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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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장군 조홍은 날래고 기민한 군사적 능력을 갖춘 장수이며, 또한 조조가 부재한 경우에 지휘를 대리하여 수행할 정도로 큰 신임을 받는 심복이었다.
그리고 또한,
조홍은 조조군 제장들이 모두 인정하는 어마어마한 부자였다.
낙양에서 진류군으로 이주하게 된 이후, 조홍은 패국(沛國) 초현(譙縣)에 있는 가문의 재물들을 풀어 진류현의 중심지에 대궐 같은 가택을 짓기 시작했다.
“저 인원들이 모두 토목공사에 동원된 인부란 말인가!”
“패국 초현에서 온 수레들이 무려 100대에 달했다고 했지 않나. 관문을 담당하던 수문장이 말하길, 죄다 누런 황금과 귀중한 패물들이 가득했다는군!”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된 공사 현장을 본 연주 백성들은 조홍의 재력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얼마나 재산이 많기에,
낙양에서 온 장수가 수대에 걸쳐 연주에 뿌리를 내렸던 사대부와 호족들이 기거하는가택보다도 큰 가택을 짓는단 말인가.
연주 백성들은 강제로 인부 동원령을 내릴까 노심초사하는 반응을 보였으나, 오히려 조홍은 기존 보수의 몇 배에 달하는 통 큰 보수를 내리면서 공사에 투입될 인부들을 구름처럼 끌어모았다.
“일단 여기에 연못을 파고! 그리고 빈객들이 머물 별채는 저쪽으로 한 다음에… 손님들을 들일 객채도 마련해야죠! 가장 중요한 본채는 연못이 바로 보이는 곳으로!”
연주의 우수한 토목 기술자들을 모두 고용한 조홍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일일이 설명하면서 기획을 그려 나갔다.
초현에 있는 본가와 구조가 비슷하게끔,
그리고 자기 위세와 재력을 널리 떨칠 수 있게끔 가택을 지으려고 했다.
“처마 끝에는 원앙 장식이 어울리겠네요. 수십 년이 지나도 금이 안 갈 정도로 튼튼한 거로요.”
마치 신혼방을 차리는 것처럼 조홍은 자기 침소로 사용될 본채에 강한 집념을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짝짓기를 위한 이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성껏 둥지를 짓는 굴뚝새 같았다.
‘무릇 가택은 크면 클수록 좋고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어요.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죠. 응당 사내라면 돈 많고 좋은 집을 가진 여인에게 끌릴 수밖에 없겠죠.’
가택은 단순히 사람이 머무는 거처가 아닌, 가문의 위세와 영향력을 널리 과시할 수 있는 도구였다.
그래서 조홍은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연주 촌놈들에게 가문의 위세를 떨칠 겸, 자신이 얼마나 총아한 여인인지를 어느 둔감한 사내에게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본채에 애들 방도 있어야죠.”
“예…? 애들 방이요?”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들이 머물 방을 주문하자 토목 기술자가 되물었다.
물론 장차 필요해지게 될 때도 있겠지만,
다른 내실들을 제치고 아이들이 머물 방을 선순위에 두는 조홍의 행동이 조금 의문스러웠다.
하지만 눈앞의 여인은 압도적인 재력을 가진 물주이자, 장차 좋은 고용관계가 될 것이었기에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었기에 이유를 캐묻지는 않았다.
“무예를 연마할 수 있는 연무장도 둬야겠어요. 이왕이면 본채와 가까운 쪽으로.”
“예? 많이 시끄러울 텐데요…. 무가(武家)에서 본채 옆에 연무장을 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본채에 머물 사람이 검술을 연마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시다면야.”
조홍의 추가 설명에 토목 기술자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조홍이 살림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요전장군(要錢將軍)으로부터 과분할 정도의 사랑을 받는 남성은 진궁과 함께 동군 공략을 위한 방책들을 마련하고 있었다.
“진류에서 출병한 아군이 흑산적 군세를 계속 밀어내듯이…, 최종적으로 제북(濟北) 지역으로 몰아낼 거야.”
염료로 머리를 물들인 금발의 여인이 선분홍색으로 칠한 손톱이 돋보이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동군에 주둔하는 적을 제북으로,
제북 지역에 모조리 적을 몰아넣은 뒤에 소탕하겠다는 뜻이었다.
흑산적과 황건적은 구더기 같은 것들로, 만약 그들이 다른 지역으로 도망치게 된다면 필시 무리를 이루어 후환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진궁은 놈들이 절대로 도망칠 수 없게끔 제북에서 끝장을 내려 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만약 놈들이 예주 지역으로 도망쳐 버리면 큰 골칫거리가 될 테니, 기주와 청주가 맞붙어 있는 제북으로 축출하자는 거군요.”
“원소가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내려올 테니 흑산적이 기주로 도망칠 일은 없겠지. 그렇다면 십중팔구 청주 지역으로 도망칠 텐데…, 그렇게 된다면 아군에게 매우 유리한 이이제이(以夷制夷)가 벌어질 거야.”
큭큭 웃으면서 설명한 진궁은 ‘아군에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지?’라고 말을 덧붙였다.
뛰어난 혜안을 가진 군사답게,
진궁은 청주로 도망친 황건적들 또한 계산에 넣어 두고 있었다.
“근데 이거 뭐야? 엄청 맛있네.”
진궁이 손을 뻗어 찬합에 예쁘게 담긴 밀전병을 집어 들더니 입안에 넣었다.
납작한 밀전병과 정갈한 반찬들.
값싼 식재료들로 만들 수 있으되 많은 정성이 필요한 요리였다.
업무 때문에 끼니를 거르기 일쑤인 남편을 위해 준비한 아내의 도시락처럼 보인다고 할까. 끊임없이 입을 우물대면서 밀전병을 먹던 진궁이 짓궂은 미소를 짓더니 이성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무뚝뚝 하고 고지식한 샌님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요리들이 가득 담긴 찬합을 주는 참한 조강지처가 있었을 줄이야. 누구야? 누가 중원제일 검에게 이렇게 정성스러운 요리들을 준 거래?”
남의 연애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장터 아줌마처럼 연이어 물음을 던졌다.
그에 이성휘가 대답했다.
“초선 소저께서 답례로 주셨습니다.”
“누구? 초선이라면… 음…, 아! 그 진류왕을 보필하던 그 미녀?! 분명 하남윤의 수양딸이라면서!”
그리고 또한 낙양 사내들을 모두 상사병을 앓게 만들 정도의 미모를 가진 낙양제일미라고 했다.
낙양제일미(洛陽第一美).
중원제일 검(中原第一劍)과 잘 어울리는 별칭이었다.
청류파의 영수들 중 한 명인 하남윤의 수양딸이자 낙양제일미라 불릴 정도의 아름다운 용모를 가진 미녀로부터 애틋한 정성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궁은 자기 일처럼 크게 기뻐했다.
“잘됐네! 한 번 잘해 봐!”
명부라고 부르면서 떠받들고 있는 주군이 들었다면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을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낸 진궁은 큭큭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성휘의 등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런 거 아닙니다.”
뒷담화를 즐겨하는 동네 아줌마처럼 환희에 찬 반응을 보이는 진궁의 모습에 이성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너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정성스러운 요리들을 대접해 줄 리가 없잖아.”
연애 사업을 응원해주는 여자 사람친구. 일말의 거짓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이성휘를 응원했다.
그러면서도 두 눈은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다.’라는 것처럼 익살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그보다 군사, 맹덕 님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군사께서 군략을 내길 원하십니다.”
“알았어, 알았다고.”
이성휘의 재촉에 진궁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동군 공략은 중요하지. 물론 중요하고말고.”
진류군에 이어 동군 지역까지 확보하게 된다면 사실상 연주 지역은 조조 군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게다가 이번 전투는 기주 지역에 주둔하는 정북장군 원소와 동맹하여 흑산적을 토벌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중요했다.
“군략과 군무 수립은 이 군사께서 늦지 않게 알아서 할 테니까 어림총사께서는 연애나 잘해 봐.”
그렇게 말한 진궁은 이성휘의 등을 떠밀면서 흥미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지,
히죽 웃으면서 계속 싱글벙글한 상태였다.
“즐거운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는 모양이군.”
진궁의 짓궂은 장난에 이성휘가 난색을 보이고 있을 때, 흑발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한밤중에.”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아담한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조조. 그녀는 한밤중에 이성휘가 서고에 들러 진궁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영 달갑지 않은 듯했다.
“명부, 오셨습니까.”
진궁의 인사에 조조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석류석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로 이성휘를 조용히 응시했다.
“군사와 동군 공략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 즐겁게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이성휘의 말에 그렇게 중얼거린 조조는 고개를 돌리면서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떨리는 눈동자와 상기된 뺨,
호롱불의 불빛에 반사되어 은은한 색을 머금게 된 조조는 고아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항상 완벽하고 완고한 모습을 보이는 철혈의 여걸이 천하에 단 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숨겨진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이성휘가 유일할 것이다.
“오.”
퉁명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가운 마음을 내비치는 흑발의 여인, 그리고 뺨을 붉힌 채 시선을 무심코 돌린 남성.
두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두 눈으로 목격하게 된 진궁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진류왕의 시녀가 어림총사를 좋아하는 게 분명한데…. 어림총사는 명부를 좋아한단 말이지. 명부도 어림총사를 좋아하는 것 같고. 그럼 이거 관계가 어떻게 조성되는 거야?’
복잡한 남녀관계가 머릿속에서 빠르게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는 두 남녀.
그리고 남자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여성.
진궁은 삼각구도에 깊은 흥미를 내비치면서도, 은연중에 ‘이 구도에 불여우 같은 여자들이 더 추가되면 재밌겠는데?’라고 생각했다.
“군사와 잠시 의논할 것이 있어 온 것이었는데, 귀관이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럼 제가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아닐세. 이렇게 우연히 조봉하게 되었으니, 내 집무실에 들러 차라도 한잔하도록 하지. 귀관에게 또한 할 말이 있네.”
“알겠습니다.”
이성휘에게 제안을 건넸던 조조는 시선을 돌리다가 탁자 위에 놓인 찬합을 문득 발견했다.
혹시 군사가 준비한 것인가?
담소를 나눌 뿐이라고 하더니….
설마 은밀하게 단둘이 야참까지 만들어 먹고 있었을 줄이야.
의심에 찬 시선이 진궁을 향했다. 그에 진궁은 사실을 말하려 했으나, 음식을 얻어먹은 주제에 고변을 하듯 일러바치는 것은 조금 예의가 아닐 것 같았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냥 내가 의심을 당하는 게 낫지. 지난번에 봤을 때 착한 처자처럼 보였는데…. 음식까지 얻어먹은 주제에 의심을 대신 못 받아주겠어?’
의협심을 중시하는 성품이었던 진궁은 노골적으로 질투에 찬 눈빛을 보내는 주군의 시선을 달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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