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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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소식을 들은 조조는 즉시 관복을 입고 대장군부에 입궐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독단행동을 범한 부관을 호출했다.
조조가 대장군부에 입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을 부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이성휘는 경직된 표정을 한 채로 부름에 응하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겐가. 내게 일언반구의 언질조차도 없이.”
차디찬 목소리의,
얼음으로 만든 날카로운 송곳 같은 냉혹함에 찬 물음이었다.
그에 이성휘가 답했다.
“악성전을 호위하던 대장군부 병력이 아무런 기별도 없이 철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여?”
“혹여 불미스러운 사변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를 염려하여 악성전을 경계했었습니다.”
이성휘의 대답에 조조는 분기에 찬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신이 지금 격노를 발산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 있다는 것을 이성휘에게 간접적으로 알린 것이다.
“그걸 왜 귀관이 걱정하는가. 귀관은 나의 사람이거늘.”
악성전을 침입했던 살수들을 모두 도륙내는 과정에서 이성휘는 적잖은 부상을 입었다.
칼날에 베인 자상은 물론,
옷깃 너머의 목덜미에도 상처가 있었다.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일을 벌인 이성휘에게 야속하다는 마음 또한 느껴졌다.
‘귀관은…, 귀관은 이 조맹덕의 것이란 말이다. 어째서 내가 아닌 다른 계집을 구하려다 몸을 다친 것인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무턱대고 벌인 독단행동을 크게 화내면서 그 경솔함에 대해 지적하려 했다.
어째서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냐고,
여덟 살 계집아이의 생사가 무슨 상관이냐고,
이로 인해 황후와 대장군에게 가장 먼저 노려지게 될 터인데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냐고,
하나씩 열거하며 책임을 물으려고 했지만…,
살수들에 의해 부상을 입은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격노의 감정을 애써 삼키고 말았다. 그를 향한 격노의 감정보다도,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도 컸기 때문이리라.
“흥, 됐네! 상관에게 아무 말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귀관에게 뭘 기대하겠는가? 귀관이 어찌 되건, 나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걸세.”
조조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자신에게 온갖 걱정을 끼친 이성휘에게 토라진 모습을 보였다.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연심이라는 감정에 매우 서투른 여성의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일부러 모질게, 퉁명스러운 대답하면서 걱정에 찬 속마음을 꽁꽁 숨겨 버렸다.
그리고 또한,
이성휘를 향한 마음이 깊어질 수록 동시에 점점 커져만 가는 살의와 증오를 떠올리게 되었다.
‘귀관을 위험에 빠트린 그 계집아이는 물론, 대장군부 놈들 또한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
사랑이 커질 수록,
애절한 마음이 커져갈수록,
가슴속에서 한없이 깊어져 갈 때마다….
그 사랑을 방해하고 상처 입히는 자들을 향해 증오와 살의의 감정을 드러냈다.
섶에 눕고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기억하듯,
조조는 자신이 연모하는 사람을 상처 입힌 자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증오를 불태웠다.
“맹덕 님, 일언반구의 언질조차도 없이 독단을 벌여 죄송합니다.”
이성휘가 고개와 허리를 깊이 숙이면서 진심에 찬 사죄를 했다.
그에 조조는 못 이기는 척,
자신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을 벌인…,
심지어 다른 여자를 지키려다가 부상마저 입어 버린 이성휘에게 불만으로 가득했지만 애써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죄를 받아주었다.
“귀관이 진심으로 내게 사과하니 넓은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 이번 한 번만큼은 넘어가 주도록 하겠네.”
조조는 일부러 ‘아량’과 ‘관용’을 강조하면서 말했다.
이성휘가 마음속에 미안한 부분을,
빚을 졌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위한 술수이기도 했다.
강직하고 완고한 그의 성격상 한 번 은혜를 입었으면 반드시 그에 보답하려고 할 터. 과연 이성휘는 무엇으로 보답하려고 할까.
교활하면서도 치밀한 성품의 조조답게 이미 거기까지 염두에 둔 뒤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 하지. 자렴이 그대에게 무척이나 화가 난 듯 보이니 주의하게. 그리고 언제 원양에게 청강검을 빌려간 겐가? 나만 모르고 있었군.”
조조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그녀의 심계를 알 리가 없었던 이성휘는 자기 독단을 너그럽게 용서해준 그녀에게 기필코 용서에 대한 보답을 하겠다며 스스르에게 다짐했다.
* * *
용저가 다시 되살아났다.
(龍且再臨).
악성전을 습격했던 서른 명의 살수들을 모두 도륙 낸 이성휘의 용력을 들은 궁인들은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가 가장 아꼈던 초나라의 맹장, 용저에 비견하였다.
어린 황녀를 단신으로 지켜냈음은 물론,
궐담을 넘어 도모하려 했던 살수들까지 모조리 도륙내버렸다.
살수들의 주검으로 시산혈해(屍山血海)가 된 악성전의 끔찍한 지옥도를 본 궁인들은 그 경이로움에 온몸을 떨어야 했다.
“용저…. 그 용맹과 용력이 가히 용저에 비견될 정도인가요….”
금발의 여인이 이마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면서 침음을 흘렸다.
고운 얼굴을 잠깐 찡그리면서,
섬세한 손가락으로 뺨을 슬며시 훑었다.
사례교위 원소가 항상 고민에 빠졌을 때 보이는 버릇 중 하나였다. 손가락으로 새하얀 뺨을 툭툭 치면서 고민에 빠졌던 원소는 이내 고개를 들어 순우경에게 물었다.
“기도위 이성휘가 단신으로 서른 명에 가까운 살수들을 모두 참살했다고 해요. 심지어 그들 중 몇몇은 맨손으로 때려죽이기까지 했죠.”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은,
산 채로 척추가 꺾여 버렸다.
사나운 곰이 온몸으로 짓누르면서 인간을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듯,
호랑이가 사람의 목덜미를 물어뜯듯,
인간이 벌인 일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악성전에서 벌어진 것이다.
“내 평생 그런 괴물은 처음 보네. 건석의 난을 진압하였을 때도 자네의 말을 들었지만…, 설마 진짜로 그런 괴물이 존재할 줄은 몰랐군.”
금군중에서도 정예로 유명한 서원군을 상대로 무쌍을 기록 하였으며,
마침내 건석까지 사로잡은 무관.
도깨비 같은 놈이다.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용력을 가진.
만약 궁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닌,
먼 지방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 들은 것이었다면 결코 믿지 않았을 것이다.
“무척…. 탐이 나는 인쟤네요.”
원소가 두 팔로 팔짱을 끼면서 중얼거렸다.
무심코 입 밖으로 나온,
은연중에 본심을 담은 말을 꺼냈다.
비록 비천한 얼녀로 태어났으나 언젠가는 한나라의 정점이 되어 천하를 거머쥐겠다는 대망을 가진 야심가에게 있어 유능한 인재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가 탐이 난다.
휘하의 다른 인재들이 후순위로 밀려날 정도로.
‘맹덕의 사람만 아니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휘하에 두려 했을 텐데요.’
이성휘를 그때 영입하려 하였으나.
조조의 거센 반발로 인해 영입을 보류했다.
하지만 뛰어난 용맹으로 용저재림이라는 별칭까지 생기게 된 이성휘의 활약상에 잠시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욕망이 다시금 꿈틀대면서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어르신, 황실에서 급보입니다!”
순우경과 담소를 나누던 원소는 문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휘하 무관의 목소리였다.
그에 원소는 출입을 허락하였다.
이윽고 무관이 당혹감에 찬 표정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 * *
처음 주춧돌을 쌓아 올렸을 때는 이렇게 떨리지 않았다.
오로지 쌓아 올리는 데만 집중하였기에,
설령 쌓던 중에 무너지게 되더라도 다시 주춧돌 위에 돌들을 쌓아 올리면 되는 일이었기에,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흙바닥에 떨어진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끝에 마침내 하늘에 닿을 것 같은 높은 탑을 완성했다.
닿을 것 같으면서도 닿지 않는,
하지만 분명 탑 꼭대기는 마침내 하늘에 범접할 정도의 높음을 얻게 되었다.
‘이제 조금만 더! 이제 머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자리까지 눈앞이거늘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한단 말이냐!!’
한나라의 황후이자 황태자의 모친,
하희가 손톱을 난폭하게 꽉 깨물면서 발해왕 유협의 암살에 실패하였음을 한탄하고 또 원망했다.
밉살스러웠던 계집의 소생,
두고두고 내 아들의 후환이 될 계집아이.
새 황제의 즉위를 방해할 가장 큰 근심이 두 눈 뜨고 살아 있었다.
여전히 악운(惡運)만큼은 강한 계집아이였다. 제 어미처럼 짐독으로 독살하려 했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았을 뿐 더러, 날랜 살수들까지 동원하였음에도 죽이지 못했다.
하씨 일가의 천하를 가로막는 마지막 걸림돌.
그에 하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아들이 천자에 즉위하기 전까지 기필코 죽이겠노라고 다짐했다.
“대장군께서 드셨사옵니다.”
“일을 실패하고 무슨 낯짝으로…. 일단 들라고 하라!”
문 너머 궁녀의 물음에 하희는 깊이 격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가덕전까지 행차한 오라비를 내치지 않았다.
어디 그 변명이나 듣고 싶다.
대체 어째서 실수했는지,
한나라 군부의 수장이라는 자가 여덟 살짜리 계집아이조차 죽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퉁명하고 고집불통 같은 낯짝이 꺼내는 변명이라도 들어 보기로 했다.
“부곡장 오광이 육성한 날랜 살수들이 단 한 놈에게 모조리 몰살당했다.”
가덕전에 도착한 하진이 누이동생 앞에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살수들이 대부분 살해당했다.
기적적으로 두세 명의 살수들이 살아남았으나 모두 심적으로 크게 망가져 두 번 다시 현장에 투입시키기 어려운 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대장군부의 수많은 정적들을 성공적으로 척살해온 그들이,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폐인이 되었단 말인가.
두려운 일이다.
그런 괴물 같은 놈이 있다는 것이.
만인지상의 정점까지 앞으로 한 걸음을 남겨둔 상황에, 그런 괴물이 수면 위로 부상하였다는 것이.
“오라비는 대장군이잖아! 당장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죽이라고! 오라비의 휘하에 수천 명의 금군 병력이 있는데 뭘 망설여?”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일에 방해가 되는 놈을 당장 죽이라는 누이동생의 말에 오라비는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손을 쓸 수는 없다.
악성전을 습격했던 살수들로부터 작은 황녀를 지켜낸 놈의 무용담은 현재 궁궐 전역에, 아니 낙양을 넘어 사예주 너머까지 알려진 상태였다.
대장군인 자신이놈에게 제재(制裁)를 가한다면 필시 대소신료들은 물론 낙양 백성들까지 모두 자신을 의심할 터.
살수들을 보낸 배후가 자신임을 만천하에 모두 알리는 꼴이 된다.
새 황제의 즉위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지금까지 쌓아 올린 탑을 스스로 걷어차서 무너뜨리는 행동을 할 순 없었다.
“좌장군 황보숭이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종사중랑 겸 하남윤인 왕윤이 이를 알게 된다면 우리 일가를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사손서와 순우가, 주준과 노식까지, 황실에 충성하는 모든 늙은이들이 우리를 치려 들 것이다!”
한나라의 군부를 손아귀에 거머쥔 대장군이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황실과 조정에 충성을 바쳐왔던 노신들은 매우 껄끄러운 상대였다.
절대로 그들과 척을 져선 안 된다.
그래서 그들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고자 환관에게 탄핵당해 유배되었던 청류파 인사들을 품에 안은 것이 아닌가.
무려 15년 동안 정치판에 몸을 담았던 하진이었기에 늙은 고관대작들의 저력과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거라. 사태가 잠잠해진 이후에 주살(誅殺)할 터이니.”
초나라의 맹장, 용저에 버금가는 용력을 자랑하는 괴물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사람이다.
서른 명의 살수들로도 죽일 수 없다면,
다음에는 백 명이 넘는 살수들을 보내어 죽이면 될 뿐이다.
백 명이 안 된다면 천 명의 군세를 보내어 추살할 것이고, 천 명으로도 안 된다면 만 명의 군대를 파견하여 하씨 일가의 천하를 방해했던 죄를 그 목숨으로 물으리라.
‘만일 변수가 존재한다면….’
이성휘라는 놈을 반드시 죽이겠노라고 누이동생에게 장담하던 하진은,
과다 할 정도로 놈에게 큰 관심을 보이던 황태자 유변의 모습에 침음을 삼켰다.
“황후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하오나 지금 안에는 대장군께서 계시옵니다.”
“상관없다. 어서 앞에서 썩 물러나라!”
하씨 일가의 두 오누이가 가덕전에서 암약을 논하고 있을 때,
문 너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그리고 소란의 근원이 발걸음을 성큼성큼 걸으면서 다가오더니 가덕전의 주인이 출입을 윤허하지도 않았음에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 버렸다.
“드디어 일이 성사되었사옵니다!”
관복을 입은 중년남성이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로 크게 소리쳤다.
거기장군(車騎將軍) 하묘.
황후 하희의 동모오빠이자 대장군 하진에게는 의붓동생이었던 하묘가 환희에 들뜬 표정을 지으면서 처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 무례한 행동에 하진이 크게 일갈했다.
“네 이놈!! 황후께서 윤허를 내리지 않았을 터인데도 어찌 감히 가덕전 처소에 발을 들인단 말이냐!!”
격노에 찬 외침에 하묘는 크게 놀란 기색을 보이면서 뒷걸음질 쳤다.
하진과 하묘는 의붓형제 관계일 뿐,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남남이었기 때문에 하진과 하묘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하묘는 형양 반란을 진압한 공으로 하남윤에서 거기장군으로 출세한 이후부터 매번 오만방자한 행동들을 보이면서 대장군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였기에 하진이 매우 미워하고 있었다.
“하, 하오나… 형님! 지금 숭덕전에서… 황상께옵서 결국 병환으로 선어하셨다는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뭐, 뭐라고?!”
하묘의 말에 하진은 물론, 하희 또한 크게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게 정녕 사실이냐!”
“예, 그렇습니다. 태의령에게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
마침내 황제가 죽었다.
병환으로 사경을 헤매던 황제가 결국 한 번 감았던 두 눈을 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것이다.
한나라 황실과 조정을 농간했던 두씨 일가를 척결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거머쥐었던 황제가, 전대 황제인 환제(桓帝)와 더불어 최악의 암군으로 평가되고 있는 무능한 혼군이 겨우 서른넷이라는 나이에 요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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