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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11화 (11/616)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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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하진은 환관 집안의 손녀 따위가 건석과 서원군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반란 진압을 맡긴 것은 원소의 체면을 생각해서일 뿐,

결코 조조에게 기회를 주려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진은 조조가 반란 진압에 실패하기를 고대했다. 지금까지 그녀를 말석이나마 대장군부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해준 것은 환관 집안이라 할지라도 대장군부에 품겠다는 인덕과 포용성을 보이기 위함일 뿐, 언제라도 기회가 생기면 조조를 대장군부에서 내칠 생각이었다.

“환관 집안의 계집이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놈들에게 가세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대장군, 환관 세력과 관련된 것들은 결코 믿을 것이 못 됩니다.”

젊은 남성이 하진에게 붙어 반란 진압을 지휘하는 조조가 실패할 것을 확신하듯 말했다.

호분 중랑장(虎賁中郞將) 원술.

황실 근위대를 지휘하는 고위급 무관이었던 원술은 사공(司空) 원봉의 삼남이자, 노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얼녀(孽女)인 원소와는 달리 명문가의 여식이었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적자였다.

하진은 원술을 원소와 함께 크게 중임하고 있었다. 십상시를 지원하는 여남원씨 가문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화책의 일환이었다.

“공로, 병사들은 모두 대기시켰는가?”

“물론입니다. 대장군의 명이 떨어지는 순간, 용맹무쌍한 대장군부의 군대는 서원군을 모두 격파하고 건석을 산 채로 잡아 올 것입니다.”

“건석, 그놈만 죽이면 십상시는 크게 신경 쓸 것이 못 되네. 이제 곧 황태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를 것인 즉, 그때까지 십상시의 위세를 꺾으려 하네.”

건석의 반란 소식을 들은 하진은 처음에는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진에게 있어 상군교위 건석은 십상시 일파들 중에서도 상대하기 가장 성가신 인물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금군을 지휘해온 노련한 환관으로, 그의 군사적 능력은 손에 꼽을 정도로 출중했다.

그런 건석을 제거할 명분이 들어왔다.

놈은 감히 황태자를 폐하고 왕미인의 소생을 옹립하려 했다. 환관 따위가 한나라 황실을 농단하고 제 입맛에 따라 황위를 운운했다는 것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대역죄였다. 하진은 그것을 이용해 건석을 참살하고 십상시 세력을 축출하려 했다.

‘황태자 전하께서 새 황제로 즉위하시기 전까지 십상시 놈들은 최대한 때려잡으려 했는데 넝쿨째로 행운이 들어오다니…. 하늘께서 황태자 전하를 돕고 계신다는 뜻이 분명하다.’

대장군부 인사들이 건석의 반란에 간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오직 하진만이 회심에 찬 미소를 지었다.

“건석의 반란혐의는 명백하네. 그 누구도 감히 대장군부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일세.”

“어떤 정신 나간 작자가 대의명분을 꽉 쥐고 계신 대장군을 막아서겠습니까? 대장군의 결정에 반대한다는 것은 곧 대역죄인을 옹호한다는 뜻이니, 그들 또한 대역죄로 다스리심이 옳습니다.”

“자네 말이 지극히 옳네.”

원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하진은 20여 년 동안 한나라의 부와 권력을 농간했던 십상시 세력을 끝장내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하지만 그 전에,

건석의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하진은 반란 진압에 투입된 조조와 원소로부터 소식이 전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녀들이 반란 진압에 실패하면 대장군인 자신이 직접 나서서 건석을 때려잡고 한나라 황실을 구한 영웅으로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 * *

궁궐 안의 철옹성과 같은 내원에서 계속 버티기하면서 십상시 세력을 추종하는 궁궐 병력의 이반(離反)하는 것을 기다리면 거사에 성공할 수 있다.

제아무리 대장군부가 막강한 군권을 보유한 무력집단이라고는 하나,

열세 살에 즉위한 현 황제를 보필하며 황궁과 궁궐을 좌지우지했던 것은 십상시의 권위는 실로 막강했다.

궁궐 병력을 지휘하는 무관들의 대부분은 십상시의 위세를 빌려 출세한 경우였으며, 궁궐에서 내로라하는 힘을 가진 무관들 중에서 십상시와 연관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건석과 서원군은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이 움직일 경우,

십상시 세력과 관계 맺은 궁궐 병력들이 모두 대장군부를 배신하고 아군에 합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무언가가 날아온다!”

“방패를 들어라!”

대장군부 병력이 포위하는 궐담 너머로 시커먼 물건들이 계속 날아들었다.

곧이어 날아든 물건은,

쨍그랑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서원군 병사들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던 내원에 날아든 투사체의 정체는 항아리였다. 바닥에 떨어지기만 해도 쉽게 깨지는 항아리, 힘껏 내던져진 항아리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 났다.

“켁켁! 이게 대체 뭐야?!”

“항아리 안에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아니다! 이건 기름이다!!”

“대장군부 놈들이 기름을 뿌렸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투사체들의 정체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던 병사들이 이윽고 항아리 안에 든 것이 기름이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놀란 듯 소리쳤다.

기름이 가득 든 항아리가 떨어졌다.

노련한 서원군 병사들이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필시 대장군부 놈들이 화계(火計)를 펼치려고 하는 것이라며 소리쳤다. 서둘러 화계에 대비해야 한다, 병사들은 그렇게 소리쳤지만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시뻘건 불씨를 품은 화살들이 사정 없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불화살이다!”

“절대로 기름에 붙어선 안 된다!”

스스로 좁은 공간으로 기어들어 온 서원군 병사들은 눈앞에서 불지옥이 펼쳐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

불화살이 기름범벅된 공간에 닿아 착화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기름과 불씨와 만나게 되면서 찰나에 거대한 불길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불이다! 불이 번지고 있다!!”

기름에 젖은 바닥에 불화살이 날아들면서 거센 불바다가 펼쳐졌다.

병사들이 크게 비명을 질렀다.

두 다리로 내디딜 공간을 불에게 빼앗긴 병사들이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맡은 바를 지킬 수 있는 병사가 몇 명이나 될까. 시뻘건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들이닥치자 금군들 중에서도 최정예로 이름 높은 서원군이 흔들리게 되었다.

“적들이 궐담을 넘는다!!”

한 무관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서원군 병사들이 우왕좌왕 흔들리고 있을 때,

전군교위 휘하의 병력이 사다리를 이용하거나 전우들의 도움을 받아 궐담을 넘기 시작했다.

“우으으, 으아아악!!”

온몸에 불이 붙은 서원군 병사가 팔다리를 휘두르더니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다른 병사들도 다를 것 없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화계에 당황하지 않는 이 없을 정도로 큰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내원 전각들에 불길이 붙은 것은 물론,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면서 시야를 가로막았다. 사방이 온통 기름바다였기 때문에 화계의 영향이 더욱 커졌다.

“커헉!”

창검을 들고 궐담을 넘은 대장군부 병력을 가로막던 서원권 병사가 쓰러졌다.

그리고 뒤를 지키던 병사들 역시,

궐담을 넘어 내원으로 진입한 선두를 이끌고 있던 이성휘의 검에 쓰러졌다.

가장 먼저 이성휘가 궐담을 넘어 적진이나 다름없는 내원에 발을 들였다. 앞을 가로막는 서원군 병사들을 모조리 베어낸 것은 물론, 후속 병력이 궐담을 넘을 수 있도록 유도하면서 전황을 유리한쪽으로 끌어당겼다.

“지키는 놈들을 모조리 도살하고 궐문을 열어라.”

“예!”

궐담을 넘어 진입한 병사들의 역할을 당연히 굳게 닫힌 궐문을 여는 것이었다.

담을 넘어 진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시라도 빨리 궐문을 열어 포위에 동원된 병사들이 내원 앞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조조는 그 가장 중요한 역할에 이성휘를 투입한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일이 성공하듯이, 적들이 웅거하는 궐전(闕殿)을 점령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궐문을 장악하는 게 중요했다. 반란 진압의 승패요소 또한 궐문 장악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학!”

“이, 이놈이….”

대장군부 장졸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며, 서원군 소속이라는 것에 짙은 자존감을 느끼고 있었던 무관들이 침음을 내뱉었다.

화계로 인해 방어대형이 무너졌다.

궐담을 넘어 침입을 시도한 대장군부 병사들의 급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리고…,

대장군부 무관으로 추측되는 인물에 의해 벌써 10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당하고 말았다.

“크흡!”

삽시간에 온몸이 피 칠갑이 된 이성휘가 바닥에 떨어진 창을 내던지면서 병사들을 앞세운 채 뒤에서 관망하고 있던 서원군 무관을 절명시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달려들었던 병사들이 속절없이 나가떨어지기까지 했다.

온몸을 시뻘건 핏물로 절인 채, 무수히 많은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돌격했다. 복부를 찌르고 목을 베는 등, 사람을 죽임에 있어 조금의 인정조차 베풀지 않는 잔학한 모습에 살육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괴물 같은 놈.”

서원군의 한 무관이 장졸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대신하듯 오금이 저린다는 표정으로 이성휘에게 중얼거렸다.

온몸에 피와 살점이 붙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대량의 피를 쏟아 낸 채 쓰러진 장졸의 주검들로 가득했다.

“어서 궐문을 열어라!”

“한시가 급하다! 궐문을 개방하라!”

이성휘가 혈혈단신으로 병력을 가로막고 있는 사이에 전군교위 휘하 병사들이 궐문을 지키던 병력을 격파했다.

병사들이 부리나케 달라붙었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궐문을 좌우로 개방하면서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력을 불러들였다.

“후흐흐, 후하하하하핫!!!”

궐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탄 여성이 난입하면서 월도를 휘둘러 앞을 가로막은 서원군 병사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날카롭게 빛나는 두 눈을 번뜩이는 것과 동시에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월도를 휘둘렀다.

“나는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하후영의 후손이자, 패국(沛國)의 호걸인 하후원양이다! 양물 달린 사내놈들 중에 감히 누가 나와 대적하겠는가!!”

그녀의 호기로운 외침을 들은 무관들이 창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일초지적(一招之敵)의 용맹한 여걸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종횡무진으로 날뛰는 하후돈을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전군은 내원을 모두 장악하고 대역죄인 건석을 잡는다! 대역죄에 연루된 놈들 중 단 한 놈이라도 놓쳐선 안 된다!”

하후돈에 이어 조홍이 병사들과 함께 내원에 들이닥쳤다.

이윽고 대장군부와 내원군 병사들끼리의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함께 한나라를 섬기고 있으되, 서로를 향해 날카로운 창검을 휘두르는 백병전이 시작됐다.

“수, 수고 많았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칠갑한 채, 적들의 주검을 밟고 서 있던 이성휘의 모습을 본 조홍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피와 살점에 눌어붙은 검을 늘어뜨린 채 적들을 노려보고 있는 그의 모습에 잠시 위압되고 말았다.

“건석은 어디 있나요? 대장군부에서 반드시 생포해서 오라고 했는데….”

“아마 도주로를 찾고 있을 겁니다. 한시라도 빨리 포박해야 합니다. 외부에서 건석을 지원하려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조홍의 물음에 이성휘는 핏물로 범벅된 자기 얼굴을 팔로 닦으면서 말했다.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 흉흉한 모습에 조홍은 그만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지방에서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잠시 공을 세운 적이 있었지만, 온몸이 넝마가 될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면서 피 칠갑이 되어 버린 이성휘의 모습은 조씨 가문의 아가씨에게 있어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흉상이었다.

“정갑(精甲)들을 인솔하여 건석을 쫓겠습니다. 서원군의 일부 무관들이 몰래 이동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아직 내원을 벗어나지 못했을 테니 시급히 뒤를 쫓는다면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네? 온몸이 피 칠갑인데 조금 쉬시죠…. 다른 무관들에게 맡기고요.”

“건석을 놓치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갑니다. 자렴 님께서는 이곳에 남아 장졸들을 통솔하여 주십시오. 저는 건석을 잡아 오겠습니다.”

이성휘의 다급한 말에 조홍은 반박하지 못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압도 되었다고 할까.

갑옷이 넝마가 되고 핏물을 발끝까지 뒤집어썼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자기 임무에 집중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뜨거운 불길이 가로막고 있었음에도 이성휘는 일부 병사들과 함께 건석이 도망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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