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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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번쾌라고 불리게 될 허저를 등용한 조조는 그를 도위(都尉)에 임명한 뒤, 그를 따르던 협객들을 호군(虎軍)이라고 명명한 새로운 부대에 배 속시켰다.
조조 군의 휘하에 들자마자 도위라는 높은 무관직에 오르게 된 허저는 몸에 걸친 갑옷을 두드리면서 들뜬 마음을 표현했다.
“크흠! 나 같은 시정잡배가 단숨에 출세하다니, 난세라는 것도 나쁘게 볼일은 아니군.”
“왜 아니겠습니까, 허협. 아니, 이제는 도위로 불러야겠군요.”
허저 휘하의 호사(虎士)에 임명된 패국 출신의 협객들 또한 고양감을 감출 수 없었는지 다소 들뜬 모습을 보였다.
“어머!”
“역시 대단하세요…!”
여인들의 탄성과 환호성이 연무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에 궁금증을 느낀 허저는,
부하들과 함께 걸음을 움직이며 연무장에 힐끗 모습을 보였다.
쐐애액──!!
파앙! 파하아앙──!!!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면서 허공에 깊은 궤적을 새기고 있는 남성이 보였다.
날카롭다.
그리고 매섭다.
검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감히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검이 날렵했다.
연무장에서 검을 휘두르면서 자신을 단련하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허저와 부하들은 감탄을 내비치면서 혀를 내둘렀다.
‘실로 날렵하고 위협적이군. 나 따위는 일초지적조차도 되지 않았겠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허저는 되도 않는 만용으로 목숨을 잃는 일 없이 고집을 꺾어 다행이라고 여겼다.
만약 중원제일 검과 격전을 치렀다면,
필시 목이 달아나거나 팔다리가 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두려움을 삼켰다.
“그 풍문 들으셨습니까? 서량 제일의 용장을 상대로 말과 함께 내리쳤답니다.”
“마인참(馬人斬)이라고 부른다지요….”
천하에 중원제일 검을 대적할 수 있는 자는 비장(飛將)이라 불리는 여포 뿐일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호사가들은 말했다.
양부를 죽이고 역신에게 투항한 반골(反骨)의 무장과 황실과 조정을 역적들로부터 지켜온 중원제일 검의 싸움은 필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라고.
“저 정도는 되어야 천하에 족적을 남길 수 있단 말인가.”
한낱 시정잡배에 불과한 필부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중원제일 검.
황실을 수호하는 어림군(御臨軍)의 총사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경이롭게 본 허저는 깊은 공경을 느꼈다.
“중강.”
“예, 어림총사.”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고 있던 남성이 걸어오면서 허저를 불렀다.
그에 허저와 부하들이 예를 취했다.
패국 출신의 호걸인 그들은 안하무인 같은 성정을 가지고 있었으나, 맹수들이 우두머리로 인정한 강자에게 고개를 숙이듯 이성휘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였다.
“마침 용건이 있었는데 잘됐군.”
“저한테 말씀입니까?”
이성휘의 말에 허저가 놀란 듯 물었다.
“패국 출신의 협객들 중에서도 몸이 날래고 용맹한 자들로 백 명을 편성해라. 정예들을 장차 정동장군의 근위로 투입될 것이다.”
“저, 저와 부하들이 말입니까!”
장기간에 걸쳐 무위와 충성을 입증한 뒤에 근위대로 투입될 것이라는 설명에 허저는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는 번쾌와 같은 장사이니, 능히 맹덕 님의 신변을 경호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허저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러자 허저와 부하들이 뒤를 따랐다.
“본래라면 나와 어림군이 맹덕 님의 신변을 호위해야 될 터이지만… 내가 전장에 투입될 수 있는 상황에 고려하여 새 근위대가 필요하게 됐다.”
곰처럼 우직하고 혈기가 왕성한 성품인 허저는 중원제일 검을 대신하여 정동장군의 호위를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화색을 띠었다.
딱딱한 자갈도 씹을 것처럼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성이 흐흐 웃음을 짓는 모습은 영락없는 곰이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니,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죽더라도 맹덕 님을 지켜라. 그것이 너희들이 맡게 될 유일한 역할이다.”
“예!”
그 말에 허저가 포부를 담아 외쳤다.
* * *
관동 제후들의 연합에 있어 진류왕은 거병의 명분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선전물과 같았다.
선황의 고귀한 혈육.
천민 출신의 어미를 둔 황제와는 달리 고결한 혈통을 타고난 진짜였다.
만약 관동군이 결집되어 출진하게 된다면 유협은 제후들의 단결과 장졸들의 사기를 위해 후방지역으로 배치될 것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이성휘 휘하의 어림 군을 유협의 호위에 투입하려 했다.
“흥…. 어째서 귀관이 그런 번거로운 수고를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흑발의 여인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도톰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얼굴을 찡그렸음에도 아름다웠다.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퉁명스러운 표정이 도리어 귀여운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어린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는 조조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그녀의 새하얀 뺨에 입술을 맞추고 싶다는 욕구를 애써 참아냈다.
“그 곰 같은 위인이 귀관을 대신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네. 허나 귀관이 추천한 인재이니 믿어보도록 하지.”
허저를 호위장에 추천한 인물은 다름 아닌 이성휘였다.
선임이 후임자를 추천하듯,
이성휘는 허저가 번쾌에 필적하는 무인이니 맡겨볼 만하다며 치켜세웠다.
게다가 허저와 그를 따르는 협객들은 모두 패국조씨 가문의 고향인 초현(譙縣) 출신이었으므로 배신할 위험도 적었다.
“맹덕 님?”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조조의 모습에 이성휘가 물었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귀관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진류왕에게 주고 싶지 않단 말일세…!’
자기 신변을 경호할 호위장과 호위병들을 꼼꼼하게 신경 쓰는 이성휘의 모습에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설마 그 꼬맹이에게 가고 싶은 건가?
어쩌면 낙양제일미라고 불리는 그 불여우 같은 계집에게 마음이 생긴 것일지도 모르지.
조조의 머릿속에 질투에서 비롯된 온갖 의심암귀가 맴돌기 시작했다.
“흥.”
대놓고 투정을 부리기엔 용기가 많이 부족했던 조조는 뇌리를 떠도는 의심암귀를 그저 묵힐 수밖에 없었다.
“군사께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산더미 같은 업무들에 파묻힌 채 괴로움에 찬 비명을 지르던 진궁의 처참한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가 그녀의 노고에 대해 말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저었다.
“군사의 고충은 나 또한 헤아리고 있으나… 재야에 숨은 학인과 유자들을, 환관들의 정치공세에 밀려 퇴출당한 청류파 인사들을 모집하고 있음에도 크게 부족한 실정일세.”
명망 높은 학인과 재사들을 두루 휘하에 두고 있는 원소군과는 달리 조조 군은 상대적으로 내정을 담당할 관료들이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다 황건적과 흑산적의 연이은 침탈로 인해 연주 지역에 부임하던 관료들이 죄다 도망을 친 뒤였기 때문에 더욱 인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고질병 같은 인원 부족으로 인해,
연주의 내정을 총괄하는 진궁은 오늘도 과로사의 위험에 시달려야 했다.
“맹덕 님.”
집무실 밖을 지키고 있던 시녀가 조심스럽게 장지문 너머로 다가와 조조를 불렀다.
“발해군에서 서한이 왔사옵니다. 맹덕 님께 서한을 보낸 분이… 영천순씨 가문의 사남(四男)이신 순우약 공이시옵니다.”
“영천순씨의 사남이라면 본초의 군사일 터인데. 내게 서한을 보냈단 말인가.”
의논해야 할 일이 있었다면 본초가 직접 서한을 보내 왔을 것이다.
본초가 아닌,
그녀의 군사인 순심이 직접 서한을 보내 왔다는 말에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서한을 가져오게.”
“알겠사옵니다.”
이윽고 장지문이 열리면서 청초한 용모를 한 시녀가 서한을 가져 왔다.
조조에게 서한을 건넨 뒤,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던 이성휘를 곁눈질로 힐끗 쳐다보고는 얼굴을 붉히면서 총총걸음으로 물러 갔다.
이성휘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붉히는 시녀의 반응을 본 조조는 ‘손재주가 제법 꼼꼼한 시녀였는데 안타깝게 됐군.’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내일 당장 내쫓기로 했다.
“원소의 빈객으로 머무르던 영천순씨 가문의 일원이 이곳 연주로 오고 있다고 하는군. 부디 잘 부탁한다는 내용일세.”
“영천순씨 말씀입니까?”
“그렇다고 하는군. 영천순씨 가문이라면 분명 본초를 지지하는 사대부일 터인데… 본초의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고 연주로 오고 있다고 하네.”
영천순씨 가문의 일원이라면 분명 원소의 휘하에서 귀한 대접을 받을 터.
높은 벼슬과 봉토는 물론,
명성과 명망까지 모두 보장될 터인데도 모두 한사코 마다하고 연주로 온다는 말에 조조는 ‘별 해괴한 괴짜를 다보겠군.’이라고 생각했다.
“맹덕 님.”
“무슨 일인가, 귀관.”
“제가 직접… 연주로 오고 있다는 영천순씨 가문의 일원을 영접해도 되겠습니까?”
“귀관이 직접 말인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이,
직접 마중을 나가겠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는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천순씨 가문은 분명 예주 지역에서 손으로 꼽히는 사대부 가문이지만 그 일원을 맞이하기 위해 어림총사가 직접 나서는 것은 실로 과한 일이었다.
그런 의문을 품은 조조였지만 강한 확신을 보이는 듯한 이성휘의 모습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 * *
관동 제후들이 결집되기 전에 기선을 제압하려 결심한 동탁은 중랑장(中郞將) 여포에게 예주자사 공주를 처단하고 예주의 군현들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에 여포는 장료, 고순과 함께 출진하여 사예주와 예주의 경계인 양국(梁國)을 공격했다.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조리 쳐라! 우리는 저항을 뚫고 여남군을 칠 것이다!”
붉은 갑옷을 걸친 금발의 여걸이 방천화극을 내리치면서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모두 박살 냈다.
비장 여포가 선봉을,
장료와 고순이 각자 좌익과 우익을 맡았다.
한나라 제일의 기마군단으로 불리는 병주군의 맹공에 진국상(陳國相) 허탕이 패주하고 예주자사의 병력은 순식간에 와해되었다.
“봉선 님, 군사께서 고성(固城)을 뚫고 여남군(汝南郡)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지가 무슨 상전인 줄 알아.”
뱀처럼 사특한 기운을 흩뿌리는 여인의 모습을 떠올린 여포는 이를 빠득 갈면서 방천화극을 높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무관들을 향해 명령했다.
“이곳은 고순에게 맡기고 나와 문원은 고성을 빠르게 돌파하여 여남군을 공격한다!!”
음흉한 속셈을 가진 가후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지만 결곡 그녀의 뜻대로 움직였다.
그녀는 행군사마(行軍司馬)였으며,
군의 감시를 맡은 감군이었기 때문이다.
필시 동탁에게 감시를 명령받았을 터. 낙양에 남은 부하들과 그 가솔들이 걱정되었던 여포는 자신이 사냥개로 전락하게 되었음을 알면서도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후후, 비장께서 소녀의 뜻에 따라주어 감복할 따름이네요.”
양주 출신답게 기마술에 능한 가후는 장졸들을 지휘하고 있던 여포에게 다가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음흉함이 담긴 인사를 받게 된 여포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너 좋으라고 따라주는 거 아니니까 닥쳐.”
“어머, 거치셔라.”
여포의 날카로운 경고에 가후는 히죽 웃으면서 옷소매로 입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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