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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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와 조인은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연주성에 입성하여 치안을 확보하고 민심을 수습했다.
30만에 달하는 황건적들을 모조리 도륙한 중원제일 검이 입성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그에 연주성 백성들은 결코 그 무자비한 황건적들이 연주성을 호시탐탐 노리지 못할 것이라며 크게 안심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림총사께서 연주성의 전임을 맡아주십시오.”
“괜찮겠습니까?”
“예, 분명 언니도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동군의 백성들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겠지요.”
조인은 이성휘에게 전임을 양보했다.
그녀는 어느 누구처럼 2인자 자리에 집착하지 않았을 뿐 더러, 도적 떼들의 연이은 침략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군 백성들은 중원제일 검의 무명에 기대고 싶을 것이라며 사려 깊은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감사합니다.”
이성휘는 조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조가 올 때까지 임시적으로나마 전임을 맡기로 했다.
‘진짜 괜찮은 건가? 친족의 처지에서 볼 때는 크게 불쾌할 법한데.’
관위(官位)가 높은 쪽이 전임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라고는 하나, 조조의 종제이자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인 조인의 처지에서는 달갑지 않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어딜 출신성분도 모를 놈이,
친족들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2인자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조홍 또한 2인자 역할을 하는 이성휘를 계속해서 경계한 바가 있었다.
“…….”
하지만 이성휘의 우려와는 달리,
조인의 냉철한 무표정에서는 그 어떤 불쾌감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
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지,
대체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건지,
차가운 얼음장을 깎아서 만든 가면을 쓴 것처럼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총사, 하후돈 장군께서 산음(山陰)에 주둔하는 도적 떼를 크게 격파하셨습니다.”
하후돈 휘하의 무관이 연주성에 입상하여 이성휘에게 승전보를 알렸다.
먼저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출진했던 하후돈이 산음에 주둔하고 있던 흑산적 잔당을 크게 격파했다고 한다.
또한 수천에 달하는 수급들을 취했으며,
도적 떼들이 수송하고 있던 물자들을 전리품으로 거두는 성과를 이뤄냈다.
“산음에 주둔하고 있던 도적 떼들은 분명 출병했던 아군의 두 배가 넘는 숫자였을 텐데…. 정공으로 단숨에 제패할 줄이야.”
하후돈은 두 배가 넘는 흑산적을 상대로 과감하게 단기결전을 벌여 승리를 거둬냈다.
연주성의 몰살로 인해 흑산적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는 하나, 산음군의 험준한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웅거하고 있던 흑산적 병력을 대파한 하후돈의 무용은 가히 놀라웠다.
하후돈은 흑산적을 정벌한 뒤,
막대한 전리품을 가지고서 연주성으로 귀환하고 있었다.
“…….”
이성휘의 옆을 지키고 있던 조인의 눈길이 다른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냐옹~!
가냘픈 울음소리를 내는 검은 고양이.
생후 2개월 정도 된 것 같은 왜소한 체구의 고양이가 담벼락 위에 앉은 채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이윽고 고양이가 몸을 쭉 펴더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낮잠을 보낸 걸까.
게으름에 젖은 얼굴에 나른한 행복이 섞여 있었다.
“…….”
하후돈 휘하의 무관으로부터 보고를 받는 이성휘의 옆을 지키면서도 은밀하게 곁눈질을 슬쩍슬쩍 보내면서 검은 고양이가 담벼락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효 님.”
“예.”
이성휘의 부름에 조인이 답했다.
그녀는 다시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꽁꽁 얼어 버린 호수처럼,
청명한 차가움에 물든 표정을 지은 채였다.
“맹덕 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병력을 동원하여 지난 공방에서 파괴되고 훼손된 연주성의 성벽을 보수하려 합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이성휘가 발걸음을 움직이자 조인은 그 뒤를 따라 걸으면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잠시 돌려,
담벼락 너머로 사라진 고양이가 다시 나타날까 두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어미의 품으로 돌아간 것일까.
나릇하게 햇볕을 쬐던 고양이가 귀엽게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그녀는 이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또 왔으면 좋겠다.'
새끼 고양이가 햇볕을 쬐던 담벼락을 힐끗 쳐다보던 조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 * *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한 특공을 준비하던 여포에게 찾아온 이는 이숙이라는 무관이었다.
여포와 동향인 병주(并州) 오원군(五原郡)으로,
낙양 군단의 무관이었으나 동탁이 낙양 정권을 잡게 되면서 동탁 군에 귀의하여 군사 이유의 수하가 되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인지, 방금까지 낙양 시가지에서 혈전을 벌였던 정원군의 진영에 혈혈단신으로 들어온 그는 매우 당당한 모습을 보이면서 여포에게 담화를 요청했다.
“커헉!”
여포의 부하들에게 끌려온 이숙은 그대로 흙바닥에 내던져지게 되었다.
아직 아무 제의도 꺼내지 않았건만,
마치 참형을 당하는 죄수처럼 이숙은 여포의 부하들에게 흙바닥에 쓰러진 채로 온몸이 짓눌리는 신세가 되었다.
“꽤, 꽤 무례한 예법이구려….”
입에 들어간 모래를 뱉어낸 이숙이 침음을 삼키면서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인.
당장에라도 자기 목을 칠 것처럼 흉흉한 위압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만약 섣불리 항복을 종용했다간 저 무시무시한 방천화극으로 목을 쳐 버리겠지. 이숙은 모래를 입에 머금어 텁텁해진 입을 우물대면서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여포와 시선을 마주했다.
“동탁의 똘마니냐?”
여포가 물었다.
그에 이숙이 대답했다.
“그렇소…. 낙양 군단의 교위였으나 지금은 병주목을 섬기고 있는 이숙이라 하오.”
자기 신분을 밝히면서 여포의 물음에 답한 이숙은 최대한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심산을 달성할 방법을 모색했다.
“동향 출신인 장군에게 동탁 군의 간교한 속셈을 알려주러 왔소!”
“뭐?”
제 입으로 동탁 군의 군사 기밀을 누설하겠다는 이숙의 해괴한 말에 여포가 의문 섞인 반응을 보였다.
다른 무관들도 마찬가지였다.
끌려오게 된 동탁 군의 끄나풀이 해괴한 말을 나불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동탁 군의 주력부대가 지금 사수(汜水)를 넘어 하내군에 매복하고 있소! 장군께서 억지로 포위망을 뚫고 활로를 열려고 한다면 사방에서 매복이 들이닥칠 것이오!”
이미 동탁 군이 자신들의 속셈을 꿰뚫고 주력부대를 동원하여 매복을 배치했다는 말에 병주 출신의 무관들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놈들은 우리들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
낙양을 공격했던 우리를 포위한 것으로 모자라, 주력부대를 동원하여 퇴로마저 막아 버렸다.
또한 이숙은 하내도위 왕광을 비롯한 사예주의 군벌과 지방관들이 정원군의 본진에 총공세를 가할 것이라며 경고를 보내기까지 했다.
“무맹도위 정원의 가장 큰 패착은 사예주의 군현들을 계속 침탈했던 백파적 세력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아니겠소? 지금까지 계속 권력 쟁탈에 중립을 고수하던 사예주의 군벌과 지방관들이 동탁 군에 가세하여 그대들을 공격하게 된 것은 바로 정원의 패착 때문이오.”
시시하고 보잘 것없는 욕망과 공명심에 빠져 한꺼번에 많은 적들을 만들어 버린 정원의 만용이 결국 수만 명에 달하는 병주군을 생지옥으로 내몰아버린 것이다.
이숙은 정원의 실책을 열거하면서 정원을 향한 불신을 조장했다.
“그대들의 드센 용력과 날랜 용맹은 낙양 공방전에서 충분히 입증되었소. 동탁 어르신께서는 천하용장인 그대들의 무용을 아깝게 여기고 계시오. 지금 당장 병장기를 버리고 황실과 조정에 투항한다면 그대들을 필시 중용할 것이오.”
“나더러 무맹도위를, 부녀지간을 맺은 양부를 변절하라고?”
간교한 말재주를 내세우면서 투항을 권유하는 이숙의 제안에 여포는 이를 빠득 갈면서 방천화극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방천화극을 거꾸로 쥔 뒤,
날카로운 창날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어억!”
이숙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수백 명에 달하는 동탁 군 장졸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했던 방천화극의 위용에 겁을 집어먹었는지 간교한 혓바닥을 나불대던 이숙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인의 길을 걷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진작에 죽음을 각오했어. 설령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언정, 모시는 주군의 실책으로 죽게 될지언정 당장하게 무인으로 죽겠다고 결심했다고.”
여포는 방천화극을 흙바닥에 내리찍은 채로 자기 맹세를 밝혔다.
주군의 실책으로 죽게 될지라도,
결국 그 또한 무인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가혹한 운명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인들이 망군(亡君)과 우왕(愚王)을 향한 충정을 관철한 채 전쟁터에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여포는 무인들의 숭고한 의지를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처형장으로 끌고 가서 목을 쳐 버려.”
여포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그에 이숙을 억압하고 있던 부하들은 그를 벌떡 일으켜 세운 뒤, 두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
“하오나 비장! 저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우리는 꼼짝없이 포위된 겁니다!”
“놈을 일단 살려 두어 동탁 군과 교섭을 하심이 옳습니다!”
이숙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무관들이 여포에게 다가와 심사숙고를 요청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리석은 실책과 만용을 되풀이하여 작금의 사태에 이르게 만든 정원을 계속해서 힐난해온 무관들은 내심 동탁에게 투항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적들의 바짓가랑이를 기겠다는 거냐.”
“그, 그건 아닙니다만….”
“우리는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다. 병주 무인들의 용맹과 기개를 저 빌어먹을 놈들에게 끝까지 보여주겠어.”
전쟁에서 패배한 무명소졸로,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죽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주군을 변절하고 적들의 바짓가랑이를 긴 비겁자로 이름을 남길 바에야, 최후의 최후까지 분전했던 무명소졸로 남게 되는 쪽을 택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비장, 주군께서 부르시네.”
정원 휘하의 장수인 양추가 무관들과 함께 여포의 진영에 들어왔다.
양추는 말에서 내린 뒤,
무맹도위 정원이 모든 장수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분명 난관을 빠져나가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함이겠지. 이숙이 끌려가게 된 처형장이 위치한 방향을 슬쩍 곁눈질로 쳐다본 여포는 장료와 휘하 무관들과 함께 양추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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