전군이 들을 수 있도록 울려 퍼졌다.
영천군을 출발하여 거세게 내달리던 병주군은 족히 10리 정도를 간 끝에야 굳센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적들의 매복이 의심돼요.”
“매복?”
가후의 말에 얼굴에 묻은 흙먼지를 닦아내던 여포가 입을 열었다.
적들의 매복이 의심된다.
의구심 섞인 가후의 말에 여포는 물론, 다른 장수들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체 어디에 매복이 있단 말인가?
분명 적들은 강을 등진 채 웅거하고 있을 터.
배수진을 치고 결사저항을 펼치고 있는 적들이 따로 군사를 내어 매복을 준비했을 리 없었다.
“군사께서 생각이 과한 게 아닐는지.”
“분명 도위께서 척후들과 함께 관도현 주변을 살피시지 않았습니까.”
후성과 송헌이 말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다.
진군하던 중에 갑자기 매복이라니.
귀신 같은 책략으로 승전보를 거둔 책략가의 말이었지만 아군에게 있어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에 적들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서 신빙성을 찾기 어려웠다.
“뭐, 그렇긴 하지만요….”
가후 또한 한편으로는 그리 생각하고 있었는지 확신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의심이 들지만 확신이 없다.
그저 직감에 따른 판단이었을 뿐이니까.
“성렴. 위월. 학맹.”
불안감에 찬 가후의 모습을 살피던 여포가 돌연 세 장수들을 불렀다.
그에 성렴과 위월이 나섰다.
“휘하 군세를 이끌고 형양을 수색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잖아. 신중해서 딱히 나쁠 것도 없고.”
“알겠습니다!”
여포의 명령에 성렴과 위월, 그리고 학맹은 5천의 병력을 이끌고서 형양현으로 향했다.
장수들은 적들의 매복 따위가 있을 리 없다고 여겼지만, 비장으로부터 명령을 하달 받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형양현을 수색하게 되었다.
그들의 병력이 형양현에 들어섰을 때,
사방에서 화살들이 빗발치면서 성렴과 위월의 병력을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파바바바바바박───!!!
화살들이 장대비처럼 떨어졌다.
또한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우레처럼 울려 퍼졌다.
“쳐라!”
“여포의 군사들이다!”
은폐되어 있던 장소에서 정동장군 조조의 대장기가 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형양현에 매복하고 있던 장졸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창검을 치켜들었다.
한꺼번에 수만 명에 이르는 병력들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형양현에 들어온 성렴과 위월의 군세들을 매섭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비장이 왔군.”
매복하고 있던 중원제일 검이 검을 뽑으면서 여포의 무관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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