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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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교위(右矯衛) 순우경이 말했다.
“본초, 전군교위의 병력이 내원 돌파에 성공했다고 하네. 지금 서원군과 교전을 치르고 있을 걸세.”
“그럼 우리도 나서야겠군요.”
“설마 전군교위 단독으로 돌파에 성공할 줄이야…. 상대는 날랜 금군이 아닌가.”
조조가 단독으로 궐문을 돌파한 것에 대해 순우경은 믿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원소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조조가 성공하리라고 예상했다는 모습이었다.
“허나 내원에 불을 지르다니…. 그것도 대장군부는 물론, 우리 측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대체 어쩌자고 그런 도리에 맞지 않은 일을 범했단 말인가.”
궁궐에 불을 질렀다.
기름항아리들을 던진 뒤에 불화살을 쏘아 서원군이 점령한 내원에 화재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 소식을 들은 순우경은 필시 대장군이 진노할 것이 분명하다며 어깨를 떨었다. 조카인 황태자 유변이 뒤를 이어 즉위하게 되면 대장군 하진이 황제를 대신하여 권세를 휘두르게 될 것이기에 하진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대장군께서는 분명 속전속결을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태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지요. 일일이 재가를 받을 순 없습니다.”
“그, 그건 그러네만….”
“일단 반란 진압에만 집중하시죠, 우교위.”
“크흠! 알겠네.”
원소와 순우경이 이끄는 병력이 서원군과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조조를 지원하기 위해 참전했다.
활짝 열린 궐문으로 진입한 뒤,
내원으로 입성한 대장군부 병력들이 반란군을 소탕하기 시작했다.
“건석을 잡아라!”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그 방울 없는 놈을 기필코 사로잡아야 한다!”
시뻘건 화염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내원은 지옥도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사방에 널브러진 시체들,
마치 붉은 염료를 흩뿌린 것처럼 핏물로 인해 바닥이 질퍽질퍽할 정도였다.
무관들과 함께 내원에 들어선 원소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전황을 확인했다. 하지만 두 눈에 보이는 것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병사들 뿐, 반란 수괴였던 건석과 그 측근들이 보이지 않았다.
“건석…, 반드시 건석을 포박해야 합니다! 전 병력을 모두 풀어 건석을 당장 찾으세요!”
“알겠습니다, 중군교위!”
원소는 혹시라도 건석이 도망쳤을까,
전 병력을 동원하여 반란수괴 건석의 추포를 명령했다.
까득.
손톱을 깨물었다.
건석이 포위망을 뚫고 도주하기라도 하면 잡을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될 것이다. 십상시 세력이 건석을 두둔하면서 그 신병을 숨길 것인 즉, 반란에 동원된 자신들은 닭 쫓는 개가 된 채 지붕만 쳐다보는 꼴이 되겠지.
“중군교위, 전군교위의 부관이 중상시 건석의 추적에 나섰다고 합니다.”
“전군교위의 부관….”
선두를 이끌고 내원을 급습했던 전군교위의 부관, 이성휘가 날랜 정갑들과 함께 건석의 추격에 나섰다.
조조의 휘하 병사로부터 그 소식을 듣게 된 원소는 이성휘가 건석의 도주로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추격을 감행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건석을 결코 놓쳐선 안 된다.
원소는 우교위 순우경에게 반란군 진압을 명령하고는 정예부대를 직접 이끌고 추격을 감행했다. 건석의 뒤를 추격하러 나선 이성휘가 혹시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그를 속히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건석의 체포에 반란 진압의 사활이 걸린 만큼, 기필코 건석을 사로잡아야 했다.
* * *
조조는 하후돈, 조홍과 함께 반란군 소탕에 전념하고 있었다.
서원군은 만만치 않은 적이었다.
잘 훈련된 병사 한 명이 적병 네다섯 명을 능히 대적할 수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화계를 통해 기선제압을 한 대장군부 병력을 상대로 용력을 펼치는 기염을 토해냈다.
“더럽게도 달려드네!”
호기롭게 외치면서 들이닥쳤던 하후돈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서원군 병사들을 상대로 혀를 내둘렀다.
가차 없이 월도를 휘둘렀다.
그때마다 서원군 병사들이 쓸려 나갔지만 그런데도 상대해야 할 적들은 무수히도 많았다.
“맹덕, 네 부관이 건석을 잡으러 갔다며? 와 진짜 부럽네. 나도 건석이나 잡으러 가고 싶은데.”
“눈앞의 적에 집중해라, 원양.”
“알아, 당연히 알지!”
하후돈이 두 손으로 칼자루를 휘두르면서 정면에서 달려들었던 병사를 베어냈다.
조조가 한숨을 깊게 토해냈다.
조홍에게 이성휘가 건석의 추적에 나섰다는 보고를 들은 이후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바닷속을 뚫으면서 건석을 추포하기 위해 나섰다. 그 용감함은 찬사하여 마땅하나, 혹시라도 이성휘의 안위에 큰 위협이 들이닥칠까 조조는 그것을 몹시 우려 했다.
“언니, 저기요!”
조홍이 소리쳤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돌렸다.
원소와 순우경의 병력이 궐문을 돌파하여 내원으로 진입하였다.
전황이 단숨에 대장군부로 넘어오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밀려든 대장군부 병력을 목격한 서원군은 사태의 불리함을 깨달았는지 전의가 크게 꺾이게 되었다.
“반란의 무리들은 당장 병장기를 발치에 버리고 항복하라!”
“너희에게 더 이상 승산은 없다! 지금이라도 죄를 깨닫고 투항한다면 지금 목숨을 빼앗진 않을 것이다!”
순우경 휘하의 무관들이 창검을 치켜든 채 대치하고 있던 서원군 병력에게 투항을 종용했다.
그에 일부 병력이 병장기를 버렸다.
서로 눈치를 보던 그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대장군부에 투항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군교위 건석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찰나였다. 패전을 직감하고 도망친 우두머리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과감한 이는 드물었다. 하나둘씩 전의를 상실한 채 항복하게 되었다.
“자렴. 무관들과 함께 서원군의 무장 해제를 수행하라. 그리고 원양은 정예병을 이끌고 내원에 잔존하는 무리를 격퇴하도록.”
조조는 조홍과 하후돈에게 명령을 내린 뒤, 자신은 순우경과 함께 내원의 점령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대장군부 측에 전령을 보내어 반란 진압에 성공하였으며, 현재 수괴인 건석을 추적하고 있음을 알리도록 했다.
‘이성휘는 뛰어난 용력을 갖춘 인물이다. 필시 건석을 사로잡고 무사히 귀환할 터이지. 나는 귀관을 믿는다. 그렇기에 귀관이 낭보를 가져오기를 기다리겠다.’
부관을 걱정하여 경거망동할 순 없다. 조조는 이성휘를 굳게 믿으면서 맡은 바 소임을 다 했다.
진압을 지휘하게 된 몸이 아닌가.
반란군이 재차 공세를 벌이지 못하도록, 감히 불손한 행동을 계획하지 못하도록 잔존하는 불씨를 짓밟을 필요가 있었다.
그를 믿는다.
그렇기에 기다리겠다.
무사히 돌아오면…,
건석을 사로잡은 전공을 치켜세워주는 찬사와 함께 두 팔 벌려 반겨 주겠다.
* * *
건석의 추격에 나선 이성휘의 뒤를 밟은 원소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이성휘가 건석과 그 측근들의 후미를 따라잡은 상태였다.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살벌한 칼부림이 난무하는 것은 물론, 이미 처참하게 죽은 주검들이 주변에 널린 채였다.
그리고 그중심에 이성휘가 있었다. 이성휘의 모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온몸에 피칠갑한 채로 싸우고 있는 무관을, 가장 살벌하고 위험하게 싸우고 있는 무관을 찾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거흑, 거어억…!!”
이성휘는 두 손으로 쥔 검으로 서원군 무관의 목을 관통한 뒤,
고개를 숙이면서 다른 무관이 내질렀던 창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주먹을 휘둘러 창을 내질렀던 무관의 안면을 부서뜨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창을 주워든 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장졸들을 모조리 도륙 냈다.
“꺽!”
무관의 목을 관통했던 검을 다시 빼 들고는 힘껏 던지면서 건석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무관들 중 한 명을 절명시켰다.
“대역죄인 건석을 잡아라!”
핏물이 뚝뚝 흐르는 날카로운 창을 치켜든 이성휘가 크게 일갈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됐음에도,
거친 숨을 토해내면서 두 다리를 일으켰다.
스스로 일당백(一當百)임을 자랑하려는 듯 20여 명에 달하는 장졸들을 모조리 주검으로 만들어 버린 이성휘의 말도 안 되는 용력에 놀란 건석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을 호위하는 무관들의 등 뒤에 숨어 버렸다.
“저게 정녕 귀신이냐, 사람이냐!”
건석이 자기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무관들의 등을 떠밀면서 크게 소리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핏물로 물들인 상태로 두 눈을 빛내는 흉상을 마주하고서 두려움을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전투를 경험하였으나,
용맹무쌍한 금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용력을 발휘하는 자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주, 중군교위님!”
자신을 재촉하듯이 부르는 무관의 목소리에 원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잠시 눈을 빼앗겼다.
금군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오히려 고함을 내지르면서 건석을 위협할 정도의 압도적인 무력과 담대함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군교위 조조의 부관,
그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용맹을 자랑했다.
“저기 대역죄인 건석이 있다! 모든 장졸들은 대역죄인을 포박하라!”
원소가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그녀의 뒤에서 대기하던 중군교위 휘하의 정예부대가 움직였다.
창검을 든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이성휘와 조조군 정예들과의 싸움으로 크게 기력을 소진했던 서원군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병력에 그대로 쓸려 나갔다.
“건석 님을 내원 밖으로 뫼셔야 한다!”
“대장군부 놈들을 격퇴하라!”
건석을 호위하던 무관들이 검을 치켜든 채 달려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나서야 할 정도로 불리한 상황에 직면했음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그에 건석은 자신을 호위하던 무관들의 태반이 이탈하게 되자, 두려운 마음이 앞서게 되었는지 벌벌 떨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 나를 지킬 자는 없는가!! 대체 십상시는! 장양 어르신께선 대체 뭘 하고 계신단 말인가! 내가 죽으면 다음은 자기네들 차례가 될 것을 어찌 몰라!!”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누구도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음에,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 직면하였음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십상시 세력을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하진, 그 천출 놈은 우리 환관들을 모두 참살하고 게걸스럽게 권력을 먹어치울 생각이란 말이다! 그것을 알기에 거사를 계획하였으나, 결국 물거품이 되어 버렸구나!!”
그렇게 절규를 토해낸 건석은 자신을 계속해서 압박해 오는 대장군부 장졸들을 보고는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망칠 곳은 존재치 않았다.
자신을 지켜 주던 호위 무관들도 연이어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압박감을 느끼게 되었다.
“차, 차라리 불에 몸을 던져서라도 그 천출 놈에게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
후욱…! 후욱…!!
건석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거친 숨을 들이켰다.
불 속에 몸을 던져서 자진하겠다는 말이 결코 그냥 한 말이 아니었는지, 진심으로 활활 타고 있는 불길 속에 몸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마, 막아라!”
건석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불길에 휩싸인 채 천천히 쓰러져가던 전각으로 달려들었다.
설마 건석이 스스로 불길 속에 뛰어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에, 그 모습을 원소가 당황에 찬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하지만 누구도 나설 수 없었다.
시뻘건 화마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화재 현장에 망설임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차라리 적들과 싸웠으면 싸웠지, 뜨거운 열기가 폭산하는 전각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건 몹시도 두려운 일이었다.
“제가 놈을 붙잡아 오겠습니다.”
이성휘가 나섰다.
온몸에 피칠갑한 남성이 불길이 솟구치는 전각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뒤,
몸 곳곳에 불과 열기에 그을린 상처들이 있는 중년남성이 머리채가 붙잡힌 채로 이성휘에게 끌려나오게 되었다.
“이거 놔라! 이것 놓으란 말이다!! 으아아아악!!”
시뻘건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가 건석을 끄집어냈다.
그 모습에 원소는 물론,
그녀의 부하들마저도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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