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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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의 휘하들이 일으킨 폭력 소요는 낙양을 발칵 뒤집기에 충분했다.
외곽지역에 주둔하던 정원의 휘하와 그들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대장군부 병력의 충돌. 천만다행으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싸움에 휘말린 병사들이 다수 부상을 입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다수의 부상자들이 발생한 폭력 소요,
현장에 투입되었던 순우경으로부터 소요의 전말을 듣게 된 원소는 고운 얼굴을 찡그리면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과연…. 비장(飛將)이라 불리는 여포의 무력은 가히 상상 이상이군요. 만약 전면전으로 불거졌다면 큰 피해가 나올 뻔했어요.”
순우경으로부터 비장 여포가 상상을 초월하는 무력을 자랑하는 괴물임을 듣게 된 원소는 최악의 사태로 악화되지 않았음을 안도했다.
중원제일 검에 비견될 무력의 소유자.
원소는 ‘그 사람이 당시 현장에 없었던 게 다행이다.’ 라며 남몰래 생각했다.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하는 그녀답지 않은 매우 사적인 감상이었다.
“감히 대장군부에게 주먹질이라니! 당장 그 비루한 출신의 촌년을 저잣거리에 꿇린 뒤에 마땅히 목을 쳐야 하지 않겠나!”
허유가 모욕감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감히 병주의 촌년 따위가,
한나라 황실과 조정의 명령을 받들고 있는 대장군부에게 적의를 가했음에 분노했다.
대장군부와 정원군의 양자 충돌로 상부에 보고하였으나, 사실 대장군부가 일방적으로 당한 셈이었다. 여포와 그 수하들에게 얻어맞고 들 것에 실려 나간 병사들만 하더라도 수십 명에 달할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예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대장군부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은 물론, 대장군의 시살 이후로 크게 꺾이고 있는 장졸들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줄 게 분명해요.”
“본초! 그럼 이대로 덮어두자는 말인가!”
“이미 황실과 조정에 양자 충돌로 인한 폭력 소요로 보고했어요.”
원소는 조조와 상의하여 정원군과의 사태를 ‘양자 충돌’ 로 포장하여 보고했다.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게 알려지면,
낙양의 대장군부는 13주 전역에 웃음거리로 기록될 것이다.
대장군 하진이 십상시 일파에게 시살되는 것을 미처 막지 못했던 대장군부로선 더 이상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원소는 대장군부와 정원군, 양자가 합의하여 사건이 확산되지 않도록 은혜하기로 결정했다.
“여포….”
감히 중원제일 검에 비견되는 여성 장수,
무맹도위 정원의 휘하에 뛰어난 장수가 있음을 알게 된 원소는 그녀의 이름을 되뇌면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게다가 여포는 무맹도위의 수양딸이예요. 괜히 건드려봤자… 지금으로선 좋을 게 없어요.”
정원은 한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기병군단을 보유한 병주의 군벌이다.
병주목 동탁과 자주 비견되며,
수십 년 동안 변방에서 오랑캐와 도적 떼들과 싸우면서 용맹과 무력을 떨친 용장(勇將)으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사납기로 유명한 북방 오랑캐들을 상대로 단 한 번의 패주로 없다고 기록되고 있는 병주 기병대는 원소조차 두려워하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또한, 북방 오랑캐들이 언제 만리장성을 내려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한나라로선 필요한 전력이기도 했다.
‘근심거리 중 하나인 정원을 처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지만…, 정원이 없으면 흉노와 선비, 오환족을 막을 방패가 없어지게 되니….’
병주의 붉은 늑대.
정원은 무례하고 오만하며, 포악한 성정을 가진 야심가였지만 수십 년 동안 혼란스러웠던 북방을 안정시켰던 영웅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소는 사건을 애써 은폐하면서까지 정원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맹덕은 어떤가요?”
“당연히 가만히 있겠지. 그 녀석이 감히 우리들의 결정에 토를 달 수나 있겠나.”
원소의 물음에 허유는 조조따위가 이견을 제기할 수나 있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본초.”
장지문이 열리면서 한 남성이 들어왔다.
봉기.
남양봉씨(南陽逢氏) 가문의 유자(儒者)이며,
허유와 함께 원소를 위해 원소를 섬기고 있는 측근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한 탐욕스러운 성품의 허유와는 달리, 진심으로 견마지로를 다해 원소를 섬기는 참모였다.
“대장군부의 이름으로 가덕전에 상소문을 전달하였으나… 아마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 같네.”
“제가 일러준 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소문에 상세히 적었겠죠?”
“무, 물론일세!”
날카롭게 눈을 뜨면서 묻는 원소의 모습에 봉기는 순간 당황하였으나, 한 점의 거짓 없이 사실을 고하였다.
상소문을 제대로 전달한 게 확실했다.
그에 원소는 제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제대로 일이 진행되는 게 없네요. 내일 직접 가덕전으로 가 태후를 뵙고 윤허를 구해야겠어요.”
온갖 부정부패와 가렴주구를 벌이면서 수십 년 동안 십상시들이 축적해온 막대한 재산들.
조조와 함께 십상시의 정변을 진압했던 원소는 환관들이 불법으로 축적했던 모든 재산을 압류하여 국고에 환속시켰다. 보유한 땅과 저택은 물론, 노비들까지 모두 팔아 텅 빈 국고를 가득 채웠다.
황건적의 난이 시작된 이후,
무려 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봉급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장졸들에게 재물을 하사하기 위함이었다.
“국고를 열지 않겠다니! 수년 동안 밀린 중앙군 장졸들의 봉급을 지급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했을 텐데!”
항상 현명하고 우아한 모습을 보이던 금발의 미녀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황제를 대신하여 정사를 운영하는 하태후에게 몇 번이고 상소문을 올려 국고를 열 것을 제안 했다.
그러나
조조와 원소가 권력을 쟁탈하려는 야심가임을 직감한 하태후는 필시 국고의 재물들을 이용하여 중앙군을 지배하려는 간계라며, 원소의 상소문을 계속해서 되돌리고 있었다.
‘대장군을 잃은 이후, 하태후의 총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기초적인 사리 분별조차 못 하는 폐인이 되어 버릴 줄이야.’
수년 동안 봉급을 지급받지 못한 중앙군 장졸들의 불만은 가히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올해에 쌀 한 톨도 받지 못한 부대도 있으며,
부대에서 도망친 탈영병이 도적 떼에 합류하는 경우 또한 적지 않게 발생했다.
지금까지는 대장군 하진이 장졸들을 다독이면서 불만을 계속 억눌러왔으나, 하진이 사망하게 되면서 억누를 수 없어진 중앙군 장졸들의 불만은 머지 않아 가을 산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게 될 것이었다.
* * *
비장(飛將) 여포는 폭력 소요를 일으킨 죄를 물어 100대의 장형(杖刑)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장형이 집행되진 않았다.
무맹도위 정원은 정전에서 돌아오자마자 제멋대로 소란을 벌인 여포에게 격앙된 모습을 보였으나, 휘하 무관들이 모두 여포를 두둔하면서 대신 죄를 받기를 청했기 때문이다.
“비장께서는 역시 대단하십니다!”
“지금쯤 저 오만한 낙양 놈들은 이불 밑에서 벌벌 떨고 있을 겁니다!”
병주 출신의 무관들이 껄껄 웃음을 터트리면서 여포의 활약상을 크게 자랑했다.
다수의 적들에 맞서 주먹을 휘두르던 모습,
용맹하고 우직한 성품으로 유명한 병주 출신의 장졸들은 그런 여포의 모습을 크게 존경했다.
북방 늑대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늑대. 언젠가 붉은 늑대를 쓰러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할 우두머리 늑대가 바로 여포였다.
“봉선 님, 절대로 밖에 나가시면 안 됩니다. 명목상으로는 장형 100대를 맞으신 상태니까요.”
“알았어, 알았다고.”
장료가 매서운 눈길을 보내자 여포는 못 이기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반성하는 기미를 보이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장료의 창고를 받아들였다.
“비장!”
둔영의 경계를 서던 무관들 중 한 명이 급한 발걸음으로 여포와 장료에게 다가왔다.
무슨 변고라도 벌어졌는지,
대추 같은 얼굴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지금 둔영 밖에….”
“둔영 밖에 누가 왔어? 복수하겠다며 나를 당당하게 찾아올 정도로 낙양에 강단 있는 놈이 있을 리가 없는데.”
무관의 말에 여포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예, 자신을 중원제일 검이라며….”
“중원제일 검이라는 놈이 나를 찾아왔다고!!”
그에 여포가 화색을 지으면서 벽에 걸려 있던 방천화극을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
중원제일 검이 제 발로 찾아왔다.
필시 자웅을 겨루자는 이유로 찾아왔을 터.
여포는 당장에라도 달려가 중원제일 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사내와 자웅을 겨룰 것처럼 성급한 모습을 보였다. 싸움을 좋아하는 그녀다운 반응이었다.
“안 됩니다. 방금 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장료가 힐난하듯 말했다.
냉철하게 쏘아붙이는 장료의 행동에 기가 죽었는지 여포가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알긴 아는데…. 중원제일 검이 밖에 왔다고 하잖아! 여기서 그냥 물러서면 병주의 수치라고!”
“당장의 수치와 모욕을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군자의 도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군자가 아닌데….”
“아무튼 절대로 안 됩니다.”
결코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장료의 모습에, 잠시 고민하던 모습을 보이던 여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얼굴만이라도! 얼굴만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나중에 싸우게 될 적수라면 그 얼굴이라도 봐두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그에 장료는 “왜 중원제일 검과의 싸움을 필정으로 정하시는 겁니까.” 라고 중얼거렸다.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성급함에 찬 여포의 모습에 장료는 우려를 금치 못했다.
알고 있다. 중원제일 검으로 무명을 떨치게 된 사내가 나타났을 때, 병주의 비장이 얼마나 큰 관심을 보였는지. 자신 또한 무도를 숭상하는 무인이었기에, 호승심에서 비롯된 여포의 열망과 욕심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얼굴만 보는 겁니다.”
장료는 결국 마지못해 허락했다.
어차피 자신이 만류한다고 한들,
필시 여포는 중원제일 검과 어떻게든 싸우려 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당연하지! 나는 약속은 지키거든!”
장료의 허락을 받아 낸 여포는 방천화극을 굳게 쥐면서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포가 장료와 함께 둔문(屯門)으로 향했다.
방천화극을 높게 치켜든 채, 좌우에 무관들을 대동하고서 자신을 중원제일 검이라고 밝힌 사내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여포의 모습을 포착한 남성은 앞을 가로막던 함진영 병사들을 칼등을 내리쳐 단숨에 쓰러트린 뒤, 둔영 안으로 난입하면서 여포에게 검을 휘둘렀다.
쩌어엉!
빠르게 내리치는 칼날.
그를 본 여포는 본능적으로 방천화극을 들어 검을 막았다.
‘아니, 무슨 힘이…. 기습이었다고는 해도, 내가 힘에서 밀렸다고…?’
휘두른 검을 막아 냈으나,
방천화극을 든 여포는 검에 실린 괴력을 이겨 내지 못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고 말았다.
손을 타고 흐르는 통증.
실로 위협적인 괴력이다.
아니, 무엇보다도…
검을 휘두름에 있어 조금의 미숙함도, 군더더기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자랑했다.
“감히 내 주군을 욕보인 것에 대한 복수를 하러 왔다, 병주 비장.”
시퍼런 검광을 흘리는 칼날을 든 이성휘가 날카로운 칼끝을 여포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그에 여포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환희를 느끼면서 험악한 미소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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