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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5화 (5/616)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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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시(中常侍) 건석은 비록 환관이지만 기골이 장대하고 담력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과거 영제가 즉위하였을 당시,

황제의 명을 받들어 황궁을 장악하고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두무와 진번을 참살했던 것이 그가 아니었던가.

황제의 근위군, 서원팔교위를 이끄는 대장인 상군교위에 임명된 것 또한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리라.

“하진, 그놈은 어떻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유변 황자를 옹립할 게 분명하오. 그리되면 우리 환관들은 비천하고 무식한 무장들에게 핍박과 모멸을 당하게 될 것이오.”

손톱을 깨물면서 분한 듯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백정 놈이.

건석은 푸줏간에서 고기나 썰던 어린아이가 자기 위치를 위협할 정도의 적이 된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다.

사람이라면 응당 은혜를 입었으면 보은을 해야 마땅하거늘. 비천한 신분의 오누이를 황후와 대장군에 오를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거늘 위세를 얻었다고 칼을 거꾸로 쥔단 말인가.

‘역시 그 천한 핏줄은 값진 비단옷과 향유로도 감출 수 없는 겠지.’

내 두 번 다시 더러운 천민을 믿지 않으리라.

그렇게 중얼거린 건석은 중차대한 거사를 논의하고자 중상시 곽승을 은밀하게 저택으로 불렀다.

“황상을 겁박하여 황실을 기만했던 두무와 진번의 일을 떠올려보시오. 우리 환관들이 대의를 품고 군사를 일으켜서 더러운 무리들을 몰아내고 황실의 법도와 국가의 평안을 두 손으로 지켰소이다. 작금에 와서는 백정 오누이가 황상을 겁박하고 황실을 기만하고 있소. 우리 환관들이 다시금 대의로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니겠소이까.”

건석은 곽승과 합심하여 다른 십상시들까지 규합한 뒤, 함께 금군을 움직여서 대장군 일파를 축출할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거사의 핵심은 황궁의 금군(禁軍)이다.

속전속결로 대장군부를 장악하고 하진과 그 일파들을 참살해야 했다.

그리고 그 뒤,

하황후의 소생인 유변 황자를 폐서인으로 강등시키고 발해왕을 다음 황제로 추대할 것이다.

“허나 중상시, 작금의 대장군부 세력은 무서울 정도로 강성하기 그지없소이다. 사대부 자제들도 모두 하진을 지지하고 있거늘, 어찌 거사가 성공할 수 있겠소이까.”

곽승은 건석이 계획한 거사를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공할 리가 없다.

대장군부가 지휘하는 병력만 하더라도 10만에 이를진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설령 금군을 동원하여 궁궐을 장악한다고 한들, 하진과 그 일파들이 낙양을 탈출하여 지방군을 이끌고서 돌아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오. 그러니 우선은 기회를 엿보면서 다음을 기약하도록 하십시다.”

너무 성급한 계획이다.

곽승은 하진이 스스로 패망을 자초하기를 기다려야 한다며 성급하게 움직이려는 건석을 제지했다.

그러나 건석의 생각은 달랐다.

거사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곽승의 태도가 몹시도 불만이었는지, 으름장을 놓듯이 곽승을 크게 꾸짖었다.

“지금 하진과 동향이라고 하여 망설이는 것이 아니오? 작금의 사태를 만든 책임이 공에게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그게 무슨 해괴한 망발이오?!”

갑자기 하진과 동향임을 거론하는 건석의 돌발적인 발언에 곽승이 몸을 떨었다.

찔리는 감이 없진 않았다.

지금의 하황후를 황제에게 추천한 것도, 하진을 조정의 말석으로 추천한 것도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완현 사람이었기에 하진의 편의를 봐주었고, 덕분에 하진은 곽승의 도움으로 지금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건석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지금이야말로 과오를 씻을 때라며, 하진과 그 일파를 모두 죽여서 한황실을 향한 충성심을 입증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하진은 역적이오. 누이와 손을 잡고 황실의 대통마저 위협하고 있소이다.”

“…그건 무슨 말이오.”

“폐하께서는 옛적부터 유변 황자가 아닌, 발해왕이 뒤를 이어 황위를 계승하도록 유지를 내리셨소.”

황제 유굉은 정신을 잃기 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었음을 인지하고는 중상시 건석에게 유지를 부탁했다.

첫째는 어리석고 유약하여 옥좌의 주인이 될 자질이 없다. 그래서 유굉은 유변이 아닌 유협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하였다. 그래서 금군을 지휘하는 중상시, 건석을 불러 유협의 후견인으로 삼은 것이었다.

“정말로 폐하께서 발해왕을 다음 후계로 삼으시겠다고 하셨단 말이오?!”

건석에 말에 놀란 곽승이 다급한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에 건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내 원한다면 폐하의 친서를 보여드릴 수도 있소. 그러니 지금은 나를 도와 십상시를 움직여주시오. 과거에 두무와 진번을 몰아냈던 것처럼, 황실을 기만하는 역적들을 토벌토록 하십시다.”

건석의 강단 있는 부탁에 곽승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사를 찬동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기장군에게 의논하여 군대를 움직일 방책을 마련해 보겠소.”

곽승은 십상시 동료이자 금군을 지휘하는 상급 장군이기도 한 조충과 의논하겠다고 말했다.

* * *

환관들의 밀담이 이어지고 있을 때,

조조는 낙양 시가지의 순찰 임무를 목적으로 이성휘와 함께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이렇게 낙양의 밤거리를 거닐고 있으니 옛날 생각들이 스멀스멀 나는군.”

“연세 깊으신 분에게 어울릴 말씀입니다.”

“…….”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붉은 눈동자의 시선이 가차 없이 가해졌다.

“물론 맹덕 님께선 젊고 아름다우시니 이에 해당되지 않겠습니다만.”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불편해진 상관의 심기를 달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부관이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말이었지만,

조조는 이성휘에게 용모를 칭찬 받아 기쁜지 고개를 끄덕였다.

뜻밖에 쉽게 기분이 풀렸다. 가벼운 말실수였기 때문일까.

‘서주대효녀’

‘백성 슬레이어’

‘민초 깎는 예초기녀’

라는 살벌한 별명들이 붙게 되는 그녀치고는 매우 너그러운 용서였다. 이성휘는 조조가 너무 쉽게 용서해주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게 되었다.

“온갖 권모술수들이 벌어지고 있는 낙양이라고 하기엔… 꽤 조용하군요.”

“그렇게 보일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권세가들이 모여 음험한 계략들을 지껄이면서 부와 권력을 차지할 계획이나 짜고 있겠지.”

“한나라의 권력을 차지하는 세력은 대장군부와 십상시들만이 아닐 테니까요.”

교활한 이리들이 몰려든 곳.

호랑이는 옛적에 사라지고 그 밑에 있던 이리들이 부귀영화를 차지하고자 싸울 뿐이다.

조조는 강대한 힘과 지도력을 가진 호랑이가 출현하여 전역을 진정시키지 않는 한 싸움과 전횡이 계속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과연 한나라를 차지할 호랑이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대장군부에도, 십상시에도 끼지 못 하는 신세다. 이런 내가 과연 한나라 조정의 정점이 될 수 있을까.’

한나라 조정을 장악하는 양대 세력, 십상시와 대장군부를 견제하면서 새로운 세력을 구축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참고 기다릴 뿐이다.

그래서 조조는 하진과 그 일파들로부터 환관 여식이라는 오명을 받으면서도 훗날을 위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대체 언제까지 이 빌어먹을 수모와 모욕을 참아야 한단 말인가.

“맹덕 님, 헌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이성휘의 물음에 조조는 상념을 털어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한낱 계집에 불과하다는 건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해 의심암귀가 무심코 심중에 파고드는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였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전군교위 조조에게 약한 부분은, 남들에게 업신여겨질 수도 있는 부분이 존재해선 안 된다. 그렇기에 조조는 자기 약점이 혹여 드러나진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황실은 기름을 끼얹은 초가집과도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 위에 작은 불씨가 떨어지게 된다면 커다란 불길에 되어 삽시간에 초가집을 태우겠지요.”

“그리고 그 작은 불씨란 황제의 붕어를 의미하는 것이로군.”

조조는 마치 부부의 연을 맺은 아내처럼 이성휘가 돌발적으로 꺼낸 말에도 그 뜻을 이해했다.

황제는 머지 않아 죽는다.

분명히 이성휘는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황제의 죽음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지, 대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조조는 이성휘를 크게 신임하고 있었다.

위로 나아가기 위해선 먼저 위에 있는 것들을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굴러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듯이,

한나라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세력들을 무너뜨려야만 그 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다.

“헌데 귀관, 비록 지금의 황제가 역사에 다시없을 암군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한나라의 황제가 아닌가?”

황제의 붕어를 작은 불씨로 비유하는 이성휘의 말에 조조는 유쾌한 듯 웃었다.

그 담력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

황제의 죽음을 논하면서 그 뒤에 있을 후폭풍을 경계하고, 나아가 그 후폭풍 속에서 위로 나아가기 위한 대책을 논하는 이성휘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만약 이 자리에 하후돈이 있었다면 “콩깍지가 아주 걸리셨네.” 라고 말하면서 박장대소를 금치 못했으리라.

“앞으로 벌어지게 될 거대한 불길에 비하면 황제의 죽음은 작은 불씨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군.”

거대한 불길.

조조는 이성휘가 언급한 ‘거대한 불길’이 자신을 언급하는 것을 간파했다.

그렇기에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자신이,

조맹덕이라는 여자가,

한나라를 불태울 거대한 불길이 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두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낙양에서 거대한 동란이 벌어지는 것을 기다릴 뿐. 대장군부와 십상시, 낙양의 권력을 거머쥔 두 세력들의 균형이 붕괴되는 순간…, 즉시 거병하여 반란을 진압할 것이다.”

황제가 죽는 순간 십상시가 움직인다.

그에 조조는 이성휘와 함께 십상시를 토벌하여 힘과 명성을 손아귀에 쥘 생각이었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 황제가 죽기만을, 십상시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릴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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