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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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부에서 중군교위 원소와 담판을 지은 조조가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반나절이 흐른 뒤였다.
그동안 조홍은 이성휘와 시간을 보냈다.
집안 내력과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등, 시시콜콜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들을 물으면서 이성휘라는 무관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언니의 부관으로 적합한 인물일까. 조홍의 주된 관심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언니의 안목을 감히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을 결코 가벼이 믿지 않는 언니가 뽑은 부관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문교위면… 꽤 높은 직급이네요. 물론 우리 조씨 가문의 권위와 위세에 비하면 초라한 움집 수준이지만요. 그래도 부관님 딴에는 열심히 출세를 목적으로 전심전력을 다 했을 테니까 대단하다고 칭찬해 줄게요.”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칭찬하는 듯한 말이다.
악의가 담긴 말투는 아니었지만 묘하게 신경을 자극하고 있었다.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돈이 필요하면 말하세요. 낮은 이자로 빌려드릴게요. 무이자는 절대로 안 돼요. 그리고 아무리 언니의 부관이라도 돈을 떼먹는 것도 안 돼요. 제 돈 떼먹고 도망치면 무서운 아저씨들이 부관님을 쫓을 걸요.”
“안 빌립니다. 궁하지도 않고.”
“원래 사람이라는 게 모르는 거잖아요.”
예주(豫州) 패국(沛國)에서 제일가는 부자인 조홍은 사업수완이 매우 뛰어난 재녀였다.
창고에 곡식과 재화들이 가득한 것은 물론, 하인과 노비가 1만 명을 헤아릴 정도로 예주 호족들 사이에서도 제일가는 부자로 손꼽혔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 또한 상당한 축에 속했지만 조홍이 보유하는 재산은 그녀 스스로가 뛰어난 사업수완을 통해 거둬들인 것이었다. 고리대금업을 포함해, 비단 사업과 소금 사업에도 투자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일은 없더라고요.”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흥, 다들 그러더라고요. 하지만 결국 빈궁을 못 참고 제 앞에서 간이고 쓸개고 모두 내놓을 것처럼 굴던데요.”
조홍은 재물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회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매우 인색했다.
자기 돈을 떼먹는 놈이 있으면 오체분시(五體分屍)를 해서라도 반드시 받아 낼 것만 같았다.
“크흠! 흉흉한 대화들을 나누고 있군.”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조홍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성휘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던 조조가 헛기침하면서 돌아왔음을 알렸다.
사촌 언니의 등장에 조홍이 장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반겼다.
“오셨어요, 언니.”
“자렴. 와줘서 고맙다.”
“언니께서 부르는 일인데 당연히 제가 와야죠. 어려운 때일수록 혈족들끼리 뭉쳐야 하지 않겠어요?”
조홍이 배시시 웃었다.
재물에 매우 인색하지만
가문과 가족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각별한 듯했다.
마치 주인에게 달려가는 강아지처럼 조조에게 매달렸다. 오랜만의 재회가 반가웠는지, 이성휘에게 보이지 않았던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조와 조홍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역시 자매다.’ 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
그리고 침어낙안(沈魚落雁)이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용모까지.
조씨 가문의 여식들은 모두 하나 같이 절세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듯했다.
‘그래도 삼국지의 진(眞) 주인공인 조조가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지만. 조홍은 조조 다음의 서브 히로인이니까.’
앙큼하고 당돌한 매력을 가진 조홍의 인기 또한 매우 상당하여 조조를 제치고 조홍을 정실로 삼는 플레이어 또한 적지 않았다.
조홍은 재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색함을 자랑하지만 호감도 MAX를 찍는 순간, 자기 재산을 모두 공동명의로 바꿀 정도로 사랑에 매달리는 순애파 히로인이 되어 버린다.
게다가,
조홍은 아담한 가슴인 사촌 언니에 비해 커다란 거유를 자랑했다.
아마도 모은 재산들 중 일부를 빈유 유전자를 바꾸는 데 썼을 것 같다.
“귀관, 서둘러 준비하게. 본초를 통해 대장군으로부터 허락을 얻어냈으니. 이제 곧 물밑 작업을 펼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맹덕 님.”
조조의 말에 이성휘가 고개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귀를 쫑긋 세우면서 그 대화를 옆에서 들은 조홍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죠? 물밑 작업? 둘이서 강가에 낚시라도 하러 가는 건가요? 그럼 저도 낄게요. 기춘현 현령을 지내면서 소일 거리로 낚시를 한 적이 있거든요.”
조조와 이성휘의 대화를 들은 조홍은 ‘물밑 작업’ 이라는 말에 낚시하러 가는 것이라고 오해를 했는지 두 눈을 빛내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녀는 곧,
물밑 작업의 정체에 크게 경악해야 했다.
* * *
원소를 통해 대장군 하진의 허락을 받게 된 조조는 물밑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군교위의 권한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많지 않았지만 궁궐을 활보하기에는 충분했다. 대장군부의 수장인 대장군의 허락을 받았으므로 거칠 것 없이 행동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곽승을 붙잡았다.
그가 야심한 시각에 은밀히 건석과 만남을 가졌다는 정보를 곽승 집안의 노복을 통해 접수했기 때문이다.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일개 장졸 나부랭이들 따위가 소황문(小黃門)의 앞을 막아선단 말이냐!!”
갑작스럽게 저택 안으로 들이닥친 병사들의 폭거에 놀란 곽승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이성휘가 두 손으로 검을 납검한 검집을 들고는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꺼억!!”
자기 몸을 붙잡은 장졸들을 위협하던 곽승은 명치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호흡을 하기 어려웠는지 컥컥, 소리를 내면서 침을 토해냈다.
“소황문 곽승. 쥐 새끼처럼 숨어들어 중상시 건석과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조조가 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단이 센 여성의 목소리에 고통에 시름하던 곽승이 온몸을 떨었다.
혹시 반란모의가 발각된 것인가.
곽승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두 눈을 떨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그날 밤에 나눴던 밀담은 누구도 모를 터인데 어찌하여 이들은 그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무슨 말인지 당최 모르겠군…! 중상시와 만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사사로운 일을 의논하고자 만난 것일 뿐, 너희 같은 하찮은 장졸 따위에게 겁박을 받을 이유는 없다!”
“이게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됐나 보네.”
명치를 얻어맞고 꼴사납게 침이나 토한 주제에 취객마냥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곽승의 태도에 이성휘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시 검집을 들어 올렸다.
그에 곽승은 또 자신을 때릴까 몸을 움찔 떨었다.
‘대, 대체 저게 뭐 하는 짓이야! 정확한 증좌도 없다면서! 게다가 낚시라면서! 무슨 낚시를 십상시 일파의 저택에서 해!!’
병사들과 함께 곽승을 둘러싼 채 겁박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홍이 속으로 비명을 크게 내질렀다.
곽승은 십상시의 일원이자,
황궁의 금문(禁門)을 맡아보는 고위급 직책을 가진 환관이다.
야심한 밤에 은밀하게 건석을 만나 밀담을 나눴다는 사실은 포착했지만 둘이 만나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반란모의를 획책했다는 증거조차 입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권력을 가진 십상시에게 폭행을 가하는 이성휘의 행동에 경악을 토해냈다.
“이미 중상시 조충이 모든 것을 자백했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조홍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눈빛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조충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깊은 심야에 밀담을 나눈 사람은 건석과 곽승 뿐, 조충 또한 관련되어 있다는 증좌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조충을 걸고넘어지는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당장에라도 그를 말려야 하지 않겠냐는 듯 사촌 언니를 간절한 눈빛으로 보냈다.
“대장추 어르신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 혼자서 독박 쓰시든가.”
반란모의를 확신하는 듯한 이성휘의 말투에 곽승의 눈빛이 흔들리게 되었다.
곽승은 건석과 반란을 모의한 이후,
중상시 조충을 은밀하게 만나 건석이 제안했던 반란모의를 의논한 적이 있었다.
조충이 모든 것을 자백했다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는 건 당연했다. 지금까지 정치적 후견인이 되어 주었던 황제의 목숨이 오늘내일하는지금, 지금까지 권력의 중심에 섰던 십상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다.
“대장추 어르신께서 모두 고변하셨다는 게 정말인가…? 황상 폐하께서 아무리 몸져누우셨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토록 빨리 단념하실수가.”
곽승이 고개를 떨구면서 체념한 듯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순히 인정하는 듯한 곽승의 모습에 조홍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지켜보았다.
“소황문 어르신, 지금이라도 반란모의와 관련된 증좌를 남겨 주십시오. 그것만이 어르신께서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알겠네. 건석이 내게 넘겨 준 밀지가 있으니 그것을 넘겨 주지.”
이성휘가 무관들에게 눈짓하자 곽승의 뒤를 따라서 밀지가 있는 침소로 향했다.
반란모의를 꾀했다는 증좌가 드러났다.
이것으로 황태자 유변을 폐하고 발해왕 유협을 옹립하려 했던 상군교위 건석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모두 이성휘가 말했던 것처럼 흘러가게 되자 조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입을 열었다.
“귀관은 어떻게 그리 상세하고 알고 있었는가? 중상시 조충이 연관되어 있다는 말은 그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지 않은가.”
“조충은 궁궐의 군권을 장악하는 거기장군입니다. 만약 궁궐 내에서 반란을 모의하였다면 당연히 조충과 작당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곽승과 조충은 절친한 사이로 유명합니다. 건석에게 반란모의를 들었다면 필시 조충과 의논하였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조조의 물음에 대답한 이성휘는 다시금 입을 열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방금 보시다시피 곽승은 겁이 많고 유약한 성품이기 때문에 반란모의 같은 역모를 주선 받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알려 의지하려 들 테니까요.”
삼국지 플레이어로서 중상시 건석이 유변을 폐위하고 유협을 옹립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를 사실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이성휘는 자신이 성문교위를 지내는 동안 십상시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시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만 대답했다.
“오.”
조홍이 크게 감탄한 듯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역시 언니가 고른 부관답다.
낙양에 도착한 지 하루가 안 되어 그것을 확인하게 된 조홍은 두 주먹을 불끈 쥘 정도로 놀라워했다.
원래 낙양 무관들은 모두 이렇게 유능한가? 황제와 십상시의 대대적인 매관매직 사업으로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찬 것들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개 중에도 뛰어난 무관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곽승이 가진 증좌를 무기로 금군(禁軍)을 장악한 건석을 쉽게 숙청할 수 있겠군. 반란모의를 했다는 증좌가 명백하다면 서원군(西園軍)은 결코 움직이지 않을 터이니.”
십상시가 두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한나라 황제를 대신하여 군권을 오랫동안 휘둘러 온 건석이 금군을 모두 지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일을 계기로 건석이 제거된다면,
십상시 세력은 대장군부 세력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채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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