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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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황실과 조정을 수호하는 절대 권력의 거두였던 금강야차(金剛夜叉), 대장군 하진의 죽음은 십상시로부터 빼앗은 부와 권력을 독점했던 남양하씨(南陽何氏) 가문의 천하를 붕괴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금강야차가 사라진 낙양,
변방에서 야심을 불태우던 군벌들이 낙양에 손아귀를 뻗으려 함은 당연했다.
-대장군 하진이 죽었다!
-낙양의 모든 권력은 무주공산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시커먼 야심으로 뱃속에 채운 지방 군벌들 중에서 가장 먼저 그 야심을 행동에 옮긴 것은 서량(西涼)의 병주목 동탁과 병주(并州)의 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이었다.
“십상시들의 반란이 진압되었단 말인가!”
십상시들이 거병하여 북궁 성찬문에서 대장군 하진을 참살하고 궁궐을 강제로 점령했다.
동생인 봉거도위(奉車都尉) 동민이 보낸 전서를 통해 낙양의 정변 소식을 듣게 된 동탁은 서량기병대를 동원하여 정변 진압을 명분으로 낙양을 급습하려 했다.
하지만
조조와 원소가 이끄는 금군 병력에 의해 반란이 조기에 진압되면서 그 확실한 명분을 잃게 되었다.
“계집년들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적절히 잠재울 수 있을 리 없다! 이 동중영이 황실과 조정을 보필하여 혼란을 잠재우겠다!”
“안 됩니다, 어르신!”
동탁의 난폭한 호령에 두 팔을 뻗으면서 제지한 사람은 그의 사위이자, 모사였던 이유였다.
메기처럼 수염을 기른 중년남성이 입을 열었다.
“이미 십상시들의 정변은 진압되었고, 진압에서 활약했던 무장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비록 대장군 하진이 시살 당했으나…, 여전히 낙양의 대장군부는 건재합니다.”
정변 진압으로 명분이 사라졌음은 물론,
대장군 하진이 두고 떠난 대장군부의 세력 또한 여전히 막강했다.
비록 우두머리를 잃었으나 그 몸통이 건재하니, 여전히 대장군부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집단이었다.
“주군, 저희에게 맡겨 주신다면 병마를 이끌고 낙양을 쓸어 버리겠습니다!”
“지금에 와서 무엇을 망설이겠습니까? 자칫 병주의 늙은 이리가 먼저 선수를 칠지도 모릅니다!”
이각과 곽사,
서량의 맹장들이 크게 소리쳤다.
다른 장수들 또한 서량의 용맹무쌍한 십만 대군이 건재한데 무엇을 망설이겠냐며, 당장 낙양을 공격할 것을 강력하게 진언했다.
‘빌어먹을…. 적어도 사흘만, 아니 이틀만 더 버텼더라면…! 하등 쓸모없는 놈들 같으니라고!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던 대의명분이 이렇게 허무하게 날아간단 말인가!’
흑산적 토벌을 위해 십만 대군을 집결시켰다는 확실한 명분이 있었다.
십상시들의 정변을 진압하기 위해 낙양으로 달려왔다는 대의 또한 있었다.
그러나 그 대의명분은….
조조와 원소, 교활한 불여우 같은 것들이 십상시의 정변을 속전속결로 반나절 만에 진압하면서 성난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문우의 말이 옳다. 우리는 대의명분을 잃었다. 대의명분을 잃은 군대는 곧 죽은 군대와 같으니, 섣부른 군사행동은 도리어 적을 이롭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눈앞에서 두 불여우들에게 기회를 빼앗겼음에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동탁이었으나, 이윽고 침통에 섞인 한숨을 토해내면서 이유의 의견에 손을 들어 주었다.
동탁은 기민하였으며,
상황과 사태를 살피는 눈치 또한 빨랐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낙양과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면 필시 패배하게 될 것이라고. 십만 대군을 이끌고 거병하는 순간, 난신적자(亂臣賊子)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면서 천하의 모든 세력들에게 노려지게 되리라.
‘낙양을 공격하여 황제를 손에 넣었어야 했다. 내게 명분이 없다. 대의명분을 잃은 이상, 나는 다시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황건적을 진압하던 그날로 다시 돌아가서,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권력다툼에서 패배한 낙양 정권의 권력자가 자신을 불러줄 때까지.
상경군(上京軍)의 대의명분이 다시금 품에 날아들 때까지 황실과 조정에 충신의 면모를 보이면서 야심을 숨겨야 했다.
“…조정에 입조하여 폐하를 알현하겠다.”
“주군?!”
“궁궐에 큰 변란이 벌어졌는데 어찌한나라의 충신으로서 가만히 부임지(赴任地)에 발 뻗고 있을 수 있겠느냐?”
동탁의 대답에 이각은 물론, 다른 휘하 장수들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옛적부터 역천(逆天)을 맹세했다.
무능하고 부패한 황실과 조정을 뒤엎어 버리고 서량인들만의 천하를 열겠다고.
동탁 휘하의 장졸들 중에서 한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거친 변방에서 사나운 외적들과 싸울 때마다, 변변찮은 지원조차도 해주지 않는 황실과 조정에 진작 마음을 돌린 채였다.
갑자기 이제 와서 충신 운운하는 동탁의 말에 장수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것은 당연했다.
“우선 우리는 낙양 정권의 의심을 걷어내고 저들의 동태를 살필 필요가 있네. 주군께서 먼저 저들에게 입조를 요청한다면, 저들은 필시 주군에게 향하던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걸세.”
“하오나 주군께서…, 위험에 처하시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의 말에 화웅이 대답했다.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미는 꼴이다.
지금까지 낙양 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견제를 받아왔던가. 필시 놈들은 주군에게 온갖 삿된 짓들을 벌일 것이 분명했다.
“그건 걱정 하지 마시게. 내게 책(策)이 있으니.”
우려를 표시하는 화웅과 휘하 장수들의 반응을 본 이유가 자신감에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 *
낙양 조정은 병주목 동탁을 잠재적인 위협, 심상찮은 야욕을 가진 인물로 규정하고 있었다.
동탁은 서량에서 무려 십만에 달하는 대군을 보유하는 실권자였으며, 또한 황실과 조정의 명령을 거부하고 독단적인 군사행동을 매번 벌이면서 낙양에 위태로운 공포를 전가했다.
“동탁, 그놈이 어찌하여 갑자기 입조를 요청해왔단 말이오?”
“병주목(并州牧)에 임명하여 부임지를 병주(并州)로 옮기려 했음에도, 대역무도하게 되도 않는 변명들을 늘어놓으면서 거부했던 놈이 아니었소이까.”
당시 좌장군이었던 황보숭에게 서량의 군권을 모두 일임하고 새 부임지인 병주로 보내버리려 했으나, 동탁은 조정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동탁이 야심가였음을 알게 된 조정은,
장차 동탁이 한나라의 역적이 될 것이라며 경각심을 심게 되었다.
“필시 입조를 명분으로 황실과 조정의 동태를 살피러 오는 것이 분명하지요.”
조정대신들과 동탁의 입조 요청에 대하여 의논하던 전장군 원소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동탁의 속셈을 정확히 꿰뚫고,
조정에 입조를 요청한 의도가 불온한 이유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맹도위 정원 또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원소의 말에 조정대신들이 그런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병주목 동탁과 무맹도위 정원.
그들은 황실과 조정의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는 불온한 모습을 몇 차례 보인 바가 있으며, 또한 변방에서 강대한 군권을 거머쥐고 있었다.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 같은 그들이 산군(山君)이 죽었음을 알고 주인 노릇을 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이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입조를 요청한 것이라면, 그를 거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상서복야(尙書僕射) 사손서가 물었다.
그에 원소가 고개를 저었다.
“동탁과 정원의 입조를 거부하면 낙양 조정이 변방의 장군들을 경계하고 불신하고 있음을 천하에 알리는 모양새로 보일 거예요.”
“그 말이 맞네.”
원소의 말에 하남윤 왕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활하고 난폭한 무리가나,
저들이 신하의 자세를 보이면서 스스로 굽히고 들어온다는 것을 막을 이유가 없었다.
“동탁과 정원이 염탐을 위해 입조를 요청하였듯이, 우리들 또한 저들의 시커먼 속내를 떠볼 기회가 아니겠는가?”
왕윤의 설명에 조정대신들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침음을 삼켰다.
여전히 동탁과 정원의 입조 요청이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구태여 요청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동탁과 정원을 조정에 불러들이기로 했다.
“필시 변방의 사나운 장졸들을 좌우에 거느리고서 낙양에 들어올 터인데….”
“그들이 부릴 포악질을 어찌 감당한단 말인가.”
족히 수백 명이 넘는 장졸들을 끌고 와 난폭한 포악질을 부릴 것이 분명했다.
그에 많은 조정대신들이 입조를 두려워했다.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는 조정대신들을 향해,
원소가 입을 열었다.
“경들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낙양을 역도의 무리들로부터 구해 낸 중원제일 검이 있지 않습니까.”
중원제일 검이 있는 한,
그들은 결코 난폭한 포악질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원소는 강한 신뢰에 찬 말로 두려움에 떨던 조정대신들을 설득했다.
* * *
낙양 조정에 입조할 것을 밝힌 정원의 말에 여포는 손을 번쩍 들면서 상경을 자원했다.
중원제일 검이 있는 낙양,
야심이 넘치는 지방 군웅들이 집결하게 될 풍운(風雲)의 수도에 가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좋다. 내 비장(飛將)의 자격으로 호위를 서거라.”
그에 무맹도위 정원은 수양딸에게 호위장을 일임했다.
입조를 결정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병주목 동탁 또한 입조를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정원은 여포의 가공할 정도의 무위를 이용하기로 했다.
‘필시 봉선의 무위에 낙양 조정은 물론, 동탁 또한 대경실색하는 모습을 보일 터.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 병주의 매서움을 보여주겠다!’
충신의 면모를 보여 낙양 조정으로부터 신임을 얻으려고 하는 동탁과는 달리, 정원은 병주 군단의 막강한 위세를 뽐낼 생각으로 가득했다.
강함과 위세를 크게 자랑한 뒤,
조정을 위협하고 겁박하여 높은 벼슬과 많은 권한을 얻어낼 요량이었다.
‘낙양을 위협할 전력이 있다! 그리고 그럴 자격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다! 공하(恐嚇)하고 협위(脅威)하여 오만한 낙양 놈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주겠다! 변방의 군인이 칼자루를 거꾸로 쥐게 된다면 어떤 끔찍한 사단이 벌어지게 될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리라!’
난폭한 야욕에 찬 정원이 늑대처럼 이를 드러내고 있을 때,
장료가 여포의 옷깃을 당겼다.
“봉선 님, 설마 중원제일 검에게 대적하실 요량이신가요?”
“당연하지!”
애타는 사람 속도 모르고,
여포는 우려에 찬 장료의 말에 당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제일(天下第一), 천하 무쌍(天下無雙)의 이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중원제일(中原第一)의 이름에 도달해야 되지 않겠어? 걱정 하지 마. 태평스러운 낙양에서 편하게 칼질이나 한 놈이 얼마나 강하겠어!”
제 가슴을 툭툭 치면서 자신감을 드러내는 여포의 모습에 장료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진짜 괜찮을까?
중원제일 검이라는 불리는 그 남성이 상상 이상으로 강하기라도 하면….
아니, 봉선 님은 중원제일 검이라고 불리는 사내가 강하면 강할 수록 더 좋아하시겠지. 오르기 어려운 난관일수록 더 의욕을 불태우시는 분이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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