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4화 (24/616)

24화

=======================

사례교위 원소의 갑작스러운 접촉은 이성휘에게 있어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어째서 지금 같은 시기에,

대장군부에서 발령한 비상령으로 인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상황이 아닌가.

그런 바쁜 상황에도 자신을 찾아온 원소의 행동에 이성휘는 의문을 느끼면서도 홍옥처럼 맑은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원소를 감히 뿌리칠 순 없었기에 그녀의 접촉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무려 서른 명이 넘는 살수들을 막아 내고 발해왕을 무사히 지켜냈다는 공훈을 들었어요. 실로 대단한 용맹과 용력이군요. 용저에 어울리는 고강함이예요.”

“예, 감사합니다….”

원소가 무용을 크게 치켜세워주자 이성휘는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의중은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 자기 대업(大業)에 합류시키기 위해 휘하에 두려는 시도겠지.

조조와 마찬가지로 원소 또한 유능한 인재에 매우 관심이 많은 여인이었다. 출신과 신분을 막론하고, 최대한 많은 인재들을 휘하에 두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사례교위께서 본론을 꺼내시기 전에…, 제가 먼저 말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이성휘의 물음에 원소는 흔쾌히 수락했다.

눈앞의 남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행동이었다.

“저는 효기교위의 사람입니다.”

“그럼요.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만일 나에게 영입을 제안 하려 든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그렇게 에둘러서 표현한 이성휘의 말에도 원소는 여유롭고 우아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충심을 표현하는 이성휘의 그러한 모습 또한 흡족하다는 반응이었다.

“저는 그저 당신과 짧게 담소라도 나누기 위해 온 것일 뿐, 결코 당신에게 부담을 얹을 생각은 없답니다.”

원소는 분명 조조와 달랐다.

유능한 인재들을 한 명이라도 더 손에 넣겠다는 맹렬한 탐욕을 가지고 있었으나,

인재를 손아귀에 넣는 방법이 달랐다.

조조가 욕망과 과감함을 내세우면서 인재를 포섭하였다면,

원소는 여유와 우아함을 통한 매료로 인재의 마음을 얻어냈다.

그래서 원소는 제안을 꺼내기 전에 일언지하의 거절을 표현한 이성휘의 대답에도 여유와 우아함을 잃지 않은 고결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만일 그때 당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불길 속에 뛰어든 건석을 붙잡을 수 없었겠죠. 반역의 죄를 거열형(車裂刑)으로 다스려 일벌백계를 하려 했던 대장군의 계획 또한 무산되면서 반쪽짜리에 불과한 진압으로 남았을 거예요.”

완벽하게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사례교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 또한,

모두 그의 덕분이다.

그래서 원소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요, 큰 빚을 졌네요. 저는 절대로 은혜를 잊지 않기에, 언젠가 반드시 당신에게 받은 빚을 갚겠어요.”

“괘념치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저는 반절이나마 사세삼공의 드높은 명성을 가진 여남원씨 가문의 혈족입니다. 입은 은혜는 기필코 갚겠어요.”

원소는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을 성급히 탐하려다가 기회를 잃고 마는 어리석고 몽매한 여인이 아니다.

책략가로서의 면모와

군주로서의 위용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않았다. 성급하게 시도하지도, 어리석은 방법을 동원하는 일 또한 없었다. 자신은 탐욕과 허영에 눈이 멀어 커다란 것을 놓쳐 버리는 무지몽매한 여남원씨 가문의 적자가 아니니까.

‘제아무리 단단한 첨석(檐石)이라도 처마 밑으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에 구멍이 나길 마련이예요. 저는 절대로 성급히 당신을 취하지 않을 겁니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당신에 대해 알아가도록 하죠.’

결코 강경책으로는 강한 상대를 이기지 못한다.

상대는 조조이며,

손아귀에 넣고 싶은 인재는 조조에게 충성을 다하는 무인이다.

그렇기에 원소는 천천히 그의 마음을 조금씩 손에 넣으면서,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충직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것은 그를 위한 초석이다.

그를 손에 넣기 위한 첫 단추.

그렇기에 원소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입은 은혜를 갚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접근하여 이성휘라는 남성의 마음을 탐하려 했다.

“나중에 상황이 잠잠해지면…. 함께 차라도 마시도록 하죠.”

원소는 그 말을 남긴 뒤,

용무가 끝났다는 듯 이성휘에게 여우 같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 * *

양주(凉州) 농서군(隴西郡)

적도(狄道)

막북(漠北) 너머에서 남쪽으로 불어닥치는 모래폭풍이 오늘따라 유독 지독했다.

두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병사들은 물론 군마에 이르기까지, 사막 위에 천막을 꾸리고 있던 서량(西凉)의 군대는 매번 이런 지독한 모래폭풍을 견뎌야만 했다.

잘 익은 곡식들이 펼쳐진 황금빛 경치를 본 게 대체 언제쯤일까. 메마른 사막과 황량한 고원 밖에 존재하지 않는 서량은 도저히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는 죽음과 기아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르신, 북강대(北羌隊)와 마강대(馬羌隊)가 부름을 받고 모두 집결했습니다.”

8척이 넘는 거한이 견고한 근육이 돋보이는 두 팔을 뻗으면서 예를 취했다.

그에 상석에 앉은 중년남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북강대와 마강대의 위용은 모래폭풍 속에서도 늠름하고 장대하군! 이 동중영의 대업을 완수함에 있어 그 선진을 맡겨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광한군(廣漢郡)과 무도군(武都群) 등지에 무리를 지어 사는 강족(羌族)으로 편성된 무력집단.

가슴이 쩍 벌어진 거한들로 구성된 북강대와 마강대는 그들 개개인이 모두 일당백을 자랑하는 중용무쌍의 전사들이었다.

백전(百戰)을 경험하였으며,

또한 무수히 많은 사선(死線)들을 돌파한 전사들.

북강대와 마강대는 용맹하기로 유명한 서량군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부대이며, 동시에 병주목 동탁이 가장 신임하는 친위대였다.

그들을 바라보는 동탁의 시선이 경이와 신뢰로 가득 찬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자랑스러운 서량의 형제들이여!”

상석에 앉은 동탁이 벌떡 일어나 자기 보검을 크게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그에 서량의 전사들이 고개를 들었다.

서량의 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기 주군을 응시하면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나와 그대들은 반평생 척박하고 메마른 땅을 거친 한혈마와 함께 누비면서 무인의 위개를 떨치고 한나라 황실과 조정을 위한 의무를 다해 왔다. 또한 무수히 많은 침입을 막아 냈으며 내부의 반란들을 모두 진압하여 신의와 충성을 지켜왔다!”

모래폭풍을 뚫으면서 국경을 넘은 오랑캐 군세들을 몰아냈음은 물론,

어느새 서쪽 변방까지 몰려들기 시작한 황건적 무리들을 연파하면서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받은 의무를 완수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전투들을 겪을 때마다,

소중한 전우들을 잃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주검을 척박한 땅에 파묻어야 했다.

알고 있다.

전사(戰死)는 무인(武人)에게 있어 드높은 영광이자 명예라는 것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깊은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가 변방에서 적을 물리치며 쌓은 위업과 무명을 과연 황실과 조정이 알아줄까, 라는 의심에서부터 비롯된 의구심이었다.

‘더러운 황실과 조정은 황보숭을 동원하여 내가 가진 군권을 모두 빼앗으려고 했었지. 피 흘리며 용맹하게 싸웠건만, 결국 돌아온 것은 명예도 영광도 아닌 의심과 시기 밖에 없었다!’

무수히도 많은 전우들을 땅에 묻고, 전장에서 피를 흘렸음에도 조정은 그 무엇도 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빼앗으려 들었을 뿐,

용맹하게 싸운 서량의 전사들에게 의무와 직분만을 강요했다.

그렇기에 서량군은 결심했다.

우리가 전쟁터에서 흘린 피의 노력들을 너희에게 직접 받아 내겠노라고.

너희들이 가진 금은보화들을,

우리들의 피 묻은 창검으로 빼앗겠노라고.

“허나 부패한 황실과 더러운 조정이 우리에게 대체 뭘 해줬단 말이냐! 부모를 잃고 형제들을 떠나보내야 했으며,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자식들을 바라보아야만 했던 우리에게 대체 무엇을 베풀어줬다는 말인가!!”

서량의 왕이 드센 호랑이처럼 크게 포효하면서 서량인들의 울분과 분노를 자극했다.

중앙 조정을 향한 증오,

그것은 곧 거병의 명분이자, 서량인들이 그를 따르는 충성심의 뿌리였다.

오랫동안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괄시와 천대를 받아야 했던 서량인들에게 있어 동탁은, 자신들의 숙원을 이루게 해 줄 위대한 군주이자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드디어 우리에게 기회가 도래했다!”

동탁이 무언가를 펼쳐들었다.

그것은 바로,

대장군 하진이 보낸 밀서였다.

수천의 군마를 이끌고 대기하라는,

신호가 떨어지면 즉시 거병하여 낙양으로 상경하라는 대장군의 명령이 적혀 있었다.

* * *

병주(并州) 태원군(太原郡)

진양현(晉陽縣)

병주자사(并州刺史), 무맹도위(武猛都尉) 정원은 날래고 용맹한 병주의 효웅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뛰어난 무예와 훌륭한 용병술로 명성을 떨친 것은 물론,

1백만 명에 육박하는 북방 일대의 흑산적과 백파적을 격퇴함으로서 낙양에까지 무인으로서의 명망을 얻게 되었다.

“드디어 이 정건양에게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오는 모양이구나.”

드디어 기회가,

드디어 나에게 명분이 떨어졌다.

대장군 하진의 전령에 보낸 밀지를 받게 된 병주자사 정원은 변방에서 사나운 오랑캐와 흉폭한 마적들을 토벌하면서 반평생을 보낸 자신에게도 드디어 중앙으로 진출할 명분이 주어졌다며 희열에 찬 표정을 지었다.

“병주사마, 어서 기병부대를 준비시키도록 하라. 언제든 사예주로 달려갈 수 있도록 만반의 채비를 갖춰두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정원의 명령에 병주사마 장양이 예를 취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흉노족과 오환족과의 싸움을 통해 단련된 일당백의 용사들.

용맹한 기병들이 정원 휘하에 있었다.

북평의 항로교위, 공손찬에게 오환기병과 백마기병이 있다면 정원에게는 병주기병이 있다고 할 정도로 그 무용과 용맹이 날카롭기로 유명했다.

“우리들의 목적은 대장군을 도와 역적들을 처단하여 천하를 태평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대장군을 도와 중앙 조정에 진출하게 될 것이다!”

변방에서 오랑캐들과 싸우다가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죽게 될 것으로 생각했던 인생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도래하였다.

그에 정원은 휘하 장수들을 모두 소집하여 상경군(上京軍)을 준비시켰다.

“…….”

휘하 장수들의 앞에서 날 선 목소리로 일장 연설을 시작한 정원의 모습을 백색 갑옷을 입은 흑발의 여성이 슬며시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용맹하기로 이름 높은 효웅은 대체 어디로 가 버렸는지,

눈앞에 보이는 노인은 허영과 탐욕만을 좇는 망령이 되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욕심이 생긴 탓일까.

아니면 천재일우가 눈앞에 도래하면서 그동안 숨겨뒀던 욕망이 꿈틀대면서 머리를 든 것일까.

지금의 그녀로서는 병주의 효웅이 권력의 개가 되어 버린 이유을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문원.”

정원이 자신을 부르자,

이에 흑발의 여인이 예를 취하면서 답하였다.

“예, 자사님.”

무슨 말을 할지 알면서도,

흑발의 여인은 무표정을 고수한 채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봉선은 어디로 갔느냐.”

노기가 섞인 정원의 물음에 백색 갑옷을 입은 흑발의 여인, 장료는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리면서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병주자사가 엄명을 내렸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은 여성 무장을 떠올리면서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어떻게 변명해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매번 골치를 썩이는 딸아이를 둔 엄마의 심정이 되어 버린 장료는 대체 어떻게 해야 저 꼬장꼬장한 노인네의 노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를 한탄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