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15화 (215/217)

"좋아. 통증이 있다면 즉시 말하거라. 입을 열지 못하겠다면, 검지를 살짝 들어 올려도 상관없다."

"불안한데..."

"다 몸에 좋은 거니까,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느니라."

파시어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작은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지식과 음모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알았어."

하지만, 이제 와서 그녀가 내게 무슨 수를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믿고 마법에 몸을 맡겼다.

의자에 앉은 나는, 그녀의 마력이 서서히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 바꾸고 있다. 내 몸이 뒤틀리고 있으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음..."

"억지로 참을 필요는 없느니라."

살짝 눈을 떠 보니, 시각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었다. 파시어는, 초조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괜찮아. 조금 간지럽긴 하지만..."

"다행이구나.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확실히, 그녀의 준비성을 생각하면 이 주문은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숲에서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아예 생각조차 해 두지 않았던 일이었을 테니까.

"그럼 더 천천히 했어도 괜찮은 거 아니야?"

파시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몸의 노화를 늦추는 건 그럭저럭 해볼 만 한 일이지만, 이미 노화된 몸을 과거로 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라."

"흠..."

"내가 그런 어린 몸으로 살아야 했던 것도, 배합이 아슬아슬했기 때문이지.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다간,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으로 평생을 살았어야 할 거다."

"그건 좀 무섭네."

파시어의 마력은 내 몸 고루고루 퍼져 무언가를 바꾼 뒤, 서서히 밖으로 퍼져 나왔다.

"옳지. 끝났다."

"신기할 정도로 안 아팠는데..."

"당연한 일이니라. 조금이라도 통증이 있었다면 무언가 실패했다는 뜻이었으니. 조금의 흠도 없이, 깔끔하게 일이 진행되었구나."

"생각보다 쉽네."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지만, 파시어는 돌아오자마자 마탑을 다시 완벽하게 장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보다 더 강한 마법사는 없었다. 마법에 관한 지식이든, 그 힘이나 기교로든 그녀를 따라올 만한 이가 없었다.

마탑을 장악한 그녀가 처음 준비한 프로젝트는, 내 수명을 늘리기 위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게 꼭 필요한 건지..."

"분명 필요할 게다. 너는 그 가련한 엘프가 가엾지도 않으냐?"

"...네르웬?"

"네가 죽고 나면 그 아이가 얼마나 괴로워하겠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바로 너를 따라 죽는 것이 그나마 희망적인 미래일 것 같구나."

"...풉."

"아니, 나는 이리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아니, 그냥..."

조금, 우스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적의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이런 관계가 되어버리다니.

하지만, 파시어의 말에 틀린 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네르웬을 위해서라도, 나는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몇 살 정도 더 살 수 있게 되는 건데?"

"노화를 배제하면 삼백 년 정도. 수명만 생각 하면 천 년 정도니라."

"생각보다 엄청 길지는 않네?"

인간의 수명을 생각하면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이었지만, 영생의 기준으로 봤을 때는 그리 유의미한 시간은 아니었다.

당장, 이 시술을 몇 번씩 받아낸다 해도 나는 네르웬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임시 시술에 불과할 뿐이다. 뭐, 이 수명 내내 제국을 다스리기만 해도... 살아 있는 전설이 될 수 있겠구나."

"황제 노릇을 그렇게 많이 할 생각은 없어."

기껏해야 몇 년, 길어야 몇 십 년이 지나면 괜찮은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불멸의 존재가 제국을 다스리는 건 문제의 소지가 적지 않았다. 할 만큼 하고,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가야겠지."

"그래..."

몇 분 정도 더 누워 있자, 몸에 감각이 돌아왔다.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파시어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무슨 말씀을. 그 고생을 감수하고, 내게 살아 있으라 명령한 건 너였잖나."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런 식으로 말해 놓고, 혼자 죽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느니라. 너는 내가 꿈을 이루는 그날까지, 나를 지켜보고 있어야 할 거다."

파시어의 눈이 반짝였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착각인가, 조금 큰 것 같은데..."

키가 아주 조금이나마 더 자란 것 같았다.

"아, 옳게 봤느니라. 눈치가 빠르구나?"

"...정말?"

"그 유니콘의 도움을 받았을 때부터, 이 몸에 걸린 마법들은 산산이 깨어져 버렸느니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

뭐, 그리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파시어라면 무슨 일이 있건 알아서 잘 살아갈 테니까.

"그러니, 원하는 나이대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거라. 그 시간을 영원히 유지시켜 줄 테니."

"내 의견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빨리 해."

"뭐라? 지금 이 모습이 취향이었단 말이더냐? 흐음... 이건 논란의 여지가 있겠군."

"지랄하지 말고."

농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나는 그녀에 대한 경계심을 놓아 버렸다.

"그 꿈이라는 건... 바뀌지 않은 거지?"

"방법은 바뀌었느니라. 하지만... 음, 이런 곳에서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소중한 이야기니까. 잠깐, 올라가겠나?"

"응?"

/////

밤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반짝이는 불빛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별을, 다시 보자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준비를 철저히 해 둔 건지, 마탑 꼭대기에 있는 옥상에는 눕듯이 앉을 수 있는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자, 눕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파시어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밤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이 아름다운 광경을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와 그녀는 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하늘의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다가, 가끔 힐끔거리며 그 하늘을 보고 있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파시어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 별에...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 별에 살 수 있을 거라고, 어떤 희생을 거쳐서라도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지."

"..."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네가 알려주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과 함께하고 있는 순간들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니까."

"과찬이네."

파시어는 저 하늘에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내, 그 손을 돌려 내게 건넸다.

나는 살포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니, 이제는 한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언젠가 이뤄질 모든 이의 영생보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기로 결심했다."

"그것도 나름 괜찮네."

"말뿐이 아니다. 지금 당장 가지고 있는 자원과 마법 재료를 투자하기만 해도, 제국 시민들의 수명을 이십 년은 더 늘릴 수 있어."

아무렇지 않게 충격적인 말을 꺼내는 그녀의 담력에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파시어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극소수의 영생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사용될 수 있는 영생을 계획하던 그녀다. 어느 정도 '비용 현실화'가 이루어졌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뭐, 몇몇 귀족이나 황족에게는 돈을 더 받고 이십 년이 아닌 삼십 년, 사십 년짜리 수술을 팔아먹는다거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엄청나네."

"수술할 마술사의 인력 문제나... 그런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지는 않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이들을 도울 수 있지. 네가 그랬던 것처럼."

파시어의 눈이 빛났다.

"순간 이동 마법으로 별에 가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탑을 쌓을 생각이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마치 처음 별을 바라보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함과 기대감이 가득 어린 눈빛으로 파시어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러냐... 그래. 언젠가는 할 수 있겠지. 뭐, 내가 있던 세계에서는 별에 갈 때 로켓을 쓰긴 했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

"음, 말 그대로야. 일종의 거대한 추진체 같은 건데, 그걸 써서 사람을 우주로 올려보냈지."

입이 떡 벌어진 파시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희 세계에서는, 저 별에 사람을 보내 본 것이냐? 그렇다면 설마, 영생도..."

"아니, 그건 한참 멀었고. 별에 사람을 보내 보는 것까지만. 대단한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만큼 엄청난 일은 아니야."

파시어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니, 그런... 그 수준이었을, 하, 놀랍군."

"어쨌든, 너도 언젠가는 할 수 있을 거다."

나는 파시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다.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의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수많은 계획을 준비해 두는 여자.

그녀라면 어떤 방법을 쓰건,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뤄낼 것이다.

"그래... 너만, 네가 언제든지 내 목을 쳐 줄 준비를 하고 있다면. 나는 반드시 해낼 수 있느니라."

조금 살벌한 말이었지만, 나는 그녀의 본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 번 자신이 흔들렸다고 생각하는 그녀로서는,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의심 없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두려울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제 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황제가 되고 나면 좀 바빠지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만나자고."

나는 그녀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아름답게 밤하늘을 수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