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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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교위 조조의 부관이 된 이후,
이성휘는 그녀와 지내게 되면서 점차 그녀에 대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우선 조조는 단것을 좋아했다.
항상 냉철하고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 온 조조였지만 뜻밖에 아이처럼 단것을 먹는 귀여운 식성이 있었다.
물론 이것은 우연히 알게 된 일이었다. 조조는 자기 일거수 일투족에 철저힌 성격으로, 남들에게 업신여겨질 만한 것들을 철저히 숨겼다. 조조가 단것을 좋아한다는 것도 그녀가 몰래 먹고 있는 모습을 포착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몰랐을 일이었다.
“딱히 숨기실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왜소한 체격 탓에 업신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단것까지 좋아한다는 게 알려지면 조롱거리가 될 터. 지금 본 것은 잊어다오.”
“예, 알겠습니다.”
조조는 대장군 파벌에도, 십상시 파벌에도 들지 못 하는 외로운 처지였다.
그 말은 즉,
두 파벌들로부터 동시에 노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조는 항상 자기 처신과 행동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 파벌에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과다 할 정도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경향이 있었다.
“전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그, 그런가….”
이성휘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조조가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혹시 놀린다고 생각했나.
이성휘는 조조의 반응에 자신이 너무 허울 없이 말했음을 후회했다.
하지만 조조가 고개를 돌린 이유는 정반대였다. 이성휘가 말한 ‘귀엽다’라는 말에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잘 익은 사과처럼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렇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일 순 없었기에 조조는 애써 고개를 돌리면서 자기 얼굴을 숨겼다.
“귀관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가끔은 먹어도 되겠군.”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귀관은 내 부관이니. 상관의 허울을 타인에게 발설하는 무지한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
이성휘의 시원한 대답에 조조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훌륭한 부관이다.
눈썰미도 제법 있고 영민하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동료처럼 지냈다. 공무를 처리하는 업무시각은 물론, 퇴궐한 이후에도 자주 자리를 가지면서 시간을 보냈다. 업무능력이 준수하고 병사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이성휘는 부관으로서의 역할을 100점 만점에 120점에 달하는 완성도로 일을 처리했다. 나머지 20점은 사적인 마음에서 나온 점수였다.
“안녕하세요, 성문교위님!”
조조와 함께 길을 걷던 중,
꽃집을 운영하는 묘령의 처녀가 이성휘에게 화사한 웃음을 지으면서 다가왔다.
아는 얼굴이었는지 이성휘가 웃으면서 반겼다.
“요즘 장사는 어때?”
“경기가 좋을 리 없죠. 항상 불경기예요. 언제쯤 사는 게 나아질지 모르겠다고요.”
“낙양 무관으로서 부끄러운데.”
“맞아요, 솔직히 세금 내기 싫어요.”
“그건 나도야.”
이성휘의 농담에 묘령의 처녀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성휘에게 해맑은 웃음을 짓는 처녀의 행동에 조조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조조의 붉은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영천 전투에서 무려 수만 명에 달하는 황건적 포로들을 학살했을 때 보였던 그 섬뜩함이었다. 자기 소중한 부관에게 선뜻 다가와서는 화사하게 웃음을 짓는 처녀의 행동에 살의를 드러냈다.
‘외간 남자에게 다가와서 천박하게 교태를 부리다니…. 빌어먹을 탕녀 같으니. 꽃집이 아니라 창관에서 일하고 있어야 할 여자군. 웃음과 몸을 팔아서 이성휘를 낚아챌 생각인가? 시장에서 꽃을 팔아 겨우 연명할 뿐인 인생이니 꽃뱀처럼 남자를 낚아채서 인생 역전을 하겠다는 천박한 생각이겠지…!!’
조조가 이를 바득 갈았다.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이성휘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처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꽃집 처녀가 조조에게 다가왔다. 함박웃음을 짓더니 이성휘에게 물었다.
“혹시 연인 분이신가요?”
조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치 눈보라 덮인 겨울에서 따스한 봄으로 바뀐 것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그, 그렇게 보였나….”
크흠, 조조가 헛기침했다.
남들이 보기엔 우리가 연인처럼 보이기도 하겠지. 조금 과장을 보태면 잘 어울리는 원앙부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처녀의 한마디에 조조의 살기 어린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렸다.
“내 상관. 전군교위 조조 님.”
“아,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처녀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낙양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조의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조가 낙양북부위에 봉직하였을 당시, 건석의 숙부를 때려죽인 일화가 매우 유명했기 때문이다.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조에게 무상으로 값비싼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에 이성휘는 공짜로 받을 순 없다면서 제값을 치렀다. 조조에게 건넨 꽃다발은 꽃집에서 가장 비싼 가격이다. 그걸 알기에 이성휘는 공짜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흠, 꽃인가. 감사히 받도록 하지.”
“옛!”
조조가 꽃다발을 건네받았다.
꽃집 처녀는 조조에게 혹시라도 앙갚음을 당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지금 조조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당장에라도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꽃다발을 건넨 사람은 꽃집 처녀였지만, 그 꽃다발을 구매한 사람은 이성휘였다. 따라서 이성휘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은 것과 진배없었다. 조조는 이성휘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뒤,
조조는 몸종에게 가장 좋은 꽃병을 들고 오도록 명령했다.
꽃다발을 풀어 꽃병에 장식했다.
화사한 꽃들이 파릇파릇하게 피어 있다. 그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조조는 남들에게 결코 보일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맹덕. 그렇게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고…. 어디서 좋은 남자라도 만났어?”
대낮부터 술을 기울이던 여인이 깔깔 웃으면서 조조에게 물었다.
씩씩하고 강인한 느낌의 미녀였다.
늘씬한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카락을 비녀로 고정한 그녀는 조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자 큰 흥미를 느꼈는지 자초지종을 물었다.
물론 조조는 답해주지 않았다. 이실직고했다간 자기 사촌이 두고두고 놀려먹을게 분명했으니까. 게다가 혹시라도 그 남자에게 추파라도 던진다면 사촌이라 하더라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원양, 네가 알 것 없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네가 그렇게 싱글벙글하는데 흥미가 안 갈 수가 없잖아?”
미녀가 깔깔 웃었다.
어깨를 으쓱이면서 조조의 말에 대꾸했다.
늘씬한 몸매의 미녀는 조조의 사촌 동생인 하후돈이었다. 조조가 황건적을 진압했을 당시, 조조의 무관으로 참전하여 공을 세운 적이 있었다.
하후돈은 용맹하고 날래기로 유명한 패국(沛國)의 여걸이다. 사납고 잔인했던 황건적들조차 그녀 앞에서는 일초지적(一招之敵)도 되지 않았다. 영천 전투에서 황건적 두령들의 수급을 베어 용맹을 떨친 것으로 유명했다.
“아핫핫! 그렇게 화난 표정은 짓지 말라구. 알았어, 알았다고. 관심 끌게. 관심 끄면 되잖아.”
하후돈이 결국 손사래를 쳤다.
아무래도 역린을 건든 듯하다.
조조가 노려보자 하후돈은 한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흥미를 끊을 생각은 없었다. 하후돈은 흥미가 동하는 일이 생기면 그것을 직접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조조의 마음을 훔친 게 누군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데. 잘생겼어? 어느 집안인데?”
관심 끈다고 한지 얼마나 됐다고.
정체를 파고드는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숨기는 게 의미 없는 일이긴 했다.
이성휘를 부관으로 들인 이상, 언젠가는 하후돈에게 들킬 일이었다. 궁금한 건 못 참는 하후돈의 성격이라면 두 발로 뛰어다니며 알아낼 게 분명했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다. 이번에 임명된 부관에게 받았다.”
정확히는 꽃집 처녀다.
하지만 조조의 머릿속에 꽃집 처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앞뒤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이성휘에게 꽃을 받았다고만 기억할 뿐이다. 콧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릴 정도로 기뻐한 것도 이성휘에게 꽃다발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오, 부관?”
하후돈의 두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당장에라도 달려가 얼굴을 확인할 것처럼 들뜬 모습을 보였다.
맹덕의 일이 곧 내 일이지.
하후돈은 그렇게 당당히 주장했다. 사촌이 짝사랑하는 남자가 잘생겼는지, 어떤 집안의 자제인지를 자세하게 확인하려고 했다. 그리고 고향에 있는 동생들에게 아주 상세하게 퍼뜨리려고 했다.
“잘생겼어?”
“…자, 잘생긴 편이다.”
“성격은? 아무리 잘생겼어도 성격이 여남원씨의 개망나니 같으면 말짱 도루묵이지.”
“자상하다. 남을 돕길 좋아한다.”
“가문은? 가문이 영 별로면 숙부님께서 극구 반대하실 텐데.”
“지금은 난세다! 가문은 중요치 않다!”
“호오….”
조조의 즉답에 하후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떻게 생긴 남자이기에 사촌의 마음을 이렇게나 뒤흔들었단 말인가?
들을수록 흥미가 생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성에게 마음을 준 적도, 관심을 가져 본 적도 없는 얼어붙은 마음이 두부처럼 흐물흐물하게 변할 줄이야.
“원양, 패국의 상황은?”
“아직 뒤숭숭하지. 예주(豫州)가 황건적에게 떨어졌다가 다시 수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언제 또 황건적들이 몰려올지 모른다면서 불안에 떨고 있다더라.”
하후돈은 관직을 포기하고 패국으로 내려가 거병을 준비할 것을 조조에게 제안 했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더욱 큰 혼란이…, 한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발길 정도의 난세가 벌어져야만 우리에게 기회가 생긴다.”
“십상시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네.”
“황건적에 의해 낙양에 전복되고 황제가 시해 당했다면 모를까, 황제와 낙양이 모두 무사한 현 상황에서 거병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생각이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하후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조조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다.
“시기가 되면 말해. 널 위해 싸워줄 테니까.”
하후돈이 술잔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술을 가득 따른 뒤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옷소매로 입가에 흐른 술을 닦았다.
혼자 마시기에는 아쉬웠는지 조조에게 술을 권유했다. 당연히 조조는 거절했다.
“그래서 그 부관이라는 녀석은 알아?”
“모른다. 하지만 대의에 함께 해 줄 거라고 믿는다.”
“무슨 근거로?”
“감이다.”
“대단한데. 천하의 조맹덕께서 근거도 없이 자신감을 드러내다니.”
그렇게 말한 하후돈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지금이라도 의중을 떠봐.”
“그, 그럴 예정이다.”
“아니, 무슨 고백하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뜸을 들여? 내가 대신 말해 줘?”
“시끄럽다! 닥쳐!”
하후돈이 이죽거리자 조조가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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