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6화 (56/616)

56화

==========================

황명에 의해 발해왕 유협이 진류왕(陳留王)으로 전봉된 채, 낙양을 떠나 임지로 내려가게 되었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은 낙양을 크게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갑자기,

조정대신들과 의논하지도 않은 채 황명이 내려졌단 말인가?

유약한 성품의 황제가 독단을 감행하였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모친과 숙부에게 맞서면서까지 이복누이를 지키려 한 황제가 직접 황명을 내려 낙양에서 내쫓았다는 점이 크게 놀라웠다.

‘명분과 정통성에 가장 방해가 되는 발해왕을 이제 와서 제거할 생각인가? 연주…. 황건적에게 가장 극심한 침입을 받는 지역일 텐데.’

‘아니, 발해왕을 제거하려 들었다면 대장군이 환관들에게 변을 당하기 전에 살수(殺手)를 꾀했을 것이다. 분명 황상의 의중에 다른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다.’

소식을 들은 조정대신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황제의 의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발해왕 유협을 진류왕으로 전봉한 황제의 독단으로 인해 얼떨결에 그녀를 보필하는 처지에 놓인 조조는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원하던 바는 이뤄냈다.

정동장군(征東將軍)에 임명되었으며, 또한 황실로부터 직접 연주 출병의 승인을 받아 냈다.

그러나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황녀를 짐더미처럼 떠안게 된 상황은 실로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악성전의 황녀가 새 임지로 전봉된 진류군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말인가요? 발해군에서 갑자기 진류군으로…. 참으로 기이한 일이군요.”

이성휘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기 위해 조조군 진영에 발걸음을 향했던 원소는 조조와 함께 황실에서 도착한 급보를 듣게 되었다.

부관을 가로채려고 진중까지 찾아온 원소의 행동에 못마땅한 마음을 품고 있던 조조였으나,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분명 숨은 의도가 있음이 틀림없다. 아마 황제 또한 낙양의 상황이 악화 일로를 향해 치닫고 있음을 깨달은 것일 터. 잘도 그 유약한 성품의 황제가 그 사실을 눈치챘군.”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선 만큼… 남들이 보지 못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낙양에서 큰 변고가 일어날 것을 눈치채고 이복누이를 탈출시키려 함이다.

조조와 원소가 황제의 의도를 간파했다.

이복누이를 끔찍이 아끼는 황제는 어떻게든 낙양의 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연주로 보내려는 것이었다.

“…부관 때문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어째서 연주란 말인가.

잠시 그 의문을 곱씹던 조조는 황제와 발해왕이 이성휘를 크게 총애하며, 또한 신뢰하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반푼이 같은 황실 연놈들이 감히…! 환관 따위에게 놀아난 황제의 피를 이은 더러운 일가 따위가!!’

감히 내 부관을,

내게 진심 어린 충성을 맹세한 내 소중한 사람을 감히 어린 계집의 시종으로 부리려 하는가?

자기 소중한 것을 탐내거나 빼앗으려 드는 행위 전반을 몹시 혐오하는, 지독한 소유욕을 자랑하는 조조에게 있어 이성휘에게 들러붙으려는 유협의 존재는 실로 눈에 거슬리는 도둑고양이였다.

“흠.”

격노를 토해내는 조조와는 달리,

소식을 들은 원소는 침착한 표정을 지으면서 유연하게 반응했다.

“발해왕… 아니, 진류왕 유협은 딱히 나쁜 패는 아니예요. 우리들의 대업에 아주 훌륭한 정통성이 되어 줄 테니까요. 게다가 진류왕의 나이는 겨우 여덟. 지금부터 많은 은혜들을 베풀면 나중에 분명 그 은혜를 갚으려 하지 않겠어요?”

교활한 여우처럼 눈웃음을 지으면서,

원소는 유협이 훌륭한 패가 되어 줄 것이라며 조조를 설득했다.

“본초, 나더러 황제(皇弟)를 떠안으라는 말인가? 필시 나중에 반역도당의 낙인이 찍히게 될 터! 중원 지역에 새로운 황제를 옹립하려 든다는 의심이나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앙 조정이 멀쩡하게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조조의 말에 원소가 넌지시 물었다.

그에 조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원소를 쏘아 보았다.

“한나라 조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 뜻인가.”

“그저 예측이지만요.”

조조의 물음에 원소는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로 대답했다.

마치 후일을 예견한 듯한,

범인(凡人)이 감히 헤아릴 수 없을 말이었다.

원소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느낀 조조는 질투에서 비롯된 감정을 꾹 억누르면서, 진류왕 유협이 훌륭한 패로서 어떤 이득들을 아군에게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주판을 굴리기 시작했다.

‘허나 진류왕 계집을 받아들이면 자연스레 그 계집에 충성하는 집단 또한 생겨나게 될 터. 향후 천하를 도모하려는 내 대의에 반기를 들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본초의 말에도 또한 일리가 있다. 진류왕을 품에 안게 되면 천하의 많은 인재들이 연주로 몰려들게 될 것이니.’

결정적인 이점과 치명적인 결점들,

조조는 그 사이에서 잠시 번민했다.

“저는 이제 그만 떠나도록 하죠. 맹덕, 나중에 어림총사에게 제 안부를 전해주세요. 지금 가장 바쁠 사람을 붙잡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테니까요.”

원소는 깊은 아쉬움을 머금은 채,

이성휘에게는 자기 안부를 전해 달라고 조조에게 부탁했다.

낙양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고 싶었으나…. 아무래도 그것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듯했다.

‘악성전의 작은 황녀를 지키게 된 어림총사가 맹덕을 배신하고 제 휘하에 가담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겠죠. 그 사람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황녀를 지키려 할 테니까.’

아직 고백한 것도 아닌데,

이미 고백에 차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이 원소가 손아귀에 넣지 못했던 인재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사내만큼은 매번 손아귀에 쥐려고 할 때마다 빠져나간단 말인가.

작은 모래 알갱이처럼,

손에 쥐려고 할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안타깝게 흘러내리는 듯했다.

‘뭐, 하지만… 때로는 손아귀에 넣기 어려운 보물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를 가지는 법이기도 하죠. 이 원본초를 이렇게까지 애태우게 만들다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내로군요.’

안타깝고,

아쉽기 때문에….

더욱 그가 가지고 싶다.

눈앞의 친우로부터 그 사람을 빼앗아 영원히 나의 색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원소는 스스로 기회를 포기했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이성휘의 의지를 꺾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고결했던 의지를 가장 가까이서 보았던 그녀였기에, 누구보다도 이성휘의 의지를 존중했다.

* * *

황제로부터 교지가 내려졌다.

진류왕 유협은 임지로 내려가 황건적의 침탈로 인해 혼란과 도탄에 빠진 중원 4주 백성들을 위무하라.

교지를 받들게 된 유협은 즉시 임지로 내려갈 준비했다.

이미 이복오라비로부터 언질을 받은 상태였기에 악성전의 궁인들은 바쁘게 짐을 싸기 시작하면서 연주로 내려갈 채비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어서 준비를 서둘러라!”

“되도록 짐을 가볍게…, 패물과 의복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궁궐을 떠나 황건적이 창궐하는 연주로 떠나게 되었음에도,

악성전의 궁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작은 황녀를 지키기 위해.

동생처럼, 딸처럼 여기는 황녀를 끝까지 보필하기 위해 궁인들은 자발적으로 지원했다.

“대체 어쩔 셈인가요? 언니에게 허가도 없이 황실의 명을 받들다니! 다 이를 거예요.”

황금 갑옷을 입은 여성이 뾰족한목소리로 이성휘에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황제의 독단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임을 알고 있던 조홍이었지만, 언니에게 충성을 맹세했음에도 계속해서 진류왕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성휘의 행동에 불만을 표시했다.

언젠가는 황실과도 적이 될 터.

한나라 황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 이성휘의 행동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흥, 저한테 사과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요!”

조홍이 쀼루퉁한 표정과 함께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홱 돌렸다.

질투와 시기에 찬,

자신을 제치고 2인자 자리를 꿰차버린 중원제일 검을 향한 불만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후돈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전하, 궁궐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소장들이 전하의 신변을 호위하겠습니다. 전하의 임지인 진류군에 도착할 때까지 철통 같이 호위할 터이니, 소장들을 굳게 믿어 주십시오.”

“정동장군과 어림총사를 믿겠다.”

한편 황실로부터 마침내 정동장군에 임명된 조조는 진류왕에 전봉된 유협과 ‘불편한 관계’가 성립되었음에 속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애써 불만을 참으면서,

결연한 표정을 지은 채 충신의 면모를 보였다.

감히 자기 앞에서 이성휘를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황녀의 뻔뻔함에 욕설을 내뱉고 싶었지만, 대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참고 인내해야 했다.

‘제 오라비에 이어 이번에는 이성휘에게까지…. 사내들에게 지속해서 아양을 떨면서 살아온 어린 계집다운 행동이군.’

작은 황녀와 잠시 담소를 나눈 뒤,

고개를 돌린 조조는 황녀를 보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악성전의 궁인들을 바라보았다.

내 연모하는 사람에게 했던 것처럼,

궁인들에게도 영악한 여우짓들을 자주 해왔기 때문인지 자발적으로 나선 인원이 많았다.

그들의 충성심에 감복할 법도 한데도, 유협의 존재가 몹시 못마땅했던 조조의 눈에는 영악한 여우에 홀린 무리들로 보일 뿐이었다.

“맹덕 님.”

임지로 향하게 된 유협을 따라나선 궁인 무리들을 바라보던 조조의 시선이 하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연분홍색 머리카락의 여인에게 닿으려 할 때,

이성휘의 부름에 시선이 멈췄다.

“감히 무단으로 중차대한 일을 결정하여 송구합니다.”

그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나는 개의치 않네. 귀관 덕분에 늦지 않게 출병이 성사되었지 않은가? 또한 본초가 정북장군에 임명되었던 것처럼 나 또한 정동장군에 임명될 수 있었으니 오히려 그대 덕분일세.”

흑발의 여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를 치하했다.

넓은 도량을 가진 주군,

상냥한 마음씨를 가진 여인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유협을 향한 불만이 활화산처럼 난폭하게 들끓고 있었음에도, 연모하는 남성에게만큼은 살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맞이해주었다.

* * *

동탁은 대장군부를 선동하여 거사를 앞당기려 하였지만 낙양 장군들의 반대로 인해 실패하게 되었다.

아직 원소가 낙양을 떠나지 않았다.

또한 조조가 이끄는 병력 또한 낙양에 아직 주둔하고 있었기에 거사를 일으킬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사를 일으킨다면 원소와 조조, 두 계집들이 궁궐을 호위하던 중앙군을 이끌고 낙양을 떠난 뒤를 노려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을 전한 낙양 장군들은 또한 동탁에게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중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런 겁쟁이 같은 놈들! 장졸들의 녹봉이나 가로채는 늙은 소인배들 주제에 감히!!”

자기 뜻대로 대장군부가 움직이지 않았음에 동탁은 분개를 드러내면서 크게 일갈했다.

내가 어리석었다.

무능하고 멍청한 필부들 따위에게 무슨 설득이 필요하단 말인가?

놈들의 안일한 판단력을 기다릴 바에야, 차라리 위험을 감내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군대를 움직이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평민으로 변복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정예병과 봉거도위 동민이 통솔하는 병력을 동원한다면 능히 진류왕 유협을 호위하는 조조군을 깨부술 수 있을 터이니.

“숙영에게는 내가 진류왕을 도모하는 순간을 노려 거기장군 하묘를 척살하라 이르게. 우리가 먼저 나선다면 대장군부의 굼뜬 늙은이들도 결국에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예, 봉거도위에게 그리 전하겠습니다.”

동탁이 대장군부 휘하에 있는 동생 동민에게 은밀하게 명령을 전달했다.

애초에 대장군부와는 뜻이 맞지 않았다.

대장군부의 장군들은 대장군 하진의 조카인 유변이 계속 황제로 군림하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저주스러운 하태후의 자식이나,

늙은 장군들에게 있어 유변은 하진의 가문인 남양하씨(南陽何氏)의 계통을 잇는 혈육이었으므로 당연히 유변을 옹호하는 쪽이었다.

“원소의 병력이 사수(汜水)를 넘는 순간, 곧바로 거사를 결행할 것일세. 비록 지금은 우리가 조조, 그 년보다 병력은 적으나 서량의 십만 대군이 사예주 경계를 넘어 낙양에 도달할 때까지만 버틴다면 능히 승산이 있네.”

절대로 진류왕 유협을 놓쳐선 안 된다,

자칫 모두 허사가 될 수 있음에 동탁은 자칫 모든 것들을 잃을 수도 있는 강수를 감행했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