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97화 (197/217)

"고마워요."

셀리아의 작은 목소리가, 관 사이에서 흘러 나왔다. 그녀의 목에서 나오는 소리다.

"이거, 내가 열어도 되는 거냐?"

어둡고 텁텁한 기운은 아직도 이 오두막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제 죄책감을 덜어내 주시기 위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한참 전 일을 굳이 끄집어내서, 그마저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떠드는 게 짜증 났을 뿐이야."

나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관에 노크했다. 다소 무례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죠. 제 신성 주문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당신이 살았다는 게... 그에 동의했다는 것이라는 말도, 아마 맞겠죠."

나는 매캐한 공기를 억지로 들이마셨다. 뭔가 온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과거를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그때의 제가 했던 실수를 되돌리기 위에 에네렐을 죽이려 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좀 섬뜩하네."

성직자의 능력은 감정에 비례한다.

진심을 다해 총을 쏘면 총알이 세게 날아간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성직자에게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냥,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거죠. 당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사람들을, 당신을 이토록 증오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연료 삼아, 당신의 미래를 밝히는 거예요."

"할 거 있으면 빨리 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감정이 흘러들어왔다. 저항할 틈도 없이, 나는 다시 환각에 빠졌다.

/////

평범한 집이다. 내가 지구에 살았다면 이런 곳에서 살았을 법한, 평범한 아파트.

정장을 챙겨입은 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고 있었다.

아름다운 아내가 잘 다녀오라며 키스를 하는, 성공한 인생.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구에 남은 나는 어쩌면 이런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 차를 몰고 거리에 나선다.

수많은 차량들이 도로를 막고 있다. 음악을 킨 채,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은 평안한 얼굴로 카페에 들어가거나, 연인과 손을 잡고 행복한 일상을 즐기고 있다.

이곳은, 내 세계다.

"예쁘네."

용사 파티원의 미모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내 아내는 충분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한 나는, 하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일을 했다.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서를 다시 제출하고, 점심시간에는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외식을 한다.

돈까스의 바삭바삭한 식감과 소스의 감칠맛을 느꼈다.

직원들은 아무 고민도 없다는 듯이, 관성적으로 내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한다.

아무도 아파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유의미한 사람이 아니다.

그저 내 할 일을 잘 할 뿐인, 사회의 일원에 불과하다.

가끔은 힘들고, 가끔은 행복하다.

퇴근길에 오른 나는,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내 아이와 아름다운 아내를 볼 생각에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차를 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이웃과 산뜻한 무관심을 나눈다. 그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그도 내가 어디에 사는지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이가 먼저 우다다 달려와 아버지를 반긴다. 나는 아이를 번쩍 들어 한 바퀴 돈 다음,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꼭 안아 준다.

옷을 갈아입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흥미 어린 눈빛으로 듣는다.

아내는 내 모습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이가 잠자리에 들자, 어느새 도발적인 옷으로 갈아입은 아내가 나를 유혹한다.

오늘은 좀 피곤하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하루가 너무 아까웠다.

뜨거운 순간을 보낸 다음, 새근새근 누워 있는 아내와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든다.

내일도, 오늘과 같은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평범한 사람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하루.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나오지도 않고, 시체를 봐야 할 필요도 없는 일상.

당장이라도 죽기 직전의 사람을 살려 달라고 누군가에게 애원할 필요가 없는, 그냥 안락한 사회.

힘이 없는 만큼, 책임도 없는 나. 그저 내게 주어진 일상을 즐기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나.

어쩌면, 이런 삶은 내 행복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가족도, 친구도 없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아무것도 내게 요구하지 않는 편안하고 안락한 세상에서.

"...아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 세계가 이상향인 것은 아니다.

용사로서 살았던, 짐꾼으로 살았던 세계보다는 덜하지만, 이곳에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몇 천원을 벌어 김밥 한 줄로 목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전쟁에 휘말려, 허무하게 목숨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끔찍한 가난에 몸을 맡긴 채, 현대 문명은커녕 당장 먹을 죽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구의 인구수가 엄청나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이 세계에서 죽어가는 사람보다 지구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내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저 그들이 보일 만한 곳에 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그들에 대한 기부를 하거나,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다. 그저, 나는 그걸 바꿀 수 있는 힘이 없다고 생각하며, 나를 위한 일에 집중했을 뿐이다.

도망친 것이다. '내가 해 봤자 방법이 있겠어?'라는 말 뒤에 숨은 것이다.

어쩌면, 그게 꼭 나쁜 선택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도망친다고 해서 나를 욕할 사람도 없고, 평범한 사람이 평범하게 사는 것은 딱히 흉을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저 일상을 즐기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

이름 모를 타인이 아니다.

하다못해 증오일지언정, 내게 감정적으로 달라붙은 인간을 죽여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하..."

한숨을 쉬자, 세상이 뒤틀린다. 환각이 사라진다.

높은 아파트에서 바라보던 야경도, 침대에 누운 아름다운 아내의 얼굴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내가... 도망칠 것 같냐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용사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죽음이든, 차원 이동이든 이 세계를 버린다는 점은 다르지 않았다.

"이까짓 미래를 보여주면, 내가 꼬리를 말 줄 알았나?"

"..."

셀리아는 말없이, 내게 다음 미래를 보여주었다.

/////

분위기가 어둡다.

나는 혼자 있었다. 그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새로운 황제 폐하의 명령으로, 네놈을 반역자로 처단한다!"

거기 있는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내가 지켜왔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고, 내가 살려 왔던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드는 상황에서.

평소처럼, 적당한 힘으로 기절시키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내 몸은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으니까.

용사의 힘은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늘 위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쏟아진다. 나는 지친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그걸 피한다.

직격은 피했지만, 충격은 피하지 못했다. 등에서 뜨거운 감촉이 몰려온다.

쓰러진 내 손등에, 엘프의 화살이 박힌다. 황급히 그걸 빼낸 다음, 어떻게든 포위망의 빈틈을 찾아내기 위해 다리를 움직인다.

몸이 둔해진다. 셀리아의 신성 주문이, 내 몸을 느리게 만들고 있다.

"거, 참."

정신을 차린 나는, 도망치는 대신 헛웃음을 지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 신성력 없잖아."

뭐, 애초에 숨기려는 의도도 없다고 보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나를 노려보고 있는 용사 파티와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 엘레노어가 있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아예 의미 없는 환상은 아니었다.

사람은 변한다. 증오도, 속죄하겠다는 마음도, 사랑도, 연민도, 각오도 시간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쓸려내려 갈 수밖에 없다.

어느새 나는 전장 한복판이 아니라, 쓸쓸한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래, 이게 그나마... 더 현실성 있지."

지금 그들은 목숨을 바쳐 내 귀환을 도우려 한다.

하지만, 그 마음이 영원할 리는 없다.

당장 내가 귀환을 포기해서라도 그들의 목숨을 구한다면 당장은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이어지면. 언젠가 그들이 나에게 불만을 품고, 내가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면.

창문 밖에는 용사 파티가 한데 모여 지나가고 있었다. 행복한 얼굴로, 나를 제외한 채.

"언젠가는..."

내 각오라 한들,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용사가 되어 희생하겠다는 여신과의 약속도,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짐꾼으로서의 다짐도 영원하지 않았다.

당장 내 몸이 아프고 정신이 어지러워진다면,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나도 쉽게 마모되기 마련이다.

나는, 지금 이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서서히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 결단을 지킬 수 있을까.

"...됐어. 충분히 봤다."

손을 몇 번 휘젓자, 단단해 보이던 집은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다. 눈을 감고 집에서 나가자, 이제는 익숙해진 검은 안개가 눈을 가렸다.

"네가 내게 뭘 보여주든, 무의미할 거다. 나는, 이미 도망칠 생각이 없으니까."

나는, 거칠게 그녀가 잠든 관의 뚜껑을 열었다.

셀리아의 눈이, 복잡한 감정을 품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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