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200화 (200/217)

싸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대치 상황을, 최대한 오래 지속시켜야 한다.

"...싸울 생각이야?"

"당신을 돌려보낼 생각인 겁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검을 뽑았다. 그녀의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면, 막아낼 수 있는 자신이 없었다.

아니, 이상하다.

막아낼 수 있는 자신이 없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각오를 다졌다고 한들, 그 살인검의 힘을 얻었다고 한들 객관적인 신체 스펙은 내가 몇 수 위다.

져서는 안 된다. 힘이든, 속도든 그녀에게 밀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역시 자신이 없었다.

"내가 죽으면 안 되는 것 아니었나?"

"유니콘의 힘은, 절대적인 복원. 극단적으로는, 팔이나 다리 한 쪽이 잘려 나가도 귀환 과정에서 복원될 겁니다."

으스스했다. 엘레노어는 진심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돌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많은 거 아니었어? 황제가 된다고 했었잖아. 거기에 집중하는 게..."

"그건, 단지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당신이 제국을 동정하지 않게 만들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었습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뀐 태도를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녀가 이럴 줄은 몰랐다. 제국을 누구보다 우선시하는 그녀였다.

그토록 혐오하던 나와 맺어지는 일에도, '황제 폐하의 명령'과 '제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던 엘레노어였으니까.

정말 그녀의 목적이 나라고 해도, 제국 얘기를 꺼내면 조금이나마 흔들릴 거라고 생각했다.

인정해야 했다. 지금 당장 그녀에게는, 내가 제국보다 더 중요한 존재다.

나에 대한 의무가, 그 제국에 대한 의무보다 우선시되는 것이다.

"귀환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신의 도움을 받는다거나..."

"이미 제국의 성직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엘레노어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신은, 자신의 관할 범위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역시, 그랬던 거냐..."

"당장 활성화된 신은 복수의 여신, 에리니스입니다. 복수의 관한 일이라면 모를까... 용사의 귀환이라면, 그녀가 도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고, 어느 정도 눈치채고는 있었다. 에리니스가 마지막에 보여줬던 태도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나를 도와줬을 것 같았으니까.

변명거리는 없어졌지만, 여기서 말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만 해도 된다고 하잖아. 난 괜찮으니까, 이제 좀 다른 일-"

"또, 저를 달콤한 말로 속이시려 하는 겁니까?"

고통스러워 보이는 엘레노어의 표정을 본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에 대한 작은 힐난과, 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하고 참혹한 자기혐오가 그녀의 눈에 담겨 있었다.

"당신이 '괜찮다.'라고 말했을 때, 저는 반가웠습니다. 그토록 약한 사람이, 그만큼이나 강한 각오를 품고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검을 손에 쥔 엘레노어는, 그때를 추억하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기댔습니다. 당신이 기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는, 하늘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이 무게를, 이 책임을, 이 의무를 나눠 짊어질 사람이 생겼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아프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철없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울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게 그릇된 행동은 아니었다.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에네렐, 당신은 달콤한 말로 저를 속였던 겁니다. '괜찮아.', '견딜 수 있어.' 같은, 제가 듣기 편한 말로 저를 현혹했던 겁니다."

"그래, 그러면 쌍방책임인 걸로 하자고. 그러니까..."

"아닙니다."

엘레노어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엘레노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 이상으로, 그녀도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엘레노어의 안에서는, 이미 충분한 각오가, 결의가 선 상태였다.

"제가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제 짐을 대신 들어 줄 이유는 없습니다. 당신이 기사가 될 이유도, 짐꾼이 될 이유도, 심지어는... 용사가 될 이유도 없습니다."

"어쩔 수 없었잖아. 기사야 내가 잘못했던 거고, 짐꾼이야 뭐, 구성원 하나하나가 자기 일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상황이었고, 마왕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용사가-"

"그건 필요입니다. 당신이 그리 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약했습니다. 책무를 내팽개치고 싶다는 충동에 빠져 있었기에, 그걸 대신 받아 주겠다는 당신의 말을 의심 없이 받아들인 겁니다."

아니다. 그녀는,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괜찮을 리 없습니다. 당신은 전쟁이 없는 시대에 살아온 민간인이고, 용사의 힘을 전부 제게 준 이상 마나를 다룰 능력도 없습니다."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저는 당신의 분노가 터져 나온 다음에도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저를 추궁하실 때, 당신의 훈련을 제 훈련과 비교하며 억울함을 토로했을 뿐."

엘레노어의 감정이 격해진다. 나는 조용히, 그녀가 말을 토해내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신은, 마치 설탕처럼 달콤하고, 구름처럼 높이 떠다니며, 바다처럼 넓어서."

나를 처음 봤을 때, 내 결단에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엘레노어가 있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로 답하고, 무슨 짓을 저질러도 '버틸 수 있어'로 응대했습니다."

막 모험이 본격화되었을 때, 미안한 마음을 품에 안고 몇 번이고 내게 질문했던 엘레노어가 있었다.

"당신을 처음 봤을 때 그 고결함에 감탄하던 저는, 점점 선을 넘었습니다."

용사의 여정이라는 고된 행군과, 계속되는 전투에 지쳐가는 엘레노어가 있었다.

"이 정도면 기대해도 괜찮겠지, 이 정도면 해줄 수 있겠지. 슬금슬금 기대치를 올리다가, 어느 순간 막혀 따라오지 못하자 화를 냈습니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했던 훈련은, 조금씩 거칠고 매서워졌다. 그녀의 성검이 나를 죽기 직전까지 두드렸고, 나는 필사적으로 그걸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는 제가 조금이라도 화를 내면, 당신은... 당신은 한계를 뛰어넘어 줬으니까! 당연히, 당연히 그렇게 될 줄 알고..."

고민하던 엘레노어가 있었다. 점점 아슬아슬해지는 일정과, 떨어지는 물자. 그리고 마왕성 근처의 강력한 마물 사이에서 힘겨워하는 나를 보며, 불안에 빠진 엘레노어가 있었다.

"그런데도 힘겨워하는 당신을 모욕하고, 재능 없다, 노력하지 않는다 비하하며..."

다른 사람처럼,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나를 사용하던 엘레노어가 있었다. 조급함, 분노, 불신과 불만. 그 모든 것을 내게 쏟아붓던 엘레노어가.

"내 짐을 당신이 대신 들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당신 위에 올라타 채찍질을 일삼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 엘레노어가 있었다.

"저는, 이제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는데."

엘레노어가, 한 걸음 내디뎠다.

"당신은 아직도,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담는 겁니까."

"내 신용이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업자득이니, 뭐라 변명할 도리가 없었다.

"귀환을 포기한다니... 정말, 제게 너무나도 달콤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황제의 딸이 한 걸음 내디뎠다. 아무런 주저도 없이, 아무런 미련도 없이.

"친우를 죽여야 할 필요도 없고, 구하지 못할 재료를 찾으러 고난에 빠져야 할 일도 없는데."

기사 중의 기사가 한 걸음 내디뎠다. 방황을 끝내고, 자신의 길을 찾은 기사가.

"그저 걸음을 돌려 아무 일 없는 듯 하루를 보내라는 말이..."

검사가 한 걸음 내디뎠다. 곧, 그녀의 간격 안에 들어간다.

"우습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저희의 속죄도, 당신의 해방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 그냥 누군가의 달콤함이 그 모든 일을 덮어 버린다니."

이름 없는 기사와 맺어진 황후가 낳은 딸이, 한 걸음 내디뎠다. 달빛이 그녀의 표정을 선명하게 비춘다.

"저는 더 쉬운 길보다는 올바른 길을 걸으려 합니다. 의무에서 눈을 돌리지 않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겁니다."

용사가, 한 걸음 내디뎠다.

이제 검을 휘두르면 닿을 거리만 남아 있었다. 엘레노어와 나는 슬픈 긴장감 속에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에네렐, 당신을 이 세계의 고통 속에 살게 하지 않겠습니다. 저 엘레노어와, 저와 같은 잘못을 했던 사람들 속에 살게 하지 않겠습니다."

"여신이 당신에게 떠넘긴, 제가 당신에게 떠넘긴, 제국이 당신에게 떠넘긴 짐에 당신이 깔리게 두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가진 그 선함과 긍휼함이, 그대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제국이 당신에게 약속했던, 황제 폐하께서 서약했던 일을 수행하겠습니다. 마왕 퇴치의 보상을, 그분을 대리하여 전달하겠습니다."

엘레노어가 평생 섬겨 왔던 가치인 의무가 그녀의 몸을 움직인다.

책임과 의무로 차곡차곡 쌓여 왔던 성이, 후회와 회한으로 더욱 단단해졌다.

알고 있다. 저 눈을 한 엘레노어를.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에네렐... 아니. 아직도 제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세계의 인간이여."

엘레노어가 검을 내밀었다.

"당신을, 돌려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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