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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86화 (86/616)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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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軍師) 진궁은 연주 지역에 입성한 이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정신을 번쩍 차리게 만드는 탕약을,

피로와 피곤에 지친 두 눈을 번쩍 뜨게 만드는 각성제 성분의 탕약을 매일 복용할 정도로 산더미 같은 업무들과 사투를 벌였다.

이 모든 것은 명부(明府)를 위해.

분열된 천하를 바로잡을 명세지재(命世之才)의 패업을 위해서.

진궁은 오직 조조, 조맹덕만이 패왕(霸王)의 업(業)의 달성할 수 있노라며 굳게 믿고 있었다.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씨발.”

벼루 위에 붓을 집어던진 금발의 여인이 투덜대는 목소리와 함께 피로에 지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마지막으로 눈을 붙인 게 언제였더라?

분명 며칠 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날짜를 모르겠다.

“그래도 명부 덕분에 많은 것들이 변했지. 진류군에 입성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되어 사분오열하여 뿔뿔이 흩어졌던 연주의 군현들을 규합했으니까.”

조조와 휘하 장수들의 군사적 능력은 진궁의 예상을 크게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중원제일 검 이성휘.

조씨 가문과 하후씨 가문의 친족 장수들.

명장으로 꼽히기에 결코 손색이 없는 인재들이 군을 이끌고 있었기에 조조 군은 요원지화(爎原之火)의 기세로 연주의 패자에 등극할 수 있었다.

‘연주에 속한 군현들의 대다수를 빠르게 복속한 것은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긴 한데… 문제는 역시 부족한 인재진이겠지.’

조조 군은 무(武)에 치우쳐진 세력이다.

분명 잘 싸우는 장수들이 많았지만,

내정을 보살피고 책임질 관료들이 없었다.

그를 일찍부터 통감하고 있었던 조조는 진류군에서 동군으로 거점을 옮기자마자 유능한 인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씨이발, 인재 구하는 업무도 내 담당이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축 처진 눈매.

눈 밑의 깊은 음영과 건조하게 말라버린 입술.

폭력적인 매력을 뽐내던 쭉쭉 빵빵한 몸매의 미녀가 병약해 보일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가 많이 상한 상태였다.

“군사 어르신, 탕약입니다.”

“하아….”

시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약을 진궁의 앞에 내려놓았다.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탕약이다.

자주 복용하면 심신에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를 의원에게 들었지만,

진궁은 조조가 성공적으로 패왕의 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약물의 힘을 계속해서 빌렸다.

“아무리 마셔도 이 더럽게 쓴맛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네!”

“군사 어르신.”

시녀의 부름에 진궁이 입을 벌렸다.

그에 시녀는 달콤한 벌꿀사탕을 진궁의 입에 친절히 넣어 주었다.

“더럽게 쓴 탕약과 달콤한 벌꿀사탕이라… 이게 인생이지.”

진궁은 입안에 쏙 넣은 벌꿀사탕을 혀로 데굴데굴 굴리면서 가득 퍼지는 단맛을 느꼈다.

벌꿀사탕의 당분으로 기력을 보충한 뒤,

과로사 직전까지 내몰린 상태였던 조조 군의 군사는 벼루에 집어던졌던 붓을 다시 들었다.

“현령 어르신!”

시녀가 싹 비운 빈 그릇을 들고 나가기 무섭게,

허리에 검을 찬 무관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진궁에게 다가왔다.

“누가 현령이야, 멍청아. 중모현 관인을 집어던지고 합류한 게 언젠데.”

“그래도 다들 현령 어르신을 현령으로 부르지 않습니까.”

“하아…. 아무튼 왜? 무슨 일이야..”

진궁이 손을 흔들면서 무관에게 후딱 말하라는 손짓을 보냈다.

“황실과 조정을 거머쥔 동탁이 황제를 겁박하여 조서를 선포했다고 합니다!”

“하아…. 예상은 했는데.”

무관의 보고에 진궁은 새하얀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한숨을 깊게 토해냈다.

동탁이 결국 움직였다.

숙적 정원을 제거하고 중앙 정권을 모두 장악한 난신이 날카로운 칼끝을 지방의 제후와 군벌들을 향해 겨누기 시작했다.

“장자가 남양태수에, 한복이 기주목에, 유대가 연주자사에, 교모가 동군태수에, 공주가 예주자사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뒤이어 진궁의 서고에 도착한 이성휘가 동탁이 황제를 겁박하여 선포한 황명을 전했다.

장자. 한복. 유대. 교모. 공주 등,

뛰어난 명망을 가진 조정 관료들이 사예주와 인접하는 주군(州郡)의 지방관에 임명되었다.

중앙 정권을 도모하려 했던 무맹도위 정원을 처단하고 그의 군세를 모두 흡수한 동탁은 후환이 될 변수들을 없애기 위해 무(武)의 자질이 전혀 없는 문신들을 중앙 인근에 배치시킨 것이었다.

“각주 군현들을 위협하는 반란군과 도적 떼들이 사방에 들끓고 있는 이 난세에, 책상머리에 앉아 먹과 종이를 만지는 것 말고는 해 본 게 없는 문관 나부랭이들을 지방관으로 임명하다니…. 대체 뭔 생각인 거야…?”

진궁이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생각이지.

황실과 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천하에 보여주려는 것일까.

중앙 권력을 노리던 가장 큰 정적을 제거한 동탁은 승리를 선언하자마자 제 입맛대로 지방관들을 갈아치워 버렸다.

만인지상에 올랐음을 과시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그리고 분열을 조장하려는 의도겠지. 책상머리 샌님들을 지방관에 임명하면 천하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터.”

“흩어진 민심을 모으기 위한 의도임을 조정에서 밝혔지만 그를 믿을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겁니다.”

진궁의 말에 이성휘가 답했다.

앞서 진궁에게 보고했던 무관이 예를 취하면서 물러나는 것을 본 뒤,

다시 고개를 돌려 진궁을 바라보았다.

“명망 높은 중앙 관료들을 지방관으로 내려보내어 바닥으로 떨어진 민심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동탁 군의 명분이지만… 문관들을 지방관에 임명하여 혼란을 더욱 부추기려는 의도입니다.”

지방관으로 발탁된 인원들 중,

기주목에 임명된 한복은 발해군에서 거병한 원소의 감시관 역할이었다.

황제를 겁박하여 윤허를 얻어낸 동탁이 교서를 발표하기 직전, 기주목에 임명된 한복은 낙양의 중앙군을 이끌고 업성에 입성했다고 한다.

“또 일 거리가 늘었잖아!!”

진궁이 신경증에서 비롯된 비명을 내지르면서 푸석푸석해진 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에 이성휘는 쓴웃음을 지으며,

연주의 내정을 홀로 도맡은 그녀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표시했다.

* * *

조조는 친족들과 함께 돈구현(頓丘縣)의 인근 숲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 또한 진궁과 마찬가지로 산더미보다 많은 업무들을 떠맡고 있었지만, 변함없는 충성을 보내는 친족들과의 교분을 게을리 할 순 없었기에 어떻게든 짬을 내어 친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맹덕, 오늘따라 활이 제법 매서운데.”

“그런가?”

하후돈의 말에 조조가 대답했다.

그와 동시에,

팽팽하게 당기던 궁현을 놓았다.

날카로운 화살이 날아들면서 시끄럽게 울부짖던 장끼를 떨어트렸다. 화려한 깃털을 자랑하던 장끼는 목덜미가 관통당한 채 풀밭에 추락했다.

“네가 평소 애지중지하는 부관도 왔으면 더 재밌었을 텐데. 패국조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오려면 능숙한 사냥솜씨는 필수잖아?”

“쓰, 쓸데없는 소리다….”

하후돈의 짓궂은 농담에 흑발의 여인은 새하얀 뺨에 홍조를 그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듣기 싫은 말은 아니었는지,

그녀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비번이 아니라서 사냥에 참여할 수 없다니, 그 녀석도 참 고지식하단 말이야?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서야 장차 어떻게 관직 생활을 하려고.”

“거짓과 허식이 없는 정직한 성정일 뿐이다.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지 결코 허울이 될 순 없다.”

이성휘의 고지식한 부분을 지적하는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정정을 요구했다.

“알았어, 알았다고. 지아비 건드렸다고 벌떼처럼 달려드네. 무슨 말을 못 하겠어.”

하후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조조는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자기 부관을 옹호했다.

저 정도의 광증이라면 필시 대역죄를 저지르더라도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용서해주겠지.

무려 2년 동안이나 전전긍긍하면서 한 남자만을 짝사랑해온 여자의 마음은 실로 철옹성처럼 견고했다.

“뭘 그렇게 망설여? 그냥 술을 잔뜩 마시게 한 다음에 자빠뜨리라니까….”

“시, 시끄럽다!”

“그렇게 숙맥 같은 모습들만 보이니까 2년 동안 전혀 진전이 없었던 거지! 무슨 만리장성 이북의 흉노를 정벌하는 것도 아니고 2년이 걸려….”

답답함에 분노하는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차, 차라리 흉노족을 정벌하는 일이 백 번 수월할지도 모르지.”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계속 우물쭈물하다간 다른 불여우가 채가면 어쩌려고?”

“나에겐 활과 화살이 있다.”

하후돈의 물음에 조조가 매서운 살의를 발산하면서 활을 들어 올렸다.

풀숲에서 나온 여우를 쏴 맞췄다.

날렵한 발걸음으로 돌아다니면서 먹잇감을 물색하던 여우는 싸늘하게 내려앉은 살의에 찬 여인에게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걸로 총 10마리째. 사냥을 나온 조조가 쏴 죽인 여우들의 숫자였다. 집요하게 여우들만 사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의욕을 고백에 좀 쏟아봐.”

하후돈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과연 올해 안에,

사랑하는 부관에게 고백할 수 있을까?

고백할 용기는 없는 주제에 질투만 앞서는 모습을 볼 때, 아무래도 올해 또한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성과 없이 흘러갈 듯하다.

‘진짜 답이 없는 한 쌍일세…. 지켜보는 사람이 미쳐 버릴 정도야.’

이성휘와 조조는 서로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지독할 정도로 숙맥이었다.

어느 한쪽이 솔직해지면 일사천리로 연애 사업이 진행될 것 같건만, 둘 다 지독한 숙맥이었기 때문에 진전이 없었다.

“지난번에 분명 동백정에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뒤로 뭐… 부관하고 진짜 아무런 진전도 없었어?”

허탈한 심정에 찬 하후돈의 물음에 조조는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실로 답답했는지,

하후돈은 가슴을 두드리면서 답답함을 토해냈다.

사랑하는 남성의 앞에 설 때마다 항상 쭈뼛쭈뼛한 모습을 보이기 바쁜 벽창호 같은 여자에게 “그냥 고백하라고!”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아냈다.

‘하긴 그렇게 쉬웠으면 2년 동안 질질 끌지도 않았겠지.’

특단의 방책이,

이 벽창호 같은 여자에게 절호의 비법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그냥 부관을 덮쳐 버릴까? 어차피 그 녀석도 딱히 경험이 없는 것 같고, 나도 순결한 처녀니까 서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 아, 아냐…. 부관에게 손을 댔다간 아무리 사촌인 나라도 맹덕에게 살해당할 거야.’

무자비할 정도로 질투가 심하다.

집요할 정도로 끈질긴 집착까지 자랑했다.

귀찮고 피곤한 여자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복장이 터질 정도로 답답하고 부끄러움 많은 아가씨지만 자기 사촌인 것을.

하후돈은 조조와 이성휘가 서로 맺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으므로 끝까지 사촌을 돕기로 했다.

“언니!”

붉은 머리카락의 미녀가 결연한 각오를 품고 있을 때, 조홍이 손을 흔들면서 다가왔다.

조조의 가장 큰 복병.

패국조씨 가문의 분열을 조장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변수가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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