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조조군과 3만에 이르는 황건적 대군이 격돌했던 기오현 전투에서 가장 큰 활약을 세운 인물은 의용군을 이끌고 합류했던 조조의 종제(從弟)인 조인이었다.
날렵하게 적진을 돌파하여 대군의 진형을 와해시켰던 용맹한 돌격 덕분에 조조 군은 큰 피해 없이 전투에서 승리했다.
조인은 논공행상에 이름을 올렸음은 물론,
별부사마(別部司馬)에 임명되고 여봉교위(厲鋒校尉)의 직을 맡게 되었다.
“오셨습니까, 교위님!”
“명령하신 대로 모든 병졸들이 연병장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조인이 군문으로 들어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휘하의 무관들이 훈련 상황을 보고했다.
그에 조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관들을 따라 연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류군을 감히 도모하려 했던 도적 떼들을 기오현에서 크게 물리쳤으나 여전히 많은 도적 떼들이 연주 지역을 위협하고 있었다. 한시도 훈련을 게을리 할 순 없었기에 조인은 매우 엄하게 장졸들을 단속했다.
“잔뼈가 굵은 숙병들을 투입하여 새로 징집한 부대의 훈련에 박차를 가해라. 다음 전투가 언제 벌어질지 모른다. 훈련을 게을리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군율로 처벌하겠다.”
조인이 발걸음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이 찰랑찰랑 흔들렸다.
오뚝한 콧날과 짙은 눈꺼풀,
강옥(鋼玉)처럼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와 갓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새하얀 살결.
조조와 조홍과 마찬가지로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인 조인 또한 늠름하고 고아한 매력을 가진 아름다운 미녀였지만, 항상 엄격한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자효 님도 다른 분들처럼 엄청난 미인이 시기는 한데….’
‘다가서기가 어려운 분이란 말이지.’
냉정과 엄격함을 겸비한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장졸들에게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것은 조조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조인은 일선에 선 장수로서 군율에 매우 엄격한 모습을 보였기에 장졸들로부터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음.”
휘하 무관들과 함께 발걸음을 향하던 조인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짧게 침음을 흘림과 동시에 두 다리를 멈춰 세웠다.
훈련장을 힐끗 쳐다보고 있는 흑발의 여인.
조홍이 눈에 들어왔다.
훈련을 목적으로 온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과시욕의 상징과도 같은 황금 투구와 황금 갑옷을 둔 채 평상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봐?”
조홍에게 다가온 조인이 물었다.
기척도 없이 배후에 다가온 조인의 행동에 놀랐는지, 조홍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마치 범죄 현장에서 발각된 도둑처럼 제 발 저린 모습을 보이는 조홍의 행동을 의문스럽게 여긴 조인은 고개를 들어 그녀가 힐끗 쳐다보고 있던 방향을 응시했다.
파하아앙!!
공기를 베는 참격.
뒤이어 날렵하게 이어지는 두 번의 참격까지.
조홍이 바라보고 있던 시선의 끝자락에는 한 남성이 검을 휘두르면서 훈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벼락처럼 날카로운 검격을 목격하게 된 조인은 무심코 감탄에 찬 침음을 흘리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중원제일 검?’
벽경에 위치한 패국에서 의용군을 조련해온 그녀였지만 중원제일 검의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예주 패국에까지 소식이 전해질 정도로 중원제일 검의 명성은 한나라 13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귀신처럼 검을 휘둘러서 사예주의 뛰어난 검객들을 모두 불귀객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사람의 경지를 초월하여,
가히 검귀(劍鬼)로까지 불리우게 된 무인.
소문으로만 듣던 중원제일 검을 직접 보게 되었음에 조인은 적잖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주 미약하게 내색하는 반응을 보였을 뿐, 짐짓 냉정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침착한 무표정은 여전했다.
“무슨 용무라도 있어?”
“없거든!”
“분명 빤히 쳐다보고 있었잖아.”
“아니라니까!”
조인의 물음에 조홍이 고개를 홱 돌리면서 대답했다.
혹시라도 내심이 들킬까 봐,
이 무뚝뚝한 석녀에게 꼬투리라도 잡히게 될까 봐,
조홍은 일부러 격한 반응을 보이면서 쀼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할 일없으면 훈련이나 도와.”
“오늘 비번이거든!”
“기오현에서 큰 승리를 거둔 이후로 언니의 명성을 들은 연주의 수많은 장정들이 자청하여 군문에 들어오고 있어. 그런데도 쉬겠다고?”
조인은 마치 21세기의 꼬장꼬장한 중년 행보관이 ‘주말이라고 쉬지만 말고, 총기 손질과 침구류 일광건조라도 좀 해라.’라고 말하듯이 조홍을 끊임없이 닦달했다.
그에 조홍은,
두 손으로 귀를 막아 버렸다.
평소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을 정도로 과묵한 주제에 자신을 훈계할 때는 속사포처럼 말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조인의 행동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무뚝뚝한 얼음동상 주제에! 어디서 감히 언니한테 건방지게 훈계질이야!”
“언니? 네가 왜 언니지?”
조홍과 조인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얼굴을 마주하기만 해도 부딪칠 정도로 앙숙이었다.
조인은 재물을 밝히고 남에게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조홍의 성정을 거북하게 여겼고, 조홍은 자신은 물론 남에게도 항상 청빈과 엄격함을 강조하는 조인의 성정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같은 동배였기 때문에,
더욱 서로에게 민감하고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 * *
비장(飛將) 여포의 활약으로 무사히 낙양을 빠져나온 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은 5만의 상경군을 일으키면서 거병을 선포했다.
그에 호응하여 양봉과 한섬을 주축으로 하는 백파적 두령들 또한 낙양 조정에 반기를 드러냈다.
정원은 일 전에 점령한 바 있었던 하내군(河內郡)을 점령하였고, 백파적은 하동군(河東郡)을 무단으로 점거하면서 낙양을 크게 위협했다.
“황상 폐하와 조정대신들을 겁박하여 한나라의 4백 년 사직을 기만하고 낙양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유린하여 제 뱃속을 채운 동가 놈은 왕망보다 더한 만고의 역적이다! 대의를 가슴에 품은 병주의 용장들이여, 낙양에 있는 역적을 참살하라!!”
선두에 선 붉은 투구를 쓴 중년남성이 크게 일갈하면서 장졸들을 고무시켰다.
그에 병주의 장졸들이 크게 고함쳤다.
날카로운 창검을 들어 올리며 위세를 토해냈음은 물론, 서량에서 온 역적을 죽이지 전까지는 병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맹세했다.
“이 버러지 같은 놈들!”
“서량 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하북 최강의 기병군단으로 칭송받는 병주 기병대가 일제히 돌격하였다.
점령한 하내군을 발판 삼아,
사예주를 가로지르고 있는 사수(汜水)를 일제히 도하하여 낙양을 도모했다.
그들이 사수 벌판을 달려 인근에 이르렀을 때, 매복하고 있던 병력들이 사격을 개시하였다.
“쏴라!”
“병주 놈들이 범의 아가리에 들어왔다!”
서량군과 낙양 군단이 합세하여 수도를 도모하려는 병주군을 응전했다.
새카맣게 빗발치는 화살 비,
날카로운 화살들이 쏟아지면서 호쾌하게 진격하던 기병들을 단숨에 벌집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화살들을 뚫고 난입해온 병주 기병대에 의해진중이 노려지게 되었다. 목책을 설치하여 방어선을 펼쳤으나, 용맹하고 사납기로 유명한 병주의 호걸들은 삽시간에 방어선을 돌파해 버렸다.
“불화살을 쏴라!”
“놈들을 모조리 화장시켜라!”
동탁 군의 무장, 이각과 곽사가 크게 소리치면서 병사들을 재촉했다.
이윽고 궁병들이 불화살을 쏘았다.
시커먼 연기를 그리면서 날아간 불화살들은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사수 벌판에 떨어졌다. 갈대에 옮겨붙은 불씨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면서 삽시간에 시뻘건 불길에 되어 갈대밭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히이이잉!!
-푸흐흥! 푸흐흐흐!!
마른 갈대에 삽시간에 옮겨붙은 불씨가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기 시작하자, 이에 겁을 집어먹은 군마들이 난동을 부려댔다.
동물이 불을 무서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아무리 조련을 잘 시킨 명마라고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불을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다.
“흐핫핫핫!”
“무식한 병주 놈들아 꼴좋구나!!”
불지옥에 갇힌 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는 병주군의 모습에 이각과 곽사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식한 촌놈들 같으니라고.
네놈들이 낙양을 도모하리라는 것을 이미 진작부터 알고 준비해 오고 있었다.
“과연 낭중령이군.”
“놈들이 사수 벌판을 모두 예견하다니. 역시 어르신을 보필하는 모사다.”
정원군은 형양(滎陽)으로 우회하거나 하동군을 점령한 백파적 군세와 합류하지 않은 채, 곧바로 사수를 도하하여 낙양을 침공하려 했다.
낭중령 이유는 그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필부의 용맹과 일신의 용력을 과신하는 정원이라면 필시 단기결전을 택할 것을, 대규모 기병군단의 운용에 가장 적합한 사수 벌판으로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조리 찢어발겨라!”
“적진을 돌파하여 화계에 가로막힌 아군을 지원한다!”
죽음을 각오한결사대가 시뻘건 불길을 뚫어내면서 방어선을 공격했다.
결사대를 이끄는 두 명의 여걸들이,
방천화극과 검을 휘두르면서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분쇄하였다.
여포와 장료, 뒤이어 고순이 이끄는 함진영이 돌격하여 동탁 군을 유린했다. 설마 결사대가 불길을 뚫고 특공을 감행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지, 전방에서 활을 쏘던 궁병들이 먼저 결사대에게 노려졌다.
“이까짓 불길 따위로 이 여봉선을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냐! 모조리 덤벼라, 빌어먹을 졸개들아!!”
동탁 군의 수많은 무관들이 붉은 갑옷의 여걸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흉포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은 도리어 자신을 위협하는 모든 적들을 힘으로 찍어눌렀다.
최강의 무예를 자랑하는 여걸.
무맹도위 정원의 수양딸이 휘하 제장들과 함께 낙양 방어선을 찢어발겼다. 육중한 방천화극이 휘둘러질 때마다 동탁 군의 무관들이 무참하게 쓰러졌다.
“병주의 용사들이여! 낙양을 쳐라!!”
여포가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방천화극의 창끝으로 낙양을 가리켰다.
한나라의 번영과 중흥을 상징하는 수도.
역적 왕망을 무찌른 영웅 황제가 건설한 영화의 수도가 바로 코앞이다.
거대한 위용과 찬란한 영화를 뿜어내는 낙양의 정경을 멀리서 바라본 여포는 이를 드러내면서 용암처럼 들끓는 정복욕을 느꼈다. 가슴속에 품은 욕망이 꿈틀대는 듯했다.
“비장께서 적의 본진을 돌파하셨다!”
“적들은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이다! 역적들을 모조리 참살하라!”
여포와 장료의 용맹한 활약에 깊은 감명을 받은 정원군이 앞을 가로막은 불길을 뚫어내면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하동군을 점령한 양봉과 한섬이 이끄는 백파적 군세가 공격을 감행하면서 낙양 방어선을 뒤흔들었다.
“서량에서 온 도둑놈이 감히 제 분수도 모르고 권세를 가로채다니! 대장군의 뒤를 이어 만인지상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이 정건양이다!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가로챈 동탁, 네놈을 결단코 용서치 않으리라!!”
눈앞에 굴러들어온 기회를 빼앗긴 채, 낙양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치욕을 경험한 정원은 수십 배의 원한을 담아 철저히 밀어붙였다.
그러나 동탁 또한 만만치 않았다.
비록 낙양 방어선이 돌파당했으나,
낙양에는 10만에 이르는 서량군과 동탁에게 충성을 맹세한 낙양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정원군과 낙양을 점거한 동탁 군이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끔찍한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