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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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이리가 온다,
이성휘는 올가미와 쇠그물을 준비하면서 사냥을 준비하는 사냥꾼의 심정으로 어림군(御臨軍)을 훈련시키면서 때를 기다렸다.
조조와 원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들 또한 병주목 동탁과 무맹도위 정원이 큰 위협이 될 것이라 예상하였기에 예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작금에 당면한 문제들 중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대장군 하진의 충직한 심복이었던 부곡장(部曲長) 오광과 점군사마(點軍司馬) 진진일세.”
흑발의 여인이 고운 얼굴을 찌푸리면서 근심을 드러냈다.
대장군을 보필했던 용맹한 양두마차.
하진을 위해 대장군부의 수많은 정적들을 제거해온 비장(飛將), 오광.
대장군 직속의 감군(監軍)을 이끌면서 대장군부 휘하의 병마들의 통솔하고 감찰했던 숙장(宿將), 진진.
그들은 필시 대장군의 암살에 십상시와 내통한 하태후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며, 한나라 황실의 최고 어른이자 한나라의 섭정이었던 하태후를 숙청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국문(鞠問)에서 대장군을 북궁 성찬문으로 유인한 범인은 십상시의 사주를 받은 가덕전의 궁녀가 벌인 단독소행임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부곡장과 점군사마는 어떻게든 자신이 모셨던 주군의 복수를 철저하게 하고 싶을 것일세.”
“맹목적인 충성심이라는 게 무섭군요.”
“그러게 말이네.”
이성휘의 말에 그리 답한 조조는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헝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병주의 늑대와 양주의 이리,
이제 곧 낙양 조정에 입조할 두 맹수들을 견제해야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내부의 적들까지 경계해야 한다니….
만인지상에서 군림했던 금강야차가 쓰러지자 온갖 짐승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서원팔교위에서 떨어져 나온 금군 병력은 나와 본초가 양분하여 휘하에 뒀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장군부 휘하의 병력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여전히 요지부동일세.”
오랫동안 대장군 하진을 만인지상처럼 섬겼던 대장군부였기에 기민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누구를 섬겨야 할지,
주인을 잃은 대장군부의 낙양 군단은 계속 번민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낙양 군단은 황건적의 난을 진압함에 있어 큰 공을 세웠으나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했음은 물론, 심지어 작년부터 녹봉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재물을 풀어 저들의 마음을 구슬리는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이성휘의 제안에 조조가 고개를 저었다.
“십상시를 척결한 이후, 그들이 10여 년 동안 쌓아두었던 막대한 재산들이 국고로 귀속되었다고 하더라도 낙양의 십만 대군을 충족시키는 것은 결코 무리일세. 게다가 이미 국고로 들어간 재산을 내가 무슨 권한으로 빼내겠나.”
조정에 오랫동안 받지 못했던 녹봉을 대신 지급해주어 장졸들의 마음을 얻어낸다,
결코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그래서 조조는 조홍과 함께 조씨 가문의 창고들을 열어 대장군부 병력의 일부를 휘하에 둘 수 있었다.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음에도 제대로 된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한 장졸들이 나라에 앙심을 품고 칼을 거꾸로 잡는 경우는 흔히 있어온 일이었다.’
낙양 군단을 휘어잡을 방법이 없다.
조조와 원소는 분명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여걸들이었지만, 아직 그 명성과 영향력은 감히 하진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점점 시간이 흘러갈수록,
이성휘는 다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장군부 휘하의 낙양 군단이 기존 역사대로 낙양에 입성한 동탁의 편으로 모두 돌아서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맹덕 님.”
“말하게, 귀관.”
“낙양을 포기하고 연주(兗州)로 가서 새 터전을 잡으시는 것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말이군.”
십상시의 난을 진압하면서 휘하에 두게 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연주로 가서 새로운 세력을 결성한다.
중앙 세력을 포기하고,
연주 지역에서 거병하자는 뜻이었다.
여러 세력들이 혼재된 낙양에서 씨름을 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연주에서 거병하여 군벌이 되는 쪽이 훨씬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부관의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다. 낙양 군단을 통솔하는 것은 본초로서도 불가능할 터. 어쩌면 본초도 지금쯤 지방에서 군벌 세력으로 거병하는 쪽을 궁리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거병을 위한 병력은 충분했다.
황실과 조정에 많은 신임을 받고 있었고,
십상시의 난을 신속하게 진압하면서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명성 또한 갖추고 있었다.
반란 진압을 명분으로 연주를 기점으로 하여 세력을 쌓는다면 수많은 인재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게 되리라. 거병을 위한 초석은 이미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귀관은….”
거병을 권유하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가 문득 생각이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하지만 이내,
입을 다시 다물었다.
자신을 위해 거병을 권유한 부관에게 ‘그럼 지금까지 친분을 쌓은 발해왕과 이별하게 될 터인데, 그래도 괜찮겠는가?’ 라며 충성을 자칫 의심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물음을 던질 뻔했기 때문이다.
“거병이라….”
부관의 진언에 흑발의 여인은 고민에 찬 모습을 보이면서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예전부터 계속 거병을 준비해왔기에,
반란군 진압을 명분으로 휘하 병력을 이끌고 연주에서 거병하자는 이성휘의 제안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병력도, 대의도, 명성도 충분히 갖췄다…. 능히 연주 전역을 집어삼키고도 남겠지. 연주에서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심정으로 때를 기다리면서 병마를 조련하여…, 천하를 도모하기 위한 상경군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계획일지도 모른다.’
낙양에서는 눈치를 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을 뿐 더러, 행동에 제약을 가하는 정적들이 사방에서 도사리고 있었다.
거병(擧兵).
지금껏 마음속에 숨겨뒀던 자기 야망을 본격적으로 결행할 때가 무르익었음에 조조가 짧게 침음을 흘렸다.
“우장군.”
장지문 너머로 그림자가 짙게 깔린 것과 동시에 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조조의 물음에 무관이 대답했다.
“병주목 동탁의 행렬이 방금 홍농군(洪農郡)의 함곡관(函谷關)을 넘었다고 합니다. 이제 머지 않아 낙양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병주목 동탁이 한 발 앞서 사예주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필시 강행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겠지.
동탁의 행렬이 이제 곧 낙양에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에 조조는 물론, 이성휘 또한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양주의 이리를 맞이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 * *
지금은 철저히 고개를 숙여야 할 때였다.
십상시의 난이 진압된 작금의 상황에,
권력욕이 깊은 야심가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위였다.
기민한 상황 판단에서 비롯된 정치적 역량을 갖춘 동탁은 낙양에 들어서기 전, 부하들과 말에서 내리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정에서 파견된 관료에게 공손하게 예를 갖추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같잖은 가식과 위선을 부리더라도 지금은 조정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조정대신들의 틈에 섞여서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라도.’
오나라의 부차가 장작 위에서 잠을 자고, 월나라의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핥았다고 한다.
동탁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떠올리면서 낙양 조정과 친분을 쌓을 방법을 물색했다. 우선은 그들로부터 친분과 신임을 얻을 필요가 있었으므로.
“병주목 동탁이 황상 폐하를 뵙사옵니다!”
관복으로 갈아입은 동탁이 정전(正殿)으로 들어와 황제 유변을 알현했다.
비대한 몸집을 넙죽 엎드리면서,
이마를 바닥에 닿을 것처럼 극진한 예를 갖췄다.
범과 같은 용맹함을 갖춘 동탁의 용모를 본 유변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는지 몸을 움츠렸다.
“머나먼 만리(萬里)에서 사나운 외적들과 싸우면서 한나라의 강산을 수호해온 병주목의 활약은 익히 들어오고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 폐하께 충(忠)과 예(禮)를 다하니 실로 갸륵한 일이다.”
유변을 대신하여 섭정을 행하고 있던 하태후가 먼 길을 달려온 동탁을 상찬했다.
그에 동탁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황실과 조정의 전권을 휘두르는 인물은 여전히 저 요사스러운 여우인 것인가. 장성한 황제를 뒷전에 두고 섭정을 할 정도로 권력욕이 대단하군.’
제 분수도 모르고 감당 못 할 정도로 큰 야욕을 품은 계집.
동탁에게는 매우 이로운 상황이었다.
어수룩하고 유약하지만 선황(先皇)의 적통(嫡統)이었던 황제가 정권을 관장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대장군부의 미움을 받는 하태후가 정권을 쥐고 있는 쪽이 유리했으니까.
“낙양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먼 길을 달려왔사옵니다. 황상 폐하께서 모쪼록 무사하신 모습을 보니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비대한 몸집을 웅크리면서 절을 넙죽 하는 동탁의 모습을 본 조정대신들이 비웃음에 찬 표정을 지었다.
같잖은 술수에 불과했다.
네놈이 야욕에 찬 위인이라는 것은 이미 천하가 아는 사실이거늘.
날카로운 눈썰미를 가진 조정대신들은 이미 동탁의 얕은꾀를 간파하고 있었다.
저 가증스러운 얼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지켜보자며, 조정대신들은 황제와 태후에게 넙죽 엎드린 동탁의 모습을 힐난 섞인 눈길로 바라보았다.
‘역시 여전히 나를 경계하는군. 황보숭, 그 빌어먹을 늙은이가 황실과 조정에 고자질을 했을 테니.’
단번에 속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의심과 경계심이 많은,
낙양 조정의 무능한 늙은이들.
하지만 동탁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지금은 경멸에 찬 의심을 받을지라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권좌에 오를 기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시커먼 야심을 보이던 동탁이 순간 침음을 흘리면서 어깨를 떨었다.
날카롭게 내리꽂히는 수많은 적의,
황제를 호위하는 어림군 무관들이 허리에 검을 찬 채로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자신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강족의 용맹한 후예들로 구성된 북강대(北羌隊)와 마강대(馬羌隊)에 비견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무관들의 날카로운 적의가 향해지고 있음에 동탁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소신이 있는 한, 황실과 조정을 거스르는 이민족 무리들은 결코 국경을 넘어오지 못할 것이오니 황상께서는 부디 심려를 놓으시옵소서.”
알현이 거의 끝날 때쯤,
동탁은 정변 진압에서 크게 활약했던 두 여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노골적으로 괄시하기 위한 목적이거나,
아니면 정전에 참석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면 아래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리라.
“…….”
고개를 든 동탁은 황제가 앉은 옥좌 옆에 선 어림군의 총사(總司)와 시선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다.
십만 대군을 아우르고 있는 서량의 영웅은 자신과 시선을 마주하는 무관이 크게 무명을 떨치고 있는 인물임을 확신했다.
* * *
서량(西涼)의 십만 대군을 아우르는 야심가로 유명한 병주목 동탁이 황제와 태후, 조정대신들이 소집된 정전에서 매우 정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낙양에 입성하기 전에는 말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걸어왔음은 물론, 또한 마중을 나온 조정신료에게 깍듯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과연 이리답게 난폭하면서도 교활했다. 처신에 능하다고 해야 할까. 뻗어야 할 때와 굽힐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교웅(狡雄)의 모습을 보였다.
“과연 분별과 이치에 능하다는 평가가 허언이 아니었군.”
조조는 동탁을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자기 천하를 방해할지도 모르는 적수라고 정의 내렸다.
새로운 변수이자, 돌발적인 위협이다.
난폭함과 교활함을 두루 갖춘 이리가 낙양에 들어온 것이었다.
“맹덕!”
동탁의 출현을 경계하면서 지략을 준비하려는 조조가 있는 집무실로 하후돈이 성급한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충격적인 급보를 접했는지, 항상 씩씩한 용맹이 넘쳐흐르던 얼굴에 급박함이 감돌고 있었다.
“하내군(河內郡)에서 급보가 들어왔어! 정원, 이 미친 새끼가 수천 기에 이르는 기병군단을 이끌고 방금 하내군에 입성했다고 하더라!!”
말이 좋아 입성이지,
폭력을 겸비한 점령에 가까웠다.
중앙 조정에 아무런 보고도 없이 병마를 움직인 것만으로도 경악할 만한 일인데, 수천 기에 달하는 기병군단을 이끌고 낙양이 위치한 사예주 일대를 들이친 것이었다.
“병주의 비장(飛將), 여포가 이끄는 수천 기의 기병대가 하내군에 무단으로 입성한 것으로도 모자라 하내태수의 치소까지 점거했단 말인가.”
하후돈에 이어 집무실에 모습을 보인 무관으로부터 추가적인 정보를 얻게 된 조조는 짧게 탄식하면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대체 무슨 속셈이지?
도저히 그 속셈이 느껴지지 않는,
그저 폭력적일 뿐인 단순 무식한 정원의 군사행동에 조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군사를 동원하여 하내군을 강제로 점령해 버린 정원의 행동은 철딱서니 없는 아이가 자기 힘자랑을 하려고 동네 장독대들을 죄다 부수고 다니는, 그런 멍청한 난봉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한순간의 허세를 위해 한나라 전역을 적으로 돌려 버리다니.’
교활한 이리를 보았기 때문일까,
호랑이가 죽었다고 해서 자신이 벌써 산군이라도 된 줄 아는 늑대의 행위가 너무도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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