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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83화 (83/616)

8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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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추와 함께 군진에 도착한 여포는 불쾌한 면면들을 접하게 되었다.

양봉, 이락을 위시한 백파적 두령들.

아군이 패착을 두게 된 가장 큰 원흉으로 여겨지고 있는 그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빌어먹을 쓰레기들이 왜 더러운 엉덩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방천화극을 든 여포가 빈정거리듯 말하자, 백파적 두령들이 노한 눈빛을 지으면서 노려보았다.

당장에라도 검을 빼 들 것 같았으나,

단기필마로 뛰어들어 두령 한섬과 그 부하들을 모두 살육했던 여포의 무시무시한 용력을 들은 바가 있었으므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

“비장의 말이 맞소!”

“천한 도적들이 감히 군진까지 들어오다니!”

여포의 말에 힘을 얻었는지 장양과 양추 등의 장수들이 동조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원군 장수들의 거센 분개에 백파적 두령들은 침음을 삼키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그만! 군진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킬 셈이냐!”

그에 상석에 앉은 정원이 노성을 내지르면서 부화뇌동을 일으키는 부하들을 제지했다.

좌중을 모두 진정시킨 뒤,

수염을 늘어뜨린 중년남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입을 열었다.

“병참을 잃고 퇴로마저 막혔으니 더 이상 싸우기는 어렵다.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병주로 돌아가기 위한 방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병주로 다시 돌아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재차 상경군을 일으키겠다.

그렇게 포부를 밝힌 정원은 오만방자한 표정을 지으면서 승리의 기쁨에 도취하고 있을 동탁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분기를 토해냈다.

‘감히 이 정건양을 포위하다니…! 이번 전투는 네놈의 승리다, 동중영. 허나 병주로 돌아가 다시 상경군을 일으켜서… 네놈을 권좌에서 끌어내려주마.’

어떻게든 병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사방을 포위한 십만 대군을 돌파하여,

태원군(太原郡)에서 와신상담하는 심정으로 후일을 도모하려 했다.

병주 지역에는 정원을 따르는 장졸들이 수만 명이 넘었을 뿐 더러, 만리장성 전선에 주둔하는 기병군단 또한 상당한 병력을 자랑했기에 상경군을 일으킬 여력이 충분했다.

“도위!”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척후대에 투입되었던 무관이 들어섰다.

정원에게 예를 취한 뒤,

절망적인 급보를 전달했다.

“계속 굶주린 군마들이 결국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흘 전부터 배급마저 끊어진 탓에…, 병사들이 군영을 탈영하여 동탁 군에 이반하기 시작했습니다!”

“병주의 용맹한 장졸들이 탈영이라니! 이런 겁쟁이 같은 놈들…! 당장 탈영병 놈들을 붙잡아 군율로 다스려라!”

급습으로 인해 병참을 잃게 된 정원군은 지독한 기아에 시달리게 되었다.

병량은 물론,

말을 먹일 마초마저 끊어졌다.

배급량이 계속 줄어들다가 결국 배급이 완전히 끊어지게 되자 병사들은 굶주림에 쓰러진 말을 잡아먹거나 야심한 밤을 노려 동탁 군에 투항하는 등의 돌발행동을 일으키기에 이르렀다.

“병주로 돌아갈 방법이 있소.”

백파적의 두령, 호재가 입을 열었다.

정원군 장수들의 모멸감에 찬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고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정원을 향해 말했다.

“사수(汜水)를 거점하고 활동하는 수적떼들을 포섭하여, 그들의 배를 타고 하동군(河東郡)까지 은밀하게 이동하는 것이오. 우리 백파도 병력들이 주둔하는 하동군까지 간다면 적들도 더 이상 뒤를 쫓진 못할 거요.”

상선과 어선들까지 모두 흡수하면서 성장한 대규모 수적떼였기 때문에 보수만 제대로 지급한다면 하동군까지 안전하게 수송해 줄 터.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배에 오를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포위망에 가로막힌 병마들을 모두 다 버리고 도망치자는 말인가!”

“더러운 도적 출신답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비열하기 짝이 없군! 제 살 길만 궁리하는 더러운 작자 같으니라고!”

병마들을 모두 버리고 지휘부만 빠져나가자는 말이나 다름없는 호재의 주장에 정원군의 장수들이 분개에 찬 격노를 쏟아 낸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칼자루를 굳게 쥐면서,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들어 호재의 목을 쳐 버릴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발산했다.

“봉선 님!”

장료가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여포는 호재의 멱살을 붙잡은 뒤였다.

“이 구더기가 대체 뭐라고 지껄인 거야?”

경멸에 찬 붉은 눈동자.

여포는 핏물에 절은 늑대처럼 살벌한 눈빛으로 호재를 노려보았다.

최강의 무력을 자랑하는 비장.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무수히 많은 적들을 베어죽이고 그 핏물로 온몸을 흠뻑 적셨던 괴물이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는 살의를 드러냈다.

“야, 다시 지껄여봐. 방금 뭐라고 말했냐?”

“컥…!! 컥, 커헉!!”

“목을 당장에 으스러뜨려줄까.”

여포는 한 손으로 성인 남성의 목뼈를 단숨에 으스러뜨릴 정도의 완력을 자랑했다.

이성휘가 두 팔로 사람의 등뼈를 부러뜨렸듯, 여포 또한 그에 필적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봉선!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정원에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그에 여포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목을 일 거에 부러뜨릴 것처럼 손아귀에 완력을 가하던 호재를 바닥에 내던져 버렸다.

만약 정원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호재는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었으리라.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누누이 일렀거늘, 네년은 이런 상황에서도 경솔하게 행동한단 말이냐!”

“그럼 이 쓰레기가 한 말을 듣자고?”

호재를 거칠게 내던졌던 여포가 정원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쓰레기를 옹호하는 듯한 행동에,

양부(養父)를 향한 충성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포는 궁지에 몰린 부하들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돌격하여 북방 오랑캐와 싸웠던 양부의 용맹한 모습을 회상하면서, ‘부하들을 누구보다 끔찍이 여겨 온 양부가 절대 그럴 리 없다.’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대의를 위해서다! 동탁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병주로 돌아가야 한다! 천하를 거머쥐겠다는 대망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희생이든 받아들이겠다!”

“뭐…?”

시커먼 야욕으로 가득 찬 정원의 외침을 들은 여포가 허망함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결코 들어선 안 될 것을,

두 귀로 똑똑히 들은 그 말을 부정하려는 듯 되물음을 흘렸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모습을 한 채 부하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허심탄회한 웃음을 보였던 용맹한 대장부가 저런 겁쟁이가 되었을 리 없다며 자신이 들은 말을 부정했다.

“호재 장군!”

“예… 예!”

자신을 장군이라고 부르는 정원의 말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호재가 벌떡 일어났다.

“당장 수적들을 포섭해 보게! 내 재물들은 얼마든지 내려줄 터이니 걱정 말게! 호재 장군, 반드시 포섭을 성사시켜야 하네!”

정원은 마치 하늘 위까지 이어진 동아줄에 매달린 사람처럼 애걸복걸하듯 말했다.

마치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처럼,

살육이 난무했던 북방의 백전(百戰)을 지휘한 맹장이 한낱 도적 떼의 수괴에게 체면을 내던진 채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도위! 정녕 부하들을 다 버리실 생각이십니까!”

“어찌 도위께서…! 짐승처럼 사나운 북방 오랑캐들을 벌벌 떨게 하였던 도위께서! 어찌 그런 참담하신 결정을…!!”

부하 장수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항변했다.

훗날 천하를 얻게 된다고 한들, 오랜 세월 동안 생사를 함께해온 부하들을 모두 버리고 얻는 영광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목숨 걸고 전쟁터에 선 장졸들을,

고향을 떠나 전쟁터로 온 장졸들을 모두 버리고 살 길을 택하려는 정원의 결정에 장수들이 통한에 찬 고함을 내질렀다.

“안 됩니다, 도위!”

“이 간악한 도적놈이 요사스러운 말재주로 도위를 홀린 것이로구나!”

휘하 장수들의 분개는 정원을 향해진언했던 호재를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검을 빼 들었다.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장검을 빼든 장수들은 당장에 호재의 목을 칠 것처럼 살의를 뿜어냈다.

“이놈들이!!”

휘하 장수들이 결국 검을 뽑아 들면서 백파적의 두령들을 위해를 가하려 하자, 결국 이를 참지 못한 정원이 검을 빼 들면서 휘하 장수들을 향해 겨눴다.

“목숨을 부지하여 병주로 돌아가야 천하를 향한 호포용음(虎咆龍噾)을 할 수 있는 법이거늘, 어찌 눈앞의 사사로운 정에 매달려 대국을 그르친단 말이냐!!”

정원은 비록 노쇠하였으나 뛰어난 무력을 자랑하는 맹장 중의 맹장이다.

소싯적에는 사나운 산짐승을 맨손으로 때려잡은 적이 있었으며, 또한 격전이 벌어질 때마다 사나운 오랑캐들의 수급을 거침없이 벤 것으로 유명했다.

붉은 갑옷을 두른 늙은 늑대가 사나운 포효를 내지르자, 이에 휘하 장수들은 겁을 먹은 반응을 보였다.

“당장 검을 거둬라! 우리는 배를 타고 병주로 돌아간다. 병주로 귀환하여 천하를 제패하기 위한 전쟁을 다시 도모할 것이다!”

정원의 연이은 외침에 휘하 장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백파적들을 향해 뻗었던 칼끝을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천하를 제패해? 수만 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모두 다 버리고 도망치는 필부가 어떻게 천하를 도모한다는 건데!”

하지만 여포는 달랐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방천화극을 쥔 채로 양부와 대치했다.

차라리 죽음을, 목숨을 건 결사를 명령했다면 순순히 복종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양부는 수만 명에 달하는 전우들을 모두 사지에 내버려 둔 채로 비겁하게 전쟁에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결코 그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여포는 살의에 가까운 감정을 거침없이 발산했다. 그리고 주군이며 양아버지였던 정원과 반대되는 대척점에 섰다.

“감히 나더러 필부라 지껄인 것이냐!!”

“목숨을 바쳐 여기까지 온 부하들을 사지에 내던지고 도망칠 궁리나 하는 작자를 당연히 필부라고 부르지!”

정원은 자신을 향한 필부라는 망발을 지껄인 수양딸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그리고 또한,

여포는 부하들을 버리고 도망치려는 양부를 위압하듯 방천화극을 내리찍었다.

“당장 극을 내려라!”

“감히 주군을 위협하려 들다니!”

정원을 호위하는 근위병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면서 여포를 향해 겨눴다.

그에 장료가 여포의 옆에 섰다.

만약 여포가 결행에 옮긴다면,

일말의 주저함 없이 검을 뽑아 들어 정원을 칠 생각이었다.

“봉선 님, 명을 내려주세요. 따르겠습니다.”

장료가 칼자루를 쥐면서 싸늘하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포를 흠모하던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원과 여포의 극단적인 대치를 보게 된 장수들은 여차하면 여포에게 가세하려 했다.

“차라리 내게… 목숨을 바쳐 포위망을 돌파하라고, 북방 오랑캐들과 싸울 때처럼 위엄 넘치게 명령을 내렸다면 주저 없이 따랐을 거야. 주군과 장졸들을 목숨을 바쳐 싸우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무인의 명예이자 영광일 테니까.”

나는 결국,

저 필부를 위해 지금껏 목숨을 바쳐 싸워왔단 말인가.

북방의 용맹한 늑대였으나, 야욕과 욕망에 빠져 연약한 살쾡이 같은 필부가 된 양아버지를 증오스럽게 노려보던 여포는 이내 회한을 느꼈는지 서서히 눈꺼풀을 내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왜 이렇게 된 건데.”

붉은 갑옷을 두른 금발의 여성은 등을 돌린 채 군영을 벗어났다.

그 뒤를 장료가 뒤따랐다.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여포의 모습에 장료 또한 발걸음을 서둘렀다.

“보… 봉선…님….”

방천화극을 강하게 움켜쥔 채,

분노가 섞인 발걸음을 내딛는 여포의 얼굴을 본 장료는 그만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통한에 젖은 감정이 격정에 사로잡힌 표정을 타고 흘러내렸다.

용맹한 무명을 떨친 북방의 군웅이 부하들을 사지에 모두 내던지고 목숨을 연명하려는 필부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안타까워했다.

* * *

두 눈이 퉁퉁 부어오른 여포가 장료와 함께 군영으로 귀환했다.

귀환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는지,

여포의 친척이었던 위속이 다가왔다.

“저어…, 누님!”

“아뇨, 저에게 말씀하세요.”

여포가 지금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한 장료는 그녀를 대신하여 나섰다.

그에 위속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형장으로 보내라고 했던 그… 이숙이라는 놈 말입니다만….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모양입니다.”

처형장으로 보내라고 명령했던 동탁 군의 사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에 장료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분명 죽이라고 명령했거늘,

어째서 무관들은 참형을 집행하지 않았단 말인가.

이것은 항명이고 거역이다.

투항을 권유하려는 목적으로 군문에 들어온 동탁 군이 보낸 사자와 내통하려는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명령에 불복종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새끼 당장 데려와.”

여포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지독한 살의와 광기에 찬 눈빛이었다.

그 눈빛을 목격하게 된 위속은 오금이 저렸는지 두 다리를 벌벌 떨었고, 장료 또한 지독하게 들끓는 살의를 앞두고 겁을 집어먹고 말았다.

“야, 동탁 군의 끄나풀.”

부하들이 군영에 억류하고 있던 이숙을 끌고 왔다.

흉흉한 기세를 흩뿌리는 여포의 살벌한 모습에 놀란 이숙은 사시나무 떨듯이 온몸을 벌벌 떨었다.

그런 이숙을 향해 말했다.

“네가 건넸던 그 제의, 아직도 유효하겠지?”

“무, 물론… 물론입니다…!”

이숙으로부터 확답을 받아 낸 여포는 핏발 선 눈을 한 채 장료를 향해 명령했다.

“정원을 친다.”

북방의 영웅은 이미 죽었다.

북방을 크게 호령했던 붉은 늑대는,

시커먼 야욕과 욕망 집어삼켜지고 죽고 말았다.

지금 우두머리로 있는 늙은 장수는 한낱 살쾡이에 지나지 않는 필부일 뿐. 여포는 간악한 살쾡이를 처단하고 수만 명에 달하는 부하들을 살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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