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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7화 (27/616)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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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주(并州) 태원군(太原郡) 출신인 왕윤은 지방 무관으로 등용되어 마침내 종사중랑(從事中郞) 겸 하남윤(河南郡)에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강직한 성품과 청렴함을 겸비한 노신(老臣).

왕윤은 십상시의 부패와 무능을 힐난하는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소신 있는 관료였다.

이를 크게 여긴 하진이 환관들의 탄핵으로 사예주를 유랑하던 왕윤을 지금의 자리에 임명함으로서 환관 세력의 척결을 위한 패로 삼고 있었다.

“융통성 없는 여식을 무사히 저택까지 데려다줘 고맙네. 통금시간이 다 되었으니 내일 궐문이 열리거든 그때 가라고 일러두었거늘….”

왕윤은 나라에서 지정한 통금시간을 어긴 수양딸을 탓하면서도,

딸의 효심이 기특했는지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헌데 설마 궁중에서 명성이 자자한 자네가 내 딸을 저택까지 인솔해 주다니. 참 묘한 일이군.”

왕윤이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자기 수양딸을 저택까지 인솔한 이성휘를 의미심장한 눈길로 슬쩍 쳐다보았다.

이성휘는 황실과 궁궐은 물론,

조정대신들 사이에서도 자주 거론될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건석의 반란을 진압함에 있어 큰 활약을 하였으며, 악성전을 습격했던 서른 명의 살수들을 모조리 도륙하여 발해왕을 지켜냈다. 관리와 궁인들 중에 이성휘라는 이름을 모르는 인원이 없을 정도로 그 유명세가 널리 확산되었다.

‘설마 궁궐로 가던 중에 우연히 마주친 규수가 그 유명한 초선일 줄이야.’

이성휘가 왕윤에게 향하던 눈길을 슬며시 돌리면서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소녀를 바라보았다.

작약꽃을 떠올리게 하는 연분홍색 머리카락,

호박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금색 눈동자,

머리카락과 눈동자, 모두 특히 신비한 색채를 띠고 있었기에 그만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경국지색의 미색을 자랑하는 조조의 옆을 지키면서 하후돈과 조홍 같은 미인들을 항상 보아왔기 때문에 아름다운 용모에 놀랄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건만,

무심코 초선의 용모에 두 눈을 크게 뜬 채 놀란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침어낙안(浸魚落雁)의 용모와

폐월수화(閉月羞花)의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천하절색(天下絶色)의 미녀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리 바라보시면…, 부끄럽사옵니다….”

마치 아양을 떠는 것처럼,

붉은 진달래꽃처럼 새하얀 얼굴을 붉힌 초선이 이성휘의 시선이 살포시 고개를 돌렸다.

남성의 시선이 익숙지 않다는 듯한,

풋풋한 숫처녀처럼 수줍음에 젖은 반응을 보였다.

“내 여식을 무사히 데려와주어 고맙네.”

“궁궐로 향하던 중에 우연히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에 왕윤이 물었다.

“궁궐로 가던 중이었는가?”

“예, 궁궐 숙직병들의 상태를 점검할 생각이었습니다. 새 황상께서 즉위하신 이후로 궁중 분위기가 다소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궁궐의 방위를 노심초사 우려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왕윤은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걱정할 만도 하겠지.

궁궐을 습격했던 살수들의 암습을 직접 경험하였으니.

게다가 황태자였던 조카를 무사히 옹립하면서 대장군 하진의 권력은 가히 절정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왕윤 또한 한나라 황실에 커다란 풍파가 들이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늦은 밤에 자네와 차라도 한 잔 하려고 했었네만, 궁중의 일로 인해 바쁘다면 어쩔 수 없겠군.”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왕윤의 말에 예를 취한 이성휘는 다시 궁궐로 향하기 위해 발걸음을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모습에,

왕윤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초선은 양부에게 들키지 않도록 슬쩍 발꿈치를 들면서 대문을 나서는 이성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곤혹에서 자신을 구해 준 은인에게 언젠가 꼭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다.

* * *

조정에 입궐하기 위해 관복을 입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입느라 애를 먹던 중,

저택까지 몸소 찾아온 흑발의 여인이 피식 웃으면서 이성휘에게 관복을 입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출근을 준비하는 남편의 옷매무새를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는 아내처럼 조조는 총애하는 부관을 위해 직접 관복의 매듭을 묶어 주는 황송스러운 모습까지 보였다.

“감사합니다, 맹덕 님. 제가 감히 맹덕 님을 번거롭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이것 또한 빚으로 생각하게. 지난번 일에 이어 이번 일까지, 귀관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 점점 늘어나고 있군.”

조조는 오히려 즐겁다는 듯,

후후 웃음을 지으면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성휘의 반응에 즐거워했다.

아홉 개의 꼬리들이 달린 여우처럼 앙큼한 모습이었다.

일부러 남성을 곤혹스럽게 만들어,

그 반응을 의도적으로 보려 했음이 분명했다.

“이제 기도위의 신분으로 조정에 입조(入朝)하게 되었군. 기분이 어떤가? 나름 감회가 새로울 터인데. 조정을 지키는 처지에서 조정으로 직접 출사하는 입장이 되지 않았나.”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직접 부딪쳐보는 쪽이 좋겠지. 허나 큰 기대는 하지 말게. 귀관도 잘 알다시피…, 늙은 개들이 모여 정치놀음을 하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터이니.”

그렇게 말한 조조는,

고개를 들어 이성휘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그리고 무언가를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불그스름한 낯빛을 띤 조조가 고개를 돌리면서 문밖으로 나섰다.

쑥스러운 티가 가득한,

냉철함과 무자비함을 겸비한 조조가 이 세상 단 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얼굴이었다.

“새 정전(正殿)은 각비전(卻非殿)일세.”

“예, 저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본디 한나라의 정전은 숭덕전(崇德殿)이었지만 선황이 숭덕전 내의 침전에서 병사함에 따라 광무제(光武帝)까지의 정전이었던 각비전을 새 정전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 다시 숭덕전이 정전으로 복귀되겠지만,

한동안 각비전에서 조정회의가 열릴 듯했다.

조조와 이성휘는 효기교위와 기도위의 신분으로 정전에 입조하였다. 일찍 도착한 그들은 늙은 고관대작들이 차례대로 입조하는 모습을 힐끗 쳐다 보면서 잠시 담소를 나눴다.

“여기서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골똘히 생각해 보니 자네는 기도위였지.”

머리에 관을 얹고 새하얀 수염을 목덜미까지 늘어뜨린 노년의 남성이 다가왔다.

종사중랑(從事中郞) 겸 하남윤(河南尹),

삼공(三公)과 대장군부의 참모장이자 낙양과 인근 군현들의 다스리는 최고위 지방관.

내정권과 군권, 또한 수도 행정권을 모두 겸임하는 왕윤이 허허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오자 조조와 이성휘가 예를 취했다.

“반란 진압의 활약으로 기도위에 임명되었다고 했었지. 그렇다는 것은 이제 자네도 어엿한 조정의 일원이 되었다는 말이겠군. 앞으로 의지할 부분이 많을 터이니 상부상조하면서 지내보세나.”

“감읍한 말씀이십니다.”

왕윤과 다소 친분이 있는 듯한 이성휘의 모습에 옆에 있던 조조가 힐끗 쳐다보았다.

둘 사이에는 딱히 접점이 없을 텐데,

어째서 조정대신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고관대작인 왕윤이 직접 걸음하면서까지 아는 체를 해온단 말인가.

나중에 부관에게 듣기로 하자. 조조가 붉은 눈동자를 굴리면서 설명을 요구한다는 뜻이 담긴 눈빛을 이성휘에게 보냈다.

“크흠!”

우렁차게 울리는 헛기침,

굳센 걸음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금속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채 대장군 하진이 휘하 장군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휘하 장군들은 관복을 입은 반면,

하진은 자신이 가진 조정 내의 위세와 영향력을 과시할 요량으로 허리에 검을 차고 갑옷을 걸친 채 위풍당당한 면모를 뽐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옵소서, 대장군!”

“정전에 미리 나와 대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마치 만승천자를 대하듯한 모습이다.

부와 권력의 척도를 맹신하는 조정대신들이 허리를 굽실 숙이면서 예를 취했다.

그 모습에 하진은 흡족한 표정을 지은 반면,

한나라 황실을 중시하는 고관들은 침음을 삼키면서 우려를 드러냈다. 언젠가 하씨 일가의 권력이 황실마저 뒤덮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과거 한영제(漢靈帝)가 즉위하기 전,

황실의 외척이었던 양기가 전횡을 일삼으면서 권력을 장악했던 적이 있었기에,

하진이 제2의 양기가 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황상 폐하, 만만세!”

“황상 폐하, 만수를 누리시옵소서.”

이윽고 황제 유변이 수많은 시녀와 환관들의 시중을 받으면서 등장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들인 황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하태후가 섭정(攝政)의 자격으로 옆을 함께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의복과 장신구들로 자신을 치장한 그녀는 눈꺼풀을 슬며시 내리면서 자신과 아들에게 허리 숙여 예를 취하는 문무백관들의 모습을 슬쩍 쳐다보았다.

“아.”

가장 높은 상석에 위치한,

황금으로 장식된 옥좌에 앉은 유변은 저 멀리에 이성휘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찬 낯빛을 지었다.

선황을 보필했던 늙은 중신들을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대궐에 들어서기 전부터 망설였던 유변이었기에 조회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성휘가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폐하께옵서 옥좌에 오르시어 저희들을 굽어 살피시니, 이 하진은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습니다!”

하진이 고개 숙여 말했다.

숙부의 듬직하면서도 충성스러운 모습에 유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화답했다.

“헌데 북쪽의 배덕스러운 무리가 선황의 뒤를 이어 만승천자에 오르신 폐하의 치세를 위협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불경한 일이겠습니까!”

“북쪽의… 배덕스러운, 무리라 하오면….”

“흑산적이옵니다!!”

유변의 물음에 하진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쩌렁쩌렁한목소리로 소리쳤다.

흑산적(黑山賊),

그들은 황건적의 난으로 인해 중앙 정권이 혼란을 겪는 틈을 노려 황하 이북에 위치한 산맥지대를 중심으로 활개를 치고 있는 도적 집단이었다.

그 군세의 규모가 무려 1백만에 이른다고 하며, 악명을 떨친 수많은 도적 두령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흑산적은 병주(并州) 지역을 도모할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선황께옵서는 가난과 배고픔에 지쳐 봉기를 일으켰던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 우두머리를 평난중랑장으로 삼으시고 그 휘하 두령들에게도 또한 관직을 내려 회유하였음에도, 은공을 모르는 흑산적 무리들은 여전히 변방에서 패악질을 일삼고 있사옵니다!”

하진은 당장에라도 흑산적을 토벌하러 출정할 것처럼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무략(武略)에 큰 재능이 없었지만,

휘하에 용맹한 장군과 뛰어난 참모들이, 그리고 잘 훈련된 정예군단들이 있었다.

언제든 흑산적 무리들을 쓸어버릴 수 있다는 확신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했다. 대장군부 휘하의 군대들은 황건적의 난을 토벌한 이래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기에.

“이에 소신은 병주(并州) 태원군(太原郡)의 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과 양주(凉州) 농서군(隴西郡)의 병주목(并州牧) 동탁 휘하의 군단을 불러들여 도적 무리들을 일망타진하고자 하옵니다. 부디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당장에라도 무릎을 꿇고 출병을 요구해 달라는 부탁을 할 것처럼 비장한 각오를 보이는 숙부의 모습에,

유변은 당혹감에 물든 표정을 지어야 했다.

황실과 조정에 항거하는 도적들은 당연히 소탕하는 일이오, 지방 군대를 낙양에 불러들여 진압군을 일으키는 일 또한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유약한 성품의 새 황제에게 있어 ‘전쟁’은 매우 두려운 요소이자 함부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공포이며 두려움이었다.

그렇기에 유변은 어찌할 바를 몰라 떨리는 눈으로 답을 기다리는 하진과 입을 꾹 닫은 채 가만히 보고만 있는 조정대신들을 슬쩍 쳐다본 뒤, 흑발의 여인 옆에 자리하는 이성휘에게 시선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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