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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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은 되도록 온 건한 인상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관복으로 갈아입은 채 조정에 입조하였다.
반면 정원은 어떠한가?
그는 붉은 투구를 옆구리에 멘 채,
붉은 갑옷을 입은 상태로 당당한 걸음과 함께 정전(正殿)에 모습을 드러냈다.
당장에라도 전쟁터에 출진할 것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위압을 발산하는 무맹도위 정원의 모습에 황제는 물론, 조정대신들 또한 긴장된 기색으로 포악한 붉은 늑대를 바라보았다.
“폐하! 소장, 무맹도위 정원이 감히 황상 폐하를 알현하나이다!!”
하늘에 쩌렁쩌렁 울리는 우레와 같은 목소리와 함께 정원이 유변의 앞에 부복하였다.
다른 장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쪽 무릎을 꿇은 뒤, 두 손으로 예를 취하면서 황제를 향해 만세삼창을 불렀다.
병주 출신의 장수들로서는 충성을 보이기 위한 행위였겠으나, 낙양의 조정대신들에게는 그저 변방 장수들이 황제와 문무 신료들 앞에서 무례와 위세를 범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법에 어두운 변방 출신이라고는 하나, 이리도 무도할 줄이야…!’
‘갑옷을 입은 채로 정전에 들어오다니. 한나라의 대장군이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이군!’
갑옷을 입고 조정에 들어오는 경우는 전쟁에서 크게 이긴 개선장군이거나, 국가의 사직을 위태롭게 할 정도의 전쟁이 발발하였을 경우에 한해서였다.
물론 엄격히 금지된 것은 아니나….
권위와 위압감을 조성할 목적으로 갑옷을 입은 채로 정전에 들어온 정원의 행동은 실로 무례하며, 또한 파렴치한 행위였다.
“낙양의 변란 소식을 듣고도 국경의 일이 다망하여 황상 폐하를 보필하지 못한 소신의 불충을 용서하시옵소서! 감히 불충의 대가라고 하기엔 황송하오나…, 병주의 충용무쌍한 소장의 군대가 북방을 어지럽히고 황실과 조정을 위협했던 도적 무리들의 수급을 베어왔사옵니다!”
정원은 흑산적과 백파적의 수급들을 가득 담은 수십 대의 수레들을 황실과 조정에 전리품으로 바치겠다며, 병주 군단의 무쌍(無雙)과도 같은 전력을 만천하에 자랑했다.
이 장건양이 있는 한,
결코 북방 일대는 오랑캐와 도적 떼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병주 군단의 위용을 자랑함과 동시에 북방 전선의 총지휘관으로 자신이 바로 그 적임자라는 것을 특히 강조했다.
‘더 높은 관위(官位)를 내려달란 말이로군.’
‘십상시 무리가 낙양에서 정변을 일으켰을 때는 가만히 좌시하고 있더니, 이제야 뒤늦게 나타나서 벼슬을 올려달라며 위세를 떨치는 꼴이라니!’
자기 용맹과 무명을 떠벌리는 정원의 모습이 이어질 때마다 조정대신들의 얼굴에 분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예법에 어둡다고는 하나,
실로 무뢰배와 같은 행동이 아닌가!
심지어 갑옷차림으로 조정에 입조하여 군력을 과시하는 모습은 실로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 이를 때 없었다.
‘용군(勇軍)의 용맹함과 무군(武軍)의 무략을 떨쳤다는 평가는 결코 허언이 아니지만… 왜 여포한테 뒤통수를 맞고 목이 잘리는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했는지 알겠군.’
황제 유변의 측근에 선 채,
어림군 무관들과 함께 황제와 태후의 호위를 서고 있던 이성휘가 정원에 대해 짧게 평가했다.
평가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야심을 숨길 줄도,
야욕을 참을 줄도 모르는 위인이었기 때문이다.
조정 내부에 흐르기 시작한 불온한 공기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과 부하들의 용맹과 활약을 떠벌리기 바쁜 정원의 모습은 결코 영웅이 될 수 없는 필부(匹夫)의 작태에 불과했다.
‘차라리 머저리 같은 모습을 연기했어야지.’
하지만 정원은 산더미처럼 많은 흑산적과 백파적의 수급들을 황실과 조정에 전리품으로 진상함으로서 자신이 중앙 세력을 위협할 정도의 전력을 가진 위험분자임을 스스로 증명해 버렸다.
제발 나를 견제해 달라는,
감시와 경계를 해 달라고 호소하듯이,
황실과 조정을 단숨에 공포와 두려움에 빠트렸다.
‘그나저나 왜 아무 말도 없지?’
이성휘가 고개를 살짝 돌려 유변이 앉은 옥좌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리에 앉아 있던 하태후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정사를 이끌었던 모습과는 매우 다른,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 소극적인 모습이었다.
장작불에 타다가 남은 잉걸불처럼,
연약한 열기 밖에 남지 않은 잔불이 연상될 정도의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게 사실인가?”
무맹도위 정원의 자기주장이 마치 일장 연설처럼 이어지고 있던 중,
내관 한 명이 하남윤 왕윤에게 다가왔다.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전달했다. 내관으로부터 전언을 듣게 된 왕윤은 두 눈을 크게 뜨면서 놀라움에 찬 표정을 지었다.
“폐하!”
그리고 정원의 말을 끊어내듯,
왕윤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황제와 태후에게 예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낙양 외곽에서…, 대장군부 병력과 무맹도위 휘하의 병력 간의 다툼으로 인한 소요(騷擾)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왕윤의 보고에 유변이 크게 놀란 반응을 보이면서 정원에게 시선을 향했다.
다른 조정대신들 또한,
병주에서 온 병력이 낙양 외곽에서 소요를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는 정원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해명과 해답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들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된 정원은 고개를 돌려 휘하 장수들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의논하더니, 얼굴을 찌푸린 그들의 입에서 ‘여포’ 라는 이름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다.
* * *
병주(并州) 오원군(五原郡) 출신인 여포는 전우들을 중시하고 남에게 괄시받는 것을 싫어하는, 맹장의 전형적인 성품을 가진 여성이었다.
효호(虓虎)의 용맹과 무쌍의 기개를 가졌으며,
전쟁에서는 항상 선두에 서서 적의 예봉을 꺾었으므로 가히 선전무전(善戰無前: 싸움에 특출하여 앞을 가로막는 자가 없음.)의 무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병주 출신의 무장들 사이에서 크게 유명했다.
“낙양에서 편안 하게 살면서 살이나 찌운 주제에…, 감히 우리 병주인들을 업신여겨?”
야차(夜叉)처럼 변한 금발의 여성이 뛰어들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외마디의 비명과 함께,
여포를 따라 뛰쳐나온 병주 병사들에 의해 일대에 포위망을 형성했던 대장군부 장졸들이 구타를 당하기 시작했다.
둔기를 휘두르거나 주먹을 내지르는 등, 목숨을 빼앗는 병장기가 동원되진 않았지만 병주 출신의 병사들이 사나운 용맹을 떨친 탓에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컥! 컥컥컥!!”
여포의 손에 목이 단단히 잡혀 버린 남성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였다.
목을 붙잡은 손길을 쳐 내려 했으나.
두 손으로 힘껏 잡았음에도 목덜미를 낚아챈 여포의 손아귀를 뿌리칠 순 없었다.
이윽고 여포가 팔을 내지르자 목덜미가 잡혔던 무관이 저 멀리 내팽개쳐지면서 구석에 위치한 기물을 부순 뒤에 바닥에 쓰러졌다.
건장한 체격의 성인 남성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서 내던지는 여포의 괴력에 조조군 병사들은 입을 쩍 벌린 채로 경악을 토해냈다.
“봉선 님, 상대는 대장군부입니다!”
달려들던 병사를 발로 차서 쓰러트린 장료가 여포에게 다가와 소리쳤다.
그에 여포가 이를 드러냈다.
“문원도 만만찮은데.”
“저야 당연히… 어떤 결정을 내리시든 간에 당연히 봉선 님을 따를 뿐이니까요.”
“고마워, 문원.”
제멋대로 날뛸 뿐인 자기 행동에 물러서지 않고 동조해주는 장료의 조력에, 여포가 사나운 미소를 지으면서 감사를 전했다.
“빌어먹을 병주 촌놈들이!”
“방울 없는 환관에게 놀아난 새끼들 주제에!”
본격적으로 시작된 주먹다짐.
기물을 힘껏 던지거나 돌멩이를 들어 상대의 머리에 내리찍는 등,
더욱 치열한 난전이 펼쳐졌다.
“저 자가 바로 여포인가?”
멀리서 소요를 지켜보던 조조가 주먹을 휘두르면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포를 보며 물었다.
금발을 휘날리면서 날뛰는 여걸,
가히 투귀(鬪鬼)에 가까운 난폭함을 떨치면서 10여 명이 넘는 병사들을 때려눕히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주먹이 아닌, 실제 무기를 사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여포의 가공할 정도의 박투술을 지켜본 조조는 병주의 비장이라 불리는 여포에 관련된 무명들이 결코 허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저 호랑이를 잡기 위해선 극(戟)과 쇠그물, 무쇠로 만든 사슬이… 그리고 족히 100명의 병사들이 필요하겠군.”
그야말로 일당백,
단신으로 백 명의 적을 대적한다는 괴물임이 틀림없었다.
“소요를 진압해라.”
조조가 명령했다.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관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멈춰라!”
“감히 황상 폐하께서 계신 낙양에서 무슨 대역무도한 짓이냐!”
더 이상의 소요를 방관할 수 없었는지,
조조군이 창검을 뽑아 들면서 일방적인 승기를 점하던 병주 출신의 병사들을 위협했다.
그에 여포는 코웃음을 친 뒤,
장료와 고순을 대동한 채로 전면에 섰다. 또한 낙양 병사들을 때려눕혔던 병주 무관들 또한 여포의 뒤에 서면서 위세를 떨쳤다.
“싸움을 먼저 건 것은 너희들이지. 지금껏 변방에서 목숨을 바치면서 싸워온 우리를 의심해서 감시병을 배치시켜? 배짱 좋네, 우리들한테 싸움을 걸다니. 우리 병주인들은 절대로 싸움을 피하지 않거든.”
맹수가 그늘에 숨어 두 눈을 번뜩이듯,
여포가 살벌한 위압감을 드러내면서 낙양 장졸들을 위협했다.
병력이 크게 열세였음에도,
자신을 일당백의 전사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투기를 떨침에 있어 일말의 두려움조차 없었다. 여포의 그런 당당한 기세에 놀라 주춤한 것은 오히려 다수의 병력을 자랑하는 대장군부 쪽이었다.
“봉선 님.”
고순이 방천화극을 내밀었다.
그에 여포는 고순에게 방천화극을 건네받고는 창끝으로 흙바닥을 힘껏 내리찍었다.
우레가 바닥에 내리친 듯했다.
흙먼지가 가득 일면서 지면이 한순간 흔들렸다. 그 괴력에 놀란 대장군부 병사들은 여포를 미녀의 탈을 쓴 괴물로 여기기 시작했다.
“당장 저 비실비실한 군사들을 물려. 다음은 애들 싸움 같은 주먹다짐이 아니라… 진짜로 피를 보게 될 테니.”
붉게 물든 동공이 번뜩이면서 경고하는 여포의 모습에 조조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는지 얼굴을 찡그리는 변화를 보였다.
그야말로 짐승이다.
본능과 직감에 따라 행동할 뿐인 짐승.
제정신이었다면 감히 대장군부 장졸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광기 어린 짓은 저지르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런 무대포 같은 성격이었음에도 병주 출신의 병사들은 그녀를 우두머리로 섬기면서 뒤를 함께하고 있었다.
필시 그녀의 난폭하고 위험한 용맹에 매료된 것이리라.
“건방을 떠는 것도 지금뿐이예요.”
살의에 찬 눈빛으로 조조를 노려보는 여포의 살벌한 행동에, 조홍이 팔을 뻗으면서 언니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제 곧 중원제일 검이 올 테니까!”
“그래, 중원제일 검! 그 녀석이 있었지! 하하핫! 서로의 무명과 명성을 걸고 마땅히 무인들끼리 사생결단을 치러봐야지!”
조홍의 외침에 여포가 이를 드러내면서 난폭한 환희를 드러냈다.
중원제일 검!
그래, 대장군부에 그 녀석이 있었다.
낙양에서 벌어진 두 번의 큰 변란들을 모두 진압한 것은 물론, 뛰어난 칼솜씨로 유명했던 사예주의 검객들을 모조리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 버린 절예(絶藝)의 검사.
그와 자웅을 겨루고 싶어,
중원제일 검이라는 무명을 빼앗고 싶어 이 사예주까지 온 게 아니었던가.
이제 곧 중원제일 검이 올 것이라는 조홍의 경고에, 여포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크게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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