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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78화 (78/616)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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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에서 활짝 피어나는 석죽화(石竹花)처럼 정결한 미모를 자랑하는 초선은 고귀한 품성과 예법을 두루 갖춘 미녀로 명성이 높았다.

양부에게 지극히 효를 다하며,

웃어른들은 물론 노복들에게까지 기꺼이 친절을 베풀면서 많은 인기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장차 혼인하게 되면 지아비를 정성을 다해 섬기는 현모양처(賢母良妻)가 되겠지.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다.

“폐하의 결정이십니까.”

“…그, 그러하옵니다.”

찬연한 광휘를 내뿜고 있는 보물을 본 이성휘는 당혹스러움에 찬 표정을 짓는 것과 동시에, 다급한 손길로 궤짝을 닫아버렸다.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된다는 듯,

다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을 보이면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잠시 뒤로 물러나서 굳게 닫힌 장지문에 몸을 기대었다.

혹시 엿듣고 있는 자가 없는지,

몰래 염탐하는 첩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소저께서 진류왕 전하의 전속궁녀가 되어 여정에 참여하게 된 이유 말입니다.”

“…….”

이성휘의 추측이 맞았는지,

그 말을 듣게 된 초선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남윤 왕윤의 수양딸인 초선이 진류왕 유협의 전속궁녀가 되어 아비규환 같은 여정에 참여하게 된 이유.

어째서 왕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수양딸을 위험천만한 사지에 보냈는지, 그것을 계속 의문스럽게 생각해온 이성휘는 이제야 그 해답을 알게 되었다.

“소녀는 황상 폐하로부터 황송스럽게도 새주(璽主)의 역할을 맡게 되었사옵니다. 소녀의 미물 같은 목숨을 다하여, 진류왕 전하와 옥새를 보필하는 사명을 맡은 채 명공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 것이옵니다.”

작약꽃처럼 하늘하늘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성이 당장에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격정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두 손을 공손히 포개면서,

이성휘를 향해 엎드리면서 절했다.

지금까지 비밀을 숨긴 점. 그리고 모르쇠처럼 일관하며 진실을 숨겨 온 것에 대한 깊은 사과였다.

황제로부터 받은 은밀한 황명이었기에 결코 누설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초선은 생명의 은인이며,

연모하는 대상인 그에게 지금껏 숨겨 온 것에 대해 차마 떨쳐 내기 어려운 죄책감을 떠안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드십시오, 소저.”

새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응어리가 진 죄책감과,

어깨를 짓누를 것 같은 중압감을 홀로 버텨 내면서 지냈던 고통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홀로 중압감을 떠안은 채 전전긍긍하면서, 자기 손에 한나라 황실의 흥망이 놓였음을 통감하면서 슬픔과 번민과 찬 끔찍한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다.

“이제 괜찮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이성휘가 두 손을 뻗었다.

울음을 터트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그녀에게 두 손을 뻗으며 위로 했다.

좀 더 다정다감한 감성을 가진 남자였다면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를 상냥하게 두 팔로 안아줬겠지만, 이성휘에게는 그녀의 두 손을 맞잡아주는 게 한계였다.

“소, 소녀가 감히 명공께 추태를…!!”

이성휘의 위로에 고개를 천천히 들어 시선을 응시하게 된 초선은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붉은 염료가 톡하고 떨어졌는지,

낙양제일미의 갸름한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입술을 우물쭈물 움직이더니 몸을 쭉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던 이성휘에게서 황급히 물러섰다.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자기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이 상당히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으으으으.”

부끄러움에 찬 앓는 소리를 내면서,

차마 시선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소저.”

“예, 명공.”

이성휘의 부름에 초선은 후끈 달아오른 열기를 애써 억누르면서 엄숙한 모습을 보였다.

“송구한 말씀이지만 당분간은 소저께서 계속 옥새를 맡아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이옵니다. 황상 폐하께서 직접 소녀에게 맡기신 대업이 아니옵니까.”

“허나 이 좁은 공간에 계속 옥새를 꽁꽁 숨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제가 어떻게든 조치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십시오.”

본인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필시 후환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전국옥새는 한나라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보물이자, 중원 왕조의 명맥을 뜻하는 정통성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성휘는 애처롭게 떨면서 읍소하는 초선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조치를 취해 보겠노라며, 부담감을 계속 떠안았을 그녀를 다독여주었다.

결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기 일처럼 선뜻 나서는 이성휘의 모습에 초선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꼈다.

“허면 옥새는….”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야 합니다. 정동장군은 물론, 진류왕 전하에게도. 저와 소저의 비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알겠사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약한 두 어깨를 움찔 떨면서,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던 얼굴에 슬며시 미소를 새겼다.

‘소, 소녀는 역시 명공을….’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과 천둥소리가 울리듯이 쿵쾅쿵쾅 요동치는 가슴.

부끄러움에 입술을 꾹 깨문 초선은,

진심으로 이 사람을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 *

여포가 이끄는 선봉군이 마침내 낙양 방어선을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목책을 무너뜨리고,

창검을 든 병사들마저 연이어 격파하면서 승전보를 울렸다.

그에 기세가 오른 정원군은 낙양에 가하는 공세를 높이는 과감함을 보였다.

하지만 반면 무맹도위 정원과 동맹 관계였던 백파적의 두령들은 승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헛바람이 든 것처럼 독자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들의 세상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라! 그리고 계집들을 취하고 가옥에 불을 질러라!”

비천한 출신의 도적 집단답게 백파적은 낙양 인근에 위치한 군현들을 습격하여 대대적인 약탈을 벌였다.

민가에 불을 지르는 것은 물론,

백주대낮부터 살인과 강간을 저지르기도 했다.

마치 제 세상이라도 만난 것처럼 날뛰는 백파적의 약탈에 군현을 지키던 관군들은 달아나버렸다. 정원군에 의해 낙양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관군들은 아비규환에 빠져 있었다.

“아악!!”

“흐하하하! 내 활이 맞았다!”

수백 명의 도적들이 등을 보이며 도망치는 백성들을 상대로 사냥을 시작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는,

실로 참혹한 현장이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차에 아녀자들을 밧줄로 매단 채로 질주를 감행하거나, 100여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은 다음에 불을 놓는 등의 악행을 일삼으면서 유쾌한 듯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두, 두령!!”

부하들이 벌이는 악행을 지켜보면서 술잔을 기울이던 백파적의 두령, 한섬은 다급한 외침과 함께 달려오는 부하를 보고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무슨 일이냐,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오고.”

한섬은 크게 취했는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었다.

낙양에서 동탁 군과 정원군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기라도 한 듯, 인근의 군현을 약탈하기 바쁜 한섬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피, 피하셔야 합니다!!”

부하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위기를 경고했던 부하의 몸이 선혈을 뿜어냈다.

뒤에서 날아든 창에 몸이 꿰뚫린 것이었다.

날카로운 창날이 몸을 관통한 채 삐죽 튀어나오게 되었고, 창에 꽂혀 몸이 찢겨나간 부하의 몸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아!!”

온몸에 시뻘건 핏물을 뒤집어쓰게 된 한섬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믿지 못할 상황에 기겁하여 소리를 내지르던 한섬에게, 붉은 갑옷을 입은 금발의 여인이 검을 뽑아 든 채 다가왔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들이…!! 지금 낙양에서는 병주의 전사들이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있는데, 네놈들은 한가롭게 술이나 퍼마시고 마을이나 약탈하면서 술잔치를 벌여?”

금발의 여인이 검을 번쩍 내리치면서 한섬의 목을 베어 버렸다.

뒤이어 기병들이 도착했다.

비장(飛將) 여포를 따르는 기병들이 난입하여 군현을 약탈하던 도적 떼를 일 거에 소탕해 버렸다.

백파적의 무자비한 약탈로 인해 수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백성들이 희생된 것을 알게 된 여포는 모멸감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전쟁에 백파적 같은 버러지들을 끌어들인 양부의 행동에 이를 빠득 갈았다.

“누님!”

건장한 남성이 말에서 급히 내리면서 여포에게 다가왔다.

“무맹도위의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전선을 이탈하시면 어찌합니까!”

“금방 복귀할 거라고 했잖아.”

“현재 양군이 낙양 시가전을 앞두고 잠시 재정비를 취하는 상황이기에 망정이지… 항명죄로 처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입니다!”

여포의 친척인 위속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항상 제멋대로,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도가 지나쳤다.

일선에 선 장수가 주군의 허락도 없이 군문을 이탈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당장 즉결처형을 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군문에서 떠도는 소문이 진짜 사실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우리 병주 장졸들이 전선에서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을 때, 정원에게 빌붙어 전쟁에 개입하게 된 이 버러지들이 살육과 약탈을 벌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여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쑥대밭이 된 군현의 정경을 바라보았다.

모두 불길에 타고 있었다.

마치 흉노족의 습격을 받은 병주의 군현들처럼.

“이 개자식들.”

여포의 분노가 백파적의 두령들을 넘어, 그들을 영입하고 중임을 맡긴 무맹도위 정원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를 직감한 듯,

깊은 격노를 토해내는 여포의 모습을 본 위속은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비장!!”

여포와 위속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휘하의 무관이 말을 탄 채 급히 달려왔다.

이윽고 말에서 내린 무관이 여포에게 본진에서 도착한 급보를 알려주었다.

“하내도위(河內都尉) 왕광이 거병하여 아군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예주의 지방관들까지 합세하여 아군을 들이치고 있습니다!”

황제를 등에 업은 동탁이 무맹도위 정원을 국적(國賊)으로 선포함과 동시에 토벌령을 내렸다.

마치 정교하게 계획된 작전처럼,

정원군이 사수 방어선을 뚫고 낙양 시가지에 난입하자마자 사방에 매복을 배치시킨 것처럼 창검을 든 사예주 병사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 * *

사수 방어선을 뚫은 이후부터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매서운 기염을 토해내던 정원군이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는 보고를 들은 이유가 식은땀을 닦으면서 한숨을 깊게 토해냈다.

“자네 덕분에 목숨을 건졌네. 실로 대담한 계책이로군…. 낙양을 함정 삼아 적들을 격멸하는 유인책을 짜내다니.”

동탁 군의 군사, 이유의 말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여인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과찬이십니다.”

탁색(濁色)처럼 보이는 잿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입을 열었다.

혀로 입술을 요염하게 훑으면서,

연이어 거둔 승전보들로 크게 기뻐하고 있었을 무맹도위 정원의 얼굴이 지금쯤 형편없이 박살 났을 것이라며 조롱 섞인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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