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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8화 (18/616)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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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부 무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악성전의 궐담을 등진 채 호위를 서던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곧이어 악성전이 텅 비게 되었다.

축시(丑時)를 넘어선 깊은 새벽. 작은 황녀와 그녀의 수발을 드는 궁인들이 머무는 궁궐과 전각들을 방비하는 병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흠.”

금군 무관이 횃불을 높게 치켜든 채,

멀리서 훤히 보일 정도로 화광을 발산하는 횃불을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신호였다.

이제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

횃불을 이용한 신호를 보내자 어두컴컴한 칠흑 속의 그림자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가린 살수들,

작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을 정도의 노련한 실력을 자랑하는 살수들이 악성전 궐문과 궐담에 집결했다.

“발해왕은?”

“불이 꺼진 것을 확인했소. 그리고 다른 궁인들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오. 자시(子時)가 넘으면서 등불이 일제히 꺼지는 것을 봤으니 확실할 거요.”

살수들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남성의 물음에 금군 무관이 대답했다.

이미 확인을 끝낸 뒤였다.

숙직을 서는 궁인이 있는 전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의 불이 꺼지면서 궁인들이 잠이 든 것을 확인했다.

그에 살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발검.”

긴 설명은 필요치 않았다.

대장군부의 권세를 위협했던 정적들을 모두 처리해온 노련한 살수들은 날랜 정예였다.

표적을 죽이고 흔적을 지운다.

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자신들의 모습을 본 목격자는 반드시 죽인다.

검은 복면을 두른 살수들이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 들었다.

먹으로 검게 칠한 비수들,

빛에 반사되어 발각되는 일이 없도록 방비한 것이다.

날카로운 검과 비수들을 꺼낸 살수들은 호흡을 가다듬은 채, 두 눈을 번뜩이면서 궐담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우두머리의 명령을 기다렸다.

“습(襲).”

이윽고 명령이 떨어졌다.

그 순간,

검은 복면의 살수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날렵하게 궐담을 뛰어넘었다.

역수로 쥔 비수를 늘어뜨렸다.

고개를 들어 발해왕이 머무는 전각을 확인했다.

침소에 잠들어 있는 작은 황녀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아 절명시킨 뒤, 그 전각에 머무는 궁인들을 모조리 참살하여 목격자를 지운 뒤에 현장을 신속하게 빠져나갈 것이다.

‘황족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해라.’

비수를 늘어뜨린 살수가 빠른 속도로 발해왕 유협의 처소로 달려들었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빠르게 문을 열어 안으로 난입하려 했다.

하지만 문이 열린 순간,

날카로운 검이 아찔한 빛무리를 내지르면서 처소의 문을 열었던 살수의 목을 날려 버렸다.

“크악!”

고요함과 적막감에 찬 새벽,

목이 떨어지기 직전에 단말마처럼 외친 살수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머리통이 데구르르 떨어졌다.

검은 복면을 둘러 정체를 숨긴,

궐담을 넘어 악성전에 발을 들인 살수들 중 한 명이 순식간에 사망했다.

“무슨…!”

머리가 떨어졌다.

목 잃은 몸통이 피 분수를 쏟아 내며 쓰러졌다.

황녀의 처소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던 살수들의 발걸음이 우두커니 멈춰 섰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와라.”

문을 걷어차면서 나온 이성휘가 검을 크게 휘두르면서 두 명의 살수들을 벴다.

핏물이 호선을 그리면서 쏟아졌다.

시뻘건 피를 머금은 칼날이 밤하늘을 베듯 날카롭게 솟구쳤다.

단 일격에 살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를 본 우두머리는 필시 눈앞에 등장한 저 무관이 상당한 실력자임을 간파했다.

일격으로 사람의 숨통을 끊어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에, 실력자 중에서도 손으로 꼽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기예였으므로.

“쳐라.”

살수들은 신속하게 판단을 끝냈다.

눈앞의 방해꾼은 적이다.

임무를 방해하는 것들은 모두 적이므로.

날카로운 장검과 비수를 아래로 늘어뜨린 살수들이 일제히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다.

* * *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장지문이 무너지면서 피범벅된 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헉!

살수가 핏물을 토하더니 몸이 축 늘어졌다.

살육이 난무하는 칼부림이 벌어졌다.

온통 검은색을 두른 살수들이 날카로운 장검과 비수들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갑작스레 등장해 앞을 가로막은 적 한 명을 상대로 싸움이 벌어졌다.

“전하, 어서 피하시옵소서!”

환관이 크게 소리쳤다.

네 발로 걷듯이 바닥을 기어 유협에게 다가온 환관은 서둘러 피할 것을 간곡히 청했다.

그에 유협이 고개를 저었다.

궁녀들의 보호를 받고 있던 유협은 사방에서 들리는 비명 소리에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입술을 꾹 깨문 채로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대,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떨리는 입을 애써 움직이면서,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리는 몸을 애써 억누르면서,

작은 황녀는 버텨 냈다.

공포와 두려움에 온몸이 짓눌릴 것 같았음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겁에 질려 울부짖는 추태를 보이지 않았다.

“버, 버텨야 한다…. 끄, 끝날 때까지….”

바깥에서 무수히 많은 살수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고마운 사람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망정 최소한 방해는 되지 말아야 했으니까.

겨우 여덟 살이었음에도, 겁에 질려 울음을 터트리는 게 지극히 당연한 나이였음에도.

유협은 오열을 계속 참으면서,

입을 꾹 틀어막으면서 필사적으로 울음소리를 참았다.

“저, 정말로 살수들이 전하를 노리다니….”

처소에 몸을 웅크린 채 겁에 질려 떨던 궁녀들 중 한 명이,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정말로 살수들이 야심한 밤을 노려 암습을 가해 왔다.

모시는 분과 짧은 담소를 나눈 뒤에 퇴궐했던 대장군부 무관이 다시 되돌아와 암습을 경고했다. 그리고 그 경고가 사실이었음을 증명하듯, 정말로 야심한 새벽이 되자마자 날카로운 검과 비수들로 무장한 살수들이 급습해 왔다.

“꺄아악!!”

“사, 살수가 들어왔다!”

궁녀가 아연실색한 채 비명을 내질렀다.

장지문에 구멍이 뚫렸다.

구멍 속으로 상반신을 집어넣은 검은 복면의 살수가 허공에 검을 휘두르면서 포악함을 드러냈다.

“무, 문 열어! 당장 이 문을 열어라!!”

복면의 살수가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하지만 고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치 누군가가 뒤에서 그를 끌어당긴 것처럼,

허공에 검을 휘두르면서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는 궁인들을 노려보던 살수가 절규에 찬 비명을 내지르면서 뒤로 끌려나갔다.

‘오, 오히려 살수들이 겁에 떨고 있다고…?’

유협을 두 팔로 부둥켜안은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던 궁녀가 고개를 들어 장지문에 뚫린 구멍 쪽을 바라보았다.

분명 살수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있었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악성전을 습격한 살수가 도리어 비명을 내질렀다.

“괴물 같은 놈!”

“어, 어서 저 괴물을 죽여라!!”

장지문 너머에서 비치는 그림자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날카로운 검을 든 그림자들이었다.

다수의 그림자들이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면서 벌벌 떨던 궁인들을 더욱 큰 두려움에 퍼트렸다.

“크하악!”

장지문 너머에서 보이던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밑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림자가 아래로 사라질 때마다,

시뻘건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치더니 장지문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저, 전하…. 어서 귀를 막으시옵소서….”

손톱에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주먹을 쥐면서 애써 버티려는 유협의 모습에 환관이 울음을 토해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유협은 꿋꿋하게 버텨 냈다.

아니, 버텨 내려고 노력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정신을 잃고 혼절할 것만 같았음에도.

“혹시 바깥 상황을 알 수 있겠는가?”

유협이 물었다.

그에 환관이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바, 바깥의 상황… 말씀이옵니까?”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장지문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핏물들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마치 붉은 물감을 장지문에 그대로 부은 것처럼 온통 피범벅된 채였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문을 열어 확인하진 않았으나 분명히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지옥도가 처참하게 펼쳐져 있을 터.

“발해왕! 발해왕은 어디 있느냐!!”

걸쇠에 굳게 잠겨 있던 장지문이 뜯겨나가면서 온몸에 피칠갑한 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온몸에 상처들로 가득했다.

핏물을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음에도 살수는 광기에 찬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이윽고 궁녀들에게 안긴 채 보호를 받고 있던 유협을 발견했다.

“이 어린 계집년이….”

피칠갑한 살수가 문지방을 넘어 처소 안을 들이치려는 순간,

날카로운 검이 날아들었다.

뒤에서 날아든 예리한 칼끝이 살수의 몸을 꼬챙이처럼 꿰뚫어 버렸다.

코와 입을 가리고 있던 복면에서 피거품이 줄줄 흘러내렸다. 날카로운 칼날에 가슴이 뚫린 살수가 거칠게 기침을 하자 그 입에 있던 시뻘건 핏물이 처소 안까지 쏟아졌다.

“꺼억!”

검에 꿰뚫린 살수가 쓰러졌다.

장지문을 좌우로 크게 열어젖힌 살수가 토혈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쏟아 낸 채로 죽어 버린 살수의 주검을 본 궁인들은 크게 목청을 높이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놈이 스스로 검을 던졌다!”

“이제 무방비한 상태다! 모든 방향에서 쳐라!”

바깥에서 들린 살수들의 외침에,

비명을 내질렀던 궁인들은 이성휘가 처소 안으로 진입하려던 살수를 저지하기 위해 뒤에서 검을 내던졌음을 알게 되었다.

안타까운 침음을 삼켰다.

현재 빈손인 상태,

무장하지 않은 빈손으로 무수히 많은 살수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기에.

“끄하아악!!”

하지만 뒤이어,

두꺼운 가죽으로 만든 북을 사정 없이 내리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살수들의 끔찍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 * *

뚜두둑.

뚜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 팔로 복면을 얼굴에 쓴 살수를 뒤에서 끌어안은 이성휘가 억센 괴력을 발휘했다.

산 채로 척추를 꺾어 버렸다.

끔찍한 비명 소리, 그리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뒤로 꺾여 버린 채 죽어 버린 시체가 바닥에 툴썩 쓰러졌다.

“…다음.”

이성휘가 앞으로 고꾸라진 채 죽은 시체에서 청강검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칼끝을 겨눈 자세로,

온몸에 피칠갑한 그가 살수들을 위협했다.

“미, 미친놈…!”

“산 채로 등뼈를 꺾어 버리다니.”

가공할 정도의 무예는 물론,

두 팔의 억센 괴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살수들이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을 품는 건 당연하다.

지금까지 대장군부의 수많은 정적들을 죽여 온 그들이지만 사람이 산 채로 허리가 꺾여 죽어 버리는 끔찍한 광경을 본 바는 없었기에 절예를 자랑하는 검술과 뼈를 단숨에 부러뜨리는 괴력을 가진 괴물 앞에서 아연실색한 채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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