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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5화 (25/616)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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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년 5월 15일.

숭덕전에서 붕어한 황제의 적장자이자 대장군 하진의 조카였던 유변이 만승천자의 위(位)에 오르게 되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만세!”

문무백관들이 모여 만세를 삼창하였다.

또한 대장군 하진을 비롯한 휘하 장군들 또한 조복(朝服)을 입은 채, 두 손 벌려 만세를 부르면서 새 황제의 즉위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앞으로 더욱 대장군부의 위세와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황(先皇)이 세상을 뜬 지 불과 이틀도 안 되어 대장군부의 주도에 의해 즉위식이 거행되었으며,

태후의 자리에 오르게 된 하황후가 오라비 하진에게 전권을 위임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궁중에서 나돌았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28대 황제가 즉위했다. 재위기간이 너무도 짧아 시호(諡號)조차 붙일 수 없었다는….’

조조와 함께 새 황제의 즉위식에 참석한 이성휘는 문무백관들을 따라 만세삼창을 부르면서 즉위식의 중심에 선 유변을 바라보았다.

많이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시선을 돌리는 등의 모습을 보였지만 전날까지 부랴부랴 준비를 했는지 어떻게든 즉위식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황제의 즉위식은 곧 선황들을 향한 제사를 거행하고 하늘을 향해 태평성대를 비는 종교의식과 같았다. 그렇기에 즉위식은 치러야 할 복잡한 과정들이 매우 많았다.

“…….”

이성휘가 고개를 돌려 조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흑발의 단아한 미인은 칙칙한 검은색인 조복도 굉장히 잘 어울렸다.

미인은 뭘 입어도 아름답다고 했던가.

당장에라도 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드는 왜소한 어깨와 가냘픈 허리, 넓은 옷소매 사이로 튀어나온 작고 새하얀 손이 특히나 귀여웠다.

그리고 새빨간 눈동자.

항상 총기를 머금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오늘따라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근데 진짜 작네.’

발끝까지 완전히 가려 버린 바짓자락 때문에 조조의 두 발이 실종되고 말았다.

아빠 옷을 입고 나온 작은 딸아이처럼,

왜소한 키의 조조는 수많은 인파에 그대로 묻혀 버려서 멀리서보면 그 위치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즉위식이 거행되는 장소까지 오는 동안까지만 하더라도 땅에 떨어진 흙먼지들을 바짓자락으로 질질 끌면서 왔었다.

그리고 본인도 그걸 아는지,

새하얀 얼굴을 수치심과 부끄러움으로 붉히면서 씩씩대는 모습을 보였다.

‘오는 동안 몇 번이고 자기 바짓자락에 걸려서 넘어질 뻔했었지.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면서 버텨 냈지만. 만약 넘어졌으면 즉위식 당일에 어마어마한 웃음거리로 기록됐겠어.’

절대로 조조에게 말하지 못할,

속으로만 생각해야 될 말들을 떠올린 이성휘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간신히 추스르면서 무표정을 유지했다.

‘반면에….’

맞은편에 위치한 금발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미녀임을 더욱 강조하듯,

조복을 입었음에도 아름다운 용모와 늘씬한 몸매가 부각되었다.

두 발로 걸을 때마다 돋보이는 잘록한 허리와 남성을 유혹하듯 벌어진 골반.

기품 넘치는 고양이가 길을 걷는 것처럼,

조복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엉덩이는 품위를 지키면서도 남성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

옆에 선 조조가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아니….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맞은편에 선 원소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원소는,

조조의 살의 담긴 눈빛을 매우 태연스럽게 넘겼다.

‘음…?’

맞은편에 선 원소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느낀 이성휘가 짐짓 놀란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성휘의 반응에,

금발의 늘씬한 미녀는 앙큼함이 느껴지는 눈웃음을 지었다.

* * *

새 황제의 즉위식이 끝난 뒤,

이성휘의 팔을 붙든 채 곧바로 자리를 벗어나려 한 조조였지만 상황은 그녀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궐문을 빠져나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환관 무리가 다가왔다.

십상시 일파가 보냈을까 생각했으나,

그들은 오늘 황제로 즉위한 유변을 보좌하는 환관들이었다.

“폐하께옵서 기도위를 부르십니다.”

“…폐하께서?”

환관의 말에 조조는 의구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대체 왜.

오늘 즉위식을 거행한 새 황제가.

조정 고관대작과 지방에서 낙양으로 상경한 제후들을 모두 대전(大殿)에 불러들여 충성맹세를 받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 바쁜 시간을 일부러 쪼개면서까지 자기 부관을 침전(寢殿)으로 불러들이는 수고까지 하는 것인가.

“맹덕 님, 아마 지난번 악성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부르시는 모양입니다.”

“귀관을?”

조조는 유변이 자기 이복누이인 유협을 크게 아끼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유변과 유협은,

황위 정통성을 둘러싸고 알력 다툼을 하는 대립 관계였기 때문이다.

비록 적장자(嫡長子)이였으나, 천민 출신의 모친을 둔 유변은 그 정통성에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서녀(庶女)이지만 궁중에서 직접 추천을 받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양갓집 여식이 어머니였던 유협이었기에 많은 호족과 유자들이 그 정통성을 지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있겠습니까.”

이성휘가 말했다.

그 말에 조조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근심이 잠긴 표정을 지었다.

“조심하게. 결코 경거망동해선 안 될 것일세. 새 황제께서 무슨 연유로 귀관에게 부름을 내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전이라는 것을 명심하게.”

“예.”

이성휘는 조조의 걱정이 담긴 시선을 뒤로한 채, 환관들을 따라 새 황제의 침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윽고 침전에 도착하자마자,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새 황제가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전각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적잖게 놀라게 되었다.

“폐하.”

“그간 무탈하게 지냈는가?”

“염려해주신 덕에 평안하였습니다.”

황제의 용포가 어색해 보이는,

순박한 인상의 청년이 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반겼다.

그는 여전해 보였다. 만승천자의 옥좌에 올라섰음에도 권력욕에 젖지 않은 마음은 변치 않은 듯했다.

“내가… 아, 아니…, 짐이 기도위에게 긴히 부탁할 것이 있어 보자고 했네.”

“하명하십시오.”

마치 고관대작을 대하듯이 공손한 모습을 보이면서 이성휘를 침전 안으로 접객한 유변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그러고서 잠시 입을 닫더니,

이내 생각을 정리하였는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기도위, 짐이 두 손을 합장하고 부탁하나만 하겠네. 협이를 지켜 주게.”

유변은 자기 진심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일개 기도위 앞에서 두 손을 합장하고 부탁할 정도로 절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 이복누이인 유협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명령이 아닌 부탁,

오늘 만승천자에 오른 청년은 부탁을 받는 사람이 황망함이 느낄 정도로 진심 어린 부탁했다.

“언제 또 모후(母后)와 숙부가 협이를 해하려 들지 알 수 없네. 짐이 두 손 모아 부탁하더라도…, 협이를 해치려 들 게 분명해. 어릴 적부터 짐을 위해서라면, 설령 그것이 매우 끔찍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스스럼없이 해온 분들이니.”

어머니와 숙부가 이복누이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해하려 들 게 틀림없다.

그렇게 판단한 유변은,

이성휘를 불러 그것을 막아줄 것을 부탁했다.

서른 명의 살수들을 모두 참살하고 악성전을 지켜낸 그 용력이라면 필시 유협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므로.

그래서 유변은 즉위식이 끝나자마자 이성휘를 불러 매우 공손하게 부탁했다.

“헌데 어째서 황명을 내리시지 않고.”

“아, 황명…. 황명이 있었지….”

이성휘의 말에 유변은 아직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는 것이 낯설었는지 황명(皇命)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유변이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허나 지금은 짐이 아쉬운 쪽이니, 짐이 부탁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무, 물론… 기도위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나….”

선한 품성을 가지고 있으나,

의지와 결단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분명 부친이었던 선황에게 어릴 적부터 괄대를 받아왔던 그 흔적이겠지. 매번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이면서 주변에 휩쓸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리고 기도위를 더 큰 벼슬에 제수하려 하네. 오관 중랑장이나, 아님 우림중랑장은 어떠한가…?”

오관 중랑장(五關中郞將)과 우림중랑장(羽林中郞將),

모두 어마어마하게 높은 관직들이다.

천자의 근위대를 통솔하는 기도위가 초라하게 보일 정도였다.

유변의 진심 어린 제안을 통해 이성휘는 알게 되었다.

순박한 성품을 가진 청년 황제는 진심으로 이복누이를 지키려 한다는 것과, 그가 정치적 식견과 지식이 매우 떨어지는 인물이라는 점이었다.

‘오관 중랑장과 우림중랑장은 궁중 병력을 총괄하는 최고위 무관직이다. 황명이라 할지라도 대장군이 받아들일 리 없지. 설사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나에게 실권을 양도할 리도 없고. 실권 하나 없는 꼭두각시로 전락시킬 게 분명하다.’

후우, 이성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의욕만 앞설 뿐인 황제를 바라보았다.

동생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의욕만으로 해내기엔 현실은 너무도 잔혹했다.

권력은 여전히 하씨 일가가 잡고 있다. 황궁과 궁궐의 권력은 이제 곧 섭정(攝政)를 선언할 하태후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될 것이며, 한나라의 모든 군권은 오라비인 하진이 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변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만승천자의 옥좌에 올랐으나,

하씨 일가의 괴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폐하, 지금의 자리가 오히려 발해왕 전하를 호위하기 편합니다. 제 휘하의 금군이 악성전과 그 주변을 철저히 호위하고 있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렇다면 강요하진 않겠다만….”

애써 사양하면서 기도위에 머물기만을 바라는 이성휘의 대답에 유변은 섭섭함을 느낀 듯했다.

높은 벼슬을 내려 이복누이를 구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었던 듯 보였다.

“짐도, 기도위처럼… 무예에 능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하여…,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 싶다….”

담소를 끝낸 뒤

이성휘가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유변은 자기 처지와 무능함을 한탄하듯 자괴감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복누이조차 제 손으로 지키지 못 하는,

그래서 결국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삼라만상의 모든 사람이 우러러본다는 지존의 자리에 등극하였음에도 무력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깊이 원망하고 있었다.

“분명 폐하께서도 언젠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리셔야 할 상황이 올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라고 감히 제가 폐하께 말씀 올립니다.”

사람은 항상 용감할 순 없다.

단 10분, 아니 5분이라도 좋다.

가장 중요한순간에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용기이지 않을까.

무력함에 따른 자괴감에 빠진 황제를 향해, 이성휘는 청년 황제가 자괴감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말을 남겼다.

그 말이 향후,

어떤 변화를 일으키게 될지는 짐작할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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