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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6화 (26/616)

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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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를 무사히 만승천자의 옥좌에 옹립한 대장군부 세력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십상시 세력은 건석의 난이 진압된 이후 패망의 길을 걷게 되면서 사실상 몰락하였고,

조정 내의 청류파 세력은 천민 출신의 황제가 등극한 것에 대하여 다소 불만을 품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은 채 사태를 관망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사실상 대장군부 세력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휘는 새 황제의 등극과 함께 대장군부의 시대가 되었음을 거론했다.

그 말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를 만승천자로 세웠으니 하진의 어깨가 기고만장하게 으쓱해질 만도 하겠지.”

그녀의 붉은 눈동자에 분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환관 집안의 손녀라는 이유로

자신을 번번이 박대해온 하진이었기 때문에,

십상시의 천하를 원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십상시만큼이나 꼴 보기 싫은 놈이 천하를 거머쥐었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독주가 오래 이어지진 않을 겁니다.”

“그건 어째서인가?”

조조가 물었다.

천하의 모든 권력을 움켜쥔 대장군부의 독주가 오래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니?

고개가 갸웃할 정도의 영문을 모를 말이었다.

그에 조조는 이성휘에게 자세한 설명을 요구한다는 눈짓을 보냈다.

“하태후 때문입니다.”

옥좌에 오른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의 자리를 거머쥔 하태후.

그녀는 한나라 황실의 최고 어른이며,

황제의 권력을 이용하여 조정의 고관대작들에게 입김을 가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금군의 지휘권과 함께 권력의 지지기반을 모두 상실한 채 뒷방으로 밀려난 십상시들이 하태후의 그늘 아래로 피신하여 조력자를 자청하는 상태였다.

“비록 같은 모친을 둔 동복남매 관계이나 결국 권력은 둘로 나눌 수 없는 법입니다. 서로의 공동 목표였던 황태자의 황제 옹립에 성공한 이상, 서로 반목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일은 없을 것이나,

정치적인 대척점에 선 채 반목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태후의 그늘 아래에 숨은 십상시들.

황제를 꼭두각시로 부리면서 정권을 좌지우지해온 그들이라면 하태후를 자기 입맛대로 조종하려고 들 것이며, 치밀하게 반목을 조장하면서 하씨 남매를 모두 공멸시키려는 음모를 꾸밀 것이다.

“헌데 귀관….”

“예, 맹덕 님.”

“태감(太監)에게 불려간 뒤에, 황상과는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겐가? 물론 귀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네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고 싶네.”

빤히 쳐다보는 붉은 눈동자.

의심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남편을 의심하는 아내 같은 눈치였다.

어서 빨리해명을 요구한다, 조조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때 살수들로부터 이복누이를 구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감사를 들었습니다.”

“그것뿐인가? 벼슬을 받진 않았는가?”

“벼슬을 제안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습니다.”

저는 맹덕 님의 부관,

그렇기에 맹덕 님보다 높은 관직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이성휘는 자기 진심을 담아 벼슬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조조는,

새하얀 뺨에 홍조를 그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크흠, 흠흠흠…. 귀관처럼 충성스러운 사람을 두어 몹시 기쁘군.”

고관의 자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자기 옆에 머물기를 택한 이성휘의 행동에 조조는 진심으로 기쁜, 헤픈 웃음을 도저히 참지 못할 정도로 기뻐했다.

팔짱을 끼면서 으쓱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성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내게서 귀관을 빼내려고 한 점은 매우 무도하기 그지없지만…, 황제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니 태후와 대장군이 귀관을 함부로 건들지는 못할 터. 특히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유변은 하씨 일가에게 실권을 빼앗긴 괴뢰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나라의 황제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는 귀여운 아들이자 조카였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황위 정통성을 계승한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허나 귀관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황제의 행동이 확실히 수상쩍군. 지금껏 쥐 죽은 듯 하씨 일가의 그늘에서 지내면서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만 행동했었던 그 어린놈이 어째서 제 모친과 숙부와 반목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을 벌인 것이지? 어릴 때부터 궁중에서 눈칫밥을 먹었으니 대충 권력 구도가 돌아가는 상황은 알고 있을 터인데.”

유변은 유약하고 어수룩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그렇다고 제 아비처럼 천치까지는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낱 정 때문에 자기 황위 정통성을 가장 위협하는 정적인 이복누이를 구하려 든단 말인가.

조조에게 있어 유변의 이러한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괴행(怪行)이나 다름없었다.

“맹덕 님.”

“무엇인가, 귀관.”

이성휘의 부름에 조조가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했다.

이윽고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만약 하진이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면…, 맹덕 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갑작스럽게 뜬금없는 말이군.”

난데없는 물음에 의아한 표정을 지은 조조는 이내 두 팔로 팔짱을 낀 채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장군부의 수장이자 천하를 거머쥔 실세가 하루아침에 죽을 운명에 놓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농짓거리에 불과했지만,

조조는 성심껏 이성휘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십상시 세력과 함께 공멸하게 된다면 오히려 우리 쪽으로선 이로운 일일 테지. 물론 본초를 포함해 하진의 잔당들이 설쳐댈 게 분명하지만 중앙 권력의 붕괴는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 않겠는가.”

중앙 권력은 지금 하진에게 모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석의 난 진압으로 십상시는 사실상 권력 구도에서 완전히 실각되었으며 조정의 고관대작들은 그저 입으로 정치를 행할 뿐인 무력한 집단에 불과했다.

하진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가?

아니, 없다. 능력과 자질로 따지고 보면 원소가 가장 우세할지도 모르나, 대장군부 장군들이 여남원씨의 얼녀를 하진의 후계자로 지지할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만약 낙양 정권이 붕괴하게 된다면…, 나는 귀관과 함께 연주(兗州)로 내려가 군세를 일으킬 것일세.”

그녀는 말했다.

만약 하진이 죽을 운명이라면,

가장 어처구니없고 멍청한 일에 휘말려서 죽어 주면 고맙겠다고.

“…….”

야심과 욕망에 찬 조조의 내심을 듣게 된 이성휘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 * *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시간을 알리는,

그리고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술시(戌時)가 지나고 해시(亥時)가 되면 이렇듯 낙양 곳곳에 존재하는 정종(定鐘)들이 일제히 울리면서 낙양 백성들에게 통행금지를 알린다.

그를 증명하듯 정종이 울리기 시작하자 저잣거리의 백성들이 부리나케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저마다 집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상은 없는가?”

“물론입니다, 기도위 어르신!”

조조와의 담소가 생각 외로 길어진 탓에 정종이 울리기 시작할 쯤에 조부(曹部)를 나서게 되었다.

이성휘는 거리순찰을 도는 군관들을 단속하면서 궁궐로 향하기 시작했다.

오늘 숙직을 서는 날은 아니었지만 악성전의 방비를 잠깐 확인한 뒤, 새벽녘이 되어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괜한 걱정이겠지만 만에 하나 모르는 일이니.’

황제가 직접 이복누이의 안전을 천 명한 이상, 대장군부는 절대로 가벼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습격이 실패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오늘은 황제의 즉위식이 있었던 날이다.

과격한 행동들을 벌이기로 유명한 대장군부라고 할지라도 이런 날에 암습을 가할 리 없었다.

‘조조의 거병이 성공하기 위해선 중앙 권력이 무너지고 한나라가 더욱 도탄에 빠져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중앙 권력을 장악하는 대장군부의 우두머리인 하진이 십상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해야겠지.’

군웅할 거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상시의 난이 발발해야 했다.

십상시의 난.

부패한 중앙 권력이 찢겨져 나가며,

서쪽에서 온 늑대가 중앙 권력을 먹어치우게 되는 최악의 사건.

십상시의 난은 중앙 권력이 무너지고 지방 군벌세력이 힘을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내전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이것만 옮기면 됩니다! 너그럽게 이번 한 번만 봐주십쇼!”

“에잉, 알았으니까 빨리 후딱 가세요! 다음에는 좀 통금 좀 지키시고!”

늦은 시간까지 장터에서 물건을 팔았을 중년남성들이 보따리를 든 채 나타났다.

그 모습에 젊은 위병은,

장터에서 물건을 내다파는 중년남성들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 귀찮다는 티를 내면서도 너그럽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한나라의 기도위가 보게 되었다.

“으아악!!”

“상관치 않는다. 딱히 경을 칠 일도 아니니.”

억지로 관문을 통과하려는 경우도 아니고,

단순히 통금시간을 어긴 것 때문에 일일이 법의 준엄함을 내세우고 싶진 않았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통금시간을 어기는 경우는 매번 빈번하게 발생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을 모두 옥문 안에 넣었다면 아마 낙양의 모든 감옥들이 만석을 이루고 있겠지.

수상쩍은 신분이거나 생김새를 한 인원이 아니라면 그냥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았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는 위병을 지나친 이성휘는 궁궐로 향해 가던 도중,

야심한 밤의 고요한 적막을 깨는 소란을 듣게 되었다.

“약방에 주문했던 산약(散藥)을 들고 저택으로 돌아가던 중이라고 하지 않소!”

“알았으니 통행세를 내시오. 그럼 무사히 통과시켜드리겠소.”

“어찌 관문에 통행세를 받는단 말이오!”

“통금을 어겼으면 그만한 대가를 지급해야 할 것이 아닌가.”

목청을 높이는 중년 여인,

그리고 중년 여인의 으름장에 능글맞은 반응을 보이는 무관이 대치하고 있었다.

소란을 듣고 발걸음을 한 이성휘는 횃불 아래에서 잠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여자 하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과 그 뒤에 약봉지를 두 손으로 꾹 쥐고 있는 여성.

약봉지를 든 여성은 양갓집 규수였는지 하얀 베일로 얼굴을 폭 가린 채였다.

그것을 대충 짐작했는지,

위병들에게 검문을 받아 좋을 것 없지 않냐며 무관은 관문 통과를 조건으로 장사하는 배짱을 부려댔다.

“이런 식으로 뒷돈을 받아먹는군.”

“흐아악!!”

등 뒤로 다가와 묻는 이성휘의 행동에,

양갓집 규수의 주머니에서 짭짤한 수익을 얻을 셈이었던 무관은 크게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성문교위… 아니, 기도위 어르신…. 그것이 아니옵고, 그러니까 야밤까지 거리를 지키는 위병들의 노고를 위해 수고비를…, 아주 조금씩만, 받겠다는 의미로….”

“내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정도의 병신으로 보이나.”

괜스레 정의감이 발동한 이성휘는 검문 통과를 빌미로 돈을 뜯어내려던 무관을 감군(監軍)에 넘겨 버렸다.

그리고 그 뒤,

탐관오리 한 놈 때문에 곤혹을 겪어야 했을 양갓집 규수와 여자 하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을 저택까지 데려다주게 되었다.

물론 통금시간을 어긴 것은 잘못이지만 여인들끼리 밤거리를 누비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기에 잠시 수고를 짊어지기로 했다.

“은인께서 도와주신 은혜를 꼭 갚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해야 될 일인데.”

하얀 베일 너머로 들린 꾀꼬리처럼 고운 목소리에 으쓱한 마음이 들었는지,

이성휘는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은인을 왕가부(王家部)로 모시고 싶습니다.”

“…왕가부?”

“소녀는 종사중랑(從事中郞) 하남윤(河南郡)을 역임하고 계신 부공(父公)의 수양딸입니다. 부공께서 잔기침이 심해지시어 급히 약방으로 가 산약을 가지고 오던 길이었습니다.”

종사중랑 겸 하남윤.

그 사람이 대체 누구였더라….

왕씨(王氏) 성을 가진 고관대작.

분명 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잠시 고민하던 이성휘는 하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채 살포시 미소를 머금은 입가만을 보이고 있던 여인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했는지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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