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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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위(騎都尉) 이성휘가 중상시(中常侍) 장양과 조충, 상시(常侍) 단규를 참살하였다.
수괴들의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비명횡사하였음을 보여주듯 크게 일그러진 늙은 환관들의 머리가 궐문에 매달렸다.
그를 본 조정군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크게 포효를 내지르면서 정변이 진압되었음을 크게 기뻐하였다.
“뭐야, 벌써 끝났어?”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던 환관의 머리를 육중한 월도로 쪼개버린 하후돈이 고개를 들어 장양과 조충의 수급을 쳐다보았다.
내 차지가 되었어야 하는 건데….
월도를 어깨에 올린 붉은 머리카락의 여성은 내심 아쉽다는 듯 쩝, 하고 소리를 냈다.
“잔적들을 모조리 참살하라! 황실과 조정을 겁박하고 대장군을 시살한 놈들이다. 단 한 놈이라도 살려 둬선 안 된다!”
순우경이 병장기를 버리고 투항한 환관들을 모조리 참살할 것을 명령했다.
다른 부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북궁 교전에 참전한 장수들 중 환관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없었으므로, 대장군부 무장들은 환관들을 매우 철저하게 응징했다.
“사, 살려주시오!”
“이렇게 무기를 버리지 않았소?!”
“우, 우리는 그저 장양과 조충에게 넘어가 동참했을 뿐이외다!”
십상시에 가담한 환관들은 물론,
북궁에서 정변이 벌어지면서 강제로 억류되어 있었던 궁인들마저 광기 어린 사냥에 휩쓸리게 되었다.
치마를 입은 궁녀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으나, 일부 관료들은 환관과 구별되지 않아 억울하게 참살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하지만 장수들은 그를 묵인했다.
수급들이 차곡차곡 늘어날수록,
향후 논공행상에서 큰 포상을 받게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기심 때문에 억울한 희생자들이 더욱 늘어났다.
“후우….”
이성휘가 왼팔을 아래로 축 늘어뜨린 채로 가쁜 호흡을 토해냈다.
팔에서 흘러내린 피가,
손가락 끝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화살촉이 박혔던 상처가 터진 모양이다. 심상치 않은 출혈과 함께 극심한 고통이 몰려들었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참지 않으면 무심코 꼴사나운 신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무력 100이라도 결국 인간에 불과하다는 거겠지.’
그럼 대체,
항우는 정체가 뭘까.
자신에게 명확한 한계가 존재함을 확인한 이성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피를 뚝뚝 흘리는 팔을 애써 뒤로 감췄다.
“기도위 어르신께서 장양과 조충의 목을 베셨다고 하네!”
“역시 용저라고 불리시는 분이십니다!”
수다스러운 입담을 가진 무관과 병사들이 떠들썩하게 이성휘의 전공을 알렸다.
직접 현장을 목격한 자들은 물론,
넌지시 들은 자들 또한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것처럼 떠들어댔다.
“입꼬리가 귓가에 걸렸네.”
“걸리지 않았다!”
부관이 이번에도 또한 눈부신 활약을 달성하였음에 기뻐하던 조조가 사촌의 짓궂은 농담에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혹시라도 속마음이 들켰을까,
팔불출처럼 정처 없이 흔들리는 마음이 발각되었을까 노골적인 반응을 보였다.
“근데 상방감 거목이라는 놈은 대장군의 수급을 베었을 정도로 뛰어난 검술을 자랑한다지 않았나? 물론 이 하후원양에게 걸리면 일초지적도 안 되겠지만!”
“부관은 내가 아는 무관들 중에서 가장 무예가 뛰어난 인물이다. 아마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이겠지.”
조조는 이성휘를 연이어 치켜세웠다.
그리고 또한,
정변 진압의 일등 공신이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장양과 조충, 정변을 일으킨 수괴들의 목을 나란히 베었으니 응당 논공행상의 선두에 서야 마땅했다.
“음? 맹덕, 네가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아끼는 부관이 깊은 부상을 입은 모양인데?”
“뭐, 뭐라고…!”
하후돈의 말에 조조가 즉각 반응했다.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말에,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몸을 움직였다.
당장 이성휘에게 가 부상을 살피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조조를 저지하듯이 궁궐 상황을 주시하던 척후병이 다가왔다.
“효기교위, 급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조조의 물음에 척후병이 대답했다.
“호분 중랑장 원술이 지휘하는 수천 명의 군세가 동궁(東宮)을 유린한 뒤, 곧장 이쪽 북궁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원술.”
북궁 점령에 치중을 둔 나머지,
사예주 사대부와 호족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는 여남원씨의 공자 놈을 잠시 뇌리에서 젖혀두고 말았다.
원소 또한 원술이 군세를 이끌고 오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좌중 장수들을 급히 소집한 상태였다.
“원공로, 그 빌어먹을 놈이 북궁에 도착하면, 분명 지금의 판을 깨려고 하겠지.”
자신이 늦게 왔음을 인정하지 않고,
정변 진압에 활약한 바가 없음을 부정하려 들 것이며,
또한 십상시들이 일으킨 정변을 진압한 총지휘관이 환관 집안의 손녀라는 것을 철저히 깎아내리려 할 게 분명했다.
‘뒤늦게 나타난 주제에 목소리를 쩌렁쩌렁 높이는 놈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살의가 치솟는군.’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울화가 치밀 정도인데, 만약 그것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얼마나 분기가 치솟게 될까.
원술은 목에 박힌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가시 때문에 불편을 겪으면서도 손을 목구멍에 넣어서 빼낼 수가 없는…, 접시에 낀 기름때 같았다.
* * *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북궁(北宮)이 잔잔하게 끝났다고 생각될 정도로 원술의 병력이 들이닥친 동궁(東宮)은 살아있는지옥을 방불케 했다.
“환관들을 다 죽여라! 간악한 환관들을 모두 추살하여 대장군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말을 탄 기병들이 궁중을 질주하면서 손에 든 횃불을 전각에 내던졌다.
그에 궁인들이 놀라 도망쳤다.
전각에서 삽시간에 짙은 연기와 함께 뜨거운 불길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각들이 목조건물이었던 탓이다. 병사들이 횃불이 내던지자마자 불길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화재를 일으켰다.
“뭣하느냐! 어서 금은보화를 챙기지 않고!”
“어차피 환관들에게 빼앗길 재물들이 아니었느냐… 대신 보관하기 위함이다!”
원술과 의기투합하여 군대를 일으킨 사대부와 호족들 중에 재물을 탐하여 갈취하려는 무리가 적지 않았다.
의협(義俠)의 깃발을 들었으되,
깃발아래에 모인 사대부와 호족들이 모두 대의를 목적으로 군대를 일으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궐문을 넘어 동궁에 발을 들인 사대부와 호족들은 휘황찬란한 규모의 언감생심이 생긴 듯, 남몰래 병사들을 동원하여 재물을 빼돌렸다.
‘이 기회에 한몫을 단단히 잡아야지.’
‘환관들이 정변을 일으키면서 궁궐이 쑥대밭이 되었으니 발각당하는 일은 없을 터.’
한나라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었던 남양하씨 출신의 황태자가 주인으로 있었던 궁궐답게 창고들 안에 각종 진귀한 보화와 비단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사대부와 호족들이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대의를 주장했던 사대부들조차도,
두 손 가득하게 재물을 들고 나오는 병사들의 모습에 혹하게 되었는지 주변을 살피더니 은밀하게 명령을 내렸다.
“아아악!”
“이놈들! 감히 동궁에서…!”
환관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피와 살육을 즐기던 병사들이 이윽고, 뜨거운 열기를 이기지 못했는지 동궁의 궁녀마저 강제로 범해 버렸다.
백주대낮에 궁궐에서 궁녀를 강간했다.
이는 곧
십상시의 난이 단순히 정변이 아닌,
한나라의 중앙 정부가 완전히 끝장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대사건임을 의미했다.
“지금 북궁에서 교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효기교위 조조, 사례교위 원소, 하남윤 왕윤 등…, 수많은 장졸들이 십상시 일파가 웅거하고 있던 북궁을 공격하는 겁니다!”
궁궐 교전의 자세한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무관들이 돌아와 상세하게 보고했다.
그 보고를 들은 원술은,
자기 이름이 정변 진압에 큰 활약을 한 공신들의 명단에서 제외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인 내가 환관 년과 얼녀 년에게 뒤처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왕윤? 더러운 병주 출신의 늙은이가 아닌가! 정변 진압의 주인공은 이 원공로가 되어야 마땅하다! 내 당장 북궁으로 가 환관 무리들을 모조리 척살할 것이다!’
쌍심지를 켜면서 이를 빠득 갈던 원술이 말머리를 북궁으로 잡았다.
북궁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필시 십상시들의 우두머리인 장양과 조충이 북궁에 있을 터.
지금이라도 북궁으로 군사를 몰고 가 장양과 조충, 그 두 늙은이들의 목을 벤다면 이 원술의 이름은 정의로운 협자(俠者)로 만천하에 칭송받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정의와 충정의 깃발을 든 군사들이여! 지금 당장 북궁으로 진군하여 간악한 십상시 놈들을 척살하자!”
원술이 검을 높게 치켜들면서 우렁차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에 수천 명의 병력들이 움직였다.
동궁을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린 병력은 굶주림에 지친 아귀처럼, 실컷 약탈하고 불태웠음에도 여전히 부족하다는 듯 북궁을 향해진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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