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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99화 (199/217)

셀리아는 이내 새근새근 잠들었다. 정확히 그녀의 상태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멀쩡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 끝났다. 이곳을 잘 지키고 있으면, 다른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검은 안개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잠깐 나가 상황을 보려 했던 나는, 문 앞에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엘레노어?"

온 몸에 소름이 확 끼친다.

다르다. 그녀가 가진 각오가, 결의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압도적이다.

허리에 찬 검에서 압박감이 느껴진다. 용사의 힘을 얻은 이후, 이 정도로 거대한 불안함을 느껴 봤던 적은 많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조심스레 열렸다.

"에네렐..."

불안함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나는, 이를 악물고 천연덕스러운 태도를 연기했다.

"음, 그래. 오랜만이다. 무슨 일 있어?"

그녀가 연루되어 있지 않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불사조의 깃털 같은 특별한 재료가 아니더라도, 내 귀환 의식에 필요한 마법 재료는 차고 넘친다.

마탑과 파시어 혼자 그 일을 해결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나를 지원해 주던 황제는 죽어버렸다.

제국의 자원을 내 귀환 의식에 사용할 수 있도록, 남은 제국의 관리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식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엘레노어밖에 없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잠시 이곳에서 나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후..."

"이 오두막은 너무, 좁군요."

대화하기에는 충분한 넓이였지만, 그녀가 싸움을 생각하고 있다면 아니다.

나는 셀리아가 죽기를 원치 않는다. 엘레노어는, 셀리아가 마룡이 아닌 다른 이의 손에 죽기를 원치 않는다.

어쩌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협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시어와 셀리아가 주동자고, 엘레노어는 단지 그들을 따르고 있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건 내 망상이었다. 엘레노어는 그 어느 누구보다 완고하고 강력하게 내 귀환을 원하고 있었다.

"...안내해."

좋게 끝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오두막에서 나온 엘레노어는, 근처에 있는 공터까지 걸어갔다.

달빛이 그녀를 비추고 있었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 어떤 주저도, 고뇌도, 미련도 없이 그녀가 생각하는 '옳은 일'을 하려 드는 엘레노어다.

용사의 힘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그녀는, '그녀가 용사였던 시절에 내가 봐 왔던' 엘레노어였다.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그녀와 나는 나란히 섰다.

상식적으로는, 내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성검은 내 손 안에 있다. 용사의 힘도 내게 깃들어 있다.

평범한 인간인 그녀가, 나와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가 완전히 개화되지 않았던 용사의 힘을 가지고 싸웠을 때도, 항상 이길 수 있는 싸움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녀를 믿었다. 그녀는 절대 패배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리고, 엘레노어는 언제나 그 기대에 부응했다. 저런 눈을 하고 있는 그녀는,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았다. 질 것 같지는 않았다.

"방해할 셈이냐?"

"굳이 따지자면, 그 반대가 되겠지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에네렐, 당신의 귀환을 위해 세워 놨던 오랜 계획이."

각오가 다르다. 집념이 다르다 인생의 농도와 깊이, 크기가 다르다.

강하다. 진심이 된 엘레노어다. 그녀의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그녀다.

"같은 말을 한 명씩 번갈아 가며 하는 거, 슬슬 지치거든? 그냥 한꺼번에 좀 모여 있으면 안 되는 거였냐?"

"유감이지만, 괜찮습니다. 이게 마지막일 테니."

싸늘하다.

그녀와 내가 대련이 아닌 방식으로 싸워 봤던 건, 기껏해야 황궁에서의 싸움이 전부였다.

복수의 여신의 힘을 받고, 부활이 실패했다는 아픔에 이성을 잃은 채, 혼란스러운 엘레노어와 싸워 이겼을 뿐이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됐어. 이미 얘기하면서 결론도 냈고... 나, 포기하기로 했다."

엘레노어는 잠시, 눈을 감았다.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아니, 어차피 돌아가서 할 일도 없고. 그거 때문에 너희들이 하는 짓을 보고 있자니, 그냥 포기해도 될 것 같아서."

사실은, 아니다.

미련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모아왔던 마법 재료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해 왔던 일들.

너무나도 아깝다. 내 피를 뽑아내는 것처럼 어지럽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없는 것뿐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엘레노어는 조용히, 검을 뽑았다.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살인검이다.

성검과는 다르다. 성검이 가진 검의 기능은, 그냥 평범하게 '안 부서지는 단단한 검'에 불과하다.

주된 용도는 검이라기보다, 용사의 힘을 응축하고 증폭하여 방출시키는 도구에 가깝다. 엘레노어가 용사였을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저건 다르다. 검 자체에 힘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엘레노어는 그 검의 힘마저도 비틀고 억눌러, 자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내 귀환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가 뭐야?"

"그게, 당신이 약속받은 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약한 맹세였기 때문입니다."

엘레노어는 내 몸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강렬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그렇게까지..."

"의무는, 지켜져야 합니다."

거대한 그녀의 감정이 용솟음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내 눈에 보이는 엘레노어의 얼굴은 너무나도 평안하고 담담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친딸이 아니었습니다."

"..."

그런 소문이 돌긴 했었지만, 나는 그걸 믿지 않고 있었다.

황제를 직접 만나 봤던 나다. 엘레노어와 숙식을 같이 했던 나다.

그 둘이 얼마나 닮은 사람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황제가 얼마나 엘레노어를 사랑하는지, 엘레노어가 얼마나 황제를 사랑하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제게 사랑을 베푸셨던 어머니는, 본인의 의무를 내던졌습니다. 아마... 제 친부가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였겠지요. 그 말에 속아 의무를 포기한 그녀는, 결국 끔찍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네 어머니잖아."

가족 얘기를 자주 하던 엘레노어는 아니었지만, 아주 가끔, 한두 마디씩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는 조금이나마 웃고 있던 그녀였다.

지금 엘레노어는, 웃고 있지 않았다.

"물론, 아직도 그분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지 않은 행동을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견고하다. 그녀 안에 만들어진 생각들이, 거대한 벽처럼 나를 막고 있다.

"제 아버지... 양아버지이신 황제 폐하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바른 후계자를 세우고, 부인을 단속해야 한다는 의무를 방기했습니다."

그녀의 날카로운 말이, 황제를 향해서도 쏟아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엘레노어가 얼마나 황제를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얼마나 큰 충성을 바쳤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였으니까.

"제 친어머니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

"그토록 선한 사람도, 그토록 강인했던 사람도, 그토록 위대했던 사람도 그저 한 번. 단 한 번의 유혹을 참지 못해서 이 꼴을 만들었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엘레노어의 무미건조하던 말에, 서서히 감정이 섞여 들어갔다.

끓어오르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지금 제국을 보십시오. 자격 없는 황족들이 이제서야 세를 규합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눈을 돌리고 피할 수 있는 주제도 아니었다.

평범하게 파시어를 찾아다닌 나마저도 느낄 수 있는 혼란이라면,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그녀는 더 끔찍하고 아프게 그걸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이 혼란이 이어진다면, 누군가 이걸 수습하지 않는다면... 아마, 그분은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되실 수도 있겠군요."

"그럴 리는..."

"비참하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셨던 분입니다. 자신의 몸보다 나라를 우선시하신 분입니다."

절규, 허무함, 비난, 분노, 두려움.

수많은 감정들이 그녀의 말에 묻어 나왔다.

"제국 역사에 존재했던 그 어떤 황제보다 안정된 통치로 외적과 마왕군을 몰아냈던 황제가, 홀로 이 제국과 세상을 바꿀 만한 개혁을 이뤄냈던 그 황제 폐하가! 겨우, 그 작은 온정 때문에!"

황제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에 대한 일만 제외하면.

그는, 완벽한 황제였을지도 모른다.

"내 어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그 사랑 때문에, 더러운 도주의 산물이었던 나를 그의 딸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 유약함 때문에!"

검을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다.

"당신의 힘을 도둑질해 가짜 용사를 만들겠다는 어설픈 거짓말도, 당신의 분노와 제국의 분열도. 전부 그가 의무를 포기하지만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고문하는 듯한 엘레노어의 표정을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영광과 힘을 빼앗아 갔던 것은, 기만이었습니다."

"그때는 어쩔 수 없던 거잖아. 나도 동의한..."

"효율을 이유 삼아 규칙을 깼습니다. 다른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제 의무를 저버렸습니다."

흔들림 없는 엘레노어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시는, 그리 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가 쥐고 있는 검보다도, 더 날카롭고 강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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