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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2화 (22/616)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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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환제(桓帝)와 함께 환령(桓靈)이라고 불리면서 암군의 대표 주자로 기록될 황제가 겨우 서른넷의 나이에 요절했다.

태의들이 급히 숭덕전을 나왔다.

자기 뒷배가 되어 주고 있는,

은밀히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 세력에게 황제의 붕어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무려 21년 동안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온갖 패악질과 폭정을 일삼았던 혼군(昏君)이니만큼, 황제의 사망은 정치권은 물론 고관대작들의 명운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일이었기 때문에 매우 신속하게 사망 소식이 확산되었다.

‘황제가 죽었다.’

숭덕전 환관들이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여러 전각들을 누비고 있는 모습을 통해 이성휘는 이윽고 황제가 죽었음을 넌지시 알아차렸다.

빌어먹을 새끼.

이성휘는 오늘 눈을 감아버린 황제를 욕하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백성들을 보살피지 않고,

오로지 자기 부귀영화만을 생각했으며,

성군이 되기 위한 그 어떤 시도들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대로 무책임하게 죽어 버리기까지 했다.

유협의 애처로운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씁쓸함에 잠긴 헛웃음을 지었다.

“어서 서둘러라!”

“궁궐 전각을 호위하고 궐문들을 통제한다!”

중앙을 위협했던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였으나 여전히 지방에서는 대규모 반란들로 인해 통제력을 상실한 상황이었으므로,

즉시 궁궐에 비상령이 선포되었다.

모든 금군들이 소집되었음은 물론,

낙양과 주변 군현의 방위를 담당하는 오교위(五矯衛)들이 즉시 궁궐에 집결했다.

“불온한 기색을 보이는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수색하라!”

“환관들을 경계하라는 대장군부의 명이시다!”

금군이 빠르게 궁궐을 장악하였으며,

수도 방위병력 또한 낙양을 신속하게 점거했다.

이 말은 즉, 대장군부가 황궁과 낙양을 모두 통제하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중앙 권력을 거머쥔 거두(巨頭)라고 불리는 하진답게 매우 신속한 대응이다. 황제 유굉의 사망으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는 한편, 황태자를 빠르게 새 천자로 등극시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악성전 습격에 이어 이번에는 황제의 붕어…. 계속해서 혼란의 연속이군.”

조조가 말했다.

오교위 중 한 명인 효기교위(驍騎校尉)였던 조조는 대장군부에 소집되었다가 방금 막 돌아왔다.

궁궐을 철저히 통제하라.

대장군 하진의 엄명을 받게 된 조조는 휘하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궐문을 방비하고 출입 인원들을 매우 엄격하게 감시했다.

궁궐 궐문들 중 일부를 폐쇄하거나 궐문을 지나는 출입 인원들을 제한을 가하는 등, 자칫 권한을 크게 벗어난 월권행위로 보일지도 모르는 통제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귀관은 가덕전을… 아니, 옥당전(玉堂殿)과 영대전(靈臺殿)을 경계하도록 하게. 그리고 성문교위 시절에 귀관이 감독했던 평성문(平城門)의 방비 또한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맹덕 님.”

조조는 가덕전의 방비를 이성휘에게 맡기려던 것을 철회하고 다른 전각들의 방위를 맡겼다.

가덕전은 한나라 황후의 침소였다.

필시 황후는 악성전을 습격했던 살수들을 모두 막아 낸 이성휘를 원수로 여기고 있을 터.

그래서 조조는 되도록 가덕전과는 거리가 먼, 또한 발해왕 유협의 악성전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옥당전과 영대전의 방위를 맡긴 것이다. 절대로 그들과 접촉하게 두지 않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었다.

“언니, 너무 기도위에게 마음을 써 주시는 게 아닌지 걱정돼요. 저 남자 때문에 자칫 언니까지 화를 입을 뻔했잖아요.”

조홍이 입을 열었다.

휘하 병력을 이끌고 궐문을 나선 이성휘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조홍은 엄하게 명령을 내려야 할 언니가 너무 저 남자의 뜻대로 너무 끌려 다니는 것은 아닌지,

적잖은 근심과 의문을 품고 있었다.

물론 언니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언니의 명령은 옳았으며, 선택과 결단은 언제나 지당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이성휘를 지지하는 언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앞섰다.

“자렴, 나를 걱정하는 네 의중은 이해한다. 허나 이성휘는 내 대의에 동참하는 인물이며, 또한 내게 필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비록 그가 독단을 행하여 화를 입을 뻔하였으나, 그 또한 내가 품어야 할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조조는 위험과 위기를 감수하겠노라는 입장을 밝혔다.

계속해서 그를 끌어안겠다.

그는 나에게 없어선 안 될, 결코 없어선 안 될 사람이었으니까.

일편단심 같은 언니의 결정에 조홍은 못마땅하다는 감정을 드러내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항상 냉철한 면모와 매서운 결단력을 보여주던 언니가 유독 저 남자에게만 무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 감정을 질투라고 해야 할까,

내가 모르는 모습을 저 남자에게 보여주는 언니가 조금 미웠다.

“자렴, 그렇다면 네가 부관의 감시를 맡기마. 부관이 다시금 독단을 행하지 못하도록 네가 나를 대신하여 봐다오.”

“네! 두 번 다시 저 남자가 언니에게 해악이 될 만한 짓하지 못하게 막겠습니다!”

조조의 명령에 조홍은 지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바라던 바였다.

제멋대로 행동하여 곤란을 끼친 저 남자를 감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으니까.

게다가 언니가 자신에게 그 역할을 맡긴다고 하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나한테 그냥 시켜줘도 되는데. 굳이 자렴에게 맡길 필요가 있었어?”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성이 못마땅하다는 듯 대꾸했다.

자신이 아닌 조홍에게 맡기는,

이성휘를 감시하라는 역할을 조홍에게 일임한 것이 불만인 듯하다.

정확히는 자신보다도 조홍을 더 신뢰하는 듯한 조조의 모습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조조는 이성휘와 관련된 일을 조홍에게 일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양, 너는 내 호위를 맡아라.”

“알았어, 알았다고. 자렴에게 일부러 맡기는 게 뻔히 보이지만 그냥 넘어갈게.”

한 번 내린 결정을 반복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못마땅함은 여전했지만,

조조에게 분명 무언가 이유가 있어 이성휘와 관련된 일들을 계속 조홍에게 일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양은 처음부터 부관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심지어 가문의 보검인 청강검(靑釭劍)을 부관에게 잠시 양도한 것은 물론, 악성전의 호위에 나선 부관의 행동을 눈감아주기까지 했지. 괘씸하게도 부관에게 흑심을 품고 있음이 틀림없다.’

매번 이성휘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하후돈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조조는,

이성휘를 경계하면서 날 선 모습을 보이는 조홍에게 감시를 맡긴 것이다.

지척에서 감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곧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성휘에게 호의를 보이는 하후돈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 있을 리 없었다.

‘의심이 많은 자렴이라면 믿을 수 있다.’

그렇게 중얼거린 조조는,

궁궐 각지에 배치된 금군 부대를 다시 한번 점검하면서 대장군부에서 하달될 명령을 기다렸다.

이제 곧 새 황제가 즉위한다.

분명 즉위식과 관련된 명령이 내려오게 될 것이다.

새 황제가 즉위한다는 것은 곧 새 시대가 열린다는 뜻이오,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정치구도에 큰 변화가 생김을 뜻하기도 했다.

큰 혼란이 벌어지게 되리라.

필시 구태(舊態)를 떠안고 있는 세력들이 새 시대의 탄생에 크게 준동할 것이 틀림없었다.

* * *

황제의 침소였던 숭덕전(崇德殿)에서 구슬픈 통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실 종친들은 물론,

고관대작들까지 모두 숭덕전에 몰려들어 황제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였다.

물론 숭덕전에 모인 수많은 인원들 중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겠지만, 자신이 충정을 다해 황제를 섬겼음을 보여 줘야 했으므로 닭똥 같은 눈물이라도 흘리는 시늉을 해야 했다.

“부황…! 부황!! 어찌 소자를 이리 두고 떠나셨사옵니까!!”

읍소하고 통곡하는 자리의 가장 선두에 있었던 황태자 유변이 눈물을 쏟아 내면서 부황의 죽음을 슬퍼했다.

황태자를 시기하는 십상시 무리들은 그를 두고 ‘거짓 눈물’ 이라며 속으로 비난했지만, 유변은 진심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하고 있었다.

비록 생전에 자신을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으나 그런데도 유변은 그런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래도 아버지였으니까.

따스한 말 한마디도 해준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천륜(天倫)으로 이어진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협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이지? 혹여…. 누구도 협에게 부황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한참을 울고 한참을 통곡하던 유변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유협의 모습을 좇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부고 소식조차 듣지 못한 듯,

고관대작들이 빠짐없이 모두 모였음에도 이복누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소자, 잠시 소피를 보고 오겠사옵니다.”

유변은 어머니에게 그렇게 고한 뒤에 자리에서 잠시 일어섰다.

상복을 입은 황태자가 움직였다.

호위무관들과 함께 발걸음을 향한 곳은 발해왕 유협의 거처였던 악성전이었다.

잔혹한 모습으로 죽은 살수들의 시체는 모두 수거되었지만 비릿한 피비린내만큼은 남아 있었다. 그 지독한 악취를 맡게 된 유변은 자기 이복누이가 이런 끔찍한 곳에 방치되어 있었음을 한탄했다.

“화, 황태자 전하…!!”

유변이 궐문 가까이까지 도착하자,

악성전의 궁인들이 모두 나와 유변을 맞이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바깥과의 연락이 철저히 금지되었기에,

한나라 만승천자가 오늘 급사하였다는 소식조차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궁인들은 하얀 상복을 입은 황태자의 모습을 의문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협은 있는가?”

“예, 안에 계시옵니다만….”

유변의 물음에 부리나케 처소에서 나온 궁녀가 대답했다.

말끝을 흐리면서 대답하자,

유변을 호위하고 있던 시위장(侍衛長)이 무거운 우레 같은 목소리로 꾸짖었다.

“지금 황태자 전하께서 몸소 왕림하셨거늘, 어찌하여 발해왕은 썩 나와서 황태자 전하를 맞이하지 않는 것인가!!”

이제 새로운 천자가 되실 분이다.

황태자를 오랫동안 섬겨 온 시위들은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므로,

황태자가 악성전에 왕림하였다는 소식을 듣고도 처소에서 나오지 않는 유협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유별난 과시욕에서 비롯된 강압이 아닌, 황족의 일원이 마땅히 황태자에게 지켜야 할 예의이자 궁중예법이다. 황태자의 시위장이 그를 문제 삼으면서 악성전의 궁인들을 꾸짖는 것은 매우 적법한 행위였다.

“아니다, 기별을 넣지 않고 무턱대고 온 내가 먼저 결례를 범한 것이다.”

그에 유변은 험상궂은 표정을 지은 시위장에게 손짓 하면서 잠시 자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발적으로 나오기를 바라는 듯,

황태자는 호위무관들과 함께 처소가 보이는 뜰에서 잠시 기다렸다.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허리까지 금발을 기른 작은 황녀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스스로 처소에서 걸어 나왔다.

“화, 황태자 전하…. 오, 오셨사옵니까….”

꾸짖는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아니면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복오빠가 무서운 것일까.

마치 저승사자라도 만난 것처럼 애처롭게 벌벌 떠는 유협의 모습에 유변은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어, 어떤… 일로… 오, 오셨사온 지….”

어머니가 매우 모질게 대하였음을 알기 때문에 화목한 모습을 보이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으나,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을 두려워할 줄은 몰랐다.

“오늘 부황께서 병환으로 붕어하셨다. 부황의 부고 소식을 너에게 전하러 왔단다.”

“예, 예?! 부, 부황께서…!!”

이복오빠가 전한 부황의 부고에 유협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질렀다.

경악을 토해내는 이복누이의 모습에,

유변은 씁쓸하고 황망한 마음이 들었는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오늘 부황을 잃어 슬플진대, 부황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누이는 그 심정이 어떻겠는가. 분명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일 것이다.

“거, 걱정 말거라…!! 이 오라비가 있지 않으냐! 그 누구도 너에게 해코지를 하지 못하게끔 지켜 줄 터이니 너무 무서워하지 말아라.”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당장에라도 울음을 토해내면서 쓰러질 것 같은 유협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두 손을 내밀었다.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

나는 이제 부황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될 터이니.

무사히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면 어머니 또한 유협에게 더 이상 모질게 굴진 않을 터이기에 유변은 자신이 신변의 안전을 지켜 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리고 너를 지켜 주었던 그 무관이…, 나에게 너를 부탁했다.”

소원을 들어 줄 터이니,

무엇이든 망설이지 말고 대답하라.

황태자의 제안에 이성휘는 악성전의 이복누이를 지켜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 부탁을 듣게 된 유변은 고개를 들지 못할 정도의 수치심을 느꼈다.

이복누이의 곤경을 외면해온 무신경험이,

두 눈을 부릅뜬 채 이복누이를 향한 적의를 부추기는 어머니가 무서워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무력함이,

너무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웠다.

“미안하구나. 지금까지 너를 봐주지 못하여….”

황태자는 지금까지 외면하고 방치하여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이복누이에게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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