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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8화 (8/616)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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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소황문(小黃門) 곽승으로부터 건석이 반란모의를 계획하였다는 밀지를 받아 냈다.

십상시 세력을 파멸시킬 단서.

그녀는 자기 손아귀에 오만한 환관 놈들을 흙바닥에 무릎 꿇릴 수 있는 패가 들어왔음에 희열을 느꼈다.

‘십상시. 네놈들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했다. 썩어빠진 황제의 시체를 부여잡은 채 네놈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통곡하거라.’

지금까지 얼마나 고대해온 일이던가. 십상시의 농간에 의해 매번 굴욕을 당해온 나날들을 곱씹으면서 천천히 복수심을 갈기 시작했다.

우선 첫 번째 복수 대상은 건석.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오면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횡포를 부려댔던 그를 처단할 것이다.

그다음은 십상시들….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환관 집안의 손녀라고 무시했던 대장군 하진과 그 일파들 또한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맹덕 님.”

복수 대상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 이름을 살생부에 새기던 조조의 상념을 깨운 건 이성휘였다.

이성휘의 목소리에 조조가 고개를 들었다.

“금군(禁軍)의 장군과 교위들 대부분이 건석의 사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건석이 그들과 합류하지 못하도록 야심한 틈을 노려 저택을 급습하여 신병을 확보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명한 판단이다. 귀관의 말에 따르도록 하지.”

건석이 낌새를 눈치채고 서원군(西園軍)를 준동시킨다면 그대로 내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이성휘는 건석이 서원군과 합류할 수 없게끔 그가 저택에 있을 때를 노려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극히 타당한 의견이다.

이성휘의 의견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귀관은 참 종잡을 수 없는 무관이군.”

“예?”

“곰처럼 정직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명령을 수행할 때만큼은 여우처럼 교활해진단 말일세.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네, 때로는 우직해야 하고 때로는 교활하게 대처해야 할 상황이 있는 것이니.”

“가끔 맹덕 님께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난감한 말을 하십니다.”

“후후후, 그런가?”

난감하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는 사춘기 소녀처럼 배시시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에게도 감히 보여 주지 않는,

조조라는 이름의 여성이 상대방을 향해 순수한 호의를 보일 때만 입가에 담아내는 미소였다.

그 새하얀 미소에 이성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항상 진지하고 무거운 모습들을 보이는 조조가 가끔 짓는 무방비한 미소를 영접할 때마다 얼굴에 혈기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귀관을 신뢰하고 있네. 자렴을 신뢰하는 것처럼 귀관 또한 전적으로 믿고 있다고 할 수 있지.”

“과찬이십니다. 자렴 소저는 맹덕 님의 종매(從妹)가 아니십니까. 저를 그와 같은 동격에 두신다는 말씀은 너무 황송스럽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걸세. 오, 오해하진 말도록!”

후후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던 조조는 자신이 너무 노골적으로 본심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을 끊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성휘는 조조의 그런 귀여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다.

* * *

조조에게 건석의 밀지를 넘긴 곽승은 전군교위 휘하의 병사들로부터 감시를 받는 연금에 처해졌다.

혹시라도 그가 변절하여 건석에게 반란모의가 발각되었음을 알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곽승은 감히 장졸들 따위가 십상시의 저택을 감시할 수 있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융통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조조에게 먹힐 리 없었다.

“혹시라도 건석이 눈치채고 황궁의 서원군에 달려갈 수도 있으니 황궁의 경비를 담당하는 교위들과 연계하여 포위망을 펼치겠습니다.”

“윤허하겠네. 그리하도록. 그리고 바깥으로 도주할 수도 있으니 근위기병대를 통솔하는 월기교위(越騎校尉)에게도 연통을 넣게.”

“예, 알겠습니다.”

조조와 이성휘는 전생에 부부라도 되는 것처럼 손발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옆에 지켜보는 조홍이 입을 쩍 벌릴 정도였다.

대체 어디서 저런 사람을 구한 거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고향 땅에서만 맴돌았던 조홍이지만 이성휘처럼 뛰어난 인재가, 그것도 사촌 언니의 눈에 쏙 드는 인재가 세상에 또 있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곽승이라는 십상시 아무개를 털었다며? 진짜 재밌었겠네. 나도 좀 불러 주지!”

“이번에는 그리하도록 하지.”

“앗싸!”

붉은 머리카락에 비녀를 꽂은 미녀가 늘씬한 몸매를 뽐내는 것처럼 두 다리를 뻗으면서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커다란 가슴이 출렁거렸다.

조조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건강미 넘치는 미녀의 젖무덤이었다.

“여어, 색골! 미녀들한테 둘러싸여 작전 회의를 진행하는 기분이 어때?”

“원양!”

하후돈이 실실 웃으면서 이성휘의 목에 팔을 두른 채로 짓궂은 물음을 던졌다.

절색의 미모를 가진 조씨 가문과 하후씨 가문의 여식들에게 둘러싸이는 황송스러운 대접을 받고 있었던 행운남의 반응을 살피고 싶은 듯했다.

“예, 아름다우셔서 긴장됩니다.”

“뭐어? 푸하하핫! 그렇게 치켜세워주니까 고맙네.”

이성휘의 대답에 하후돈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털털하고 시원한 성격의 소유자답게,

하후돈은 거짓이 일체 없는 진심이 담긴 말들을 듣는 것을 좋아했다.

상대를 향해 고백하는 것도.

상대의 마음을 물어보는 것도.

머뭇대면서 고백할 시기를 놓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답답함에 가슴을 두드릴 정도로 격하게 반응했다.

‘마음씨 넓은 내가 솔직하지 못한 사촌을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줘야지.’

무려 1년 동안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낸 사촌을 볼 때마다 답답함을 넘어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

조금만 가슴이 컸다면….

몸으로 자빠뜨릴 만도 했을 텐데.

만약 조조가 알아챘다면 사촌이라 할지라도 절연을 선언했을 폭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중얼거린 하후돈은 작전을 설명하는 이성휘를 옆에서 힐끗힐끗 쳐다보기 바쁜 조조의 모습에 한탄 섞인 한숨을 토해냈다.

“요컨대 건석이라는 놈을 놓치지 말고 단번에 때려잡으면 된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이렇게 요약하니까 알아듣기 쉬워서 좋네. 내 눈앞에 건석이라는 놈이 보이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서라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을 테니까 안심하라고.”

건석의 저택을 중심으로 이미 300명의 날랜 병사들이 매복하는 상태였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사냥감을 궁지에 몰아넣고서 단숨에 산 채로 사로잡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매복이었다.

곽승의 저택을 급습하기 전부터 건석의 행동반경을 계산했다. 그는 밤이 되면 측근들을 저택에 불러 음주가무를 즐겼다. 이성휘는 건석이 측근들과 함께 기녀의 치마폭에 빠져 있을 때를 노려서 일망타진하려고 했다.

“교위님, 건석의 저택에 기녀들이 출입하기 시작했다는 보고입니다. 이제 곧 연회를 벌일 모양인 것 같습니다.”

“계속 주시하도록. 저택을 빠져나가는 인원들을 빠짐없이 확인하라.”

“예!”

조조의 명령에 휘하 무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매복하는 병사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건석은 눈치가 매우 빠른 인물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매복하는 병사들이 발각될지도 모르니 최대한 빨리 저택을 들이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가도록 하지.”

조조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날카로운 검을 허리에 찬 조홍과 위협적인 월도를 어깨에 멘 하후돈이 조조의 뒤를 지켰다.

반면 이성휘는 조조의 옆을 지켰다.

뒤를 따르는 사촌들과는 달리, 이성휘는 조조로부터 유일하게 자기 옆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 * *

한나라의 권력을 좌지우지하는 당대의 권력가, 건석의 저택은 거머쥐고 있는 부와 권력만큼이나 대단한 규모를 자랑했다.

마치 궁궐을 연상시킬 정도였다.

규모가 너무도 큰 탓에 조조는 대장군부와 공조하여 건석을 잡기 위한 포위망을 형성했다.

대장군부에서 지원군을 끌고 도착한 사람은 대장군부의 2인자이자 서원팔교위 중에서 중군교위를 역임하는 원소였다. 순금을 녹여낸 것처럼 아름다운 금발을 자랑하는 원소의 등장에 이성휘는 물론, 조조 휘하의 병사들 또한 매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맹덕, 주변 길목들마다 궁노병을 배치시켰어요. 이걸로 건석은 등에 날개가 달리지 않은 이상에야 결코 도망치지 못할 거예요.”

“수고 많았다, 본초.”

조조와 원소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건석의 저택을 응시했다.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하달하기 전,

잠시 숨을 가다듬으면서 마음의 준비했다.

낙양에서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는 두 여걸들에게 있어서도 건석은 거물 중의 거물, 무소불위의 권력을 장악하는 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거인을 친다는 것은 상당한 담력을 요구했다.

“아. 당신이 이성휘군요.”

조조를 힐끗 쳐다본 원소는 그녀의 뒤에 선 채 명령을 기다리던 이성휘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원소의 말에 조조가 어깨를 떨었다.

그리고 불만 섞인 시선으로 이성휘에게 관심을 느끼는 원소의 반응을 경계했다.

그녀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우수한 인재들을 보면 깊은 관심을 가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재물욕보다도 인재욕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만큼, 이성휘가 뛰어난 인재임을 알게 되면 원소가 탐욕을 드러내리라 직감했다.

“전군교위의 부관인 이성휘라고 합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지금은 우선 건석을 타도하는 게 목적이니 나중으로 미루도록 하죠.”

이성휘와의 짧은 대화를 끝낸 원소는 휘하 무관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대장군부의 병력이 움직였다.

날카로운 병장기와 견고한 갑옷으로 무장한 정예병들이 강철로 만들어진 파도처럼 진격을 시도했다.

잘 훈련된 정예병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원소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건석의 저택을 급습했다. 앞을 가로막는 건석의 노복들을 단숨에 때려눕힌 뒤, 저택을 경비하는가병(家兵)들까지 제압하려 했다.

“대역죄인 건석을 추포하라!”

“앞을 가로막는 놈은 죽여도 좋다!”

창을 겨눈 채 앞을 막아서는 가병의 모습에 대장군부의 정예병들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 끝에 온몸이 난자되었다.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죽은 시체를 지나 궁궐처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석의 저택을 빠르게 누볐다.

“꺄아아악!!”

“사람이 죽었어!”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해 건석의 저택에 초대된 기녀들이 겁에 질린 비명을 토해냈다.

눈앞에 사람이 죽은 것을 보고는,

마치 경기를 일으키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도망쳤다.

정예병들이 도망치는 기녀를 그대로 지나치면서 건석이 있을지도 모르는 누각을 하나둘씩 수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누각 안에는 노복들로 추정되는 인원들만이 있을 뿐, 정작 건석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한 명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저택을 에워싸고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라. 건석이 혼란을 틈타 도주를 시도할지도 모른다. 병사들을 뚫고 도망치는 놈이 있다면 기녀라고 할지라도 활을 쏴라.”

대장군부의 2인자답게 원소의 휘하 무관들은 오합지졸 같은 삼류와는 격이 달랐다.

철저히 임무에 따라 움직였다.

임무의 목적은 건석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 원소의 무관들은 건석을 추포할 수 있다면 작은 희생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냉혹함을 겸비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습니다!”

“여, 여기도 없습니다!”

저택 수색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다녔다.

하지만 그런데도 가장 중요한 건석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

“…맹덕 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말해 보게.”

조조의 허락에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건석은 항상 측근들과 함께 연회를 즐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저택 안에서 잡은 놈이라고는 잔챙이들에 불과합니다.”

“설마 건석이 일을 눈치채고 도주했단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래도 놈이 수상함을 눈치챈 듯 보입니다.”

조조와 이성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원소가 격앙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게 정말인가요! 건석…, 그 망할 작자가 계획을 눈치채고 도주했다는 말이!”

“십중팔구 그렇습니다.”

“하긴 이렇게까지 저택을 뒤졌는데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어디론가 도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겠죠. 그럼 건석은 어디로 도망쳤을 것 같은가요?”

이마 위로 흘러내린 금발을 짜증스럽게 뒤로 넘긴 원소가 이성휘에게 다급한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낙양 밖으로 도망쳤을 리 없습니다. 새로운 천자가 즉위하게 된다면 당장 대규모 추살령이 내려질 테니까요. 제가 건석이라면 황궁으로 도주하여 서원군을 움직일 겁니다.”

“서, 서원군이 움직이면… 병석에 누운 황상은 물론 황태자 전하까지 모두 건석에게 볼모로 붙잡힐 위험이 있어요!”

“저택을 급습하기 전에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황궁으로 통하는 모든 길목들을 막으라고 했습니다. 만약 건석이 황궁으로 도주했다면 병사들이 붙잡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후우…! 그건 다행스러운 일이군요.”

미리 조치를 취했다는 이성휘의 대답에 원소는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도, 건석의 신병을 완전히 확보하기 전까지는 안도할 수 없다며 즉시 추격대를 편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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