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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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과 동탁 군이 치열한 격전을 반복하고 있었을 때,
정원군의 둔영을 포위하고 있던 대장군부 병력은 공훈이라도 세울 목적으로 급습을 시도했다. 병주 출신의 장졸들이 마음 놓고 쉬고 있음을 알고, 그 빈틈을 노려 수급을 취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병주에는 중원제일 검과 대등하게 싸울 정도의 용력을 자랑하는 비장(飛將)이 있었다.
“뭐야, 이 새끼들은.”
날카로운 창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든 장졸들을 모두 쓰러트린 금발의 여성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난폭한 미소를 지으면서,
장성한 체격을 가진 남성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컥! 컥컥컥!! 두 발에 지면에 닿지 않게 된 남성이 거친 숨소리를 내면서 발버둥 쳤다. 온몸을 비틀면서 격하게 반항했으나, 그런데도 멱살을 단단히 붙잡은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내서 왔어? 조조라는 년이냐, 아니면 원소라는 년? 그도 아니면 서량에서 온 새끼들?”
낙양은 수많은 야심가들이 시커먼 욕망을 꿈틀대고 있는 마경(魔境)과 다를 바 없었다.
기름이 흠뻑 흩뿌려진 가을산.
아무리 작은 불씨라도 그 위에 떨어지는 순간, 어마어마한 불길을 자랑하는 산불이 되어 가을산을 집어삼켜 버리겠지.
급습을 감행한 대장군부 장졸들을 통해 여포는 싸움의 냄새를 맡게 되었다.
“병주 촌놈들을 쳐라!”
“대동한 병력이 얼마 되지 않는다!”
제압한 병력은 선진(先陣)에 불과했는지,
새카맣게 많은 병력들이 몰려와 정원군이 주둔하고 있던 둔영을 일 거에 포위했다.
구름처럼 몰려든 병력을 목격하게 된 정원은 동탁이 먼저 선수를 쳐 대장군부와 손을 잡았음을 넌지시 간파하고는 이를 빠득 갈았다.
“빌어먹을 서량 촌놈이! 대장군부와 손을 잡고 내 목을 치려는 속셈이더냐!”
가소로운 놈,
경멸과 증오를 토해낸 정원은 붉은 투구와 붉은 갑옷을 걸친 모습이었다.
여포가 선진을 제압하는 동안 정원군은 무장을 끝내고 싸울 준비를 모두 끝냈다.
여포를 비롯한 장료와 고순 등의 일선 장수들은 정원의 입에서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정원이 공격하자, 병주 출신의 장졸들은 새카맣게 많은 병력이 바깥에 진을 치고 있었음에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돌격을 감행했다.
“봉선, 정예부대를 모두 너에게 일임할 터이니 길을 뚫거라! 내 당장 병주로 돌아가 군사를 일으키겠다!”
정원은 수양딸에게 공격을 명령하는 한편 포위망을 뚫고 병주로 돌아가 상경군을 일으키겠다면서 열불을 토해냈다.
동탁에게 선수를 빼앗겼다,
내심 그를 경계하면서도 서량 촌놈이라고 무시해온 정원이었기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듯했다.
“봉선 님.”
“하핫! 설마 낙양 샌님들이 먼저 우리를 치려고 들 줄이야! 내 뒤를 바짝 따라와 문원! 모조리 쓸어 버린 다음에 길을 열 테니까!”
“알겠습니다!”
검은 말갈기를 가진 흑마가 울부짖으면서 포위망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금발의 여인,
난폭하고 사나운 미소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미녀는 가녀린 두 팔에 어울리지 않는 매서운 흉기를 휘둘렀다.
“크하악!”
“막아라! 병주 놈들을 막아라!!”
비장 여포를 선두로 병주 기병대가 맹렬한 질주를 시작했다.
강철의 장벽을 좌우로 밀어내면서,
수적 우위를 믿고 포위망을 형성한 대장군부의 병력을 도리어 뒤엎어 버렸다.
거친 말발굽이 다가올 때마다 낙양 병사들은 달아나기 바빴으며, 선두를 맡은 여포에게 달려든 무관들 중 살아남은 자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힘을 자랑했다.
“흐하핫! 흐하하하하하핫!!!”
광소와 함께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미녀.
무겁고 견고한 일격을 내리칠 때마다 외마디의 비명이 잇따랐다.
압도적인 대군을 적으로 둔 채,
오로지 순수한 무(武)를 휘두르며 만부부당(萬夫不當)을 증명해낸다.
그것이 바로 여봉선,
중원제일 검의 무명을 노리는 병주의 여걸이다.
“봉선 님을 따르라!”
흑발의 여인이 크게 소리치면서 날카로운 칼끝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수많은 적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고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은 난폭하게 날뛰는 여걸의 뒤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언젠가 천하 무쌍(天下無雙), 무봉(武峰)의 끝에 닿겠노라는 강대한 포부를 가진 여걸을 보필하는 장수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만 명에 달하는 적을 앞에 두고서도 결코 떨지 않는 강철의 심장이 필요했다.
‘지금은 그 같잖은 승리에 취해 있도록 하거라, 동중영! 허나 오래가진 않을 것이야. 내가 반드시 병주에서 천군만마를 이끌고 내려와 네놈의 그 더러운 수급을 벨 것이니 말이다!!’
붉은 투구를 쓴 중년남성이 이를 빠득 갈면서 복수를 다짐했다.
내게는 수만에 이르는 기마군단이 있다.
또한 나와 술잔을 나누면서 만고의 충성을 맹세한 백파적 두령들 또한 있었다.
수만 명에 이르는 병주의 병력과 백파적의 병력까지 모두 합치면 족히 십만 대군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며, 또한 동탁과 대장군부 일파들의 목을 베고 한나라의 수도를 통째로 손아귀에 쥘 수 있을 것이다.
“이노옴!!”
정원이 크게 일갈하면서 옆에서 달려들던 대장군부 병사의 머리를 베어냈다.
붉은 늑대라고 불리는 군벌답게 백발이 성성한 늙은 외견을 가졌음에도 성격이 괄괄하고 용력이 실로 대단했다.
‘황실과 조정을 거머쥐고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군림하게 될 산군(山君)은 바로 이 정건양일지니!’
무리를 이끌고 태산을 침범한 이리의 잔꾀에 병주의 늑대가 놀라 달아났다.
하지만 그것은 전초전이었을 뿐.
자기 영역으로 돌아간 붉은 늑대는 자기 무리들을 이끌고 나타나, 교활한 이리 와 함께 누가 태산의 산군이 될 것인지를 두고서 서열정리를 치르려 할 것이 분명했다.
* * *
병주목 동탁이 선수를 쳐 각비전(卻非殿)과 선실전(宣室殿)을 무단으로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곡장 오광과 점군사마 진진은 정예부대를 이끌고 무력 행사에 나섰다.
“감히 서량에서 온 촌놈 따위가…! 대장군 어르신께서 부름을 내리지 않았다면 낙양에 올 수도 없었을 놈이!!”
변방의 잡배 따위에게 허를 찔렸음에 분노한 오광은 동탁을 숙청하려 했다.
미친개처럼 날뛰는 정원보다는 말귀가 잘 통할 듯하여 손을 잡았으나… 오랜 세월 오랑캐들과 함께 지내면서 닮게 된 더러운 습성은 어쩔 수 없었는지, 우세를 점하게 되자마자 시커먼 속셈을 드러냈다.
내 결코 두 번 다시는 변방 놈들과 손을 잡지 않으리라, 오광은 그렇게 다짐하면서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모인 선실전의 궐문을 넘었다.
“동중영, 네 이놈!!”
오광이 크게 일갈하며 검을 뽑았다.
또한 그를 뒤따르던 정예병들 역시 검을 뽑으면서 날카로운 적의를 드러냈다.
감히 무부(武夫)들이 한나라의 정전(正殿)에 무단으로 침입하여 창검을 빼든 것이었다.
“감히 촌놈 따위가 제 분수도 모르고 권력을 탐하려 들다니.”
이는 역모이며, 또한 반역이다.
그런데도 대장군부의 장수들은 매우 완강하게 분노를 표현했다.
황실과 조정을 향한 충성심은 옛적에 버렸는지, 대장군의 복수하고 새로운 권력을 쥐겠다는 복수심과 야심에 찬 들개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무엄하다, 이놈!”
대장군부가 먼저 창검을 빼 들자, 이에 대치하여 이각을 위시한 동탁 군의 무장들 또한 검을 빼 들면서 응전했다.
날카롭게 울리는 금속음.
창검을 앞으로 늘어뜨린 양군 병력들이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역적 놈들!!”
양군이 살벌하게 대치한 채 창검을 늘어뜨리고 있을 때,
각비전에서 동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위용 넘치는 갑주를 입은 채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계단 아래까지 내려왔다. 좌우에 수많은 장수들을 대동한 채였던 동탁은 다시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오른손에 든 권(券)을 뻗었다.
“기어코 황상 폐하와 조정대신들이 있는 정전마저 범하려 드는구나! 이 동중영이 먼저 군대를 동원하여 각비전과 선실전을 호위하지 않았더라면 너희 역적들은 분명 황상을 시해하고 한나라 4백 년의 사직까지 무너뜨리려 했을 터!!”
마치 죄상을 꾸짖는 것처럼 크게 일갈한 동탁은 제 가슴을 두드리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에 황상께서는 이 동중영에게 너희 역적들을 토벌하여, 오랫동안 권위와 위엄을 잃었던 한나라의 4백 년 사직을 다시 일으키라는 대업을 위임하셨다!”
“뭐, 뭣이!!”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고 맡은 의무를 다하라는 소임을 망각한 채,
무도하게 군사를 일으켜 섭정을 맡은 태후를 시해하고 궁궐에서 살인과 약탈 등을 저지른 오광과 진진을 비롯한 대장군부 무리들을 황명에 따라 척살하라.
이미 동탁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겁박하여 원하던 바를 얻어낸 뒤였다.
신속하게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신병을 확보한 동탁은 거병의 명분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제 황명을 내세워 낙양에 마지막 남은 화근을 제거하려 했다.
“오광, 네놈은 분명 나에게, 권력을 잘 아는 인물이기에 거사에 성공한 뒤에 권력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에 찬동할 것이라고 했었지. 허나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권력의 힘과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에… 네놈과 권력을 나눌 생각이 티끌도 없을 따름이다!”
동탁이 손을 흔들면서 신호를 보내자 창검으로 무장한 새로운 병력들이 각비전에 들이닥쳤다.
대장군부의 정예부대를 포위한 뒤,
뒤이어 주변 전각들에 매복하고 있던 병력 역시 투입되면서 각비전에 들어선 대장군부의 퇴로까지 막아 버렸다.
“도, 동숙영!!”
오광이 크게 놀라 소리쳤다.
매복병을 이끄는 동탁 군의 장수가 바로 동탁의 동생인 봉거도위(奉車都尉) 동민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장군 하묘를 살해하고 도망친 장본인이자, 대장군 하진의 복수를 부르짖으면서 대장군부를 선동했던 원흉.
정변의 불길을 부채질한 원흉이 뻔뻔스럽게 모습을 드러내자 오광과 진진 등, 대장군부의 장수들이 격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다 끝났소이다, 부곡장! 어서 지엄한 황명 앞에 무릎을 꿇으시오!”
“닥쳐라! 교활한 쥐 새끼처럼 장졸들을 부추긴 것이 네놈이지 않느냐!”
동민을 향해 칼끝을 겨눈 오광은 자신들을 포위하는 병력의 대부분이 대장군부의 사졸인 것을 알게 되었다.
모두 배신하여 동탁에게 신종했다.
같은 편이라고 믿었던 장졸들이 신의를 버리고 배신을 일삼은 것이다.
“이제 곧 서량에서 십만 대군이 몰려올 것이오. 더 이상 부곡장에게는 승산이 없소이다.”
“병주목 어르신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보물과 재화를 내려주시기로 하셨소! 매일 곡기를 걱정해야 했던 우리가 부귀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단 말이오!”
부귀영화를 내세워 대장군부의 사졸들로부터 충성을 얻어낸 동탁은 그를 이용하여 오광과 진진을 숨통을 조였다.
변방 출신의 장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영악한 이리 와도 같은 무자비한 교활함이었다.
“태후를 시살하고 궁궐과 전각들에 불을 지른 놈들이다! 당장 저 사특한 역적들을 처단하라!”
동탁의 명령이 떨어지자, 오광과 진진의 군세를 포위한 병력들이 일 거에 달려들었다.
각비전이 피와 살점으로 더럽혀졌다.
단말마와 비명이 난무하며,
사람의 육신을 찢어발기는 끔찍한 소리가 각비전에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던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이 배신자들이!”
“멍청한 놈들아! 네놈들은 서량에서 온 저 역적에게 속고 있음을 어찌 모른단 말이더냐!”
날카로운 창끝이 오광과 진진, 대장군부의 무관들을 벌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차가운 금속이 온몸을 사정 없이 찔렀다.
바닥에 쓰러진 무관들이 목숨을 구걸했으나,
병주목 동탁을 신종하기로 결심한 장졸들은 무정하게도 옛 상관이자 전우였던 역적을 죽임에 있어 망설임이 없었다.
“쿨럭!”
달려들던 장졸들을 베어내면서 용전을 벌인 오광이었으나, 결국 열세를 뒤집지 못한 채 날카로운 창끝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오광이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에 이각이 달려들어 오광의 목을 취했다.
대장군 하진의 충성스러운 심복이었던 오광의 수급을 벤 뒤, 피를 뚝뚝 흘리는 수급을 치켜들면서 역적이 죽었노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들!!”
오광이 목 없는 주검이 된 것을 본 진진이 크게 분개하여 검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뒤이어 화살들이 날아들었고,
오광의 복수하려 했던 점군사마 진진은 수십 발의 화살들을 맞고 절명했다.
“경하드리옵니다! 이로써 어르신께서는 무도한 역적들로부터 한나라의 사직을 구한 영웅이 되신 것이옵니다!”
오광에 이어 진진이 처참하게 죽은 것을 확인한 이유가 예를 취하면서 동탁에게 말했다.
그에 동탁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영웅이라! 자네의 그 말을 들으니 마치 젊은 날로 돌아간 것처럼 가슴이 뛰는군! 나이를 먹어 노쇠해진 심장이 격하게 다시 뛰기 시작했다네!!”
대장군 하진의 옛 부하들을 제거하고 낙양의 정권을 잡았다.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확보했으며,
또한 황후와 황실의 종친들까지 구금한 상태였다.
이보다 완벽한 승리가 있을 수 있겠는가? 변방 출신의 장졸 신분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정권을 거머쥐게 된 이 동중영의 위업은 자손만대에 걸쳐 칭송받아 마땅할 것이었다.
“어르신!”
오랫동안 이어진 권력 쟁탈의 최종적인 승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고양감을 느끼던 동탁에게 다급한 표정을 한 장수가 다가왔다.
이각 휘하의 장수인 장룡이었다.
“추격을 지휘했던 화웅 장군이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뭐?! 화웅이… 부상을 입고 쓰러졌단 말이냐!”
장룡의 보고에 동탁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웅이 어떤 장수이던가!
그는 지독하기로 유명한 강족과 저족의 전사들조차도 무릎을 꿇고 굴종했던 서량 최고의 장수였다.
서량 최고의 장수인 화웅이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소식은 동탁에게 큰 경악을 선사했다.
“중원제일 검이라는 무명으로 불리는 어림총사 이성휘에게… 단 일격에 쓰러졌다고 하옵니다!”
“뭐, 뭣?! 단 일격에!!”
일격에 화웅이 쓰러졌다.
용맹한 팔척의 거인이 단 일격에,
적장에게 반격조차 못한 채 쓰러졌다는 보고에 동탁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현기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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