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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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남군(汝南郡) 지역이 잔혹한 참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군에 속한 36개의 현들이,
낙양에서 출진한 병주군에 의해 유린당했다.
예주자사의 치소가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예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이었던 여남군이 침탈을 목적으로 쳐들어온 군세에 의해 유린당하게 되었다는 것은 예주 세력의 멸망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예주자사라는 놈을 찾아라!”
여포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치면서 예주자사의 치소가 있는 평여현(平輿縣)에 휘하 기병대를 투입시켰다.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창검을 늘어뜨린 기병들이 고을을 누비면서 마구잡이로 예주자사 공주의 부하들을 살해하기 시작했다.
“커헉!”
“기어코 여기까지 오다니…!!”
낙양에서 출병하여 의양(義陽)과 양성(襄城)을 재빠르게 통과하여 예주를 급습할 줄은 몰랐는지, 방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예주자사 공주의 세력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다.
불벼락이 산등성이가 타버리듯,
비장 여포가 이끄는 병주군에 의해 예주 세력은 추풍낙엽처럼 흩어졌다.
“누님, 예주자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쥐 새끼 같은 놈은 이미 달아난 모양입니다.”
위속의 보고에 여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놈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것을 위한 공격이 아니었는가.
예주자사 공주가 측근들과 함께 멀리 달아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여포는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 정예들로 하여금 추격대를 편성했다.
“후후, 걱정하지 마세요. 도망칠 것을 예상하여 미리 길목에 매복을 배치하였으니까요. 우리는 매복에 투입된 무관들이 예주자사의 비틀어진 목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리면 돼요.”
마치 미래를 예언하는 혜안을 가진 것처럼 여유로운 반응을 보이는 가후의 모습을 본 여포는 콧방귀를 끼면서 고개를 돌렸다.
분명 가후,
이 여자는 뛰어난 군략을 자랑하는 군사였다.
의양과 양성을 신속하게 돌파하여 여남군을 침공하는 군사작전을 수립한 것도 그녀였으며, 벼락처럼 공세를 가하면 예주 세력을 속절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던 것 또한 그녀였기 때문이다.
“필시 예주 세력의 멸망으로 잠시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던 관동 제후들은 크게 겁을 먹게 되겠죠. 제후들은 동탁 군이 먼저 선공을 가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을 테니까요.”
가후는 마치 관동 제후들을 어린아이 다루듯, 손아귀에 올려 두고 희롱하는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을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관동 제후들은 자신을 한나라의 충신이라고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독자 세력을 갖춘 군벌에 지나지 않죠. 사공 어르신을 역적이라느니, 공적이라느니 실컷 떠벌리고 있지만 결국 자기네들의 잇속을 챙길 목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불과해요.”
관동 제후들의 연합은 모래로 쌓은 성에 지나지 않았다.
신뢰와 단결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서로 반목하고 경계할 뿐인 어리석은 필부에 불과했다.
연주자사 유대와 동군태수 교모가 아무리 호소해봤자 관동 제후들이 서로에게 겨누고 있는 반목과 의심의 불씨가 하루아침에 꺼질 리 없었다.
‘뭐, 계속 전력을 비축하면서 웅거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정북장군과 정동장군이 나선다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는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겠지만요.’
정북장군 원소. 정동장군 조조.
기주와 연주를 제패한 여걸들을 떠올린 가후는 흥미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천하의 패권을 좌우할 건곤일척의 전쟁.
가후는 원소와 조조가 이끌게 될 관동 제후들의 연합과 20만 대군을 보유한 동탁 군이 전면전을 치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치소를 불태워라!”
“조정에 반역하여 관동 제후들과 내통한 공주에게 협력한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이윽고 여남군에 깃발을 꽂은 병주군은 공주와 내통했던 인원들을 발본색원하여 처형시켰다.
저잣거리에서 목을 친 것은 물론,
죽은 시체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어두컴컴한 심경에 횃불을 들고 나타나 치소와 관아들을 습격한 병주군의 공격에 소스라치게 놀란 예주 백성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 바빴다.
“으아악!!”
“도, 동탁 군이다!”
죄 없는 낙양 백성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갈취했던 동탁의 폭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을 모두 끔찍하게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산 채로 땅에 파묻었다.
그 만행을 익히 들어온 예주 백성들은 병주 군세가 치켜든 동탁 군의 깃발을 보고는 필시 낙양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죄 없는 백성들까지 모두 끔찍하게 살해할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봉선 님, 잔당들의 제압이 끝났습니다.”
백색의 갑주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다가와 여포에게 승전을 보고했다.
예주 세력을 완전히 무너뜨렸으며,
저항을 이어 나가던 예주자사 공주의 잔당들까지 모두 패퇴시켰다.
남은 것은 매복에 투입된 무관들이 예주자사 공주의 수급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여남군을 버리고 달아난 예주자사 공주를 과연 참살할 수 있을까. 그에 여포와 장료는 미심쩍은 반응을 보였지만, 가후는 예주자사가 자신이 예측한 경로를 통과할 것이라며 강한 확신을 보였다.
“중랑장!”
여포 휘하의 기장(騎將), 후성이 휘하 무관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후성은 시뻘건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묵직한 보자기를 꺼내면서 예주자사 공주의 수급을 취하였노라고 보고했다.
“과연 군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주자사 공주와 측근들이 매복한 곳에 왔습니다!”
후성의 대답에 가후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입을 열었다.
“필시 예주자사 공주는 서주목 도겸이 있는 서주로 도망치려 했겠죠. 서주로 달아나버리면 우리들로서는 추격대를 보내기 쉽지 않을 테니까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여포의 얼굴을 본 가후는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면서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에 여포는 벌레 씹은 표정을 한 채로 몸을 돌렸다.
노골적으로 불만과 불신을 드러내는 여포의 모습에 가후는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고을 들에 불을 지른 뒤에 퇴각하시죠.”
예주자사 공주의 수급을 손에 넣었으니,
이제 예주 군현들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 차례였다.
사공(司空) 동탁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관동 제후들의 전진 거점으로 사용될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라도 예주 군현들을 처참히 망가뜨려야 했다.
“고을에 불을 질러라!”
“관아와 창고들에 불을 지른 뒤에 퇴각한다!”
말을 탄 기병들이 시가지를 누비면서 손에 든 횃불을 내던졌다.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기름을 흠뻑 뿌린 뒤, 그 위에 횃불을 내던지자 맹렬한 화마가 되어 여남군을 집어삼켰다.
예주자사의 치소가 위치한 평여현과 여남군에 속한 모든 현들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관동 제후들과 내통하여 반기를 든 배신자를 향한 응분의 대가이자, 예주자사 공주와 함께 반기를 들었던 제후들을 향한 경고였다.
“불이다!”
“으, 으아아악!!”
낙양에서 출병한 비장 여포의 군세에 의해 예주자사 공주가 피살되었으며, 그를 따르던 300여 명의 관료들이 모두 처참히 살해되었다.
예주 세력의 멸망.
예주자사 공주의 세력이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관동의 제후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다음은 내가 노려질 게 분명하다.
그렇게 여긴 관동 제후들은 하루빨리 동맹을 맺어 역신에 대적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 * *
얄궂은 마파람이 불어왔다.
마파람은 여인의 상아색 머리카락을 흐트린 뒤, 암사슴처럼 새하얀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수레 위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경치를 감상하던 순욱은 발해군을 떠나려는 자신을 마지막까지 만류하던 오라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을 부디 용서하세요, 오라버니. 하지만 저는 원본초가 아닌 다름 사람에게 기대를 걸어보고 싶습니다. 권세와 공명을 위한 탐욕이 아닌, 어지러운 난세를 끝장내겠다는 탐욕을 가진 분께.’
의기를 결행함에 있어 망설임이 없으며,
조잡하고 투박한 모습으로 보일지라도 끝내 목적한 바를 이뤄내는 난세의 효웅.
이익에 유혹당하는 일도, 흔들리는 일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투박한 여걸의 모습에 크게 감복한 순욱은 정북장군 원소를 섬길 것을 종용한 오라버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연주로 향하게 되었다.
“저는 아가씨께서 쉽고 평탄한 길을 마다하고 굳이 연주로 가시는 이유를 당최 모르겠습니다.”
마부석에 앉아 수레를 끄는 말을 재촉하던 노복이 물었다.
그에 순욱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글쎄요. 혹시 저에게 역마살이 생긴 걸까요.”
“그럼 무당한테나 가시지….”
연주를 위협했던 황건적들이 청주 지역으로 도망쳤다고는 하나, 벽지에 숨은 도적 떼들까지 모두 소탕된 것은 아니었다.
먼 길을 달려 연주로 가겠다는 순욱의 결정에 노파심을 느꼈는지 말을 몰던 노복은 발해군을 떠난 이후부터 계속 순욱에게 퉁명스러운 말했다.
“게다가 북쪽은 춥잖아요.”
어울리지 않는 농담했다.
“하하핫! 아가씨의 말씀이 지당하십니다. 하북은 겨울이 가장 빨리 찾아오고, 그리고 가장 늦게 물러가지 않습니까.”
그 농담에 노복은 웃음을 터트리면서 아가씨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온화하고 자비로운 성정이었지만 한 번 내린 결정은 무조건 밀고 나가는 고래심줄 같은 고집을 자랑하는 분이었다는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아가씨, 동평국에 들른 뒤에 연주성으로 가겠습니다.”
“네.”
발해군에서 출발하여 제북(濟北)과 동평국(東平國)을 통과하여 동군(東郡)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분명 오래 걸리는 여정이 될 터.
탐스럽게 흘러내리는 상아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왕좌지재(王佐之才)의 여인은 오늘따라 더욱 푸르게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 보면서 새로운 만남에 행운이 따르기를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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