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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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남자가 우리 패국조씨 가문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섬기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
그래서 진류군을 빠져나왔다.
저 황녀에게, 황녀를 보필하는 시녀에게 이 남자를 빼앗기게 될 것만 같았으니까.
‘진짜 바보 같아요…. 질투에 빠진 꼴이라니. 설마 아직도 술이 안 깬 걸까요…?’
방앗간 안으로 들어온 조홍은 먼지가 수북하게 쌓인 바닥에 앉은 채로 무릎을 모았다.
본인의 마음에 혼란을 느끼고 있는지,
제 무릎 위에 머리를 올린 흑발의 여인은 당혹스러움이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제가 부린 억지 때문이예요. 어두운 산길을 헤매다가 외곽에 있는 이 흉가 같은 곳에 밤을 보내게 되다니….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현에서 가장 좋은 역이나 원에서 숙박하게 됐을 텐데. 분명 어림총사는 무리한 억지나 부리는 저를 귀찮은 여자라고 여기고 있겠죠.’
진류군을 이튿날에 떠났어야 했다.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밤을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서라도 말이다.
“자렴 님.”
이성휘가 기름이 조금 남아 있던 등잔 위에 불을 붙이면서 침울한 모습을 보이는 조홍을 불렀다.
환하게 밝아진 내부.
곡식을 잘게 빻는 방아와 한쪽에 수북하게 쌓인 지푸라기들, 그리고 바닥에 여러 곡물들이 떨어져 있었다.
이성휘의 손짓에 벽에 기댄 채 앉아 있던 조홍은 환한 불빛을 내뿜는 등잔 주변으로 다가오면서 이성휘와 나란히 등잔불을 바라보게 되었다.
“다행히도 날이 그렇게 춥진 않습니다만… 혹시 모르니 바닥에 지푸라기라도 깔겠습니다.”
자신 때문에 궁핍한 처지에 내몰렸음에도 전혀 내색하지 않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홍은 더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저 사람을 화를 낼 줄도 모르는지.
억지를 부리면서 민폐를 끼친 성가신 여자에게 일언반구의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패국조씨의 여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나에게 일말이라도 마음이 있기 때문일까.
속내를 알 길 없는 이성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조홍은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복잡한 심경에 정처 없이 휘둘리고 있는 자기 마음에 혼란스러워했다.
“미안 해요, 저 때문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조홍이 시선을 들어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에게 사과를 건넸다.
나 때문에 이런 궁상맞은 상황에 놓였으니까.
뻔뻔스러운 오만함에 깃든 당찬 여인은 어디로 갔는지, 등잔 가까이에 앉아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여인은 왜소한 어깨를 움츠린 채로 애처롭게 몸을 떨고 있었다.
“아닙니다. 자렴 님께서는 저를 걱정하여 진류군을 서둘러 나온 거잖습니까.”
“예…?”
“하루를 더 머물렀다면 분명 아쉬움만 커졌을 겁니다. 어쩌면 진류왕을 추종하는 인사들이 저를 포섭하려 접근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를 위해 현명한결정을 내려주신 자렴 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연 이성휘의 말에 조홍의 두 눈이 놀라움의 감정에 젖어 들었다.
이미 의도를 알고 있었단 말인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이성휘의 반응에 순결한 처녀의 곱상한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등잔불의 불빛에 물들었던 새하얀 얼굴에 불그스름한 홍조가 더해지면서 고혹한 자태를 뽐냈다. 달아오른 뺨에서 묘한 색기와 요염함이 묻어나왔다.
“그럼 다 알고 있었으면 진류군을 떠날 때 나한테 편언척자(片言隻字)의 언급이라도 했어야지! 무슨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장난에 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
흑발의 여인은 성난 표정을 지으면서 두 다리로 애꿎은 바닥을 쿵쿵 때렸다.
이 둔감한 남자 같으니라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걱정했는데!
혹시라도 당신이 정에 못 이겨,
진류왕에게 넘어가게 될까 얼마나 걱정했었는지 알아?!
“송구합니다.”
“흥…! 하여간 둔탱이라니까.”
심드렁한 마음을 드러내듯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홱 돌린 조홍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얼떨떨한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
“감사합니다, 저를 배려해주셔서.”
“읏…! 아, 아니거든요! 누굴… 배려해줬다고!”
흑발의 여인은 자기 연심이 훤히 간파당한 것 같아 애써 자기 행동을 부정했다.
정말 전형적인,
새침데기 아가씨의 모습이었다.
쑥스러움에 찬 조홍의 얼굴은 무심코 뺨에 입맞춤하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날카롭고 앙칼진 성격이지만 주인이 등을 쓰다듬을 때만큼은 한없이 순종적인 고양이를 보는 듯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언니를 위해서… 패국조씨 가문의 패업을 위해 결정을 내렸을 뿐이예요.”
흑발의 여인은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면서 솔직하지 못한 말들만 꺼냈다.
어째서 진심을 전하지 못하고,
이 사람에게 일부러 쌀쌀한 모습을 보이는걸까.
나중에 필시 후회하게 될 것임에도, 패국조씨 가문의 아가씨는 솔직하지 못한 반응만을 보였다.
“자렴 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주군께 충성을 다하는 분이시잖습니까. 자렴 님의 두터운 충성심은 저 또한 경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 당연하죠.”
조홍에게는 이성휘의 칭찬이 그저 섭섭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언니를 향한 충성 때문이 아니라,
당신을 향한 연심 때문에 내린 결정인데.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손바닥 뒤집듯 훤히 간파하는 주제에, 정작 중요한 연심만큼은 알아채주지 못 하는 이 둔감한 남자가 얄미워졌다.
“해가 뜨자마자 길을 나서면 오후쯤에는 분명 정도현(定陶縣)에 무사히 도착할 겁니다. 오늘 하루 만 참아주십시오.”
정도현은 제음군(濟陰郡)에 위치한 중심지다. 그리고 연주성이 있는 동군과는 가까운 거리였다.
연주성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단둘이 떠난 여정이 점점 끝나간다는 뜻이었다.
어쩌면 오늘 밤이 사실상 마지막이 아닐까. 이렇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진솔하게 마음을 속삭일 수 있는 시각은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하필이면 퀘퀘하고 불결하기 짝이 없는 방앗간에서…!’
심야의 조용한 침묵을 깨듯이 방앗간의 바깥에서는 끊임없이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졸졸 흐르는 개울 물소리,
세차게 돌아가는 물레 소리까지.
소리가 연이어 들릴 때마다 조홍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게 변했다. 소리가 계속 흘러가고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지금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쌀쌀해진 몸도 데울 겸… 술이나 마시죠.”
“술 말입니까?”
“진류현에서 산 명주들이 있잖아요.”
조홍은 결국,
술에 의지하기로 했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겠는지, 조조 군의 손꼽히는 주당인 하후돈에게 선물하려 했던 술을 희생하여 자기 내면을 끌어내기로 했다.
“어림총사도 마시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저 혼자 마시라고요? 제가 혼자 술에 취했을 때 무슨 짓을 하시려고… 응큼하기는.”
“마시겠습니다.”
성난 조홍을 달래는 것보다는 호위에 지장을 주더라도 술을 마시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이성휘는 결국 술을 마시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하후돈에게 선물하려 한 술은,
독주(毒酒)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도수 높은 술이었기 때문이다.
“이 둔탱이 같은 사람.”
두어 잔 마시자마자 얼큰하게 취해 버린 흑발의 여인이 이성휘의 뺨을 쿡쿡 찌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
달콤함에 젖어 버린 목소리로 이성휘에게 야속한 마음을 전했다.
“제발 그 황녀와 시녀에게 헤벌레 웃어 주지 좀 말라고요.”
여덟 살 황녀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도,
낙양제일미 시녀가 당신을 연모하는 것도,
모두 당신 때문이다.
당신이 너무 멋진 사람이니까,
이 조자렴이 반해 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사내였으니까.
그러니까 수많은 여성들이 매력에 이끌려 곁에 모여드는 것이겠지.
“빨리 저한테 고맙다고 말하세요. 어림총사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치게 될까 배려해준 거니까요.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제 쪽이 감사를 받아야 할 쪽이네요.”
긴장된 분위기를 술로 해소한 덕분일까.
뻔뻔하고 오만한,
당돌한 매력을 가진 패국조씨 가문의 아가씨로 돌아왔다.
어깨를 으쓱 흔들면서 콧대를 높이는 조홍의 모습에 이성휘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기고만장한 모습이 가장 잘 어울리는 미녀였으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로 때우시려고요?”
장난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짓궂은 미소를 지은 흑발의 여인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면서 등잔불에 물든 자기 얼굴을 내밀었다.
취기에 풀려 버린 두 눈.
홍조에 달아오른 불그스름한 뺨.
촉촉하게 젖은 입술과 암사슴처럼 새하얀 목덜미가 요염한 매력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렴 님.”
무언가를 느낀 걸까.
이성휘가 입을 열어 조홍을 불렀다.
그 부름에 조홍은 배시시 웃음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두 팔로 껴안았다.
“저… 언니, 하고 많이 닮았죠…? 머리카락이라든지 눈동자색이라든지…. 물론 한없이 완벽하신 언니에 비하면 저따위는 보이지 않겠지만….”
다소 씁쓸함이 묻어나는,
마치 울먹이는 듯한목소리로 속삭였다.
사랑하는 남성을 향해, 결코 빼앗기고 싶지 않은 남성을 향해 속삭인 흑발의 여인은 복잡함이 묻어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이성휘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언니 대신으로 여겨져도 좋으니까…,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저를 여자로 봐주면 안 돼요…?”
언니의 대신이 되어도 좋다.
당신의 품에 안길 수 있다면.
언니처럼 당신으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하지만 저는….”
한 여인만을 격렬히 연모하는 남성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그를 연모하는 여성이 입을 막아 버렸다.
건조하고 메마른 입술 위를,
촉촉하게 젖어 버린 입술이 빠르게 뒤덮어 버린다.
어미에게 먹이를 청하는 아기 새처럼 입술을 쭉 내밀면서 수줍게 입맞춤하는 그녀의 모습은 격한 흥분감이 들 정도로 귀여웠다.
“으읏… 흐응….”
남성의 꾹 닫힌 입을 벌리면서,
달콤한 타액에 젖은 혀를 밀어 넣었다.
환한 불빛을 나는 등잔을 옆에 둔 그녀는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자기 얼굴이 훤히 보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입맞춤이라는 행위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쮸읍, 쪼옥.
타액을 빨아들이는 것과 동시에,
도장을 꾹 찍는 것처럼 메마른 입술에 자기 흔적을 강하게 새겼다.
“언니하고는… 아직이죠…?”
조홍이 귓가에 속삭였다.
그 속삭임에는,
언니를 앞질렀다는 희열과 함께 언니가 열렬히 사랑하는 남성과 은밀하게 밀회를 즐기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배덕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새하얀 도화지에 먹물을 흩뿌린 것처럼, 배덕감에 찬 육욕이 흘러나왔다.
“저를 쓰다듬어 주세요. 거칠게… 저를 다뤄줘요.”
오랫동안 망상으로만 그려왔던 연모해온 남성과의 입맞춤을 이뤄낸 조홍은 육욕에 완전히 지배당한 것처럼 온몸을 움찔움찔 떨어댔다.
두 다리를 움츠리면서,
이성휘가 자신을 거부할 수 없도록 매달렸던 두 팔로는 하복부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자렴 님, 저는 맹덕 님을… 연모하고 있습니다.”
“알아요.”
망설이는 듯한 이성휘의 반응에 조홍이 애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래도…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
눈물을 흘리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 조홍의 얼굴을 본 이성휘는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그녀를 부드러운 건초더미 위에 쓰러트렸다.
“흐읏….”
흑발의 여인이 신음을 흘렸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사랑하는 남성이 자신을 범해주기를 바라면서 기꺼이 두 팔을 벌렸다.
“제 몸에 당신의 흔적을 남겨줘요.”
곧이어 남성은 건초더미에 몸을 눕힌 여성을 천천히 감싸 안으면서 뜨거운 체온을 전하기 시작했다.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육체는,
애절한 육욕을 녹여낸 미약에 빠진 것처럼 한없이 달아올라 있었다.
“아앙!!”
남성의 거친 손길이 부드러운 복부를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아랫부분 위로 온 순간,
조홍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터트렸다.
뿜어지기 시작한 맑은 액체.
새하얀 허벅지를 타고 애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흐읏…. 흐으응…!!”
오랫동안 참아온 탓일까.
본격적으로 애무를 하지도 않았건만,
음란해진 처녀의 육체는 범해지게 될 것을 기대한 것만으로도 보지에서 분수를 쏟아 냈다.
온몸에 돌기 시작한 열락을 참을 수 없었는지 조홍은 자기 스스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 이쪽은… 언니보다 제가 우위니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연 조홍은,
꽉 묶은 옷고름을 푸는 것과 동시에 상의를 벗어 던졌다.
새하얀 젖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출렁 흔들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꼿꼿하게 솟은 젖꼭지가,
꽃잎으로 칠한 것만 같은 예쁜 연분홍색의 유두가 가슴의 흔들림에 맞춰 빙글빙글 흔들렸다.
“언니보다 크죠…? 소, 손으로 직접 확인해 봐도 좋아요….”
건초더미 위에 몸을 눕힌 흑발의 여인은 부끄러움에 섞인 표정을 지으면서,
팔짱을 낀 두 팔로 커다란 가슴을 들어 올렸다.
새하얀 젖무덤과 순결한 젖꼭지가 이성휘를 유혹하듯 음란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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