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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8화 (28/616)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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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목(并州牧) 동탁과 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의 군세를 낙양으로 불러들인 뒤,

모든 군단들이 일제히 북상하여 병주의 산맥지대에 터를 잡은 흑산적 무리들을 소탕해야 한다.

하진이 황제에게 강력히 출병(出兵)을 권고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버금갈 정도의 권한과 위세를 하진의 말이었기에 조정대신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를 보기 바빴다.

그렇게 침묵이 조회를 뒤덮고 있을 때,

여성의 앙칼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선황께서 붕어하시고 새 황제께서 즉위하신지 얼마 되지 않은 혼란스러운 작금의 때에 대장군은 병마(兵馬)를 동원하겠단 말인가!”

미숙한 황제를 대신하여 섭정(攝政)의 역할을 선언한 하희가 하진을 막아섰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채,

쌍심지를 켜면서 하진을 노려보았다.

무자비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출병을 막아서는 이복누이의 반대에 방금 전 유변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하진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복누이가 설마 자기 주장을 정면에서 배척해 버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소신은 그저 한나라의 백 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하여 후환이 될 북방의 위협을 제거하려는 것이옵니다. 굽이 헤아려 주시옵소서.”

“선황께서 붕어하시어 13주 전역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대규모 병력을 움직여 전쟁을 꾀하는 대장군의 저의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은가.”

“결코 아니옵니다! 부디 태후께서는 소신의 이 충정을 헤아려주시옵소서!”

조정의 여론을 휘어잡을 정도로 거침없이 위로 승천하던 하진의 위세가 주춤하게 되었다.

하진을 가로막은 인물은 그의 이복누이,

그가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기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누이가 이복오라비의 독주를 막아서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성휘의 말대로 흘러가고 있다. 황태자를 옥좌에 옹립하자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태후와 대장군이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군….’

하씨 일가의 대립.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오누이의 모습을 본 조조는 옆에 선 채 같은 광경을 바라보던 이성휘에게 시선을 향했다.

황태자를 천자에 옹립함으로서 하씨 일가의 천하를 달성했던 하희와 하진,

황실의 최고 어른이자 섭정의 권한을 거머쥐고 있는 태후와 한나라 13주의 군사권을 장악한 대장군이 모든 조정대신들이 지켜보는 면전에서 크게 반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맹덕 님.”

이성휘가 작은 목소리로 조조를 불렀다. 그에 조조의 시선이 이성휘를 향했다.

“산군(山君)들이 싸우기 시작하면 여우들이 고개를 쳐들기 마련입니다.”

“…여우라.”

조조가 중얼거렸다.

그리고 슬며시 고개를 들어 하씨 일가의 반목을 지켜보고 있는 인원들을 둘러보았다.

황제와 태후가 정전에 들어섰을 때,

그 뒤를 따랐던 환관들 중 일부 인원들이 교활함에 찬 눈을 치켜뜨면서 하씨 일가의 반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선황을 보필했던 상시(常侍)들은 아니다.

조조는 상황을 주시하는 환관들이 필시 십상시의 하수인이라는 것을 간파해냈다.

‘권욕(勸慾)에 길들여진 눈빛이다. 저런 눈빛을 가진 환관 놈은 십상시 밖에 없겠지.’

이성휘에게 들은 적 있다.

대장군부에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몰락한 십상시 무리가 하태후의 그늘 아래에 숨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날카로운 창검으로부터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하태후의 치마폭에 잠시 숨은 것일 뿐, 하씨 일가에게 빼앗긴 부와 권력을 되찾겠다는 야망을 결코 놓지 않고 있었다.

‘결국 여우들이 일어서겠군.’

조조가 말했다.

하씨 일가의 반목을 지켜본 그녀는,

교만함과 용렬함이 결국 파멸을 불러오게 되리라고 예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여우들을 사냥하겠다.’

내가 해야 될 일,

천하에 널리 명성을 떨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명확히 보였다.

* * *

이성휘가 오늘 처음으로 정전에 입조(入朝)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유협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두 손으로 입가를 폭 가린 채,

덜 익은 복숭아 같은 풋풋한 미소를 흘렸다.

갸름하게 붉어진 뺨과 초승달처럼 내걸린 미소. 자신과 악성전 궁인들을 구해 준 은인을 향한 호의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도 기쁘시옵니까?”

어린 딸을 대하듯,

크게 기뻐하는 유협의 모습에 궁녀가 후후 웃으면서 물었다.

“물론이다.”

목숨을 다해 지켜 준 은인이기에,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주었으니까.

악성전의 궁인들은 궁중에서 박대와 괄시만을 당해온 유협에게 있어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추억들이 담긴 곳.

그렇기에 소중한 추억들이 깃든 장소를 지켜 준 이성휘를, 작은 황녀는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젠가…, 만약에… 내가 자유로운 신분이 된다면, 어떻게든 은혜를 갚고 싶다.’

유협은 만약이라는 가정하면서,

언젠가 자유로운 신분이 되면 이성휘에게 고마움을 담은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목숨을 구해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여 충고까지 해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대는 나에게 황태자를…, 이제는 황상이 되신 오라비를 의지하라고 했다….’

여덟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였지만,

철이 들기 전부터 온갖 풍파와 파란들을 겪어온 유협은 매우 조숙했다.

그렇기에 알고 있다.

아무런 세력도 없는 자신이 이 살벌한 정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누군가를 반드시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하씨 일가는 믿을 수 없지만….’

모후(母后)를,

내 어머니를 살해한 끔찍한 무리들.

낳아준 친모를 살해했으며 어릴 적부터 보살펴주었던 할머니까지 교살했다.

유협이 하씨 일가를 증오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자기 소중한 것들을,

번번이 빼앗았던 자들이었기에.

어머니와 조모의 목숨을 빼앗은 것으로 모자라, 자신과 악성전 궁인들의 목숨까지도 무자비하게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오라비라면….’

직접 악성전에 행차하여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부황의 부고를 알려주었던 이복오라비.

지금도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복오라비만큼은 믿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있다. 친절하고 상냥한 면모를 보여 준 이복오라비는 원수의 자식이라는 것을, 사악한 하씨 일가의 꾐에 넘어가 언제 자신을 죽일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살아남기 위해선,

황제에 즉위한 이복오라비의 동정과 연민을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그대도 그런 의미에…, 내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겠지.’

한 줌의 권력도 가지지 못한 네가 살벌한 궁중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단 하나,

황제가 된 이복오라비를 의지하는 것뿐.

유협은 이성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곰곰이 회상하면서 결심을 굳인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궁녀에게 말했다.

“채비를 갖추어라…. 화, 황상 폐하에게….”

“예?”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

“저, 전하…?”

지금까지 결코 연관되기를 꺼려 했던,

학질을 앓는 사람처럼 하씨 일가에 대한 말만 나와도 온몸을 떨었던 황녀가 확고한결심에 찬 듯한 모습을 보였다.

“괜찮으시겠사옵니까, 전하?”

궁녀가 매우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언제든 궐문을 나설 순 있었다.

유변이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황명을 내려 대장군부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린 작은 황녀의 모습이 불안 해보였는지 궁녀는 우려가 담긴 시선으로 유협을 바라보았다.

“살기…, 위해서다.”

유협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여덟 살 어린아이가 꺼낸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냉혹함을 중얼거렸다.

체념한 듯한 황녀의 중얼거림을 들은 궁녀는 눈물을 쏟아 내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 * *

대장군 하진이 흑산적의 대대적인 토벌을 조회에서 주장했던 것은 선황과 함께 흑산적의 회유책을 펼쳤던 십상시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흑산적에 대한 여론을 움직여,

십상시에게 마지막 남은 정치적 입지마저 빼앗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흑산적 토벌전을 통해 지방 군권을 자기 발아래에 두려는 계획이기도 했다.

또한 전쟁 영웅이 되어 명성을 한껏 알리면서 자신이 황실과 조정의 충성스러운 수호자임을 한나라 13주에 널리 떨치기 위해서였다.

“설마 태후께서… 문무백관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내게 망신을 주다니…!!”

하진이 이를 빠득 갈면서 분기를 터트렸다.

감히 오라비에게 배은망덕하게,

누구 덕분에 작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는지 벌써 잊었단 말인가.

모두 내가 해준 것이다.

십상시에게 고개를 연신 굽실굽실 숙이면서 이복여동생이 황제의 후궁이 될 수 있도록 지극정성으로 도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황후, 그리고 태후의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도록 혁혁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나에게 망신을 줄 수 있단 말이냐. 이 오라비의 모든 일이 결국 하씨 가문의 천하를 위해서, 그리고 너와 조카님을 위한 이 오라비의 용단임을 어찌 모른단 말이냐!’

분하고 원통하다.

믿었던 누이에게 배신을 당했기에.

간사하기 이를 때 없는 의붓동생 하묘에게 배신을 당했자면 모를까, 지금까지 서로를 믿고 의지했던 이복누이에게 배신을 당했기에 그 상심과 분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황실의 최고 어른이면서 동시에 섭정을 맡은 태후가 반대를 외쳤다면 결국 계획이 물거품이 된 게 아닌가. 그럼 결국 계획을 백지화할 수밖에….”

“대장군.”

휘하 장군들에게 하소연하듯한숨을 깊게 토해내면서 입을 연 하진의 말에,

금발의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태후께서는 필시 십상시를 옹호하실 목적으로 대장군의 주장을 꺾을 것입니다.”

“본초, 그깟 놈들을 어째서 태후가 직접 나서서 옹호한단 말인가.”

“바로 대장군을 견제하기 함입니다.”

“나를?”

두 눈을 빛내면서 입을 연 원소의 말에,

하진은 어째서 이복누이가 자신을 견제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에 원소가 답했다.

“권력은 같은 부모를 둔 형제라고 할지라도 나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태후께서는 한나라 13주의 모든 군사권을 장악하신 대장군을 경계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비록 같은 어미를 두진 않았으나 누이를 업고 키운 게 바로 나일세.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면서 보살폈는데….”

얼토당토않은 말을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하지만 정곡이 찔린 사람처럼,

숨긴 내심을 그대로 까발려진 사람처럼 휘하 장군들 앞에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직접 태후께 환관 놈들의 척결을 아뢸 것일세. 설마 태후께서 그 더러운 환관 놈들의 편을 드시겠는가! 나와 태후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괄시와 굴욕을 놈들에게 당했는데….”

하진은 원소의 말을 철저히 부정했다.

이복누이와 반목하게 되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애써 고개를 돌리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진이 망설이고 있을 때,

견고한 유대관계를 이어 나가던 하씨 남매의 사이에 반목이 생겨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된 십상시 일파들은 어두운 그늘 아래에서 모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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