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숭이 소리쳤다.
피칠갑한 괴물이 활을 맞았음을 본 살수들은 그제야 자신감을 얻었는지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처절한 칼부림이 시작되었다.
“으아아!”
“죽여라! 놈을 죽여!”
검은 복면의 검객들이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면서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그에 맞서는 피 칠갑의 무관,
금발의 여인을 지키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딘 이성휘가 검을 휘두르면서 검객들을 연이어 쓰러트렸다.
활을 맞으면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한쪽 팔을 허공에 휘둘렀다. 달려들던 검객의 두 눈에 흘러내린 핏물이 묻게 되었다.
“누, 눈이…!”
갑자기 시야가 흐려진 것에 놀란 검객이 잠시 멈칫하는 찰나,
이성휘가 날카로운 칼끝을 뻗으면서 검객의 가슴을 찔렀다.
“후우.”
가쁜 숨을 내뱉으면서 피에 절은 칼끝을 살수들에게 겨눴다.
살수들이 다시 물러났다.
밀물이 썰물로 변하듯,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던 살수들은 애써 억눌렀던 공포를 다시 떠올렸는지 뒤로 물러났다.
“젠장, 뭐 저런 놈이….”
“놈도 이제 지쳤다! 팔에 활을 맞았고 몸에 검흔까지 입었다!”
아연실색한 채 물러서는 살수들 중에 악에 받친 고함을 내지르는 살수가 있었지만 감히 달려들지는 않았다.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목숨을 던져 공격을 감행하더라도 표적에게 칼끝조차 닿지 못한 채 개죽임을 당할 뿐이라는 것을.
‘표적이 바로 눈앞에 있거늘…!’
‘저년만 죽이면 되는데…, 내 평생 저런 괴물 같은 놈은 처음이다!’
사례교위 원소의 추살에 투입된 검객들은 오랫동안 칼밥을 먹은 칼잡이였다.
그런 그들이 떨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명에게 가로막힌 채, 표적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제게 떨어지지 마십시오.”
이성휘가 활을 맞은 팔을 뻗으면서 원소의 옷깃을 당겼다.
자신에게 결코 떨어지지 말라는,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 주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위태로운 손이었지만 손아귀에 담긴 힘은 매우 억셌다. 원소는 이성휘의 손길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꼭 달라붙을 것처럼 거리를 최대한 좁혔다.
“네, 꼭 붙어 있을게요. 반드시.”
금발의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이성휘의 등을 바라보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적들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결코 흔들림이 없는 뒷모습에 안타까운 감동이 섞인 침음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원소의 대답에 이성휘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움직이면서
칼끝을 겨눈 채 막아서고 있던 살수들을 강제로 뚫어내려고 할 때,
다수의 말발굽 소리들과 함께 남성의 우렁찬 목소리가 전 너머에서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이놈들! 이 순우경이 상대해주겠다!”
우교위(右矯衛) 순우경이 이끄는 병력들이 십상시의 자객들이 들어선 송현을 급습했다.
원소를 따르는 충복들이다.
아마도 십상시가 반란을 일으켰음을 조조에게 전해 듣고서 시급히 자신들의 주군을 구하고자 병력을 움직인 듯했다.
“젠장! 관군이다!”
“이렇게 빨리 오다니….”
맹렬하게 달려드는 대장군부 병력의 모습을 본 자객들이 대경실색한 반응을 보였다.
족히 수백 명이 넘는 병력이다.
우렁찬 고함과 함께 달려드는 관군들의 용맹한 기세에 자객들은 표적을 추살하는 것을 포기하고 도주하는 것을 선택했다.
“흐아악!”
순우경의 군세를 목격한 율숭이 비명을 내지르면서 살수들과 함께 도망쳤다.
하지만 기병대의 추격을 피할 순 없었다.
결국 기병들의 날카로운 창끝에 온몸이 난자당하면서 다른 자객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원소를 구하고자 급히 군세를 몰아 송현을 급습한 순우경은 주변을 정리하여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십상시의 자객들에게 암살 위협을 당한 원소의 안위를 확인했다.
“본초, 자네 괜찮은가?!”
“저는 무사합니다. 그보다도….”
자객들에 입은 상처를 추스르던 원소가 자신을 지켜 주었던 이성휘에게 손을 뻗었다.
두 손이 핏물에 흠뻑 젖었다.
이성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칠갑한 상태였다. 그 옷깃을 잠깐 잡는 것만으로도 시뻘건 핏물에 흠뻑 젖을 정도였다.
“피, 피가…, 부상을 입었는데 어서 치료를…!”
원소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이성휘의 두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에 이성휘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과 걱정에 젖은 두 눈을 보이면서 자신에게 소리치는 원소의 모습이 크게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피가 나잖아요! 게다가 저를 대신해서 활을 맞기까지 했는데….”
섬섬옥수 같은 새하얀 손이 비린내가 진동하는 핏물에 더러워지고 있음에도 원소는 걱정스러운 손길로 이성휘의 몸을 살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절박함에 찬 원소의 모습은 이성휘를 놀라게 만들었다.
“본초 님, 분명 환관들이 지금 대장군을 도모하고 있을 겁니다. 어서 군을 이끌고 궁궐로 하셔야 합니다. 맹덕 님께서 지금 환관의 무리들을 막아서고 계시겠지만…, 아군만으로는 역부족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즉시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가도록 하죠!”
이성휘의 말에 원소는 굳센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군세를 이끌고 합류한 순우경을 불러 이성휘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결국 환관 놈들이 정변을 일으킨 모양이군…! 정변 소식을 들은 휘하 무관들이 속속히 집결하고 있으니 당장에라도 궁궐로 진격할 수 있을 걸세, 본초!”
대장군부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긴 채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십상시 세력이 대역무도한 정변을 꾀한 것으로도 모자라, 감히 한나라의 대장군마저 도모하려 들 것이라는 말에 순우경이 크게 분노하며 소리쳤다.
“당장 궁궐로 가 십상시 놈들을 도륙할 것이다!”
순우경이 일갈했다.
그에 휘하 무관들이 신속히 움직였다.
‘효기교위는 이미 십상시들의 간계를 훤히 간파하고 있었단 말인가.’
십상시 일파들이 검객들을 보내어 원소를 암살하려 할 것을 간파한 뒤, 부관인 이성휘를 보내어 원소를 구원케 함으로서 안배를 성공 시켰다.
그에 순우경은,
필시 조조가 십상시들이 정변을 일으킬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궁인들이 용저재림이라며 떠들어댄 이유가 있었군. 혼자서 저 많은 검객들을 상대했단 말인가. 사대부와 유자들의 성지로 불리는 송현을 온통 피바다로 만들어 버리다니…. 과연 중원에 맞수가 없을 정도의 용력이다! 본초가 탐낼 만한 인재로군.’
원소가 머문 정자를 중심으로 무려 30여 명이 넘는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모두 치명상을 입은 주검들로,
사예주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을 자랑하는 날랜 검객들이 한 명을 이기지 못한 채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온몸을 피 칠갑한 채 우두커니 서 있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순우경은 온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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