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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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석의 난을 신속하게 진압한 조조와 원소는 무관들에게 사태의 정리를 명한 뒤, 대장군 하진에게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대장군부에 도착했다.
대장군부 장군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휘하 무관으로부터 건석의 난이 모두 진압되었음을 들었기에 위풍당당하게 대장군부에 들어온 여걸들을 놀라움, 혹은 질투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건석을 놓치는 실책을 범하였으나, 서원군과 함께 내원에서 소탕하였으니 실책보다는 전공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걸세. 수고 많았네.”
하진은 건석을 저택에서 놓친 점을 꼬집으며 실책을 지적하면서도,
조조와 원소의 전공을 상찬했다.
비록 환관 집안의 손녀인 조조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지만 서원군을 진압하고 건석을 사로잡은 전과는 상찬 받아야 마땅했다.
“허나 황제 폐하께서 지금 와병 중이신 상황에 상서롭지 못하게 궁궐에 불을 지른 것은 분명 책망받아야 마땅합니다.”
좌측에서 대장군 하진을 시립하고 있던 원술이 두 손 모아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궁궐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
심지어 대장군부에 재가를 받지도 않고 저지른 괴행이 아닌가.
어릴 적부터 조조와 알던 사이였으나, 그녀가 환관 집안이라는 점을 들어 자주 괄시했던 원술이었기에 대장군부 제장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궁궐에 기름을 뿌리고 불을 지른 점을 지적했다.
크나큰 전과를 기록한 그녀들이 상찬을 받는 것이 영 못마땅했기 때문이었다.
“호분 중랑장의 말에 일리가 있으나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일일이 재가를 받기란 어려웠을 걸세. 중랑장의 말대로 상서롭지 못한 방법으로 반란을 진압하였으나, 속전속결로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음을 크게 상찬해야 마땅하다고 보네. 그렇지 않은가, 공로?”
“대, 대장군의 의중이 그러하시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하진의 말에 대장군부 장군들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분 중랑장 원술의 의견을 받아들여 평소 괄시해온 전군교위 조조를 책망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석에 누워계신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내가 직접 국문(鞠問)을 주도하겠소! 대역죄인 건석은 물론, 그들 일파와 관련된 놈들까지 모조리 색출하여 대역죄를 물을 것 이외다!”
대장군부에 속한 모든 고위급 장군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진은 당당하게 본인이 건석과 그 일파들의 죄를 명명백백 밝혀내는 국문을 주도하겠음을 밝혔다.
건석을 이용하여 황실과 궁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십상시 세력을 찍어 누르겠다는 의도였다.
그들을 완전히 축출할 생각은 없었으나,
두 번 다시 자기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게끔 영향력을 말소하고 발아래에 두려고 했다. 지금까지 천출이라며 무시를 당했던 만큼, 자신을 업신여겼던 환관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뜻이었다.
* * *
건석의 난을 진압한 대장군 하진은 황제의 직속부대였던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를 해체했다.
사실상 환관 세력의 군사적 기반 역할을 해온 서원팔교위를 해체함으로서 금군의 지배권을 차지한 것이다.
그리고 하진은 금군의 지휘권을 건석의 난을 진압하는 데 있어 큰 공을 세웠던 조조와 원소에게 일부를 양도하였으며, 조조를 효기교위(驍騎校尉)에 임명하고 원소를 사례교위(司隷校尉)에 각자 임명하면서 전적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귀관, 부상은 괜찮은가?”
“경미한 정도입니다.”
피 칠갑이 될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이성휘의 초인 같은 모습에 조조가 우려의 말을 보냈다.
무관들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다.
이성휘는 30여 명에 달하는 서원군 장졸들을 모조리 베어내고 불길에 스스로 뛰어들었던 건석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로 끄집어냈다고 한다.
건석의 난을 진압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은 다름 아닌 그였다.
“맹덕, 네가 목이 맬 정도로 집착한 이유를 알겠더라. 지금까지 수많은 장사들을 봤지만 이렇게 잘 싸우는 녀석은 처음이었다고!”
하후돈이 신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패국의 여걸은 이성휘를 완전히 전우로 인정한 듯, 이성휘와의 친분을 과시하고자 어깨에 팔을 둘렀다.
싸우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은 듯하다.
뺨에 홍조를 그릴 정도로 이성휘의 무위를 크게 칭찬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핏물을 뒤집어쓴 채로 적들을 유린하던 그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두 눈을 빛냈다.
“큭! 쓸데없는 말은 마라, 원양.”
불편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녀가 이성휘에게 가까이 달라붙자,
조조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칼자루 끝으로 하후돈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고양이가 앙칼지게 발톱을 치켜세우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불편한 티를 내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못 이기는 척 뒤로 물러섰다.
“뭐…, 잘 싸우는 건 인정하죠.”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조홍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인정해주고 싶진 않았지만,
이성휘가 무수히도 많은 적들을 상대로 혈전을 벌였던 광경을 두 눈으로 보았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가 직접 고른 부관답게 그 용맹과 담력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가 싸우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할 정도였다.
“기도위(騎都尉)에 임명된 걸 축하해요.”
여전히 새침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조홍은 반란 진압의 결정적인 공을 세운 이성휘가 기도위로 임명된 것을 솔직하게 축하해주었다.
기도위는 황제를 호위하는 기병장의 관직으로, 황궁과 궁궐의 방비를 담당하는 무관이다. 성문교위와 같은 녹봉 2천 석이지만 황제를 측근에서 보필한다는 점으로 볼 때, 분명 크나큰 승진이 분명했다.
과거 조조가 황보숭과 함께 황건적을 토벌했던 시기에 기도위에 임명된 바가 있었다.
“자렴 님과 원양 님도 교위에 임명되신 것을 경하드립니다.”
반란 진압에 나선 공을 인정받아 하후돈과 조홍 또한 교위에 임명되었다.
서원팔교위를 해체한 이후,
대장군 하진의 명령에 따라 황궁과 궁궐을 방비하던 금군부대의 일부가 조조의 휘하에 편입되었다.
하후돈과 조홍은 새로 편입된 금군 병력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원양 님은 무슨! 그냥 원양이라고 불러. 같은 전우끼리 너무 격식 차리진 말자고.”
하후돈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성휘에게 친분을 과시했다.
장차 맹덕하고 혼인하게 되면 한 가족이 되는 것이니 지금부터 그냥 가족처럼 지내려는 의도였다.
“저는 계속 자렴 님이라고 부르세요.”
흥, 조홍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하여간 새침데기라니까.”
“아니거든요!”
하후돈의 이죽거림에 조홍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외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조는 이성휘에게 과다 할 정도로 친분을 보내는 하후돈을 경계하는 한편, 이성휘를 꺼려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조홍을 신뢰했다.
“하진이 서원팔교위를 해체하고 나와 본초를 금군의 중추(中樞)로 세운 것은 황궁과 궁궐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결정이다. 황태자를 새 황제로 추대하기 전에 금군을 동원하여 불만 세력을 솎아내려는 것이지.”
조조가 하진의 의도에 대해 설명했다.
하진은 자기 조카가 무사히 황제에 즉위할 수 있도록 본격적인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금군을 동원하여 황궁과 궁궐을 장악한 이후,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황제가 붕어하자마자 즉위식을 거행하여 십상시의 시대가 몰락하고 대장군부의 시대가 낙양에 도래하였음을 만천하에 알리려는 계획이었다.
“결국 우리는 사냥개란 말이군.”
조조의 설명에 하후돈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대장군부 소속의 장졸들이 대장군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지만 권력 쟁탈을 위한 사냥개로 부려지는 것이 몹시 못마땅한 듯했다.
“허나 그 덕분에 무대 아래에 있던 우리가 본격적으로 무대 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 점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지. 예전에 비해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언니?”
“우선 황태자가 새 황제로 즉위할 때까지는 잠자코 기다릴 생각이다. 대장군 하진의 조카가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다면 십상시 측에서도 큰 변화가 일게 될 터, 건석의 난을 진압하였을 때처럼 대장군부 세력과 십상시 세력을 가늠하면서 유리한 판도를 점하겠다.”
조홍의 말에 그렇게 대답한 조조는 휘하 금군을 완전히 통솔 하에 두는 한편,
낙양에서 벌어지게 될 권력 쟁탈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들 역시 예의주시하면서 때를 기다리겠노라고 말했다.
“효기교위님, 사례교위께서 오셨습니다.”
문밖에서 호위를 서던 무관이 인기척을 내면서 사례교위 원소가 왔음을 알렸다.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의논하던 조조는 원소가 발걸음을 하였다는 것을 듣고는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본초를 만나도록 하지. 다들 자리로 돌아가도록.”
“예.”
조조가 해산을 명령하자 하후돈과 조홍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이성휘 또한 물러나려 할 때,
조조가 그를 불렀다.
“귀관.”
“예, 맹덕 님.”
이성휘가 부름에 답하자 조조는 뺨에 귀여운 보조개가 보일 정도로 살포시 미소를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해주어 고맙네.”
별다른 이유가 있어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갑자기 감사 인사하고 싶었을 뿐이다.
“저야말로 맹덕 님을 모실수 있어 영광입니다.”
조조의 갑작스러운 말에 잠시 당황한 모습을 보였던 이성휘였지만,
이내 조조의 감사 인사에 예를 취하면서 화답했다.
* * *
원소는 매우 큰 포부를,
감히 범인 따위가 언감생심도 하지 못할 웅장한 목표를 품고 있는 여걸이었다.
대망(大望)을 두 팔로 안으려 한다.
하지만 그를 위해선 자기 수족 역할을 해 줄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했다.
그래서 원소는 전(前) 서원팔교위 무관이었던 우교위 순우경과 조군좌교위 조융을 포섭하였으며, 허유와 봉기 같은 청류파 명사들과 결탁하고 대장군부의 무관들 중 탁월한 두각을 드러내는 신진 인물들을 자기 사람으로 기용하는 등의 철저한 준비했다.
‘이성휘…, 라고 했던가요? 야차(夜叉)와도 같은 서원군을 상대로 크게 활약했던 조조의 부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능한 인재들을 포섭해온 원소에게 있어 이성휘의 활약은 마치 뇌리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충격으로 전해졌다.
이렇게 뛰어난 맹장이 낙양에 있었다니.
그런데도 지금껏 간파하지 못하고 있었다니.
원소는 자기 실책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이성휘라는 인물에게 많은 호감을 드러냈다.
서원군을 상대로 무적(無敵)에 가까운 군사적 능력을 보여주었음은 물론, 조조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불길 속에 스스로 뛰어들었던 건석을 맨손으로 끄집어내면서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충성심 또한 보여 주었다.
‘충성스럽고 용맹한 인물이 제 오른팔이 기꺼이 되어 준다면 대망을 이루는 데 있어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게 분명해요. 저에게 있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인재인 셈이죠.’
안타깝게도 이성휘는 조조의 사람이었다.
교활하다는 평가를 어울릴 정도로 능수능란한 재능을 갖춘 친우에게 가로채이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근심하진 않았다.
조조는 자기 오랜 친우였으며, 지금은 함께 난세를 헤쳐 나가는 동료이기도 했다.
그리고 원소는 조조를 자기 반열 아래에 있는 부하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기에 잘만 이야기하면 이성휘를 내어 줄 것으로 생각하였다.
“맹덕.”
“기별도 없이 찾아왔군.”
이성휘라는 인물에 대해 묻고자,
그 인재를 혹시 나에게 내어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원소는 조조에게 양해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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