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무의미했다.
"으아아아아!!!"
용사의 검은, 쓰러트리기 위한 것이다.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여신의 힘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지 변화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거기에 복원이나 치유 능력 따위는 없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엘레노어가 굳이 셀리아나 파시어를 데리고 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피부에서 흘러나온 마기를 지워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 비늘을 찢어내고, 피부를 잘라낼 수도 있었다. 그래도, 그게 전부였다.
"...그 안에, 내가 있는 건 아니다."
파시어의 말이 옳았다. 그녀가 이 용이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내가 박살 냈고, 그게 남아 있다고 한들 한 번 그녀가 이곳에 들어온 이상 다시 돌아갈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내 몸은, 쏟아지는 힘을 지탱하는 것마저도 하지 못했다.
"고맙다."
이를 꽉 악문 나는,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을 리가 있나. 이것이 내 몸이거늘."
바보 같았다.
그 몸의 마기를 누를 수 있을 거라고, 억제할 수 있을 거라고, 깎아내다 보면 언젠가 파시어가 제 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어설픈 각오로, 확신 없는 행동으로 무언가 이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편안하구나. 확실히, 정신이 드는 기분이야. 적어도 네가 내 몸에 검을 꽂아 넣은 동안에는, 이 몸에 정신을 뺏기는 일은 없겠어."
"하아..."
파시어는 내가 실패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반쯤 지쳐 쓰러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헉헉거렸다.
"...젠장."
내가 하려 했던 일에, 아무 생각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에리니스의 힘을 이용하는 건 유효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힘을 품에 안은 나는, 어느 정도의 '유권해석'을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여신이 직접 메이드복을 입고 내 시중을 들기까지 한 몸이다. 어지간한 성기사, 신의 대전사도 따라오지 못할 만한 권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라기에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권능으로, 나는 내 분노가 향하는 대상을 모조리 복수의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었다.
단지 인간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옭아내고 있는 마술과, 육체의 속박이라는 관념적인 것마저, 내 복수의 불길로 태울 수 있었다.
용사의 힘은 본질적으로 지키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 있었다.
신성한 빛으로 마기를 억누르고, 그 와중에도 파시어의 영혼이 내 검에 베이지 않게 지켜 줄 수 있었으니까.
"으..."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이미, 이 용이 파시어였다. 파시어가 이 용이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이 검은 용의 육체를 깎는 걸로는 파시어를 부를 수 없다.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럽게 그 사실을 인정했다.
"충분하다."
"왜..."
"고생했구나. 이 정도면... 과할 정도의 친절을 받았다."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은 내 귀에, 파시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구원받을 가치가 없는 인생이었다. 고맙다... 이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과분할 정도의 애도였다."
"차라리 죽었으면... 죽는다면 이런 짓까지 하지 않는다고! 내가, 곧 죽을 사람 기분 좀 풀어주겠다고 이 지랄을 하는 것 같아?"
"에네렐, 너도 알고 있다. 내 미래는 끝났고, 네 미래는 아직 남아 있다."
"..."
"이 몸뚱이에서 나를 떼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육체가 있다 한들, 일이 그리 쉽게 되지는 않을 게야."
내 검으로 그녀를 '갉아먹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윤회를 믿지는 않았지만, 만일 이 몸이 죽어... 다시 그대를 볼 날이 있다면, 그때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않겠다. 슬프게 하지 않겠노라..."
파시어는 지껄였지만, 나는 이 순간에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하."
그래, 인정하자.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를 잡았다. 그녀를 원상복구 시키는 것은,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드디어, 마음을 놓아 주었는가."
"일단은."
나눠서 생각해 보자.
그녀가 본래 몸으로 돌아올 수 없는 이유는, 질리도록 들었다.
예비 육체가 없느니, 혼이 통할 수 있는 육체 조정을 위해서는 지금 구할 수 없는 재료가 필요하다니 하는 말들을 파시어가 쉬지 않고 중얼거렸으니까.
그렇다면, 파시어가 지금 당장 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 마룡이 되지 못한 용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본능적인 폭력성이다. 무시무시한 마기다.
지금 당장 그녀를 방치한다 하더라도, 몇 달 안에 파시어는 이성을 잃게 된다.
하지만 단서는 있었다.
"너, 지금 당장은 머리가 맑아졌다고 했지?"
"그렇다만... 그렇다 한들, 그대가 평생 내 몸에 검을 박고 살아갈 수도 없는 일이지 않나."
"왜 없다고 생각해?"
용사의 힘이, 성검을 타고 선명하게 빛난다.
수호하고자 하는 마음, 그걸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
내 것을 지키고자 하는 탐욕,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
복수의 여신이 내게 하사한 힘이 그 위를 덮는다.
혐오, 분노, 증오, 내가 당한 것들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에 대한 복수.
이 세상의 모든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응보.
"흐으으읍..."
마룡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분노도, 그 마기도 결국 파시어였다. 그걸 잘라낸다 해서 '진정한 그녀'가 드러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파시어라면 끌어당길 수 있었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성검을, 파시어의 몸 속 깊숙이 찔러 넣었다.
"크, 크읏... 거긴, 치명적인 곳이 아니다..."
"나도 알아!"
파시어를 억압하여, 죽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울분을 토해낸다.
억지다. 복수의 여신의 힘을 쓰기에, 바르지 않은 방식이다.
그 간극을 분노로 메운다. '내가 이렇게까지 아파하는데, 내게 복수할 자격이 없다는 거야?'라는 생각을 억지로 밀어붙인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마기를, 마룡의 폭력성을 억지로 태워 지운다. 그럼에도 미처 지우지 못한 흉험한 것들이 내 몸 안에서 날뛰고 있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스럽다. 마룡의 피가 검을 타고 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 분노가, 본능적인 폭력성이 내 안에 들어온다. 파시어는, 이런 걸 그저 그녀의 이성만으로 버티고 있던 것일까.
분노가 뒤섞인다. 그녀의 몸에서 뽑아낸 감정과, 에리니스의 힘을 사용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이 뒤섞인다.
"크윽..."
"뭐, 뭘 하는 거냐, 그건..."
"닥치고... 있어 봐!"
대부분은 태웠다. 태우지 못한 건 받아들였다.
심장이 충동과 분노로 쿵쾅쿵쾅 뛰고 있지만, 내 몸은 이미 그 응석을 받아 줄 여유조차 없었다.
파시어의 몸에서 거칠게 검을 뽑아낸 나는, 성검을 땅에 처박은 채 거기 힘겹게 기대 몸을 지탱했다.
고통스럽다. 정말로, 내가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멋대로 해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견딜 수 있다. 나는 나고, 한 번 빨아들인 충동과 마기 정도로 타락할 생각은 없었다.
"어때..."
더 이상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나는 파시어를 바라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 지랄을 해 줬는데, 몇 달은 확실히 버틸 수 있겠지?"
"안 된다. 이건, 이런 식으로는..."
이렇게 한다면, 당장 그녀의 목숨을 연장시킬 수 있다.
파시어라면, 분명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구하기 어려운 마법 재료가 필요해도 언젠가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용의 등에 올라타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앞이 흐릿해진다.
"아, 안 된다. 에네렐. 에네렐!"
그녀의 조잡한 손이 마법진을 그린다.
하지만, 기운을 회복하는 것은 마법이 할 수 있는 가장 비효율적인 행동 중 하나다.
지친 인간의 몸을 억지로 움직여 더 싸우게 할 수는 있어도, 쓰러진 인간이 정신을 차린 채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게 할 수는 없다.
"죽는 것도 아니라고..."
그냥, 피곤해졌을 뿐이다. 잠을 자지 못한지도 꽤 되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아직도 하늘은 아슬아슬하게 어두웠다. 시간이 몇 시쯤 되었으려나.
"이럴 필요는 없었다! 내 몇 달도 안 되는 수명을 위해, 네가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아쉬운 쪽이 지랄하는 거지. 별 수 있나."
구멍이 생기는 것이, 싫었다.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싫어하는 대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대로.
그냥, 어느 순간 잊혀지기를 바랐다.
이건 잊을 수 없다. 그녀가 이렇게 떠나게 된다면, 나는 평생 파시어를 잊어버릴 수 없다.
파시어가 마지막으로 보여준 그 거대한 용의 시선을 떠올리며, 그녀의 죽음을 기억 가장 깊은 곳에 박아 버리고 말 것이다.
나를 위해 이런 짓까지 한 그녀를,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인 그녀를, 평생 증오할 수 없다.
"그건... 안 돼."
지루하고, 평범하게.
증오하고, 잊고, 가끔 떠올리다, 다시 화를 퍼붓고, 언젠가는 아무렇지 않아지게 된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평생 이 짓을 해야 할 거다. 당장은 이걸로 해결되었지만, 빈도가 점점 늘어날 거다. 언젠가는, 매일 이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뭐, 어쩔 수 없지."
감수할 수 있었다.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내려와 살라고 강요하는 일이니까.
나름 '점잖은' 설득을 들었던 나마저도 열받는 일이었는데, 나는 배에 칼을 들이밀고. 아니 밀어 넣고 억지로 그녀를 살게 한 것이다.
이 정도 원망은 받을 수 있었다.
"...꽤 재미있는 일을 하는구나."
그리고, 뒤에서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는 희미해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은 채, 그녀의 말을 들었다.
순결하기 그지없는, 뿔 난 백색 말의 여유로운 목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