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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7화 (17/616)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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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은 자기 오랜 심복인 부곡장(部曲長) 오광에게 재앙의 싹이 될 위험이 높은 발해왕 유협을 제거해야 한다는 방안을 듣게 되었다.

그에 하진은 곧바로 결정하지 못한 채,

한나라의 황후이자 자기 누이가 있는 가덕전(嘉德殿)의 궐문을 넘었다.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누이에게 의견을 묻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이야.? 이제 곧 우리 태자가 궐에 오기로 했는데.”

동궁(東宮)에 있는 황태자가 가덕전에 들르기로 하였건만,

아무런 기별도 없이 오라비가 대뜸 찾아오자 하황후는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입궁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막역한 관계였던 오누이였으나 부와 권력에 대한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게 되면서 차츰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우리 하씨 일가의 대업을 위해 거사를 꾀하려 한다.”

“거사? 지금, 이 시기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거사(擧事)에 대해 논하는 오라비의 모습에 하황후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되물었다.

그에 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거사를 실행해야 한다. 만에 하나 황상께서 눈을 뜨시기라도 하면, 필시 발해왕을 새 후계자로 책봉하려 할 게 분명하니. 십상시들 역시도 어떻게든 발해왕을 옹립하려 들겠지. 건석이 황태자를 폐하고 발해왕을 즉위시키려 했던 것처럼.”

“그건 절대로 안 돼! 내가 왕영, 그 불여우 같은 계집을 어떻게 처리했는데….”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하황후는 자기 아들이 아니라,

황제의 총애를 두고 다퉜던 왕미인의 딸이 다음 황위를 물려받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노련한 살수들을 동원하여 악성전을 치려고 한다. 황상께서 깨어나시더라도 후계 책봉에 변함이 없도록.”

“당연히 없애야지.”

오라비로부터 부곡광 오광이 꺼낸 방안을 듣게 된 하황후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라 황실을 손아귀에 쥔 여걸다운 냉혹함이다.

잘 훈련된 살수들을 동원하여 작은 황녀를 잔인하게 살해한다는 위험천만한 방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허나 문제는 그에 따르는 위험이다. 궁궐 안에서 살수들을 동원해 시살(弑殺)을 범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큰 위험이 따른다. 오광이 알아서 잘해낼 거라고 믿으나 자칫 잘못하면…, 여태껏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이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부곡장 오광의 방안을 단번에 받아들인 하황후와는 달리, 오라비인 하진은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아직 결정하지 못하였는지,

자리에 앉은 채로 몸을 들썩이는 등의 불안을 느끼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뭘 망설여? 오라비의 말처럼 당장 내일이라도 황상이 병석에서 벌떡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자칫 황제가 우리 변이 아니라 그 여자의 딸을 다음 황제로 내세우기라도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되는 거라고!”

여동생의 표독스러운 외침에 하진이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옳다.

오광 또한 똑같은 말하지 않았는가.

‘태의령의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그 돌팔이놈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게 된 게 아닌가.’

황제의 병환을 살피던 태의령은 분명 사흘 내로 숨을 거둘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 예견은 빗나가고 말았다.

사흘이, 아니 엿새가 흘렀음에도 여전히 황제는 힘겹게 호흡을 내쉬면서 명줄을 붙잡고 있었다.

더 이상 하진은 태의령의 보고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 소생하기 어렵다고 말했던 그 보고도, 마음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던 그 보고 또한 더 이상 믿을 수 없었다.

숨을 거두리라 예견했던 태의령의 말들을 뇌리에서 배척한 하진은,

황제가 소생하여 발해왕 유협을 새 후계로 책봉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완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네 말이 맞다…. 우리 하씨 가문의 천하를 위해서라도, 황태자 전하의 만세(萬歲)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해야 될 일이다.”

하진이 굳은 결의가 담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마지막 고지를 앞두고 있다.

한 발자국만, 이제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높은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지금까지 수많은 정적들을 하나둘씩 제거하면서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 우리 남매가 출세가도를 밟을 수 있도록 대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십상시와 척을 지면서 지금의 자리를 차지했다.

절대로 망설여선 안 된다.

수단과 방법을 따져선 안 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한나라의 황후와 대장군이 된 천출 남매가 한나라의 살벌한 정국 속에서 배운 교훈이었다.

‘희(姬)의 말처럼 황제가 후계자를 바꾸기라도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된다. 지금껏 공들여 쌓은 탑을 일말의 주저 때문에 무너지는 것을 좌시할 순 없지. 어떻게 쌓아 올린 탑인데…! 우리 가문의 백 년대계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랑스러운 황태자 전하를 위해서라도! 이 두 손을 더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

대체 무엇을 주저한단 말인가,

조카가 황제에 오르면 자신은 무상(無上)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터인데.

부곡장 휘하의 날랜 살수들을 동원하여 발해왕 유협의 목숨을 거두고 화근을 짓밟아야 마땅하다. 하씨 천하를 위협하는 위협은 결코 살려 둘 수 없었으므로.

* * *

부관 이성휘가 새장 속에 갇힌 작은 황녀와 빈번하게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조조는 조홍을 보내어 사실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다.

소식은 사실이었다.

하씨 일가의 지독한 멸시와 괴롭힘을 받는 작은 황녀에게 측은지심을 느꼈는지,

발해왕 유협의 서찰을 숭덕전의 환관에게 전해줬을 뿐만 아니라 바깥소식까지 황녀에게 간간이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왕미인의 소생에게 되도 않는 친절을 베푼 거래요? 그걸 대장군이나 황후가 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씨 일가의 눈 밖에 날 게 뻔하잖아요!!”

조홍이 뾰족한목소리로 소리쳤다.

황실과 군부를 완전히 장악한 하씨 일가는 한나라의 모든 권력을 거머쥔 정점과도 같았다.

황실을 거머쥔 하황후.

군부를 통솔하는 대장군 하진.

그들에게 있어 눈에 가시와도 같은 인물이 바로 발해왕 유협이다.

하물며 발해왕의 모친을 독살한 진범이 바로 하황후가 아닌가. 황태자 유변이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게 되면 태후의 자리에 오를 하황후가 유협마저 독살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궁중에 파다 할 정도였다.

“그냥 어린아이한테 사탕 하나 쥐어줬다고 생각하면 되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잖아.”

“하황후는 황제에게 총애받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미인을 대놓고 죽였다고요! 그런 독부(毒婦)가 발해왕을, 그 황녀와 연관된 사람들을 놔둘 리 없어요!”

조홍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한탄에 찬 한숨을 깊게 토해냈다.

대체 왜 유협에게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일말의 연민과 안타까움 때문에 유협에게 접근한 것이라면 당장 말려야 했다.

그 남자가 어떻게 되던 그것은 상관할 바 아니었지만, 그를 부관으로 두고 있는 언니에게 피해가 올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조홍은 빨리 이성휘를 말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양.”

“어.”

조조의 부름에 하후돈이 고개를 들었다.

“당장 부관을 데려오도록.”

“알았어.”

하후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으로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힐끗 쳐다본 조조는 조홍에게도 잠시 나갈 것을 요청했다.

그에 조홍은 사촌 언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인 뒤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작해야 여덟 살짜리 아이에게 이 조맹덕이 질시(嫉視)를 느낀단 말인가? 우습기 짝이 없군. 부관이 발해왕을 위하는 것은 연민과 동정에서 비롯된 사소한 호의에 지나지 않을 터인데.”

후우,

조조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미녀의 도톰한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한숨에 담긴 감정은 질투와 시기였다.

궁궐 시위(侍衛)에 투입된 이성휘가 어떤 일을 계기로 발해왕 유협과 얽히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불쾌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이성휘는 바로 나 조맹덕의 사람이다. 누구의 것도 될 수 없으며 누구에게도 넘겨 주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설령 그 상대가 황제의 딸이라고 할지라도, 여덟 살에 불과한 계집아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은 내 것이니까.

내가 먼저 고른,

내가 먼저 발견한 나의 사람이기 때문에.

“애새끼 주제에 감히….”

나의 것을 탐하려는 것인가.

썩어빠진 한나라 황실의 핏덩이 주제에.

원소에게 느꼈던 불쾌감과는 또 다른 이유의 불쾌감이었다.

자신에게서 이성휘를 빼앗으려는 원소에게 적의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면,

불쌍한 척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이성휘를 위험이 도사리는 늪에 빠트리려는 유협에게 지독한 살의를 느꼈다.

“내 것을 빼앗으려 들다니.”

조조가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면서 두 눈을 부릅뜬 채로 고개를 들었다.

* * *

신시(申時)가 끝나고,

유시(酉時)로 넘어가는 시간.

이성휘는 퇴궐을 하기 전, 악성전을 잠시 출입하여 유협과 짧게나마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

작은 황녀와 가까워져선 안 된다.

그것은 알고 있음에도 항상 저녁에 되면 궐문을 서성이면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유협의 모습에 이성휘는 결국 냉혹하게 마음을 잘라 내지 못한 채 작은 황녀와의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악성전의 궐문을 넘어 저택으로 돌아가려는 이성휘의 눈에 대장군부 장졸들이 보였다.

잠시 그들을 불러 세웠다.

악성전 주변의 호위를 서는 대장군부의 병력이 분명했는데, 갑자기 그들이 호위를 풀고 떠나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저희는 부곡장의 명을 받고서 서궁(西宮)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서궁? 어째서인가?”

“지난 서원군의 반란으로 인해 무너진 전각들의 잔해를 치우는 일에 동원된다고 합니다.”

불타 무너진 잔해더미들을 치우기 위해 대장군부가 궁궐과 전각들을 호위하는 병력을 차출했다.

하루빨리 불미스러운 일을 덮어야 한다.

대장군부는 새카맣게 타버린 채 무너져 내린 폐허더미를 그대로 둘 순 없다며 호위 병력은 물론, 비상시에 즉시 투입할 수 있도록 궁중에서 대기하는 숙직병들을 투입시키기까지 했다.

‘이 저녁에?’

이제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칠흑 같은 장막이 세상을 뒤덮게 되겠지.

환한 대낮에 처리하면 될 일을 굳이 야심한 저녁에 강행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낮처럼 횃불을 켠 채로 철거 작업을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석연치 않았다.

‘필요하다면 인부를 동원하거나, 백성들에게 동원령을 내려 작업을 진행하면 될 것을 어째서 대장군부는 궁궐의 호위를 서는 금군을 투입시키는 거지?’

궁궐 호위를 서던 장졸들이 철수하는 모습을 쳐다보던 이성휘는 심상찮은 느낌을 받았다.

너무 노골적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

투박하고 매우 좀스러운…. 조금만 생각해도 그 의도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어이, 이성휘.”

이성휘가 다시 고개를 돌리면서 궐담 너머로 보이는 악성전의 전각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붉은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여성이 씨익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금군교위 하후돈이었다. 공무가 있어 궁궐을 출입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옷차림새였다.

“지금 맹덕이 엄청 화났더라고. 악성전의 황녀 전하하고 요즘 으쌰으쌰하고 있다며?”

하후돈이 큭큭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팔꿈치로 이성휘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짓궂은 농담까지 던졌다.

“너도 알잖아, 요즘 궁중 분위기가 살벌하다는 거. 지금 같은 흉흉한 시국에 황후와 대장군의 눈 밖에 나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문제인지 잘 알 거 아냐? 그러니까 자중하고 돌아오라는 분부시지.”

“맹덕 님의 명입니까?”

“응. 너를 너무도 걱정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걱정하는 맹덕의 명령이야.”

장난스러우면서,

동시에 농담이 섞인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효기교위 조조의 명령이었다.

발해왕 유협과 연관되지 마라.

황후와 대장군의 멸시와 억압을 받는 악성전의 황녀에게 개입해선 안 된다.

조조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누구보다도 그녀의 의중을 잘 헤아리는 이성휘였기 때문에 하후돈의 말을 통해 조조의 진의를 정확하게 알아챌 수 있었다.

“…….”

이성휘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하후돈에게 입을 열었다.

“원양 님, 부탁이 있습니다.”

“그냥 원양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런데 그 부탁이 뭔데? 나를 연모한다는 고백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맹덕을 감당할 자신이 진짜로 없거든. 맹덕에게 살해당하기도 싫고.”

“당연히 아닙니다.”

“야, 나도 여자라고! 가차 없이 걷어차네!”

불쾌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반박하는 하후돈의 모습에도 이성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그녀가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바라보았다.

청강검(靑釭劍). 이성휘는 궁궐과 전각들을 밝히고 있는 횃불에 반사되어 은은한 광채를 내뿜고 있는 조씨 가문의 보검을 뚫어져라 응시하면서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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