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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76화 (76/616)

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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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지역을 침탈하려 했던 흑산적을 모두 몰살하고 연주성을 차지한 정동장군 조조는 친족인 하후돈을 동군태수에 임명하고 진류군으로 돌아왔다.

그에 원소가 동행하게 되었는데,

안량과 문추를 대동한 500명의 근위대가 정북장군의 호위를 전담했다.

진류왕 유협에게 연주성의 승전보를 보고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나, 기어코 근위대를 이끌고 진류군까지 따라오는 원소의 행동을 조조와 조홍… 패국조씨 가문의 자매는 매우 껄끄럽게 여겼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한 여인.

황금 투구를 방구석에 던진 채,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자마자 바닥을 나뒹굴며 비명을 크게 내지르는 기행을 벌였다.

자기 상체만큼이나 큰 베개를 두 팔로 끌어안은 채, 일생일대의 치욕을 경험한 사람처럼 억울함에 찬 분개를 힘껏 터트렸다.

‘자효만큼이나 무뚝뚝한 얼음동상 주제에! 왜 그 여자가 꼬리를 치니까 바로 얼굴을 붉히는 거냐고! 나한테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 없었잖아!!’

조홍이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원소의 호의에 얼굴을 붉히는 이성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내게 보여 준 적 없는 얼굴을…,

그 불여우 같은 여자에게 보여줬으니까.

‘이 조자렴이 어때서! 여남원씨 가문의 얼녀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미녀라고! 나 좋아한다고 졸졸 쫓아다닌 남정네들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데! 상사병에 걸린 남자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걸!!’

화를 씩씩 토해내면서,

두 다리를 내리치면서 밑에 깔고 있던 이불을 걷어찼다.

“그르르르!!”

흑발의 여인이 짐승 울음소리를 내면서 베개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원앙이 수놓아진,

한나라의 젊은 처자들 사이에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인기가 많은 부부 전용 베개였다.

언젠가 함께 쓰게 될 날이 올 거라면서 응큼한 망상을 하고는 했던 조홍은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헤픈 모습을 보이는 광경을 보고는 난데없이 죄 없는 베개에게 행패를 부렸다.

“…뭐 해?”

그 광경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힐끗 쳐다보고 있는 흑발의 여성.

별 해괴한 것을 다 본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면서 괴기한 행동을 일삼고 있는 조홍의 모습을 본 조인은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오랜 전투로 인해 드디어 머리가 돌아버린 것일까. 평소 조홍과 앙숙처럼 다툰 조인이었지만, 종제가 드디어 돌아버렸음에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이해해. 제법 끔찍한 전쟁이었으니까. 심신이 지칠 만도 하지.”

“시, 시끄러!”

차마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광경을, 하필이면 얼음장처럼 사교성 없는 종제에게 들켜 버렸다는 사실에 조홍의 얼굴이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째서 이 무뚝뚝한 석녀를 말도 없이 가택에 들였는지, 패국조씨 가문의 아가씨라고 스스럼없이 대문을 열어 준 노복들이 미워졌다.

“왜 왔어!”

“언니께서 모이라고 했어.”

“…언니가?”

휘하 장수들을 제외한,

조씨와 하후씨 가문의 친족들만 호출했다.

혹시 반드시 기밀을 지켜야 하는 중차대한 이야기라도 나누려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흑산적을 모두 격멸하고 동군 지역을 거머쥐게 되면서 사실상 조조 군은 연주 지역을 장악하게 된 막강한 군벌 세력으로 등극하게 되었으니.

‘그 사람도 올까…?’

조씨, 하후씨 가문의 친족들만 호출했다고는 하지만 이성휘가 중차대한 자리에 빠질 리가 없었다.

언니의 오랜 심복이자,

가장 측근에서 일을 도맡아왔던 사람이었으니까.

기주에서 온 불여우에게 헤픈 반응을 보였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조홍은, 분노와 질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림총사는! 어림총사도 불렀겠지?!”

“그야… 나도 모르지.”

“준비할 테니까 기다려!”

불여우에게 홀딱 홀려 버리기 전에,

내가 어떻게든 그 사람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중원제일 검은 거사에 있어 필요한 인재. 언니를 위해서라도 불여우로부터 그 남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조홍은 이 모든 것들이 언니를 위해서라며, 최대한 빨리 이성휘를 그 음란한 불여우로부터 멀리 떨어트려 놓겠다는 다짐했다.

* * *

500명의 근위대와 함께 진류군에 입성하게 된 원소는 조조 군에게 신종하기 위해 몰려드는 피난민 행렬을 보게 되었다.

인세지옥(人世地獄)이 되어 버린 한나라.

중앙 조정은 병주목 동탁과 무맹도위 정원의 내전으로 인해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으며, 지방에서는 살인과 약탈을 범하는 도적 떼들이 창궐하고 있었다.

그에 백성들은 자신과 가솔을 지켜 줄 수 있는 군웅을 의지하기 위해 그 곁으로 점차 모여 들게 되었다.

“사실상 맹덕이 연주의 패자가 되었군요.”

중원 지역의 수많은 백성들이 조조를 의지하기 위해 모여 들고 있었다.

정동장군 조조.

그녀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적들을 물리치면서 자기 능력을 천하에 입증했다.

악귀보다 잔인했던 황건적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뒀다는 승전보가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사예주는 물론, 예주와 청주에서도 피난민들이 먼 길을 무릅쓰고 몰려오게 되었다.

“주군, 정동장군의 위세가 분기탱천하듯 치솟고 있으나 감히 주군에게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정동장군이 장차 연주의 패자에 등극하게 될 것이라면 주군 또한 기주의 패자가 되실 겁니다!”

조조에게 몸을 의탁하고자 구름처럼 모여드는 백성들을 본 원소가 크게 감탄하는 말하자, 안량과 문추가 입을 열면서 말했다.

그에 원소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들의 말이 맞아요. 맹덕이 연주 지역을 제패한 패자가 되었다면, 저 또한 응당 기주의 패자가 되어야겠죠.”

위군을 침범했던 흑산적을 격퇴했음은 물론, 연주까지 추격하여 그 잔당들까지 모두 격멸했다.

이로써 명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안전과 보호를 명분으로 위군 지역에 영향력을 가할 수 있게 되었다.

본 거지인 발해군을 비롯하여 기주의 수많은 군현들을 세력권으로 삼은 원소는 기주의 중심이자 하북 지역의 중심인 위군의 업성(鄴城)을 도모하려 했다.

“주군, 군사의 전갈입니다.”

발해군에서 먼 길을 달려 도착한 전령이 원소에게 봉기의 서한을 내밀었다.

그를 받아 든 원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군요. 여양현(黎陽縣)의 태수가 귀의를 청해 왔다고 해요. 여양현은 업성의 지척에 위치한 군현… 위군을 취하고 기주를 제패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어요.”

“경하드리옵니다!”

여양현의 태수가 별다른 저항 없이 귀의를 요청해 왔다는 말에 안량과 문추가 예를 취하면서 축하의 말을 전했다.

유주(幽州)와 대치하는 군현들을 모두 제패한 원소군에게 남은 것은 위군 지역뿐이다.

위군을 세력권에 두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원소군에게 있어, 위군에 소속된 요충지인 여양현의 귀의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업성의 바로 코앞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군, 아무래도 기주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흑산적 놈들도 모두 격멸된 마당이니 당장 기주로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뇨, 원도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출병했으니 제가 없더라도 잘해내겠죠.”

귀환을 재촉하는 안량의 말에 원소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대답했다.

군사 봉기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빠르게 급변하는 기주의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을 터. 원소는 낙양에서부터 자신을 보필해온 군사를 신뢰하기로 했다.

“낙양 상황도 면밀히 살펴주세요.”

“알겠습니다.”

원소는 기주의 상황만큼이나 낙양의 상황 또한 집중적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낙양에 첩자들을 심어둔 것은 물론,

사예주에 소속된 주요 군현들에도 첩자들을 파견하여 민심을 살피게 했다.

한나라 황실과 조정을 난신(亂臣)은 과연 누가 될까? 원소는 교활함과 잔인함을 겸비한 동탁이 전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점지했지만, 계속 승세를 이어 나가고 있는 정원군의 활약들이 전해질 때마다 확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무맹도위 정원의 휘하에… 꽤 걸출한 맹장들이 많은 모양이군요. 대장군부와 낙양 군단을 산하에 둔 동탁을 상대로 용전을 이어 나갈 줄이야.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겠어요.’

입술을 꾹 깨문 금발의 여인은 희뿌연 안개에 갇힌 것처럼 승패를 점할 수 없는 낙양의 상황에 깊은 고민을 내비쳤다.

“두 장군들은 처소에서 대기하세요. 저는 가 볼 곳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소장들이 호위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원소가 이내 사양하자 안량과 문추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러났다.

그녀는 30명의 근위대를 대동한 채,

이성휘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리 기별을 보내진 않았다.

업무를 보고 있는 그의 세심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놀래켜 주고 싶다는 의도도 컸다.

자기 갑작스러운 등장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물론 그렇게 쉽게 보여 주진 않겠지만 말이다.

“후후….”

장난기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금발의 여인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면서 생명의 은인이 있는 곳을 향했다.

* * *

여남원씨 가문의 아가씨가 찾는 상대는 자기 주군과 함께 시간을 가지는 중이었다.

동백꽃들이 아름답게 핀 장소.

이성휘와 조조는 동백정(冬栢亭)이라는 이름의 정자에서, 바람이 불 때마다 은은한 동백꽃 향기가 나는 장소에서 열띤 토론을 나눴다.

꽤 대담하게도, 조조는 평소 부끄러움을 타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사방이 개방된 공간에 이성휘를 불렀다.

“황실의 봉분들을 도굴하고 사대부와 호족들을 살해하면서 막대한 재물을 빼앗은 동탁이 향후 정권을 잡게 된다면 지방 세력들로부터 거센 반대와 저항을 받게 될 겁니다. 맹덕 님과 본초 님께서 반(反) 동탁의 기치를 세우신다면 천하가 호응해 줄 게 분명합니다.”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정북장군과 정동장군의 직임을 받고 지방으로 내려온 원소와 조조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조정군을 이끄는 도독이다.

따라서

황실과 조정을 기만하고 농간하려는 동탁은 조정군의 도독인 그녀들이 토벌해야 할 역적이나 다름없었다.

낙양에서 폭정을 벌일 동탁은 그녀들에게 있어 가장 훌륭한 명분이자 정통성으로, 동탁이 무수한 악행들을 벌일수록 조조와 원소는 더욱 큰 거병의 명분을 얻게 될 터였다.

“귀관은 동탁이 내전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겐가?”

“예, 그렇습니다.”

“허나 정원의 휘하에는 뛰어난 용력을 자랑하는 용장들이 두루 있을 터. 서량 제일의 용장이라고 하던 자가 귀관의 칼에 쓰러졌으니… 궁지에 내몰리게 될 것은 동탁이라고 보네만.”

“동탁은 황실과 조정을 등에 업고 있지 않습니까.”

이성휘의 말에 흑발의 여인은 두 팔로 팔짱을 끼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과 조정,

대장군부와 동맹하여 궁궐과 낙양을 속전속결로 제압해 버린 동탁의 기민한 대처를 떠올린 조조는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노고가 많았던 귀관에게 줄 것이 있네.”

그렇게 계속 담소를 나누던 중

조조는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옆에 살포시 내려놓았던 작은 주머니를 슬쩍 보여 주었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약재였다. 삼(蔘)의 일종으로 보이는 약재로, 한입에 먹기 좋도록 송송 썰어둔 채로 주머니에 가득 들어 있었다.

“백수오일세. 진류군 호족이 진상품으로 바쳤더군.”

흑발의 여인이 약재를 소개한 뒤,

주머니 안에 손을 넣더니 얇게 썬 백수오를 집어 들었다.

“그러니 아, 하고 입을 벌리게.”

“…괜찮습니다.”

“주군의 명령일세. 불응할 텐가?”

명령을 남용하면서까지 호의를 베풀려는 조조의 행동에 이성휘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어느 때보다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천 명에 달하는 적들과 싸우면서도 결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 바 없었던 중원제일 검이 여인의 애정 어린 행각에 긴장을 금치 못하는 것이었다.

“부하의 건강을 챙기는 것 또한 주군의 역할이 아니겠나.”

조조의 재차 이어진 말에 이성휘는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게 되었다.

입안에 들어오는 딱딱한 약재.

고사리처럼 가녀린 손가락이 사내의 입술을 탐하려는 것처럼 움직였다.

“읏….”

손가락이 입술에 닿았다.

건조하면서 메마른 감촉이,

손가락 끝을 타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이성휘가 크게 긴장한 모습을 보인 만큼, 조조 또한 마른침을 무심코 꿀꺽 삼킬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잠깐의 접촉에도 왜소한 어깨를 움찔 떠는 귀여운 반응을 보여 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보다 다음… 어서 입을 벌리도록 하게.”

쑥스러우면서도 기쁜,

뺨을 발그랗게 붉힌 흑발의 여인이 기쁜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들은 마치 연인처럼… 아니, 연인들도 얼굴을 붉힐 정도로 노골적인 애정행각을 벌이면서 수줍은 반응을 보였다.

애틋하게 감정을 교환하면서 거리를 좁히던 남녀의 모습을, 남성을 보기 위해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던 흑발의 여인과 금발의 여인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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