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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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하진으로부터 건석의 난을 토벌할 것을 명령받게 된 이후,
조조는 병력을 이끌고 내원을 포위했다.
잘 훈련된 정예병들이 내원을 지키고 있다.
한나라의 최정예, 금군(禁軍)과 싸우게 되었음을 알게 된 병졸들은 다소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냉철함을 겸비하는 조조의 모습을 보고는 빠르게 진정되었다.
“맹덕 님. 서원군 궁병들이 궐담(闕牆)에 포진되어 있음은 물론, 전각 지붕에 올라선 채로 아군을 겨누고 있습니다.”
“역시 궁궐에 능한 금군답군.”
속전속결로 반란을 진압하려 했던 조조에게 시련이 들이닥쳤다.
그것은 서원군의 빠른 대처였다.
십상시 산하의 최정예병임을 자랑하듯 그들은 빠르게 재정비를 끝낸 상태였다.
만약 진압군이 담을 넘어 내원을 급습하려는 순간, 머리 위로 화살 비를 퍼붓겠다는 뜻이었다. 전각에 올라선 서원군 궁병의 모습을 본 전군교위 휘하의 무관들은 난색을 표시했다.
“내원에 불을 놓아야 합니다. 정공으로는 어렵습니다.”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다른 무관들이 난색을 표하는 사이,
건석을 지지하는 내원군이 웅거하는 내원 둔영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화계(火計)를 진언했다.
기름항아리를 던지고 그 위에 불화살을 날려야 한다. 적들은 급히 준비를 했기 때문에 화계에 대한 대응은 하지 못했을 터. 제아무리 금군이라도 불길 속에서는 어쩌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궁궐에 불을 놓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속전속결로 반란을 진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는 하나, 한나라 궁궐의 전각에 불을 놓을 순 없습니다!”
이성휘의 대안을 들은 무관들은 결코 들어선 안 될 것을 들었다는 듯이 아연실색한 채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조정군 병사가 궁궐에 불을 놓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역적이나 저지를 일이다. 궁궐에 불을 놓는다면 저 안에서 웅거하는 역적들과 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면 필시 대장군부에 죄를 추궁 받게 될 것이다.
“궁궐 안쪽에 불을 놓는다고요? 미쳤어요?!”
무관들을 통해 이성휘가 꺼낸 대안을 듣게 된 조홍이 새된 소리를 냈다.
가히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그것을 들은 조홍이 목 째지는 소리를 냈을 정도로 이성휘가 꺼낸 대안은 파격적인 것을 넘어 광기에 가까운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후돈만은 “그거 개쩌는 생각인데? 당장 하자!” 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부관의 말에 일리가 있다. 정면으로 공격하면 병력의 태반을 잃는 것은 물론, 반란 진압 또한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내가 실패하기를 기대하고 있을 대장군에게 나는 결코 패전을 고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니! 궁궐에 불을 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설사 화계로 서원군을 진압하더라도 결국 우리도 반란혐의를 받고 다 죽는다고요!”
조홍은 결사반대를 외치면서 두 팔로 손사래를 쳤다.
그 모습이 가히 필사적이다.
만약 사촌 언니가 부관의 그 얼토당토않은 대안을 받아들인다면 온몸으로 막아서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자렴, 반란을 속전속결로 제압할 방책이 너에게 있다는 말인가?”
“아…! 그, 그건 아니지만요오….”
조조의 날카로운 물음에 조홍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이미 조홍은 내원을 사수하는 서원군의 위용을 보고서 ‘반란을 진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고 이미 생각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만약 사후에 문제가 된다면 제가 모두 떠안겠습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조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귀관은 나를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그런 소인배로 만들려는 것인가. 나를 다독이려는 목적이라 할지라도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입에 담지 말도록.”
“…제가 감히 결례를 범했습니다.”
“모든 것들은 내 지휘와 판단에 의해 결정되고 이루어진다. 따라서 모든 책임 또한 내가 지는 것이 맞다.”
진노한 듯한 조조의 모습에 이성휘는 자기 실수를 인정하고 곧바로 사과했다.
그녀를 위한 배려였다고는 하나,
오히려 그 배려가 그녀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당장 기름항아리들을 공수하라. 최대한 많은 양을 구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조조의 결정에 결국 무관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 군부의 수장, 대장군 하진이 전군교위 조조에게 건석의 난을 진압할 것을 명령한 이상 모든 지휘권은 지금 그녀에게 있었다.
“만약 당신 때문에 맹덕 언니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절대로 용서 안 해요.”
조홍이 이성휘를 날카롭게 째려보면서 날 선 경고를 보냈다.
그에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유지하는 이성휘의 반응에 조홍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애꿎은 땅만 툭툭 내리쳤다.
“네가 이해 좀 해 줘. 자렴은 그저 맹덕이 계속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맹덕이 네 의견을 따르기로 한 것 같으니까 나도 네 의견을 따르도록 할게. 맹덕의 판단이 곧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니까.”
그것이 맹덕의 명령이라면.
하후돈은 이성휘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 곧 맹덕의 결정이라며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다.
역시 매우 털털한 성품의 여걸이다.
하후돈은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언제라도 조조의 명령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용기를 품고 있었다. 날카로운 월도를 늘어뜨린 하후돈은 당장에라도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서원군이 잔뜩 웅거하는 내원으로 몸을 던질 준비했다.
“귀관, 너무 심려치는 말게. 궁궐 전각에 웅거하면서 항전하는 쥐 새끼들을 끌어내기 위해 불을 놓는 것은 드문드문 해온 일이니.”
긴장한 듯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가 위로하듯 입을 열었다.
그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내린 판단이 자칫 조조를 위기에 몰아넣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기에 그녀의 위로는 마음속 불안감을 떨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 * *
상군교위 건석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 소식을 들은 십상시는 사태를 의논하고자 부리나케 옥당전(玉堂殿)으로 집결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발생했단 말인가.
건석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십상시들은 좌우로 눈을 굴리거나 애꿎은 수염만 계속 만지는 등, 갑작스럽게 발생한 건석의 독단행동에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건석 공이 거사에 실패하면 우리들까지 모두 엮어 들어가게 될 텐데…. 지금이라도 합류해야 하나?’
‘하지만 거사에 동참하기에는 건석 공에게 걸린 혐의가 너무 명백하다. 황태자를 폐하고 발해왕을 옹립하려 했다는 증좌가 이미 나온 상황에 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환관들의 시선이 곽승을 향하기 시작했다. 대장군부 인물에게 건석이 반란모의를 하였음을 고변한 사람이 바로 곽승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들을 느꼈는지,
얼굴빛을 흐린 곽승이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대장군부는 이미 거사를 알고 있었소이다!”
곽승은 대장군부가 건석의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그가 서원군을 움직이기 전에 대장군부 측에서 선수를 친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고변한 인물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환관을 팔아넘긴 배신자. 신의를 팔고 대장군부와 내통한 범인이 있었다.
“중상시, 어째서 대장군부에 건석 공을 고변한 겁니까!”
저택을 들이닥쳤던 대장군부의 휘하, 전군교위 조조는 분명 건석의 반란모의를 입증할 증좌를 요구했다.
내통한 인물이 있지 않고서야 어떻게 대장군부 인물이 그날 나눴던 대화를 상세히 알고 있겠는가. 곽승은 대장군부에 건석을 팔아넘긴 범인이 중상시 조충이라며 그의 배신행위를 철저히 규탄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상군교위를 고변하겠나! 곽승, 오히려 그대야말로 대장군부에 상군교위를 고변한 장본인이 아닌가! 전군교위 조조에게 순순히 증좌마저 넘겨 준 것을 보면 그대가 오히려 더 의심스럽네!”
자신을 더러운 변절자로 몰아세우는 곽승의 공격에 조충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분노를 내비쳤다.
감히 누구에게 덮어씌운단 말인가.
건석의 반란혐의를 명백히 입증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증좌를 대장군부 인물에게 스스로 넘긴 변절자 놈이.
“분명 제 저택을 습격했던 전군교위 조조가 중상시 어른께서 모두 고변했다고 말했었습니다! 이래도 잡아떼실 겁니까!”
“잡아떼다니! 대체 뭘 잡아뗀단 말인가!”
곽승과 조충이 서로를 노려보면서 격앙된 목소리를 내고 있을 때,
다른 환관들은 그저 눈치를 보기 바빴다.
대체 이 일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갑작스럽게 벌어진 거병 소식에 환관들은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었다. 사전에 계획된 거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건석의 단독행동에 동참할지를 두고 이해타산을 궁리하기 바빴다.
“모두 그만하게. 좌중이 모두 모인 이유는 상군교위의 거병에 동참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이번 일은 우리 환관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네. 자칫 그 천출 놈에게 우리 모두 엮어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일세.”
십상시들의 수장,
황제의 오른팔로 여겨지며 한나라의 모든 대소사들을 관장하였던 장양이 입을 열었다.
얼굴에 깊은 주름들이 난 노인이었지만 매섭게 빛나는 두 눈은 젊은 환관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로 힘이 넘쳤다. 장양의 말에 서로를 헐뜯으며 비방하던 곽승과 조충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좌중이 조용해지자 장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건석이 결국 대역죄인으로 죽게 된다면 거사에 동참했던 서원군은 와해될 것이고, 우리가 그간 공들여서 수족으로 만든 궁궐 금군은 모두 대장군부를 지지하게 될 터. 금군이 모두 대장군부에 넘어가게 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천출 놈에게 놀아나게 될 걸세.”
금군은 황실과 궁궐을 경비하는 군대이자 십상시들의 수족과도 같은 최정예부대였다.
지금까지 금군에 공들인 자금과 노력들이 얼마이던가. 십상시에 충성하는 무관들에게 중임을 맡긴 것은 물론, 불손한 마음을 품은 무관들은 모두 변방구석으로 쫓아내면서 수년 동안 솎아내는 작업을 해 왔다.
황제가 붕어하게 되면 대장군 하진의 조카인 황태자 유변이 황위를 계승하게 될 터.
그런데도 십상시들이 계속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황궁과 궁궐을 장악하는 금군이 모두 자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르신…, 상군교위의 편에 서실 용단이십니까?”
“하지만 이미 상군교위가 웅거하는 내원은 대장군부 병력에게 포위된 상태입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닐는지….”
건석의 거병에 동참하려는 듯한 입장을 보이는 장양의 모습에 환관들은 난색을 표시했다.
물론 어르신의 결정이라면 따르겠으나,
이미 궁지에 몰려 버린 쥐 나 다름없는 건석에게 판돈을 거는 것이 몹시 탐탁지 않아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부와 권세를 거머쥔 자신들이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일에 발을 들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직면하였는데.
거머쥐고 있는 것들이 많으므로,
절대로 위험한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어르신, 큰일 났습니다!”
거두들이 모여 의논하고 있던 옥당전(玉堂殿) 내실의 문이 열리면서 환관이 들어왔다.
환관이 급한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내원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습니다!”
대장군부 병력이 건석과 서원군이 버티고 있는 내원에 불을 놓았다.
검은 연기가 삽시간에 솟구쳤다.
시뻘건 불길이 혀를 날름거리면서 커다란 전각들을 삼키기 시작하였다.
젊은 환관이 전한 소식에 좌중에 앉은 십상시들은 물론, 우두머리였던 장양 또한 이렇게 빨리 대장군부 병력이 전면전을 꾀할 줄은 몰랐는지 크게 당황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예상보다 너무도 빨리 대장군부 병력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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