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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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는 친우인 조조를 대장군부에 불러 함께 차를 마시고는 했다.
오늘 또한 마찬가지였다.
원소는 지기였던 조조와 차를 마시면서 간단히 담소를 나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무거운 주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황제의 병환,
갈수록 깊어져만 가는 병환으로 인해 머지 않아 붕어할지도 이야기였다.
감히 녹을 먹는 신하들이 황제의 죽음을 운운한다는 것은 큰 불경죄였지만 현실주의자였던 원소와 조조는 단둘이 담소를 나눌 때만큼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는 주제들도 거침없이 하고는 했다.
“…그게 사실인가?”
“당연히 사실이죠. 제가 구태여 맹덕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정 문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중신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인데.”
황제의 죽음이 문턱에 도달하였다.
이제 그 문턱을 넘는 순간,
그동안 숨죽인 채 야욕의 실현을 기다려온 군웅들이 고개를 쳐들 것이다.
조조는 애써 원소 앞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찻잔을 꼭 쥐고 있던 두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리고 그것을 놓칠 원소가 아니다. 조조의 변화에 원소는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음, 그렇겠군.”
“당연히 황태자께서 다음 황위를 물려받으시겠죠.”
오랫동안 부황(父皇)에게 미움을 받은 탓에 황태자에 책봉이 되지 못했던 유변이었지만 자기 병환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 황제가 결국 책봉을 윤허하면서 황태자가 될 수 있었다.
유변 황자가 황태자에 책봉된 이후,
황제의 병환은 더욱 심해져 또렷하게 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그에 하황후와 하진은 크게 기뻐했다. 황제가 마침내 유변 황자를 황태자에 책봉하면서 불안했던 후계 구도가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제가 이제 곧 붕어할 것처럼 병환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하씨 남매는 하루빨리 유변 황태자를 새 황제로 옹립할 준비하기 시작했다.
‘본초, 너도 움직이고 있겠지. 하씨 남매에게 한나라의 모든 권력을 넘겨줄 네가 아니니까. 너는 내가 지금까지 만나 본 사람들 중 가장 탐욕스러운 위인이다.’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바닥에 내려놓은 조조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차를 홀짝이는 원소를 힐끗 쳐다보았다.
여유로우면서도 우아한,
그러면서도 위엄이 넘치는 모습이다.
그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온화한 가면으로 자기 심중에서 꿈틀대는 야망과 욕심을 숨기고 있는 기만책을 두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느 누구보다도 야욕에 찬 여인이면서 항상 도덕군자의 모습을 흉내 내는 점이 거슬렸다.
“오늘 먼 곳에서 친척이 오신다면서요? 음, 친척이라고 하면…. 예주(豫州) 패국(沛國)에서 오겠군요. 꽤 먼 곳에서 오는 손님이네요.”
“내 종제다.”
“친척 동생들이 많다고 하셨죠.”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다.
후후, 웃음을 흘리면서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원소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조조는 불안감을 느꼈다.
항상 그녀에게 뒤처지는 듯한 느낌, 그녀에게 밀려난 채 2등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앞섰다.
불쾌했다.
그것이 몹시도.
우위에 선 채 내려다보는 모습처럼 여유로운 원소의 모습에 조조는 심중에서 열불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본초, 네 말대로 황제가 붕어하면 황태자가 즉위하게 되겠지. 그리되면 당연히 태후의 자리에 오를 하황후와 후견인 역할을 자처한 대장군 하진이 황제를 내세운 채 만인지상에 오르게 될 터.”
“십상시를 우려하고 계신 거죠?”
“…그렇다.”
눈치가 빠르군.
곧바로 반응하는 원소의 대답에 조조는 침음을 삼켰다.
“나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다오.”
“기회요?”
“하씨 남매의 위세에 눌려 십상시들이 준동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만약 십상시들이 반역을 획책하고 있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토벌하고 싶다.”
흐음.
갑작스러운 조조의 부탁에 원소는 찻잔을 내려놓은 채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지를 다지기 위함인가요? 새 황제께서 옹립되시면 대장군의 세상이 될 터. 그럼 당연히 대장군의 괄시를 받는 맹덕은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될 수밖에 없겠죠.’
부탁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조금 저의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제 곧 대장군부의 실세들이 정권을 장악하는 새 시대가 도래하게 될 터인데 뭐가 문제겠는가.
원소는 조조의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친우를 향한 의리이자 정이었고,
또한 직접 칼을 휘두르는 ‘아랫사람’으로 그 본분을 다하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좋아요. 만약 맹덕의 말대로 십상시가 혼란을 틈타 반란을 획책한다면 제가 대장군에게 천거하여 그 진압을 맡기겠어요.”
새 시대를 위한 첫 단추,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십상시 세력을 꺾기 위한 작업,
원소는 그 역할을 조조에게 맡겼다.
그녀의 말에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오랜 후견인이었던 황제가 사망하여 하진의 조카인 황태자가 황위를 계승하게 된다면 십상시는 위기감을 느끼고 불순한 흉계를 꾸밀 터.
십상시가 반란을 획책하기 전에 그를 미리 간파하여 조기 진압에 성공한다면 새 황제를 옹립할 준비에 기대감을 품고 있는 대장군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할 것이다.
* * *
전군교위 조조의 종제(從弟),
조홍은 삼촌의 추천으로 기춘현(蘄春縣) 현령(縣令)을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싫증을 내게 되었다.
현령 자리를 꿰차면서 여러 장사들을 겸업한 덕분에 쉽게 돈방석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녀의 밑 빠진 독 같은 커다란 탐욕을 채울 수가 없었다.
작은 현을 다스리고 있는 자기 처지에 한탄하게 된 그녀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촌언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낙양으로 곧장 상경하였다.
“안녕하세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언니의 부관이라면서요? 그럼 능력은 입증된 셈이네요.”
당돌한 인사와 함께 악수를 건네는 소녀의 행동에 이성휘는 얼떨떨함을 감출 수 없었다.
조홍, 자는 자렴.
스스로 이름을 밝힌 소녀는 누가 봐도 전군교위 조조의 친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용모가 매우 닮아 있었다.
곱슬거리는 새카만 흑발.
거기에 홍옥처럼 빛나는 눈동자.
조씨 가문의 일원들은 모두 선남선녀인 건지 조조와 마찬가지로 조홍 또한 눈부신 미녀였다.
갓 내린 눈송이처럼 새하얀 피부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이성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제 용모에 빠지셨군요. 당연하죠. 이해합니다. 예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본 사내들은 모두 그렇게 반응하니까요.”
조조와 비슷한 용모이 되,
그 성격과 말투만큼은 정반대였다.
되도록 사무적인 모습을 보이는 조조와는 달리, 사촌 동생인 조홍은 쾌활한 말괄량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맹덕 님의 부관을 맡은 이성휘라고 합니다. 조씨 가문의 소저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조홍의 안하무인 같은 태도에도 이성휘는 고개 숙이면서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넸다.
조조의 사촌 동생이었으므로,
그리고 그녀와 꼭 빼닮은 용모 때문인지 안하무인 같았던 첫 인상에도 밉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신기하기만 했다. 조조와 빼닮은 용모였음에도 성격이 전혀 달랐으니까. 조조가 만약 거드름을 피우는 성격이 된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았다.
“흥, 뭐… 70점 정도는 되겠네요.”
이성휘의 얼굴과 몸을 빤히 쳐다보던 조홍은 작품을 품평하는 채점가처럼 깐깐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기 호오(好惡)를 기준으로 한 점수를 내렸다.
매우 무례한 행동이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점수를 매긴다니.
하지만 이성휘는 어린아이의 재롱을 대하는 어른처럼 피식 웃으면서 조홍의 치기 어린 행동을 받아들였다. 조조의 사촌 동생, 조홍은 여동생처럼 느껴지는 소녀였기 때문이다.
“오신다는 말씀은 맹덕 님에게 들었습니다. 먼 길을 오셔서 여독이 쌓이셨을 테니, 바로 조부(曹部)로 모시겠습니다.”
“아뇨, 언니부터 먼저 만나고 싶네요. 언니는 어디 계신가요? 저택에 안 계신다고 들었는데.”
“잠시 대장군부에 가셨습니다.”
“대장군부요? 으음, 그럼 많이 바쁘시겠네요. 좋아요, 그럼 조부로 안내해주세요.”
“예.”
조홍의 대답에 이성휘는 조씨 가문의 저택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할 예우해 줄 이유는 없었지만,
조조에게 낙양으로 상경하는 사촌 동생을 부탁받았기 때문에 이성휘는 그녀를 호위해주었다.
“이제 큰일이 벌어지는 거죠?”
조홍이 물었다.
시가지를 걷던 중에 갑작스럽게 꺼낸 그녀의 물음에 잠시 이성휘의 걸음이 멈춰 섰다.
황제가 붕어하는 순간, 한나라의 권력을 둘로 나누고 있는 대장군과 십상시의 권력 쟁탈이 시작될 것이다. 조조의 목적은 이 권력 쟁탈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출세와 양명의 도구로 삼는 것. 그를 위해 이성휘와 조조는 물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언니한테 들은 건 없어요. 그냥 제가 멋대로 가정한 거죠. ‘언니께서 나를 낙양으로 부르신 이유가 뭘까. 혹시 나를 필요로 할 정도의 일이 낙양에서 벌어지는 걸까.’ 라고요.”
친족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정도의 일이 낙양에서 벌어지게 된다.
조조는 사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믿음직스러운 친족들로 하여금 자기 수족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대장군부에 이름을 올렸으되 대장군부로부터 신용과 지원을 받지 못하는 조조였기에 친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조는 기춘현 현령으로 있는 조홍을 낙양으로 소환했다.
“근데 참 놀랍네요. 언니가 우리들 말고 다른 사람을 믿다니.”
조홍의 붉은 눈동자가 이성휘를 거울처럼 비췄다.
짙은 호기심이 느껴졌다.
익살스러움을 가득 머금은 그녀의 얼굴은 장난기가 넘치는 악동을 보는 듯했다.
“대체 어느 점을 신뢰했을지… 궁금하네요.”
괴짜 같은 성격은 조씨 혈족들마다 계승되는 모양이다.
자신을 빤히 쳐다 보면서 흥미로운 눈빛을 짓는 조홍의 행동에 이성휘는 한 걸음 거리를 벌리면서 거북함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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