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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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장군 조조가 1만 5천의 병력을 이끌고 진류군에서 출병했다.
이성휘와 진궁이 옆을 보좌했으며,
지난 전투에서 용맹과 용력을 떨쳤던 조씨와 하후씨 가문의 충성스러운 친족들이 병마를 이끌었다.
진류왕 유협으로부터 흑산적을 토벌하고 동군을 수복할 것을 명령받은 조조 군은 기세등등하게 북과 고각을 울리면서 북동쪽으로 진격했다.
“하후돈 장군은 견성(甄城)을, 조홍 장군은 정도(定陶), 명부께서는 어림총사와 함께 제음(濟陰)을 일 거에 치십시오. 흑산적은 기주 지역의 패전으로 위축된 상황이니 필시 움츠러들 겁니다.”
“알겠네, 군사.”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한 조조는 병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동군을 향해진격하기로 결정했다.
동군의 세 거점들을 동시에 타격,
흑산적 두령들이 점거하는 연주성을 두려움에 빠트릴 목적으로 한 무력시위를 벌이기 위함이었다.
또한 원소군이 군세를 이끌고 백마현(白馬縣)을 거쳐 연주성을 급습할 계획이었기에 진궁은 흑산적 병력에 비해 열세한 아군을 세 갈래로 나누어 동시에 거점을 공격한다는 과감한 전략을 내놓았다.
“가자, 묘재!”
“알겠습니다.”
하후돈과 하후연 남매가 이끄는 제1진이 연주성의 남쪽에 위치한 견성을 공격하기 위해 출진했다.
그리고 또한,
조홍과 조인 또한 출진을 시작했다.
“왜 하필 너야?”
“전투에 방해나 되지 마.”
“나는 저 사람하고….”
조인과 함께 군을 이끌게 된 조홍은 안타까움에 찬 시선으로 이성휘를 힐끗 쳐다보았다.
지난 전투의 활약처럼,
이성휘와 함께 분투하기를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남몰래 연모하는 남자 대신 앙숙처럼 다투기 바쁜 종제와 함께 병마를 지휘하게 되었음에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지만 군사의 책략이며, 주군의 명령이었으므로 감히 항변할 수 없었다.
“견성은 산양군(山陽郡)의 물자를 연주성으로 수송하는 보급거점이고, 정도와 제음은 연주성의 전진 거점 역할을 하는 요충지야. 흑산적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빼앗겨선 안 될 곳이지.”
그래서 진궁은 황건적에게 동군 지역을 빼앗은 흑산적이 병력 배치와 물자 소송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수선한 틈을 노렸다.
놈들은 연주의 지리에 어둡다.
또한 연주 백성들에게 강한 적의를 받고 있었다.
황건적을 대파했던 조조군이 흑산적을 도모하기 위해 출병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동군 호족들은 자발적으로 군진에 달려와 흑산적의 동태와 병력 규모와 주둔하는 지역들을 상세히 고변했다.
“초전부터 기선을 제압해야지!”
“군사의 말에 동의한다.”
진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조조가 검을 빼 들면서 출진 명령을 내렸다.
7천의 병력이 제음에 도달한 뒤,
즉시 공격을 시작하면서 연주 구원전의 포문(砲門)을 열었다.
정동장군 조조를 위시한 병마들이 진격하면서 창검을 든 흑산적 군세를 강타하기 시작했다. 연이은 승전으로 사기가 팽배한 조조 군은 아군 병력의 몇 배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함에 있어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도적 떼들을 모조리 소탕하라!”
백은색의 갑주를 걸친 흑발의 여인이 직접 검을 휘두르면서 흑산적 병사를 쓰러트렸다.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 뒤,
고개를 들어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아군 장졸들을 바라보았다.
검을 늘어뜨린 무관이 말에 박차를 가하면서 전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100여 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난전에 가까운 전황을 휘저으면서 아군보다 훨씬 많은 병력을 보유하는 흑산적을 도리어 궁지에 내몰고 있었다.
“중원제일 검이 오셨다!”
“비천한 도적 떼 놈들아, 중원제일 검의 이름을 들어 보았느냐!!”
진궁의 지시받은 무관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이성휘의 존재를 알렸다.
중원제일 검이 네놈들을 죽이러 왔다.
천하에 패악질을 부리고 다닌 네놈들의 목숨을 거두고자 중원제일 검이 왔노라.
기주에서 축출된 흑산적 또한 한나라 13주에 명성을 떨치게 된 중원제일 검의 명성을 들었을 터. 진궁은 의도적으로 이성휘의 존재를 퍼뜨려 흑산적을 크게 위축시켰다.
“주, 중원제일 검…!”
“물러서지 마라! 간악한 낙양 놈들이 지어낸 거짓부렁일 뿐이다!”
창검을 든 도적들이 서로 눈치를 보면서 위압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에 두령들이 날카로운 대도를 휘두르면서 혼란을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중원제일 검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피칠갑한 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이성휘가 10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돌격을 감행할 때마다 흑산적의 군진이 붕괴되었다.
“물러서는 겁쟁이 같은 새끼는 절대로 내 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기염만장의 사내대장부란 말이냐!”
얼굴에 깊은 칼자국이 있는 중년남성이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날 선 대도를 치켜들었다.
도망치던 부하들을 죽인 뒤,
선혈이 뚝뚝 흐르는 대도를 다시 치켜들면서 도망치는 비겁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두, 두령!!”
부하가 크게 소리쳤다.
그에 남성이 고개를 돌린 순간,
말을 탄 채 전속력으로 달려온 이성휘에게 목이 떨어졌다.
수백 명에 달하는 방어를 뚫고 참군(參軍)처럼 도망자들을 단속하던 두령의 목을 벴다. 험상궂은 얼굴을 한 중년남성의 수급을 취하게 된 이성휘는 그것을 도적들에게 내던졌다.
데구르르,
흙바닥을 구르는 흑산적 두령의 머리.
그를 본 도적들은 경기를 일으키듯 달아났다. 위압을 동원하여 탈영을 저지하던 두령이 죽어 버리자 흑산적의 무단이탈이 점차 가속화되었다.
“고작해야 도적 떼들 주제에.”
“살인과 약탈 밖에 모르는 잡배 놈들이 아닙니까.”
서로 부딪치고 밀어내면서,
바닥에 쓰러진 동포를 짓밟고 깔아뭉갤 정도로 부리나케 도망치는 흑산적의 모습을 본 조조 군의 무관들이 크게 비웃었다.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다시 움직인다.”
“예!”
칼자루를 휘둘러 칼날 위에 묻은 피와 살점들을 털어낸 이성휘가 재차 움직였다.
그에 휘하 무관들 또한 창검을 들면서 전투를 속개했다.
“두, 두령!”
“저놈을 막아라! 두령을 노리고 있다!”
흑산적의 두령들이 잇달아 참살 당했다.
피칠갑한 채 들려들어,
등을 보이며 도망치던 흑산적 두령을 말에서 떨어트렸다.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던 두령들이 모두 살해당하자 제음에 주둔하고 있던 흑산적 군중이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갑작스럽게 벌어진 조조 군의 급습에 응전하려 하였으나, 응전에 실패하면서 그대로 진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커헉!”
부리나케 달아나던 흑산적 두령에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에 맞아 절명했다.
그에 휘하 도적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광경을 목격한 다른 도적 떼들 역시 병장기를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끝까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도적들은 많지 않았다. 사생결단을 각오한 도적들은 극히 일부분일 뿐, 대다수의 도적들은 비명을 내지르면서 다른 두령들이 있는 연주성으로 줄행랑을 쳤다.
“명부.”
수많은 무관들과 함께 전황을 관망하고 있던 진궁이 조조에게 입을 열었다.
“전투에서 전의가 꺾인 도적들이 스스로 병장기를 버리고 아군에게 투항해왔습니다.”
“그런가.”
진궁의 보고에 고개를 나지막이 끄덕인 흑발의 여인이 이윽고 대답했다.
“놈들이 연주에서 강제로 징집한 병사들을 제외하고… 모조리 죽이게. 살인과 약탈을 즐길 뿐인, 하등 쓸모없는 버러지들일세.”
“알겠습니다.”
조조의 서슬 퍼런 명령에 진궁이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연주 구원전에 참전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포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잔악하고 악랄한 도적 떼들을 모두 토벌하기 위해서 온 조정군이라는 점을 연주 백성들에게 내세우기 위함이다.
“황건적과 흑산적에게 피붙이를 잃지 않은 연주 백성들이 없을 정도라고 들었다. 필시 그들을 향한 백성들의 울분과 증오가 대단할 터. 연주 민심을 우군으로 계속 두기 위해서라도 불의와 무도의 상징인 놈들을 가차 없이 처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네.”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을 해온 도적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수형에 처해졌다.
무려 수백 명에 달하는 숫자가 단번에 목이 잘렸으며, 공적을 알리기 위해 그들의 수급으로 탑을 쌓아버렸다.
“사, 살려주시오!”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잖소! 이제 두 번 다시는 도적질하지 않겠소이다!”
처절한 목소리는 곧 외마디의 비명으로 남게 되었다.
비명으로부터 등을 돌린 조조는,
전투에 투입되었던 무관들을 소집하여 상황을 수습했다.
냉철한 명령을 내려 수백 명에 달하는 투항병들을 모두 목 없는 귀신으로 만들어 버렸음에도 냉철한 아름다움을 품은 얼굴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 * *
제음 전투가 종결된 이후,
수백 명의 투항병들을 처리한 조조는 장수들과 함께 전후를 논의했다.
그리고 또한 훌륭하게 명령을 완수한 제장들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활약을 칭찬했다.
“전투는 우리들의 승리다. 모든 제장들이 용맹하게, 죽음을 불사하며 싸운 덕분이다.”
전투에서 크게 분전한 제장들에게 찬사의 말을 보낸 조조는 이성휘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나의 부관이다.
실로 가슴이 든든했다.
이번 전투에서 악명 높은 흑산적 두령들을 모두 벴다지. 그의 눈부신 공훈을 가슴 펴고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주군!”
조조와 제장들이 모인 공간에 전령이 들어왔다.
“하후돈 장군과 하후연 장군이 이끄는 군세가 견성을 함락 시켰습니다. 그리고 조홍 장군과 조인 장군도 무사히 정도를 수복했다고 합니다.”
다른 방면으로 떠났던 군세들 또한 승전을 달성하였음에 제장들은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주먹을 움켜쥔 채,
회심에 찬 기합을 내질렀다.
조조 또한 군세를 이끌었던 친족들이 자기 명령을 한 치의 실수도 없이 수행하였음에 고양감을 느꼈다.
“명부, 연주성의 머저리 같은 흑산적 두령들은 필시 패전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키려 할 겁니다. 놈들이 대응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치십시오. 기울어진 전황은 이미 명부의 편입니다.”
“전세가 완전히 넘어왔다면…, 남은 것은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일뿐이겠지.”
조조는 정도와 견성에서 온 전령을 다시 돌려보내면서 연주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조조도 움직였다.
제음을 점령한 본대 병력을 다시 진군시켰다.
연주성 주변에 위치한 세 거점들을 일 거에 급습하여 승리를 거둔 조조는 연주성을 향해진군을 시작했다. 세 방면에서 연주성을 공격함과 동시에, 북쪽에서 내려오고 있는 원소군의 군세와 합류하려 했다.
“귀관.”
“예, 맹덕 님.”
“…….”
낙양에서 헤어졌던 원소와 다시 만나게 되겠지.
나의 사랑하는 남자에게,
깊은 선의와 호감을 보였던 금발의 여성을 떠올린 조조는… 그녀와 이성휘를 만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했다.
‘아니, 지금은 사적인 감정을 내세울 때가 아니다.’
하지만 이내,
조조는 고개를 내저으면서 시커먼 마음을 떨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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