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었구나. 미안하다. 이걸 가져오느라 시간이 좀 필요했어."
짧은 사과와 함께, 유니콘은 입에 물고 있던 천 주머니 하나를 떨어트렸다.
"그건..."
기억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천 주머니에서, 익숙한 상자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불사조의 유해였다.
"어디 꼭꼭 숨겨놔서, 찾느라 고생 좀 했느니라."
"그걸, 어떻게..."
마지막으로 그걸 가지고 있던 사람은 파시어였다. 그걸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들은 꽤 친절하더구나. 널 위한 일이라고 하니 순순히 그게 있는 곳을 알려주었어."
"하..."
내가 유니콘을 데려왔다는 소문마저 퍼진 것일까. 그렇다면, 파시어와 연관된 사람이 그녀를 적대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심부름을 하고 있다 생각하면, 별다른 저항 없이 그 귀물을 내어주었겠지.
"하지만, 그건 어째서 가져오신 겁니까?"
지금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글쎄, 생각해 보게나. 나는 언제나, '네 의사에 따라'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으니."
"그건..."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단지 불사조의 유해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닌 것 같았다.
유니콘, 살아 있는 유니콘과 그 생명이 필요한 일.
"귀환은... 관뒀습니다. 차마 마지막 물건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요."
"에네...렐."
"넌 가만히 있어."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파시어의 앞발을 지그시 눌러 밟았다.
"마룡의 심장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없는 겁니다."
나는 그녀를 죽일 수 없다. 셀리아를 죽일 수 없다.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네. 저 마법사가 신나서 자기 계획을 쫑알쫑알 털어놓았을 때부터, 끝이 좋지 않으리라 생각했지."
하지만 유니콘은 놀란 기색도 없이, 거듭하여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이게 필요 없다는 말인가? 필요할 텐데..."
"으..."
나는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고, 유니콘이 무슨 의도로 말을 걸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내 지식은 일천했다.
내 귀환에 필요한 재료가 아니었다면, 이런 귀한 마법 재료를 굳이 찾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평생 그렇게 살 생각은 없지 않겠느냐."
"..."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불사조의 유해라는 것은, 존재를 유지시켜주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몸이 타들어 가고, 영혼이 타들어 가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은 자리에서, 그 존재를 보존시키고 다시 되살려 주게 만드는 재료.
하지만 이 세상에 머물 내게, 그런 거창한 방어 장치는 필요하지 않았다.
"더러운 말이... 감히 누굴 꾀려 하는가..."
파시어의 눈에 적의가 맴돌았다. 저 용의 몸으로 쏘아붙이는 눈빛은, 꽤 매서웠다.
"넌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에네렐, 저 간교한 말의 음성을 듣지 마라. 그건... 희망이다. 언제라도, 네 생각이 바뀔 수... 크헉!"
최대한 장기를 피해 봤지만, 나는 파시어의 몸에 검을 깊게 박았다. 거칠게 움직이면, 피를 토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용의 회복력이라면, 하루 이틀도 되지 않아 말끔하게 나을 것 같지만... 당장은 아니었다.
"간교하다는 말은 그렇다 쳐도, 더럽다는 말은 인정하게 힘들구나."
하지만 유니콘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적의를 부드럽게 받아냈다.
"순수하지 않은 오염된 상태를 더럽다고 지칭한다면, 이 몸이 네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야."
"제... 길..."
파시어가 동요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유니콘의 말을 이해한 것 같았다.
"하지만..."
유니콘의 피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차원 이동 간의 수많은 오염과 변이로 얼룩진 몸을, 불사조의 유해가 기억하고 있는 '영혼'의 본질로 유추해내, 무엇보다 순수한 형태를 복원시키는 매체.
하지만, 여전히 의미 없는 일이었다.
지금 당장 나는 차원 이동을 통해 한 번 죽어야 할 이유도, 그 몸을 순수한 형태로 복원시켜야 할 이유도 없었으니.
"...아."
아니다. 내가 아니다. 이게 필요한 건, 내가 아니다.
차원 이동이라는, 상식적인 상황에서 '죽어야' 하는 일을 극복하기 위해 이 재료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구나..."
나는, 파시어를 바라보았다.
"깨달았는가. 그렇다면,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도 느꼈겠구나."
반대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 재료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되돌리기 위해 이 재료들이 필요한 거다.
"암말. 너와 에네렐의 계약에, 이런 조항은 없었을 텐데!"
"뭘, 나는 이미 그에게 동굴의 정화로 갚지 못할 빚을 졌다. 살육을 저지른다거나, 더러운 것을 퍼트리는 것이 아니라면 상관없다."
"크윽..."
"처음부터, 나는 에네렐이 원하는 것을 들어 주겠다고 했을 뿐이다."
유니콘은 마치 이 상황이 즐겁기라도 하다는 듯,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순수하지 않은 것을 순수하게 만들기 위함이라면, 이 정도 변화는 받아들일 수 있지."
그렇다면 할 수 있었다.
"후우..."
다시 검에 힘을 불어 넣는다.
"에, 에네렐. 정말로 그걸 할 생각이냐!"
"물론."
응용이다. 차원 이동을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버티기 위해 필요한 복원과 불사의 힘을 그녀를 위해 쓰는 것이다.
차원 이동 간에 몸이 전부 타버리더라도, 이동자의 존재를 유지시켜 줄 불사조의 유해.
그리고 그 존재가 확인되었을 때, 이동자의 육체를 가장 순수한 상태로 복원시켜 줄 유니콘의 피.
그 힘을 쓰면, 파시어를 되돌릴 수 있었다.
"...미친 짓이다. 안 될 거다."
"네가 도와준다면 가능하겠지."
결국, 남은 건 파시어 그 자신밖에 없었다.
"얼마나 힘들게 모은 재료더냐! 설령 네가 이곳에 남길 선택한다 하더라도, 언젠가 마음이 바뀌게 된다면! 재료 세 개를 모으는 것보다 마룡의 심장 하나를 모으는 편이 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네 여정을, 이딴 식으로 망가뜨려도 되는 것이냐! 죽어도 되는, 아니 죽어야 마땅할 나 한 명을 살리기 위해!"
파시어가 울부짖었다.
"...처음부터 망가져 있었어."
어쩌면 내가 용사의 힘을 얻고 떠난 여정이 아니라, 용사 파티의 짐꾼으로 떠났던 여정마저도. 망가져 있었다.
나는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 어쩌면, 퇴화했을지도 모른다.
힘을 얻고, 주위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지만, 내게 남는 것은 없었다.
그렇다 한들.
"...다음 여행을, 떠날 거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파시어를 죽게 내버려 둘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마법을 써. 할 수 있는 거 맞지?"
"이건 옳은 일이 아니란 말이다! 유니콘의 피다, 불사조의 유해다! 이 재료를 수백 개로 나눠 팔아도, 가난으로 죽어가는 인간 수천 명을 살릴 수 있을 거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건 내가 살아서 어떻게든 해 볼게."
"에네렐..."
"뭐, 내가 진 빚이라 생각해도 좋아. 네가 여기서 죽는 꼴을 보지 못하는 내가,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거니까."
그녀는 여전히 모두의 이익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틀린 말인 건 아니었다. 당장 그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가 내 눈앞에도 있었으니까.
나는 안쓰러운 눈으로 유니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뭘 망설이는 게냐. 이 몸은 금방 사라질 몸이라 하지 않았더냐. 삶의 미련도 없고... 그리고, 이건 가치 있는 일이니까."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파시어의 삶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렇다고 한들,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내 일이니까. 내가 원하는 일이니까.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을 위한, 죽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
높게 뻗은 검에서 막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법을 써. 순식간에 끝날 테니, 그렇게 아프지는 않을 거야."
차원 이동의 충격에 준하는 파괴를, 내 검으로 행해야만 한다.
검 끝에 피어오른 기운은 한도 끝도 없이 솟아 올라, 마치 대지를 조각낼 것처럼 일렁였다.
"...믿을게."
파시어의 마법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그저 파괴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손으로 그녀를 죽이게 될 것이다.
불사조의 유해가 '용의 모습을 한 그녀'를 복원시키지 못할 정도로 압도적인 충격을 주어야 한다.
결국 마지막에, 그녀의 목숨은 파시어의 손에 달려 있었다.
"이럴 가치가 없는데... 어째서..."
파시어가 울부짖는 사이, 유니콘이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었다.
"내지르게. 이 몸은 스스로 죽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성검이 반짝였다. 파시어를 구하겠다는 마음이, 선명하고 순수한 푸른 빛을 만들었다.
파시어는 아직까지 마법을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바라본 채, 마지막 말을 꺼냈다.
"꼭, 다시 별을 보자."
더 이상 검을 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을 태워버릴 듯한 거대한 힘은, 들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희미하게, 그녀의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유니콘의 숨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떤 미련도 없이, 나는 파시어를 향해 용사의 힘을 쏘아냈다. 거대한 방패가 수천 개씩 겹쳐져 있는 듯한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대지가 흔들렸다. 숲이 파괴되었다. 시야가 희미해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검에서 뿜어져 나온 막대한 힘만이 세계를 부수고 있었다. 파괴 뒤에 올 재생을 기대하며, 파시어를 산산조각내고 있었다.
"...아."
힘이 떨어졌다. 한계에 다다른 몸이 망가졌다.
내가 만들어낸 파괴를 눈으로 볼 틈도 없이 나는 검을 놓고 무너졌다. 눈을 뜰 수도, 앞을 바라볼 수도 없었다.
초라하게 쓰러진 내 눈에, 하늘이 들어왔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는, 몇 분 전과 변함없는 하늘이.
"...렐! 에네렐!"
용의 둔탁하고 낮은 성대가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소리가 들렸다.
두 발로 땅을 디디는 소리가 들리고, 파시어는 내게 달려들어 상태를 살폈다.
"하..."
다시 볼 수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을 보자, 이제야 다 끝났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니, 끝나지는 않았다. 그냥 하루를 더 이어간 것 뿐이다.
내 머릿속에 트라우마를 박아 놓은 채, 분노와 증오, 복수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용서하고 싶지 않다는 슬픔을 마음에 남겨 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소리지르지 마. 어지럽다고..."
그래도, 해는 뜬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해냈구나..."
다음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