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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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서 출병한 8천에 이르는 군세가 드디어 연주(兗州)에 입성하였다.
중모현과 관도현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진류군으로 들어오게 된 정동장군 조조는 오랜 벗이었던 진류태수 장막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거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어서들 오게! 낙양의 쟁쟁한 장졸들을 내 두 눈으로 보게 되어 무척이나 광명스럽군!”
호쾌하게 생긴 인상의 남성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낙양 군세를 맞이했다.
동탁 군의 급습으로 대다수의 물자를 잃은 조조 군에게 곳간을 열어 군량을 베푸는 것은 물론, 연주의 여러 사대부와 호족들을 치소로 초빙하여 조조에게 알선해주기까지 하였다.
“진류왕 전하!”
“낙양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사옵니까!”
장막의 부름으로 치소에 발걸음을 한 사대부와 호족들은 조조를 만나기 전, 낙양에서 쫓겨나듯이 연주로 오게 된 작은 황녀를 알현하였다.
수많은 이들이 넙죽 엎드려 경배했다.
개 중에는 얼마나 궁중에서 고생이 많았냐며 눈물을 흘리면서 읍소하는 자도 적지 않았다.
뚜렷한 정통성을 갖춘 선황의 혈육. 고결한 혈통과 빼어난 용모를 겸비한 유협이 진류군으로 오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대부와 호족들은 충성을 맹세하면서 자금과 물자를 내놓기를 결코 망설이지 않았다.
“미력하나마 힘이 되어드리겠사옵니다!”
“진류군은 물론, 연주의 모든 백성들이 진류왕 전하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사대부와 호족들은 충(忠)과 의(義)를 중시하는 충의지사의 모습을 보였지만 그 내심에는 다소 속물적인 셈법이 깔렸었다.
낙양 정권은 결국 명맥을 잃게 될 터.
서량에서 온 이리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라 폭정을 시작하였으니, 필시 낙양의 황실과 조정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었다.
그를 예측한 사대부와 호족들은 낙양에서 온 황녀에게 많은 기대감을 보였다.
많은 군벌들이 난립하는 난세를 통일하여 한나라를 재건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가문의 재화를 털어 어떻게든 황녀의 눈에 들려고 했다.
“겨우 여덟 살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덥수룩한 털방울을 가랑이에 달고 있는 사내놈들이. 에잉, 내가 저것들에게 아쉬운 목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니!”
저마다의 속셈을 가지고 유협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대부와 호족들의 모습을 본 진궁이 다소 심한 욕설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바닥에 침을 뱉은 뒤,
사대부와 호족들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고지식하고 완강한 성품을 가진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진궁은 평소의 껄렁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관복을 깔끔하게 입은 채로 공석에 서게 되었다.
“자네가 천하에 그 무명을 널리 떨친 중원제일 검인가! 맹덕의 오랜 벗이자 진류군의 태수인 장막이라고 하네.”
남성이 호탕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다가와 호감을 표시했다.
청류파 일원인 팔주(八廚)의 한 사람이며,
의협심이 강하고 어려운 빈민들을 돕기를 좋아하는 명사로 그 명성이 높았다.
중앙 조정에서 기도위를 지내다가 진류군의 태수에 부임된 장막은 야욕과는 거리가 먼, 정의와 의협심만을 추구하는 걸출한 사내대장부였다.
“과연 제일 검다운 풍채로군.”
이성휘를 찬찬히 주시한 장막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느꼈는지 감탄의 목소리를 냈다.
중원제일 검을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마치 평소에 깊이 흠모해 오던 명사를 직접 영접하게 된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수십 명에 달하는 잔인무도한 검객들을 모두 불귀객(不歸客)으로 떨어트린 중원제일 검의 무명은 사예주와 인접한 지역인 연주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겠습니다.”
“맹덕을 따른다고 들었네. 나도 잘 부탁하지. 다음에 술이나 한잔 하도록 하세나!”
“예.”
호탕하게 웃는 장막의 얼굴을 힐끗 쳐다본 이성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야심가들에 의해 희생될 운명.
군웅할 거의 서막을 장식했던 원소와 조조, 여포에 의해 잔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충의지사의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연주 세력의 일등 공신이 될 진궁과 연주 토착세력의 거두를 맡은 장막.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있는 마차가 가도 위에서 미끄러지는 일이 없게끔… 주의를 기울여야겠지.’
진궁과 장막이 결국 조조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훗날의 일이겠지만 지금부터 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끝까지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조조를 곁에서 힘껏 보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진궁과 장막, 수많은 연주 호족들이 조조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은 ‘그 사건’ 때문이다. 그 끔찍한 사건만 어떻게든 막아 낸다면, 연주에서 벌어지게 될 반목과 분열 또한 막아 낼 수 있을 것이었다.
* * *
연주 진류군에 진류왕 유협과 정동장군 조조가 입성했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수많은 사대부와 호족들의 귀의하였음은 물론,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되었다. 귀한 존안을 뵙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연주로 쳐들어오고 있는 사나운 황건적들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달라는 호소 또한 섞여 있었다.
“서주자사(徐州刺史)로 부임한 도겸이라는 놈이 일제히 황건적 소탕에 나서면서 서주에 웅거하고 있던 황건적들이 터전을 잃고 연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
군사의 권한으로 조조군 제장들을 모두 소집한 진궁이 현 전황을 설명했다.
서주의 황건적이 이윽고 연주 경계를 넘었다.
척후병으로부터 급보를 듣게 된 진궁은 예상보다도 빨리 황건적 무리가 진격해 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진궁은 사방에서 몰려드는 황건적들이 단결을 하기 전에 신속하게 각개격파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경계를 넘어온 서주 황건적들의 움직임으로 인해 각개격파 작전에 제동이 걸리게 되었다.
“일단은 먼저 태산태수(太山太守) 응소가 지휘하는 관군에게 쫓겨나 연주 동군(東郡)까지 흘러들어온 청주 황건적을 격퇴하려 했는데…. 서주 황건적이 경계를 넘어왔으니 어느 한쪽을 먼저 치기는 어렵게 됐어.”
염료로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신경질을 토해냈다.
동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올라오고 있다.
놈들은 황천(黃天)의 이름을 빌려 사용하되, 동맹을 맺은 군사세력은 아니었다.
연주에 입성하자마자 액운을 제대로 만나게 되어 버렸는지, 응소와 도겸에게 쫓겨난 청주와 서주의 황건적들이 일제히 연주를 향해진격해 오고 있었다.
“동군을 먼저 대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군사.”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청주와 서주의 황건적들이 동시에 진격해 오고 있는 형국이었지만 아군은 진류군에 거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동군에 진을 치고 있는 청주의 황건적과 가까웠다.
반면,
남쪽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서주 황건적은 여러 고을 들을 거치면서 진군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군이 있는 진류군 인근까지 도달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었다.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아. 이미 연주 지역에 들어와 있는 황건적이 또 말썽이거든.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일찍 뒈져 버린 장각의 제사라도 연주에서 크게 차릴 요량인지 안팎으로 활개를 치고 있어.”
현재 한쪽으로 병력을 빼는 것은 어렵다.
다시 작전을 수립해야 할 것 같다며,
진궁은 휘하 제장들에게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주군!”
동군에 주둔하는 청주 황건적의 동태를 살피러 떠났던 전령이 돌아왔다.
다급하게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청주 황건적의 소식을 조조와 휘하 장수들에게 전했다.
“황건적이 임성국(任城國)을 장악하였습니다! 임성상(任城相) 정수가 적들의 손에 무참히 처형당했사옵고, 임성국의 모든 고을 들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상을 죽이고 고을을 빼앗았다.
전령이 가져온 소식에 조조군 장수들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침음을 삼켜야만 했다.
황건적의 기세가 매우 거칠다는 것은 익히 짐작하고 있었으나, 감히 도적 떼들이 상을 죽이고 고을까지 모두 불바다로 만들다니!
적들의 기세가 실로 만만치 않았다.
“군사, 진류군의 가까이에 똬리를 틀고 있는 황건적들은 몇이나 되는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진궁이 지도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귀덕(歸德)과 상구(商丘) 방면에 족히 3만에 달하는 황건적 병력이 주둔하고 있습니다.”
“3만인가….”
잔당에 불과한 황건적 부대들만 하더라도 아군 병력을 크게 웃도는 대군이었다.
귀덕과 상구 방면에 주둔하는 3만의 황건적 병력은 서주 지역에서 활개를 치던 황건적에서 떨어져 나오게 된 세력으로, 머지 않아 도겸에게 쫓겨난 서주 황건적과 합류하려 하고 있었다.
서로 합류하기 전에 쳐야 한다.
서주에서 올라오고 있는 황건적 군세가 진류군 인근까지 도달하게 둘 순 없다.
“먼저 귀덕과 상구에 있는 황건적부터 일소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오. 동군에 있는 황건적 군세가 빠르게 진격하여 빈집이나 다름없게 된 진류군을 도모할 위험이 있소!”
“시간이 흐를수록 불리합니다!”
“수십만에 이르는 서주 황건적들이 연주 경계를 넘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연이어 보고되고 있는 적들의 동태를 들은 무관들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그에 이성휘가 칼집을 내리쳤다.
우렛소리 같은 큰 소리와 함께 당혹과 경악을 토해내던 무관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성휘가 나선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좌중이 조용해졌다. 그에 조조는 눈짓으로 이성휘에게 감사를 표했다.
“자렴과 묘재에게 5천의 군세를 맡기겠다.”
조조는 친족인 조홍과 하후연에게 우선 동군에 주둔하는 청주 황건적을 저지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그 뒤,
자신은 전군을 이끌고 귀덕과 상구 방면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3만의 황건적을 기습하여 모조리 몰아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원양, 내 목숨을 맡기겠다.”
“주군께서 나를 이렇게나 신뢰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호위 역할을 맡긴 조조의 말에 하후돈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3만의 적들과 싸워야 함에도,
만인지적의 여걸은 결코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맹덕, 나도 군세를 동원하여 돕도록 하지! 또한 연주의 수많은 관인과 호족들도 고향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황건적에 맞서 싸울 걸세!”
장막의 호언에 고개를 끄덕인 흑발의 여인은 시선을 돌려 이성휘에게 입을 열었다.
“귀관은 자렴과 묘재를 돕도록 하게. 아군이 귀덕과 상구 방면의 전투에서 승전보를 거둘 때까지, 동군에 있는 황건적이 진류군을 노리지 못하도록 길목을 막아야 하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5천의 군세로 30만에 달하는 청주 황건적의 진격을 막아야만 한다.
실로 위태로우면서 절망적인,
가혹하기 짝이 없는 명령이었지만 이성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마, 맡겨… 맡겨 주세요! 어떻게든… 마, 막을 테니까요!”
30만에 이르는 군세 앞에서는 황금 투구를 쓴 여걸도 어쩔 수 없다는 걸까.
조홍이 두 어깨를 떨면서 말했다.
도톰한 입술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보였다.
겨우 5천 밖에 안 되는 병력으로 30만 명에 이르는 황건적과 싸운다는 것은 중과부적,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에 불과한 과업이었다.
“반드시 놈들을 막을게요.”
그런데도 조홍은 물러서지 않았다.
두려움에 젖은 반응을 보이면서도 끝내 명령을 받아들였다.
“제 옆에 중원제일 검이 있을 테니까요.”
조홍은 환열에 찬 눈빛을 이성휘에게 보내면서, 두려움조차도 잊게 만드는 연모의 감정을 느꼈다.
떨림이 멎기 시작했다.
어느덧 두려움이 사그라졌다.
30만 대군을 막아야 하는 전투에 중원제일 검이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와 두려움을 잊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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