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5화 (55/616)

55화

=========================

조조군이 급히 출병을 준비할 때.

이미 원소군은 모든 군비를 갖춘 뒤,

황실과 조정의 윤허를 받아 정북장군(征北將軍)에 오른 원소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예부대인 금군은 물론, 대장군부의 유능한 무관들이 대거 원소의 휘하에 소속되었다.

대장군부 수뇌부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회한과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무관들이 결국 황실과 조정을 향한 충성을 포기하고 원소를 따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본초, 전군이 그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네. 모두 그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충군(忠軍)일세. 황실과 조정에 큰 불만을 가진 자들로 구성된 만큼, 우리들의 대업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일 것이 분명하네.”

수천 명에 달하는 장졸들을 본 순우경은 자기 가슴이 크게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대업의 시작이다.

우리는 당당히 기주로 나아가 용맹스러운 정벌군의 깃발을 위군(魏郡)에 꽂으리라!

“본초…?”

“아뇨, 아무것도 아니예요.”

잠시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중요한 것을 회상하는 것처럼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원소의 모습에 순우경이 의문을 보냈다.

그에 원소는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하지만 근심에 찬 반응을 계속 보이는 것을 볼 때, 필시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분명했다. 원소와 오랫동안 교분을 나눈 순우경이었기에 그녀의 근심 어린 내심을 간파할 수 있었다.

“설마 중원제일 검 때문인가?”

순우경이 물었다.

그 물음에,

여인의 새하얀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가슴에 품은 짝사랑이 이뤄질 수 있도록 봉선화로 손톱을 물들이는 것처럼, 새하얀 얼굴에 풋풋한 연모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우둔하고 둔감한 사내라도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원소의 반응은 지극히 노골적이었다.

“…너무 티냈나요?”

금발의 여인이 조심스럽게 묻자,

순우경이 머쓱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그러네.”라고 대답했다.

주군의 사적인 문제에 간섭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나, 주군과 부하이기 이전에 친우였기 때문에 순우경은 무례를 무릅쓰고서 말을 덧붙였다.

“분명 우장군의 군세는 연주(兗州)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우리 또한 기주로 가게 될 터이니, 낙양에서 헤어지게 된다면 재회하기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

순우경의 충고는 근심과 망설임에 물들어 있던 원소의 마음을 크게 자극했다.

그녀는 후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생을 후회로 보냈으며, 또한 수많은 후회들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그에게, 중원제일 검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에게 종용 의사를 물을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터. 순우경의 충고에 조금의 틀린 점이 없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그럼 잠시…, 맹덕의 진영에 다녀오도록 하죠. 그때까지 전군을 대기시키세요. 용무를 끝내고 돌아오면 곧바로 전군에 진군을 명령하겠어요.”

“알겠네.”

쑥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고개를 돌린 원소의 말에 순우경이 실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황실 환관의 뒤를 따른 이성휘는 이윽고 광덕전(廣德殿)에 도착하게 되었다.

좌우에 선 궁녀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이성휘는 부름을 내린 황제 유변과 더불어 하남윤(河南郡) 왕윤이 동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황제와 독대를 예상했던 이성휘였기에 왕윤이 자리를 함께하는 상황에 적잖게 당황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문득 떠오른 의문을 누른 채,

이성휘가 고개를 숙이면서 유변에게 예를 취했다.

“어림총사, 벼슬을 사직하였다고 들었네. 그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연주로 출병하는 조조를 따르고자 어림총사의 벼슬을 후임에게 물려주고 사직하겠노라고 뜻을 밝혔다.

사직서가 마침내 유변에게 도착했는지,

벼슬에서 물러나 조조의 휘하에 종군하려는 이성휘의 의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성휘를 이복누이를 맡길 수 있는 인재라고 신뢰해온 유변에게 있어, 사직한 채 정벌군에 참전하겠다는 돌발적인 의사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성문교위를 역임할 당시부터 지금의 우장군을 보필했음을 알고 있네만…, 사직을 물릴 순 없겠는가? 협에게는 그대가 필요하네. 우리 협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그대 밖에 없단 말일세.”

유변이 두 손을 모아,

간곡한목소리로 부탁했다.

잔악무도한 살수들로부터 이복누이를 지켜낸 이성휘의 무위를 높게 평가하였기에, 그 충성에 결코 거짓이 없음을 알기에 유변은 이성휘가 낙양에 남아 이복누이를 지켜 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미 이성휘는 결단을 내린 상태였다.

“청주(青州)에 웅거하는 황건적이 무려 백만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한 연주를 위협하는 잔당들은 물론, 서주(徐州)와 예주(豫州)에 흩어져 있는 황건적들 또한 큰 위협입니다. 우장군이 단독으로 군을 이끄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기에… 그 곁을 지키려고 합니다.”

확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사직을 번복할 의사도,

결정을 되돌릴 의사도 없음을 전달하였다.

비록 사적인 감정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작은 황녀를 지킨 것은 사실이지만, 충성을 바친 주군은 이 세상에 단 한 명… 조조라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짐의 황명으로도 어림총사의 강경한 의지를 억누를 수 없음을 알고 있네. 이미 어림총사에게 많은 은공(恩功)을 입었는데, 짐이 무슨 염치로 강제로 막아설 수 있겠는가….”

결코 이성휘가 고집을 꺾지 않을 것을 직감한 유변은 여러 번이고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안타까움을 토로 했다.

차마 황명을 내리지 않았다.

황실의 권위를 동원한 강제력을 통해 옭아매는 것은 배은망덕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제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서… 안타까워했을 뿐이다.

“하남윤.”

“예, 폐하.”

“잠시 어림총사와 독대를 나누고 싶소. 그러니 잠시만 자리를 지켜 주실수 있겠소? 어림총사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려 하오.”

“알겠사옵니다.”

왕윤은 황제와 마찬가지로 이성휘에게 용무가 있었으나, 독대를 원하는 유변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각에서 물러났다.

왕윤이 물러난 뒤,

단둘이 남게 되자 닫았던 입을 다시 열었다.

“확신은 없으나… 머지 않아 낙양에서 큰 난리가 벌어질 것 같네.”

만승천자의 옥좌에 올랐기 때문일까.

유변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가오는 위협을, 황실과 조정을 위협하는 짐승들의 존재를 넌지시 직감했다.

낙양에 풍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볼온하면서 불길한, 반역과 모반의 불길이 점점 주변을 위협해 오는 것만 같았다.

그에 유변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 중 한 명인 이성휘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려 했다.

“협이를… 맡아주게.”

“예?”

“발해왕을… 누이를 지켜 주게. 발해군(勃海郡)이었던 협이의 임지를 진류군으로 전봉(傳封)하여 연주로 내려보낼 걸세.”

유협의 임지(任地)는 발해군.

그에 유변은 연주에 속한 진류군으로 유협의 임지를 전봉했다.

조조와 이성휘가 군대를 이끌고 연주로 출병하고자 한다는 소식을 들은 유변은 어떻게든 이복누이를 그와 동행하게 하려는, 이복누이를 함께 데려가달라는 간곡한 의중이 섞인 결정이었다.

“하오나 폐하, 연주 지역은 황건적의 잔당들이 무법과 무도를 일삼고 있는 무간지옥(無間地獄)과 다를 바 없는 곳입니다! 저를 높게 평가하신 점은 감읍하오나….”

“짐도 이번만큼은 무를 수 없네. 부디 협이를 데려가주게. 발해왕… 아니, 진류왕을 그대들이 향할 연주로 보내겠네.”

깊은 결심에 찬 유변의 모습에 이성휘는 차마 그것을 거절할 수 없었다.

유협은 황제(皇弟)의 신분,

그녀를 새 임지인 진류군으로 데려간다고 하여 협천자(挾天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제의 여동생인 유협이 있으므로서 큰 제약들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상응하는 유리한 점들 또한 있겠으나, 유협을 거둠으로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결점 또한 분명히 존재했다.

조조에게 부담을 안기고 싶지 않았기에… 이성휘는 유변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려 하였으나, 이미 결심을 내린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변의 모습에 결국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하남윤 또한 짐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네. 오랜 설득이 있었지만 말일세. 하남윤의 수양딸을 협이의 수발을 들 궁녀로 삼는 조건으로 받아들여주었네.”

이미 왕윤과 결정을 내렸단 말인가.

유변의 말을 통해 이성휘는 왕윤이 황제와 함께 광덕전에 동석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림군의 지휘권을 그대에게 위임하겠네. 지금까지 빈틈 없이 짐을 호위했던 것처럼, 생면부지의 외딴 곳으로 향하게 될 협이를 보필해주게. 중원제일 검과 휘하의 무관들이라면 필시 협이를 지킬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저를 비롯하여 어림군의 무관들은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진류왕을 보필할 것입니다.”

결연함이 느껴지는 이성휘의 대답에 유변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그대의 사직을 반려하겠네. 어림총사로서… 협이를 지켜 주게.”

“예.”

목숨을 걸고서라도.

유변의 간곡한 호소 때문일까.

이성휘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유협을 지키겠노라고 진심으로 맹세했다.

‘살수들로부터 유협을 구해 냈을 때처럼….’

이번에도 또 ‘사적인 감정’이 꿈틀댔다.

그 사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미 조조를 한 번 곤혹에 빠트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데도 마음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거절하란 말인가.

낙양에 큰 풍파가 들이닥칠 것을 알고,

이복누이를 어떻게든 구하려는 오라비의 간곡한 부탁을 어떻게 일언지하에 뿌리칠 수 있단 말인가.

차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 * *

황제 유변이 급히 황명을 내렸다.

그 대상은 이복누이인 유협으로,

중원 4주가 황건적 무리들로 인해 크게 혼란스러우니 진류왕 유협은 임지로 내려가 혼란과 도탄에 빠진 민심을 수습하라는 명령이었다.

갑작스럽게 명령을 받들게 된 유협이었으나, 이미 황제로부터 미리 언질을 들은 뒤였는지 무리한 내용의 황명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어, 어르신!”

내통하는 궁인으로부터 넌지시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유가 크게 놀란 목소리로 두터운 갑옷을 입은 채 거사를 준비하던 동탁이 머무는 처소로 달려갔다.

다급한 손길로 문을 연 뒤,

처소 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문을 후닥닥 닫아버렸다.

“거사를 앞에 두고서 무슨 경거망동인가?”

사위의 경솔한 모습에 동탁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핀잔을 주었다.

그에 이유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지금 크, 큰일 났습니다…! 황제가 거사를 알아챈 것인지… 아니, 알아챈 것은 아니옵고… 무언가 낌새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대관절 무슨 말인가? 알아듣지 못하겠으니 천천히 말하게.”

의문에 찬 표정을 지은 동탁의 반응에 이유는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다급함을 애써 억누른 뒤에 입을 열었다.

“발해왕 유협이 진류왕으로 전봉되어… 당장 임지로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그리되면! 대장군부의 손에 옹립된 지금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발해왕을 대신 황제에 옹립하려는 우리들의 계획이 허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동탁은 내심 유변을 껄끄러워하고 있었기에, 정권을 잡게 되면 나이가 어려 꼭두각시로 삼기 좋은 유협을 옹립할 생각이었다.

황제를 갈아치우려는 동탁에게 있어,

유협이 임지로 급히 내려가게 되었다는 소식은 간신히 피워 올린 모닥불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었다.

대체 어떻게 그 유약한 황제가 거사가 벌어지게 될 것을 미리 눈치채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였다는 말인가!

만승천자의 옥좌에 오르게 되면 없는 신통력이라도 생기는 것인지,

거사까지 앞으로 한 발자국을 앞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고 말았다.

“거사를 위해 매복하는 군대를 소집하게. 화웅은 물론, 낙양 백성으로 변복하는 북강대(北羌隊)와 마강대(馬羌隊)에게도 연통을 넣게! 대장군부의 들개들은 내가 직접 설득하여 거사를 앞당기게 할 것일세!”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동탁은 이유에게 소식을 듣자마자 신속하게 반응했다.

발해왕 유협을 놓쳐선 안 된다.

지금의 황제를 폐위시키고 그 이복누이를 꼭두각시로 삼아 천하의 모든 권세를 손아귀에 쥐겠다는 계획이 자칫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서량 최고의 정예부대인 북강대와 마강대, 또한 거사를 준비하는 대장군부를 선동하여 연주로 도망치려는 작은 계집아이를 잡으려 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